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881 - Chapter 890

975 Chapters

제881화

윤하경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강현우가 자신을 떠나보내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후로 아무 얘기도 없었기에 이미 없던 일로 넘어간 줄 알았다.그런데도 강현우가 여전히 자신을 내보내려 한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그녀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조용히 물었다.“혹시 현우 씨가 저한테 숨기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윤하경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시선을 들어 용천수를 바라봤다.용천수는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너무 깊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무 일 없습니다.”그렇게 답하고는 시계를 슬쩍 확인했다.“사모님, 이제 출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행기가 이미 기다리고 있습니다.”윤하경은 고개를 숙이고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용천수를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 안 갈 거예요.”용천수는 반사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그건... 안 됩니다.”입 밖에 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 걸 깨달았다. 그는 곧 침착하게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이건 대표님의 뜻입니다. 저를 난감하게 하지 말아주세요.”용천수의 얼굴에는 단단한 고집이 서려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태도가 윤하경을 더 의심스럽게 만들었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단호하게 말했다.“저 안 갑니다. 현우 씨는 어디 계세요? 직접 만나고 싶어요.”용천수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저도 잘 모릅니다.”점점 수상하다는 생각에 윤하경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제 자신이 강현석을 그렇게 만든 뒤라, 강현우가 자신을 도피시키려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강현우라면 이런 일로 자신을 보내지는 않았을 터였다.그를 이렇게까지 만든 건 분명히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아무래도 이번에는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았다.그렇게 생각하니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이를 꽉 물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상황이 오면 올수록 오히려 마음이 더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용천수를 바라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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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윤하경이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왜요?”용천수는 잠깐 정신을 차린 뒤, 머쓱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시죠.”윤하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하이힐을 신은 채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지하 주차장에서 차에 올라타자 윤하경은 조용히 뒷좌석에 앉았다. 그녀는 용천수가 룸미러로 자신을 힐끗 바라보는 것도 모르고 손끝에 힘을 주며 긴장을 감추려 애썼다.만약 손에 상처만 없었어도, 손바닥이 땀에 젖을 정도로 꽉 쥐고 있었을 것이다.용천수는 룸미러로 윤하경을 다시 한번 살폈고 잠시 고민하다가 뚜껑을 열어 윤하경 쪽으로 내밀었다.“사모님,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물 좀 드세요.”윤하경은 물병을 받아서 들며 조용히 인사했다.“고마워요.”크게 생각하지 않고 한 모금 물을 마시자 차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겨울의 경성은 늘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윤하경은 차창 밖 눈 내리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음 한구석에는 곧 하석호를 만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복잡한 생각이 쌓여갔다.솔직히 이번에는 살아서 나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 순간 자신에게 남아 있는 패가 뭐가 있을지 머릿속으로 천천히 정리했다.생각 끝에 그녀는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하지만 막 휴대폰을 켜는 순간, 어딘가 머리가 묵직하게 어지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용천수는 여전히 룸미러로 윤하경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하경은 힘없이 몸이 풀리며 뒷좌석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용천수는 조용히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낮게 중얼거렸다.“죄송합니다, 윤하경 씨...”이제는 ‘사모님’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하지만 그의 이 말도 윤하경에게는 들리지 않았다.차는 빠르게 도로를 달려 공항에 도착했고 차를 세운 뒤 용천수는 조용히 뒷좌석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서 깊이 잠든 윤하경을 내려다보며 한참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작고 여린 몸이라 품에 안으면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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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차가 출발하자마자 활주로의 비행기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한편, 강현우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강호석이 입원해 있는 병실에 도착했을 때, 병상에 누운 그의 모습은 평소의 위압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손주 하나를 잃고 한순간 늙어버린 듯했다.하지만 강현우가 들어서자마자 강호석은 본능적으로 머리맡에 있던 텀블러를 집어 들어 강현우를 향해 내던졌다.텀블러가 바닥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굴러갔고 강현우는 미묘하게 몸을 틀어 그 공격을 자연스럽게 피했다.잠시 텀블러를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태연하게 강호석을 바라봤고 입가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몸이 안 좋으신데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이 개자식아!”