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준은 민이가 꺼낸 옷을 보자마자 눈가에 담긴 감정마저 멈춰버렸다.민이가 말했다.“이거 정이가 나한테 준 거예요. 아빠, 이 옷 기억나요?”강민아와 이혼한 후 그는 두 사람 사이의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그런데 평소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이 순간 반하준의 머릿속에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그날 민이의 생일 파티에서 그의 시선은 무심코 이따금 강민아에게 향했다.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반하준은 다시 기억을 되짚을 때마다 머릿속에 당시 강민아의 미세한 표정과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느리게 재생되었다.비가 와서 정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느라 앞머리는 흠뻑 젖었고 한쪽 어깨는 작은 물방울로 얼룩져 있었다.화장기 없는 얼굴로 다소 멍하니 룸 밖에서 들어온 그녀는 민이에게만 시선을 두었고, 민이가 반하준을 언급했을 때야 비로소 덤덤한 눈빛으로 반하준의 얼굴을 흘깃 훑어볼 뿐이었다.남자에 대한 사랑은 진작 식어버렸다.하지만 그는 자신을 향한 강민아의 감정이 변했다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이미 오래전부터 아내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니까.반하준이 정신을 차렸을 무렵 민이는 강민아의 옷을 끌어안고 누웠다.“오늘 밤은 엄마 옷이랑 같이 자니까 너무 행복해요.”반하준의 목구멍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의 바람이 어찌나 단순한지, 옷 한 벌을 얻은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표정이었다.민이는 강민아의 옷에 얼굴 반쪽을 파묻고 더 이상 예전처럼 찡그린 얼굴이 아닌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정이가 왜 이걸 너한테 줬어? 강민아가 주라고 했대?”“이 옷은 나와 엄마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정이가 골랐어요. 엄마가 옷을 갖고 있긴 해도 더 이상 입지는 않는대요.”말하며 민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엄마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나와 정이가 예전처럼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괴로워요.”민이는 침대에 누워 옷을 품에 꼭 껴안은 채 까만 눈으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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