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891 - Chapter 900

975 Chapters

제891화

강현우의 말이 끝나자 우지원의 이마에는 다시 차가운 땀이 맺혔다.요즘은 뭐 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특히 강현우가 맡긴 일마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서 마음이 무거웠고 우지원은 그런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한동안 침묵하던 우지원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틀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하지만 강현우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눈치를 살피던 우지원은 한 손가락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하루만...”강현우는 고개를 들어 우지원을 쳐다봤다.“내일 밤까지. 강현민을 데려와.”우지원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다시 한번 세상살이 녹록지 않다고 실감했다. 강현민만 데려오는 거라면 진작 해결했겠지만 강현민 뒤에는 또 다른 변수가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망설이던 우지원은 강현우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대표님, 강현민은 제가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쪽이 걱정돼서요.”그는 입술이 바짝 말라서 무심코 혀로 적시며 다시 물었다.“혹시 회장님이 대표님께 불리하게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강현우는 그 말을 듣고 짧게 비웃듯 한숨을 내쉬었다.“쓸데없는 소리 할 거 아니면 가서 일이나 해.”그리고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우지원은 눈썹을 한번 치켜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강현우가 이미 강씨 가문과 완전히 선을 긋기로 했고 이제 더는 눈치 볼 필요 없으니 우지원은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우지원이 사무실을 나가고 강현우는 어두운 사무실에 홀로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한참 앉아 있던 강현우는 마침내 천천히 일어났고 긴 몸이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더욱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한동안 문득 생각에 잠긴 채로 있다가 결국 조용히 문을 열고 나섰다....깊은 숲속의 밤은 그야말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윤하경은 익숙하지 않은 작은 방에 누워 뒤척였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용천수가 작은 등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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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2화

다음 날 아침, 윤하경은 눈을 뜨자 몸이 전날보다 훨씬 나아진 걸 느꼈다.주위를 둘러보니 용천수는 이미 방에 없었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일어나려던 찰나,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문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와 윤하경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이때 용천수는 서둘러 문을 닫으며 손에 작은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아침 먹어요.”“고마워요. 오늘은 몸도 많이 괜찮아졌으니까, 아침 먹고 나서 같이 길을 한번 찾아볼까요? 어쩌면 우리가 생각보다 더 빨리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잖아요.”식사 중, 윤하경이 슬쩍 용천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국물 한 모금을 천천히 들이켰다.그녀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지만 용천수의 눈동자에는 잠깐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용천수는 젓가락을 쥔 손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러죠.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윤하경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고 윤하경은 더 이상 별생각 없이 밥을 먹었다.원래부터 예민하게 굴지도 않았고 지금은 뭐든 입에 들어가면 다 맛있게 느껴졌다.힘든 상황에서도 먹을 수 있는 한 끼가 고마울 뿐이었다.용천수는 그녀가 마지막 국물을 들이키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그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살짝 스쳤지만 이내 감정을 감춘 채 시선을 내리깔았다.식사가 끝나자 윤하경은 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용천수를 바라봤다.“이제 나가서...”하지만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윤하경은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받았다.“용... 천수 씨...”그녀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머리를 흔들었다.“나, 왜 이렇게 머리가 무겁지...? 설마... 이 국에... 무슨...?”윤하경은 힘겹게 마지막 말을 내뱉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용천수는 재빨리 달려들어 그녀를 부축했다. 가냘프고 가벼운 몸이 손에 안겼고 그는 한동안 그녀를 내려다보며 미안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이렇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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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3화

살을 에는 눈바람이 몰아치는 옥상에서 강현민은 속옷 한 장만 걸친 채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하지만 강현우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자 오히려 비웃음이 튀어나왔다.그의 몸매는 평소에도 썩 좋지 않았지만 이렇게 떨며 웃을 때마다 몸 여기저기가 우스꽝스럽게 흔들렸다.“하하, 강현우. 넌 그동안 누구 하나 제대로 신경 쓰는 일도 없더니 결국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네가 날 잡아 온 건 별로 대수롭지 않은데 여자 문제로 이런 짓을 하다가는 할아버지가 널 가만둘 것 같아?”강현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현우는 갑자기 돌아서더니 강현민의 어깨를 세게 짓밟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힘을 줬다.그렇게 편하게만 살아온 강현민이 이런 고통을 버틸 리 없었다.참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자 적막하던 옥상에 그의 비명이 날카롭게 퍼졌다.강현우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발에 더 힘을 줬고 몸을 굽혀 바닥에 엎드린 강현민을 냉정하게 내려다봤다.“계속 입 다물 거면 네가 원하지 않아도 진실을 털어놓게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강현민은 통증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끝까지 버티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강현우, 너 진짜 짐승이야! 나는 네 삼촌이라고!”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현우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시 발에 힘을 실었다.“알잖아. 난 원래 인내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거.”강현민은 이를 악물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 분노와 적개심만 가득했다.“강현우, 너... 너 정말...”결국 참지 못하고 또다시 비명을 지르더니 마침내 입을 열고 말았다.“윤하경이 어디 있는지는 나만 알아. 정말 찾고 싶으면 이렇게 날 다루면 곤란할 거야.”강현우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말 돌리지 마.”결국 강현민은 강현우가 그의 갈비뼈를 부러뜨리자 버티지 못하고 항복했다.“알겠어,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집에서는 늘 큰소리치던 강현민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모진 고통을 겪어본 적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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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4화