강호석은 쉰 목소리로 외쳤다.“어떻게 네가 네 손으로 네 형을 해칠 수가 있냐!”하지만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거친 기침이 쏟아졌다.강현우는 가볍게 웃으며 뚜렷한 이목구비로 차갑게 강호석을 째려봤다.“할아버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결국 집안 내력 아닌가요?”그는 대범하게 소파에 앉아, 시선을 강호석에게로 돌렸다.“저, 잘 배웠죠?”“너, 너...!”강호석은 손을 들어 강현우를 가리키며 분노에 손끝이 떨렸다.강현우는 미소를 지은 채 다시 눈빛을 가라앉혔다.“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말을 끝내자 곧바로 민진혁에게 손을 내밀었고 민진혁은 준비해 온 서류를 곧바로 건넸다.“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한번 보시죠. 맘에 드실지 모르겠네요.”강호석은 그 서류를 한 번 흘겨봤을 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뭔가 꺼림칙한 기운을 느낀 듯했다.강현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서류를 강호석 앞으로 밀었다.“천천히 보세요. 시간 많으시잖아요.”강호석은 잔뜩 분노가 서린 얼굴로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현우야, 네 아버지 죽은 거 정말 우리 집안과는 아무 관련 없다는 말... 너는 믿겠니?”강현우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본래라면 매력적인 미소였을 테지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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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강호석은 집사의 말을 들었지만 얼굴빛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이를 악물고 한참이나 침묵에 잠겼고 한참 뒤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현석의 일은 다 정리됐나?”집사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슬픈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네, 이미 모두 정리했습니다.”잠시 뜸을 들이던 집사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회장님, 이제는 몸부터 추스르셔야 합니다. 절대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특히 요즘은 현우 도련님이 말을 듣지 않으니 앞으로가 더 힘들어질지도 모릅니다.”집사가 말할수록, 강호석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한참을 더 생각에 잠기더니 그는 낮게 코웃음을 쳤다.“말을 듣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그는 말끝을 흐리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집사는 그런 강호석의 얼굴을 살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번 일로 셋째 도련님께서도 힘을 많이 보태셨습니다. 사적으로는 꼭 강현우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 하시더군요.”강호석은 그 말을 듣고 하얀 눈썹을 미세하게 떨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사를 빤히 바라보았다.집사는 그 시선을 견디며 한 번 더 힘겹게 말을 꺼냈다.“회장님, 사실 지금 가문에서 현민 도련님만큼 든든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강호석은 나이가 들어도 결코 흐릿해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노련해졌다는 걸 집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가 이렇게 말을 꺼낸 건, 분명 강현민과 은근히 손을 잡고 있음을 암시하는 셈이었다. 강호석은 오랜 시간 집사를 바라보다가, 문득 무심하게 물었다.“한승아, 네가 내 곁에 있은지 몇 년이나 됐지?”집사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삼십 년이 넘었습니다, 회장님.”강호석 곁에서 삼십 년을 보낸 이한승은 누구보다도 강호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곁을 지키며 그가 얼마나 냉혹하고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인지 뼈저리게 체감했다. 사실 지금의 강현우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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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막 강현우를 잃을 뻔한 고통을 겨우 지나온 참이었기에 윤하경은 이제 비슷한 아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용천수는 고개를 깊게 숙인 채 차분하게 말했다.“사모님,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신 건 모두 사모님을 위한 일입니다. 정말 대표님을 위하신다면 대표님이 마음 놓고 모든 걸 처리할 수 있게 해주셔야 합니다.”윤하경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현우 씨가 직접 그렇게 말한 거예요?”혹시 자신이 경성에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될 거라고 그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건가. 윤하경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깨물었고 마음 한구석이 알 수 없는 상처로 저려왔다.자신이 먼 길을 달려 여기까지 온 건, 그냥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는데 결국 또다시 멀리 떨어지게 됐다니 이런 상황이 괜히 서운했다.용천수가 조용히 말했다.“사모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대표님은 오직 사모님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계십니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장석에서 착륙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용천수는 윤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모님, 이제 내리셔야 합니다.”윤하경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몸을 돌려 비행기에서 내렸다.용천수도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두 사람은 공항 안에 대기하던 차량에 올랐고 차 문이 닫히자마자 차는 빠르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윤하경은 마음이 착잡한 채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손에 쥔 휴대폰에는 강현우에게 온 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그녀는 그것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눈빛에는 짙은 걱정과 분노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강현우가 자신을 위험에서 보호하려는 마음은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서운함이 밀려왔다.그때 갑자기 차량이 크게 흔들렸고 차가 급하게 방향을 틀며 멈춰 섰다.