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141 - Chapter 1150

1662 Chapters

제1141화

“그건… 존경이었을까요?”“난 사부님의 강함이 정말 부러웠어. 신과 같은 존재였지.”“맞아, 신. 실체를 가진 신처럼 말이야.”이영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그 해, 경성이 먹구름에 뒤덮이고 천둥과 번개가 치던 날이 있었어. 천둥소리에 귀가 멍멍했고, 번개가 영화궁 뜰 앞 나무를 그대로 갈라버렸지. 나랑도 몇 발자국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이영은 또다시 기억의 상자를 열었다.“그날, 사실은 너무 무서웠어. 그런데 나중에 어마마마께서 그러시더라고. 그날 천둥이 친 이유는 외삼촌께서 도술을 펼쳐 아바마마를 구했기 때문이라고.”“초운아, 너도 알지? 외삼촌은 정말 대단하셔…”심초운은 이영이 정말로 용강한을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그의 강함에 매혹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예. 저도 압니다. 사부님의 도력은 실로 신과 같다고 생각합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날, 저는 사부님께 지도받으며 제 생애 처음으로 벼락을 끌어오는 술법을 성공했습니다.”그는 손을 들어 이영에게 내보였다.이영은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가락을 모아 결인을 짜자, 손바닥 위에 투명한 번개 구슬이 맺혔다.지직.번쩍이는 불꽃이 터지자, 이영은 입을 떡 벌린 채 할말을 잃고 말았다.놀란 눈으로 심초운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정말 대단하구나.”“그럼, 앞으로는 저만 사랑해 주세요.”“……”이영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언가 가슴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뛰고 있었다.그제야 이영은 자신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심초운의 품에 기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이 번개 맞은 것처럼 아득해졌다.방금… 방금, 그녀는…어쩌면 어린 시절, 도술이며 무공이며 함께 연습하며 자주 몸이 닿았던 터라 지금도 그런 거리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남녀 간의 예의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진짜… 미쳤어.’이영은 그를 밀쳐냈다. 심초운은 당황한 듯 도술을 거두며 한 걸음 물러섰다.“무섭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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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2화

“그래.”이미 서로 평생을 약속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심초운에게 깊숙이 절을 올렸다. 남자가 말고삐를 잡았고, 연이는 조용히 가마에 올랐다. 심초운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저 둘은 부부가 되었고, 돈도 있고 무공도 갖췄으니 앞으로의 삶은 분명 평탄하겠지.'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이영이 그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딱 꼬투리를 잡은 사람의 표정이었다.심초운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아니, 누님.”그 모습을 본 당안과 송이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못 들은 척, 못 들은 척… 저 다정한 호칭은 너무 귀가 간지럽잖아!''황녀 마마', '이영', '누님'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부르는 걸 들어왔던 이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성정 좋고 다정한 분이 장차 시군이 된다면, 우리도 편안히 살 수 있겠어. 이건 정말 천생연분이야!'이영은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방금 연이와 함께 떠난 그 남자 말이다. 네 휘하 사람이었던 것 같던데?”심초운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그런데 그 자가 연이와 함께 떠났다고?”“예. 둘이 서로 마음이 맞아서… 제가 허락을…”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영은 긴 소매를 휘날리며 돌아섰다.심초운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섰고, 송이는 소매를 휘두르며 그 뒤를 따랐다. 당안은 먼지털이를 안은 채 심초운을 힐끗 보더니 눈짓을 했다.'도련님 잘하셨습니다. 계속 밀어붙이십시오!' 그는 심초운을 향해 응원의 눈빛을 보내고는, 이내 그 역시 황태녀를 따라갔다.심초운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하늘을 바라봤다. 맑고 푸르른 하늘. 기분은 왠지 아주 좋았다.그도 황태녀부로 들어가려 했다. “도련님…! 방금 마마께서 명하셨습니다.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한 호위무사가 그를 가로막았다.“뭐라고?”그 병사는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마마께서 분명히 그러셨습니다. 못 들으셨습니까?”심초운은 정말 듣지 못했다.“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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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3화

