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주가 말하려고 할 때, 안비각은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먼저 입을 열었다.“됐다, 명주야. 지금 네 꼴을 보거라. 성녀 전하께 폐를 끼치지 말고 아비랑 먼저 돌아가자. 무슨 일이 있으면 나중에 얘기해. 어서, 성녀 전하께 인사하고 가자.”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안명주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화가 치밀어 올라도 꾹 참고 하녀가 가져온 망토를 걸쳐 젖은 몸을 가리고는 못마땅해하며 인사를 건넸다.“성녀 전하, 용서해 주세요. 소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란사는 대답하지 않고 흘겨보았다.이렇게 쉽게 안명주를 놓아주기 싫었는데, 안비각이 눈치가 너무 빨랐다.단번에 위기를 감지하고 망설임도 없이 깔끔하게 물러설 줄이야.만약 온권승 같은 늙은 여우라면 분명 배배꼬면서 떠볼 것이다.정말 하나 같이 만만치 않았다.란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아가씨, 물에 젖어서 고뿔에 걸리겠어요. 차라리 여기서 옷을 갈아입고 생강탕이라도 마시고 가세요.”“쿨럭! 성녀 전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택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서 갈아입는 게 낫겠어요.”이것은 거절이 아니었다.말처럼 란씨 저택에서 두 골목만 지나면 안씨 저택에 도착했다.겉으로 인사치레를 다했으니 란사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집사, 안 대인과 아가씨를 저택까지 잘 모셔다 드리게.”“가주님, 염려 마십시오.”문 밖에서 집사가 길을 안내했다.안비각은 임홍문과 북진연에게도 인사를 마친 후 안명주를 데리고 재빨리 떠났다.안씨네 부녀가 떠나자 란사는 밖에서 구경하는 일행을 훑어보았다.나쁜 심보를 품은 자가 보이지 않자, 오늘은 편히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연회가 한창인데 이런 일로 흥을 깨트리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마침 며칠 전에 우연히 얻은 화단주가 있는데 여러분 괜찮으시다면 꺼내서 대접해 드릴게요. 다만 저는 몸이 불편하여 술 대신 차로 사과드릴게요.”란사는 그제야 일어서서 하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각 가문에서 온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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