용천수는 바로 앞 좌석 운전석을 향해 낮게 물었다.“이 길, 호성 리조트로 가는 길이 아닌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그는 경계심을 감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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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용천수는 갑자기 윤하경과 거리를 벌렸다.윤하경은 그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 것도 모르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지금 우리를 공격한 사람, 누구 쪽 사람이죠?”용천수는 몸을 낮추어 조심스럽게 바깥을 살피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아마 강씨 가문 쪽일 가능성이 높아요.”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빨리 움직입시다. 제가 앞에서 막을 테니 사모님은 최대한 멀리 도망가세요.”용천수는 빠르게 윤하경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모성의 겨울은 살을 에일 듯이 매서웠고 길은 온통 얼음과 눈투성이였다. 윤하경은 달리다가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지만 멈추지 않았다.조금이라도 늦으면 용천수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등 뒤에서는 연이어 총소리가 터졌고 그 소리에 심장이 입안까지 튀어나올 듯 두근거렸다.이 길은 도심과도 멀리 떨어져 있고 사방은 인적 없는 산과 숲이었다.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도 없었고 오로지 들려오는 총성만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울퉁불퉁한 산길에는 녹지 않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윤하경은 한 발 한 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몇 번이나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지만 끝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뒤에서 울리던 총성이 아예 들리지 않게 되자, 그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하아...”그녀는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지만 눈길 속에는 시커먼 나무만 우두커니 서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용...”입술이 떨렸지만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는 용천수뿐 아니라, 자신을 노리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경찰에 신고해야 해!’그제야 정신이 든 윤하경은 황급히 주머니와 가방을 뒤졌지만 급히 차에서 내릴 때 휴대폰을 아예 두고 내린 사실이 생각났다.입술을 세게 깨문 윤하경은 그저 감으로 산을 빠져나가려고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사방이 온통 하얗게 뒤덮인 산길은 너무도 낯설었고 몇 발짝 걷지 않아 이미 길을 잃은 걸 깨달았다.“아, 어떡해...”한 발 디딘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중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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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강현우는 잠시 고개를 숙여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고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 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강현민의 휴대폰도 동시에 울렸다.강현민 역시 화면을 내려다본 뒤, 강현우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느긋하게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마친 강현민의 얼굴에는 한껏 오만한 기색이 번졌다.“알았어.”전화를 끊은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강현우 쪽으로 다가와 내려다봤다.“우리 큰 조카, 이젠 내가 뭐라 해도 듣질 않네. 네가 이렇게 버티면 뭐 해. 결국 언젠가는 내게 무릎 꿇을 날이 올 거야.”비꼬는 듯한 웃음과 함께, 강현민은 고개를 숙여 강현우의 깊은 눈동자를 찬찬히 바라봤다. 사실 그는 예전부터 강현우의 얼굴을 그가 싫어하는 사람과 너무 닮아서 볼 때마다 불편했다강현우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들었다.“그래요? 과연 그럴까요?”강현민은 코웃음을 치며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들었는데 너 요즘 윤하경이랑 혼인신고까지 했다고?”그 말에 강현우의 무표정하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차갑게 강현민을 바라봤다.“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강현민이 원래도 치사하고 더러운 수법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강현우였다. 그래서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그는 결코 좋은 의도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강현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가 반쯤이나 더 큰 그가 바로 앞에 서자, 금세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압도적인 기운은 아무리 강현민이 나이 많은 어른이라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잠깐 당황한 듯했던 강현민도 이내 자신이 쥐고 있는 카드들을 떠올리며 억지로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러고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놈 성깔 여전하구나. 전화나 마저 받아. 난 이만 가마.”강현민은 일부러 강현우의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런 뒤 잘난 체하며 사무실을 나섰다.문을 나서며 다시 뒤돌아보더니 비서실에 앉아 있는 한 직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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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쾅!소리가 비서실 쪽까지 울려 퍼지자 임지안이 재빨리 강현우의 사무실로 들어왔다.“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그녀는 말하면서도 강현우의 붉게 물든 손등을 힐끗 바라봤다.강현우는 임지안을 차갑게 흘겨보고 짧게 내뱉었다.“나가.”평소에는 그럭저럭 유하게 넘어가는 강현우지만 기분이 심하게 나쁠 땐 한마디 한마디에 살기가 담겼다.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짧은 한마디에 임지안은 온몸이 얼어붙었다가, 곧 고개를 푹 숙이고 재빨리 문밖으로 물러났다.잠시 숨을 고른 강현우는 속에 쌓인 분노를 겨우 억눌렀다. 이제껏 수많은 일을 겪으며 단련된 만큼, 그는 순식간에 감정을 다잡고 바로 휴대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용천수 쪽에 바로 지원 인원 보내.”그리고 곧이어 목소리를 낮췄다.