심초운은 눈썹을 찌푸린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찬란한 햇빛이 유난히 눈부셔서, 사부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사분 후, 평상에 깃들었던 법력이 사라지고 나무 의자는 공중에서 곤두박질쳤다.용강한은 천천히 내려왔다. 강렬한 햇빛 아래 그의 온몸엔 빛이 감돌았고, 심초운은 그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백발에 준수한 용모, 그야말로 속세를 벗어난 신선 같았다.아마도 이영이 그를 마음에 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심초운은 그것이 이영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사부와 이영이 서로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는지 모를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사부님, 마마께서는 아직 어려서 세상 이치를 다 알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부님께 보이는 감정은 존경심일 수도 있고요. 저 역시 사부님을 깊이 흠모하고 있습니다. 사부님은 저희에게… 마치 신명과도 같은 분이십니다.”“사부님은 저희 마음속의 신명입니다.”용강한은 입술을 지그시 다물고는, 심초운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신명이라…”그가 정말 신이었다면… 그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이 아니었다.그는 손을 들어 제지하듯 내리며 말했다.“그 정도면 됐다.”그리고는 정자 쪽을 가리키며 함께 가자고 했다.심초운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용강한은 손을 뒤로 한 채 인술을 펼쳐 한순간에 정자 안으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심초운은 속으로 이영이 이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음이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사부님.”그가 다가갔을 때, 용강한의 콧등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그 역시 결국은 인간이었다.다만, 신에 가장 가까운 인간일 뿐.“황녀마마의 생신 날이 곧 다가오는데, 선물은 정하였느냐?”심초운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못 정했습니다.”사실은 여러 곳을 뒤졌지만, 그녀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영의 생일은 해마다 챙겨왔고, 올해는 더욱 특별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었다.용강한은 말했다.“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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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4화

사흘 연속, 심초운은 황태녀부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조정에서 돌아온 이영이 궁문 앞에서 네 명의 호위무사가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심초운을 가로막고 서 있었지만, 그가 배치한 인원이라면 저들 정도는 충분히 뚫을 수 있을 터였다.하지만 호위무사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녀가 스쳐 지나가는 시선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누님…”심초운은 화려한 의복을 걸친 채 말을 타고 그녀의 뒤를 쫓아왔다. 이영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아무 말 없이 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누님…”심초운의 목소리에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이제 곧 배필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냉담하게 굴어서는 안 될 터였다.그녀가 돌아보았다.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누굴 부르는 거지?”“누님.”이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당당한 체격과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를 훑어보았다. 혹시 함향이 몰래 봤던 화첩 속 그 용맹한 남자들과 비슷한 건 아닐까?심초운이 말에서 내렸다.몇 걸음 만에 그녀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누님, 저 사람들이 절 막게 두지 마세요. 계속 이런 식이면 저는 호위총관 자격도 없는 셈입니다.”이영이 헛기침을 하며 역광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턱에는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듯 보였다.그녀가 열 살이었을 무렵, 이육진은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 “역시 하얀 얼굴이 더 보기 좋구나.”그녀는 저 멀리 거리를 바라보며, 어쩌면 그보다도 더 먼 곳을 응시하는 듯 중얼거렸다.심초운은 순간 멍해졌다. 수염을 일부러 기른 것은 좀 더 성숙해 보여 그녀의 눈에 들고 싶었기 때문인데… 허탈했다.하지만 곧 생각해보니 사부도 수염이 없고, 황제도 없고, 진우도 없지 않은가.“그럼 지금 당장 세수하러 다녀올까요?”심초운이 웃으며 물었다.이영은 두 손을 등 뒤로 한 채 눈썹을 찌푸리더니, 콧소리만 흘리고는 당안과 송이를 데리고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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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5화