“대표님, 현장에서 사람을 만났는데... 사모님이 아마도 납치된 것 같다고 합니다.”우지원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이어질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느껴졌지만 그는 강현우의 표정을 한번 살핀 뒤 조심스레 덧붙였다.“다만...”말끝을 흐리며 주저하는 그의 태도에 강현우는 매서운 눈으로 우지원을 바라봤다.겨울의 찬바람보다도 차가운 시선이 잠시 공기를 얼렸다.“말해.”짧은 한마디가 방 안을 가르며 울렸다. 우지원은 잠깐 숨을 고르며 이 말을 꺼냈다가 일이 더 커질까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결국 짧게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직접 가서 보시는 게 제일 확실할 것 같습니다.”이렇게 대놓고 강현우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우지원밖에 없었다. 강현우는 윤하경 걱정에 마음이 급해, 더 이상 말을 이어가거나 우지원과 실랑이를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잠깐 우지원을 바라보다 이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한 시간쯤 뒤, 강현우와 하석호, 그리고 수색팀이 모두 불에 타버린 작은 오두막 앞에 모여 있었다. 오두막은 이미 완전히 소실돼 원래의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었고 강현우와 하석호가 데려온 사람들은 남은 잔해를 샅샅이 뒤지며 단서를 찾으려 애썼다.그때 누군가 크게 외쳤다.“뭔가 발견했습니다!”짧고 큰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뭔데?”강현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 눈빛은 겨울바람이 무색할 만큼 차가웠다.현장 인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강현우 쪽을 돌아봤고 이내 바닥을 가리켰다.강현우는 망설임 없이 그쪽으로 다가갔고 막 꺼내 놓은 잔해 속에서 발견된 무언가를 보는 순간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하석호도 곧 그 곁에 다가와 땅에 놓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아니야, 이건 사모님일 리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하석호는 목소리가 떨리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윤하경을 알게 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는 이미 그녀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강현우는 한동안 그 불탄 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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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5화

우지원도 막 따라 나가려던 순간, 누군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부장님, 이 시신은 어떻게 처리할까요?”우지원은 바닥에 놓인 시신을 잠시 바라보며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쳤다.솔직히, 그는 이 시신이 윤하경이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그녀라면 나중에 어떻게 책임질지 걱정이 앞섰다.한참 생각에 잠겼던 우지원은 결국 짧게 지시했다.“일단 시신은 잘 수습해서 신원 확인 전까지 안전하게 보관해 둬.”“네.”직원은 고개를 숙이고 곧장 움직였다.우지원은 곧 강현우의 뒤를 따라 차에 올랐다. 차에 타자마자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강현우가 먼저 차갑게 입을 열었다.“땅을 뒤집어서라도 윤하경을 반드시 찾아와.”‘죽었을 리 없어.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윤하경은 절대 죽을 수 없어.’강현우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우지원은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 강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강현민을 내 앞에 데려와.”“알겠습니다.”우지원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는 지금 강현우가 분노와 좌절, 그리고 불안까지 뒤섞여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리고 그 모든 화살이 강현민에게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강현우는 이번에도 윤하경 때문에 모성에 머물렀다. 강현민 역시 도망가지 못하고 결국 그날 밤늦게 강현우가 머무는 별장 지하실로 끌려왔다.어둠 속에서 길게 뻗은 강현우의 실루엣이 조각상처럼 선명했다. 그 앞에 끌려온 강현민은 그 순간만큼은 서늘한 공기에 기가 눌려 작아지는 기분이었다.“강현우,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강현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강현우가 천천히 뒤돌아보며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말해. 윤하경은 어디에 있지?”너무 평범하게 던지는 그 물음이, 오히려 더 서늘하게 들렸다.강현민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이미 다 말했잖아...”그러나 강현우는 냉소만 흘릴 뿐, 한 치의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삼촌,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정말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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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6화