“그리고... 한 시간 후 ‘헤븐’ 빌딩 꼭대기에서 강현민을 만나게 준비해.”전화기 너머에서 우지원이 잠시 얼떨떨한 기색을 보였다.“아니 대표님. 이번에는 진짜 세게 나가시네요? 강현민이 삼촌인 건 아시죠?”아직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우지원은 어딘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이러다 회장님 진짜 쓰러지시는 거 아니에요?”강현우는 냉정하게 말을 잘랐다.“강현민이 윤하경을 건드렸어. 그럼, 반드시 죽여야지.”우지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뭐라고요? 아니 하경 씨는 이미 모성으로 간 거 아니었어요?”그 말을 들은 강현우의 눈빛은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래서 내 곁에 배신자가 있다는 거다. 당장 조사해.”“알겠습니다!”우지원은 목소리부터 달라지며 급하게 전화를 끊고 바로 사람들을 움직였다.강현우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전화를 돌린 후, 옷걸이에 걸려 있던 코트를 휘어잡고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아... 아파...”윤하경이 의식을 찾았을 때 느껴지는 건 온몸을 짓누르는 통증뿐이었다.“정신 차렸어요?”곁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겨우 정신을 차린 윤하경은 고개를 돌렸다.“용천수...?”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다친 곳이 많아서 겨우 한 번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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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윤하경은 원래부터 예쁜 사람이었다.지금은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고 온몸이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다쳐 있지만 그래도 가볍게 미소를 짓는 모습은 여전히 눈부셨다.용천수는 그런 그녀를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서둘러 거둬들이며 말했다.“저... 밖에서 뭐 좀 해올게요. 금방 밥 차려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윤하경은 그가 급히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곧 자기 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몸 이곳저곳을 살펴봤지만 큰 부상은 없는 듯했다. 여전히 여기저기 욱신거리고 아팠지만 뼈가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친 데는 없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용천수가 뜨끈한 국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국 좀 드세요.”윤하경이 국을 바라보다 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용천수가 먼저 설명했다.“아까 밖에서 토끼를 잡아서 끓인 거예요. 지금 많이 허약해져 있으니까 든든하게 드셔야 해요.”윤하경은 감사 인사를 건네며 국을 받아 들었다.“고마워요.”한 숟가락 떠먹어 보니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이 깊은 산골짜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런 국을 내온 것만 해도 정말 대단했다. 게다가 너무 배가 고팠던 터라, 따뜻한 국 한 그릇이 몸을 녹이는 듯했다.국 한 그릇을 다 비우자 몸에 온기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윤하경은 국그릇을 용천수에게 건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언제쯤 현우 씨랑 연락할 수 있을까요?”윤하경이 또다시 강현우 이야기를 꺼내자 용천수는 시선을 피하며 그릇을 받아들었다.“잘 모르겠어요. 일단 몸 좀 더 추스르시고요. 상태가 좀 나아지면 밖으로 나가서 길을 찾아볼게요. 하지만... 좀 걸릴 수도 있습니다.”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미소 지었다.“고생이 많아요. 내가 안 다쳤으면 좀 도와줬을 텐데...”그러자 용천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그는 늘 진지한 표정에다 보디가드답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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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용천수의 표정이 어둡게 굳어졌다.“도대체 뭘 원해요?”“내가 뭘 원하냐고?”상대가 비웃듯 말했다.“별거 없어. 윤하경을 넘겨.”“그건 절대 안 됩니다.”용천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하하하. 너 지금 상황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강현우가 어떤 사람인지는 네가 더 잘 알잖아. 네가 저지른 일, 그리고 강현우의 여자를 넘보는 걸 걔가 알게 되면 널 그냥 두지 않을 거야.”강현민 점점 더 노골적으로 조롱하듯 말했다.“여자야, 그냥 즐기면 그만이지. 하물며 이미 남이 다 쓴 여자잖아. 윤하경 데려오면 내가 너한테 100억 줄게. 그 돈이면 남은 평생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네가 내 말을 안 들으면 강현우가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널 어떻게 할지, 난 장담 못 해.”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현민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렸고 용천수는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이를 악물었으며 손에 힘이 들어가 마디마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그때, 윤하경이 있는 방에서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났다. 용천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에 들어서자, 윤하경이 바닥에 떨어진 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용천수를 보자 윤하경이 민망한 듯 고개를 들었다.“죄송해요. 물을 좀 마시려다가... 실수로 컵을 깨뜨렸어요.”이 집에는 워낙 물건이 없어서 컵 하나를 깨뜨린 것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용천수는 곧장 다가가 윤하경의 손을 살폈다.“손 다치신 데는 없어요?”윤하경의 손에는 아직도 붕대가 감겨 있어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용천수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자, 윤하경은 놀라서 급하게 손을 빼려다가 그만 상처가 조금 당겨왔다. 아픔에 살짝 얼굴을 찡그리긴 했지만 곧 용천수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그제야 용천수도 자신의 행동이 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한참을 멈칫하다가 손끝에 아직 윤하경의 체온이 남은 것처럼 조용히 시선을 떨궜다.잠시 뒤, 용천수는 본래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일어섰다.“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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