그가 웃으며 말했다.소우연은 순간 미소를 지었다. 처음 용강한을 찾아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의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런데 용강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자 괜히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얼굴이 아직도 스물네다섯 정도로 젊어 보였다. 심지어 이육진도 이제는 서른 가까운 모습인데… 용강한은 하얀 머리만 아니면 정말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얼굴이었다.그 시선을 받은 용강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혹, 얼굴에 뭐가 묻었느냐?”소우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그가 웃었다. “얼굴에 뭐가 묻은 줄 알았다.”소우연은 돌아서며 말했다. “정말 아닙니다.”그도 곧 따라붙었다.함향 등이 차를 내리러 간 탓에 방 안에는 둘만 남았다.소우연이 그를 보며 말했다. “오라버니께서는 이리도 능하신데,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용강한은 아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그럼…”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소우연은 입을 떼다 말았다. 사실 그녀와 이육진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매우 충격을 받았다. 그 감정은 쉽게 설명하기 어려웠다.만약 이영이 정말 그 길을 가려 한다면, 만약 용강한도 그런 마음을 품었다면… 정말이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녀는 상상만으로도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어쨌든 며칠째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했지만, 이육진은 그녀에게 용강한을 찾지 말라고 했었다.“형님을 얕봤구나. 그 분은 평생 너만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평생 그 분이 너에게 마음을 품지 않도록 경계할 것이다.”그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이영은 날이 갈수록 이상해졌다.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아이가 자책하며 상처받을까 봐도 무서웠다.생각에서 벗어난 소우연이 물었다. “그런데 요즘 왜 자꾸 용부에 계십니까? 사실 영이에게 한마디 하려 했습니다. 함향이까지 밖에서 기다리게 하더라고요…”“요즘 심초운 그 녀석을 가르치고 있단다.”“네?”뭘 가르치신다는 건지 궁금했다.그가 웃음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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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6화

이영은 문 앞에 서서 직접 보았다.용강한과 어머니 소우연이 함께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자신에게 보이는 무심하고 차가운 태도는 조금도 없었다.심장이 욱신하고 아팠다.용강한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자신은 그저 그의 강함을 동경했을 뿐일까? 그렇게 그녀는 돌아섰다.송이도 말없이 뒤따랐다.주인과 궁녀, 둘 다 조심스럽게 발소리까지 죽이며 그곳을 떠났다.영화궁 대문 앞에 다다르자, 함향이 찻잔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마마…”“쉿.”이영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조용히 말했다.“함향아, 이리 가까이 와보거라. 할 말이 있다.”함향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예, 마마.”그녀는 쟁반을 들고 이영과 함께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송이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망을 봤다.함향은 상황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마마께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건지… 왜 이렇게 비밀스럽게?’“함향아.”함향이 예를 올렸다.“분부를 내리시지요, 마마.”이영은 진지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민간에서 그림책을 또 몇 권 구했다. 다들 근육질에 어깨 넓고 허리 잘록한 미남자들 나오는 이야기더구나. 여주인공도 기가 막히게 예쁘고... 혹시 보고 싶으냐?”“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함향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마마…!” 목소리까지 떨렸다. 쿵, 무릎 꿇는 소리가 났다.함향이 그대로 주저앉았다.‘마마께서 왜 이제 와서, 몇 해나 지난 그 일을 갑자기 말씀하시는 거람…’그 순간,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송이도 깜짝 놀랐다.하지만 곧 이해했다.마마께선 몰래 다녀간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황후와 용강한이 알아채지 못하게, 그 둘이 나눈 이야기를 자신이 들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함향은 조심스레 말했다.“마마, 이 이야기는… 절대로 밖에서 하셔선 안 됩니다.”“걱정 말거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함향은 안도하는가 싶었지만, 곧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그런데 마마께서 왜 이 이야기를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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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7화