우지원은 눈치를 채고 곧장 돌아서서 철창 안의 사냥개들에게 손짓을 하자 사냥개들은 바로 공격을 멈췄다.이 개들은 모두 강현우가 직접 키우는 사냥개들이었다. 강현우는 결코 선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의 방식은 언제나 냉혹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다.이번 일로 강현민은 완전히 그의 분노를 건드리고 말았다.결국 강현민은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끌려 나갔고 바닥에는 그의 피가 흥건히 흘러내렸다. 하지만 강현우의 얼굴에는 동정도, 미안함도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피비린내가 코끝을 찌르자 우지원은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표정한 강현우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대표님, 저는 형수님이 분명 무사할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지금 강씨 가문 쪽이...”우지원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강현우를 바라봤다.지금쯤 강씨 가문은 완전히 뒤집어졌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강현우를 향한 견제가 시작될 게 뻔했다.강현우는 그런 우지원을 한번 차갑게 흘려보면서 말했다.“모든 인원을 동원해서 윤하경을 찾아. 그 외의 일에는 신경 쓰지 마.”그는 소파 팔걸이에 올린 손을 힘껏 쥐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만이 지금 강현우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아까 강현민을 일부러 살려둔 건 결코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큰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우지원은 이런 상황에서도 강현우가 오직 윤하경만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보며 속으로 잠시 한숨을 쉬었다.‘세상에 사람들이 다들 우리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자기 목숨까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여자를 사랑할 남자가 몇이 될까?’우지원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윤하경이 눈을 떴을 때, 한동안 낯선 풍경에 멍하니 시선을 돌렸다.‘여기는 어디지...?’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봤고 사방이 너무도 생소해서 오히려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순간, 침대 옆에서 약 그릇을 들고 앉아 있던 남자가 그녀가 깨어나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이제 정신이 들어?”윤하경은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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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7화

“결혼식이요?”윤하경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살짝 입술을 다물었다.“정말로... 당신이 제 약혼자 맞아요?”머릿속은 여전히 하얗게 비어 있었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이 남자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그럼. 내가 네 약혼자야.”용천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슬쩍 잡았다.“조금만 더 회복되면 우리 같이 예물도 고르고 웨딩드레스도 고르러 가자.”그의 눈빛에는 미소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러나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말았다. 손끝의 온기가 사라지자 용천수는 잠깐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곧 다시 웃으며 방금 가져온 국을 그녀에게 내밀었다.“너 요즘 제대로 못 먹었잖아. 일단 이거 좀 먹어.”윤하경은 잠시 용천수를 바라보다 정말 이 사람이 내 약혼자가 맞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왜 이렇게 그의 손길이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래도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며 국그릇을 받았다.“감사합니다.”하지만 바로 먹지는 않고 고개를 들어 용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저... 그럼 저는 누구예요?”용천수는 그 질문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너 이름은 윤하경이야.”사실 그는 이미 새로운 이름과 신분까지 준비해뒀지만 그 순간 마음을 바꿨다.“아... 그렇군요.”윤하경은 조용히 대답하고 곧이어 조심스럽게 말했다.“내일 혹시 저 병원에 데려다줄 수 있어요? 언제쯤 기억이 돌아올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요.”용천수는 순간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겠어.”“저... 잠깐 쉬고 싶어요.”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용천수도 바로 눈치를 챘는지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고 문을 닫으며 그의 손끝이 잠깐 떨렸다.“이제 반달도 안 남았네...”용천수는 낮게 혼잣말을 하고 다시 한번 윤하경의 방을 돌아본 뒤, 조용히 자리를 떴다.윤하경은 여전히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조금 쉬겠다고 누웠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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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8화