용강한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소우연을 바라보았다.“좀 두렵구나.”“……”“……”“농이다.”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마.”소우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무슨 일이길래 그리 급히 가십니까?”용강한은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실상 별일도 없었지만, 선은 지켜야 했다.그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서로 마주하는 일은 적을수록 나았다.소우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제가 배웅해드리겠습니다.”“그래.”그녀는 용강한을 직접 영화궁 문밖까지 배웅했다.밖은 여전히 숨 막히는 더위 속,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겠습니다.”소우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백성들의 농사는 무사할까. 그들의 삶은 아직 버틸 만할까.용강한은 그 말에 담담하게 답했다.“급할 것 없지.”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편으론 스스로의 말을 곱씹었다.그에게 제단을 차려 기우제를 지내달라는 뜻으로 들렸을까 싶어 민망했다.용강한이 발걸음을 옮기고, 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소우연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을 내쉬었다.얼굴엔 어느새, 며칠 만인지 모를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그 모습을 본 함향은 기뻐서 눈시울까지 붉어졌다.“이렇게 오랜만에 황후마마께서 웃으시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어찌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소우연은 울다 웃는 얼굴로 함향을 바라보며 그녀의 어깨를 다정히 끌어안았다.“며칠동안 정말 밥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그러곤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보기에 좀 야윈 것 같지 않니?”함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황후마마. 여전히 절세 미인이십니다.”소우연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조금만 더 야위었으면 좋겠는데… 요즘 들어 좀 살이 붙은 느낌이라서.”함향은 곧장 응수했다.“마마께서는 지금이 가장 이상적인 몸매십니다. 더 야위시면 볼살도 빠지고… 오히려 안 어울릴 수 있어요.”소우연은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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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8화

저녁 무렵.진호범은 근무를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뒤돌아보니 이천이 그곳에 서 있었다.진호범은 즉시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황자마마.”그가 어떻게 자신을 부르든, 이천은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황자라는 신분을 부정해본 적이 없었다.그것은 타고난 것이고, 그에게 주어진 영광이지 결코 짐이 아니었다.“궁 안 생활엔 익숙해지셨습니까?”이천은 영화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들 예정이었다.마침 진호범을 마주쳤고, 오랜만에 보니 예전보다 더욱 날카롭고 단단해진 인상이었다.하지만 이전처럼 자유롭고 거침없던 기운은 조금 옅어진 듯했다.예상치 못한 질문에 진호범은 잠시 망설였지만, 곧 차분하게 손을 모으며 답했다.“황자마마, 염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든 것이 평안합니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짧은 말 한마디에 진호범의 가슴에 따스한 기운이 번져갔다.어릴 적부터 지켜봐온 아이였다.그가 이렇게 자라, 염려와 배려의 말을 건네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한 느낌이 들었다.'이 아이가 참 많이 컸구나'이천은 진호범이 발걸음을 돌릴 때까지 자리를 지켜보았다.그 역시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진호범을 유수도독부 지휘관로 승진시킨 것은 단순한 능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말이다.그는 거의 이십 년을 자신 곁에서 그림자처럼 지켜온 존재였다.하지만 이천과 함께 세상을 누비며 온갖 인간 군상을 겪어낸 진호범은 더는 그림자처럼 숨어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관직에 묶일 사람도, 아닌 것이었다.그가 바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처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일지도 모른다.……영화궁.소우연은 오늘 용강한이 한 말을 이육진에게 전하고 있었다.“부군께서 과연 영명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딱 들어맞았어요.”이육진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연이 너는 형님을 믿지 않는 것이냐?”소우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럴 리가 있습니까.”용강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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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9화

수행은 결코 제자리걸음이어선 안 된다고, 사부는 늘 말했다.하지만 수행을 한다고 해서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영은 분명 그의 동생이었다. 오라버니라면 마땅히 돌보고 챙겨야 했다.하지만 현명루에는 수많은 비급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그걸 전부 익히는 것도 벅찬데, 이영의 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게다가, 이영이 고민하는 건 정과 관련된 문제였다.그가 어찌 그 마음까지 도울 수 있겠는가.하지만 용강한은 늘 그에게 말했다.“네가 그 아이의 오라버니라면, 당연히 살펴야지.”또한 이렇게도 덧붙였다.“설령 네가 정에 깊이 빠진다 한들, 이 상운국에서 네게 감히 대적할 자가 어디 있겠느냐.”그 말엔 이천도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그는 알고 있었다.용강한이 애써 자신을 속세로 끌어내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오라버니, 천 오라버니는 정말 최고예요. 그렇죠?”이진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물론, 그녀는 공주였다.이토록 늦은 밤에 궁을 나선다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하지만 오라비 이천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이천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이진이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는 문득,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 손가락으로 점을 쳤다.그러고는 조용히 말했다.“내일 가자구나.”“왜요? 왜 내일이어야 하죠?”“지금은 너무 늦었어. 자칫 영이의 휴식을 방해할 수 있지.”“내일 영이가 조회에 나가기 전,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나가자구나.”그래. 이영은 내일 조회에 참석해야 했다.그리고 지금 황태녀부에 가봐야, 혹여 심초운이 또 이영을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를 터였다.괜히 가면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게다가 초운 오라버니가 언니 방에 가는 걸 막을지도 몰라.’“좋아요. 그럼 내일 아침밥을 먹고 나서 오라버니를 찾아갈게요.”“그래.”그렇게 두 남매는 갈라섰다.이천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장 밝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았다.‘보아하니… 나는 반드시 또 한 번 속세를 걸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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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0화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그 서늘한 바람조차 심초운의 마음속에 가득 찬 이름 모를 번민을 흩어버리지는 못했다.그는 복도를 이리저리 서성이며 걸었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창가였다. 손을 뻗어 살며시 밀자, 창문이 조용히 틈을 내며 열렸다.‘들어가도 괜찮을까?’망설임도 잠시, 그는 창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이영이 정말 화를 내고 자신을 한 대 후려치기라도 하시면 어쩌지? 한 대 맞는 건 괜찮았다. 하지만 만약 정말 화가 나서 입을 다물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자신을 한낱 건달이나 추파나 던지는 망나니로 여기시기라도 한다면?몸은 자꾸만 경계했지만, 머릿속에는 계속 초구의 말이 맴돌았다.“도련님, 좋아하는 여인에게 다가가는 데 창을 넘고 담을 넘는 게 뭐 어떻습니까? 그게 또 묘미 아니겠어요?”“그딴 걸 어디서 배웠느냐?”그가 따지듯 물었더니, 초구가 진지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다. 풍류 문사들이 다 그런 방식으로 연애를 시작했다니까요.”심초운은 도무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도련님이야말로 황녀마마의 곁을 지키는 친위 호위 아닙니까. 어릴 때부터 붙어 다녔는데, 그런 사이에 그리 엄격한 예법이 어디 있겠어요?”“예전에는 황녀마마께서 한밤중에 도련님 이불 속에 들어와 무공을 겨루자 하신 적도 있잖아요.”“도련님은 사내잖아요. 사내라면 더 용기를 내야죠. 설마 마마께서 먼저 다가오시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초구의 잔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울렸다. 망설이던 그는 이미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선 뒤였다.침전 안에서 이영은 촛불 아래 책을 보고 있었다.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그 뻔뻔한 심초운이 서 있었다.가슴이 잠시 두근거렸지만, 표정만은 변함없이 평온했다.“이 밤중에 도둑이 들었나 보구나.”“누님... 도둑이 아니라 접니다.”이영은 책을 내려놓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내가 언제 너를 불렀느냐?”“그게 아니라...”“그럼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창문을 넘은 자가 도둑이 아니면 뭐지?”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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