“하경아, 흥분하지 마.”용천수가 다가와 손을 잡으려 했지만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의 손목만 조심스레 잡았다.그러자 윤하경은 격하게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만지지 마세요!”용천수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윤하경도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밀어냈지만 이내 그가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방금 자신의 행동이 너무 과했나 싶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저기... 죄송해요.”윤하경이 조심스럽게 사과했다.“그냥...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요.”그녀는 불안하게 입술을 깨물었다.이상하게도 ‘영영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가슴 한쪽이 세게 조여오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아주 소중한 무언가나 누군가가 자꾸만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다.용천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윤하경을 끌어안았다.“괜찮아. 네가 예전 일을 기억하든 못 하든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그는 부드럽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언제나 네 편이야.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마.”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윤하경의 불안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잠시 침묵 끝에 윤하경이 조용히 올려다봤다.“그럼... 우리 예전에 어떤 사이였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저 말고 가족이나 친척, 그런 사람들은 없나요?”용천수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지만 금세 미소로 감췄다.“응. 다 이야기해 줄게.”그는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머릿결에 손끝이 닿자 잠시 멈칫하기도 했지만 이내 천천히 손을 내렸다.이윽고 용천수는 이신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맙습니다. 저희 이만 가볼게요.”이 선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병원을 나서자 이신준은 문이 닫힌 뒤 의미심장하게 혼잣말을 했다.“참... 저렇게 한 사람만 바라보는 남자도 드물지. 안타깝기도 하고...”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윤하경은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용천수는 조용히 설명했다. 윤하경의 가족은 이미 모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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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9화

용천수는 요리에 꽤 소질이 있었다. 저녁 식사로 차려준 음식들은 하나같이 윤하경의 입맛에 딱 맞았고 그가 마치 오래전부터 그녀의 취향을 모두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다.식사를 마친 뒤, 윤하경은 방으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용천수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오늘은 일찍 자. 내일은 좀 피곤할 수도 있어.”윤하경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내용이 꽤 감상적이고 아릿한 소설이라 남녀 주인공이 결국 엇갈리고 여주인공이 사랑했던 남자를 잊어버리는 장면을 막 읽던 참이었다.문득 고개를 들자 자신에게 남아 있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조금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등지고 사는 일은 없으니까.용천수는 멍하니 앉아 있는 윤하경을 바라보다가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책을 슬쩍 치웠다. 그리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아직 안 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그는 우유 잔을 그녀 손에 쥐여주면서 은근히 다정한 눈빛을 보였다.윤하경은 아무 말 없이 우유를 다 마셨다. 하지만 용천수가 그 자리에 서서 나가지 않자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오늘 밤도 저랑 같이 자야 하나요?”질문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담겨 있었다.방에는 둘만 남았고 분명 약혼자라고 하지만 그와 한방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게 어쩐지 어색했다.용천수도 그 질문에 잠깐 멈칫했다.순간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윤하경 눈에 어렴풋이 비치는 거부감을 본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재빨리 표정을 고쳐 잡고 조용히 대답한 뒤 방을 나섰다.“아니 나는 다른 방에서 잘게. 걱정하지 마.”문을 닫고도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사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를 온전히 품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무리했다가는 다시 영영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창밖을 올려다보며 용천수는 자신을 달랬다.‘조금만 더 기다리자. 결혼식이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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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0화

“알겠어.”용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따가 내가 드레스 사진 찍어올 테니까 네가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넌 워낙 예쁘니까 어떤 옷을 입어도 다 잘 어울릴 거야.”윤하경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용천수가 문을 닫고 나가자 침대에 누운 채 그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자꾸만 꿈에서 나타나는 남자가 떠올랐다. 잠에서 깨어나면 금세 그 얼굴이 흐릿해지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남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어느새 결혼식 날짜가 다가왔다. 용천수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결혼식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하자고 했다.결혼식 전날, 윤하경은 예식장을 직접 보러 갔다. 엄숙한 분위기의 작은 교회였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에는 결혼을 앞둔 설렘 대신 낯설고 허전한 감정만이 맴돌았다.집으로 돌아온 뒤 윤하경은 창가에 서서 하얀 눈이 가득 덮인 풍경을 바라봤다.아스이란드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 풍경조차 그녀에게는 왠지 공허하게만 느껴졌다.그때, 갑자기 뒤에서 두 손이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무슨 생각해?”평소 말수가 적은 용천수였지만 윤하경 앞에서는 늘 한없이 다정했다.윤하경은 잠시 망설이다 용천수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혹시... 우리 결혼식, 조금 미룰 수 있을까요?”순간 용천수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윤하경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아시잖아요. 제가 아직 기억을 찾지 못해서요. 예전 제 모습을 좀 더 알아보고 조금이라도 더 생각이 정리된 다음에 결혼하고 싶어요.”윤하경은 조용히 용천수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사실 이 며칠 동안 함께 지내면서 용천수가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는 건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모든 걸 서둘러 맡기기에는 뭔가 마음 한구석이 계속 걸렸다. 늘 자기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던 용천수였지만 이번만큼은 윤하경의 말을 듣고 나서 눈빛이 전과 달리 깊고 묘하게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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