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철은 주용화를 한번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제 원칙일 뿐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우시면 진료를 거절하셔도 됩니다.”분위기가 팽팽하게 얼어붙으려는 순간, 단종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화야, 여기는 내 집이나 다름없어. 나를 못 믿겠느냐?”하지율도 곧바로 거들었다.“화야 씨, 괜찮아요.”하지율의 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주용화 역시 잘 알고 있었다.주용화는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발걸음을 멈췄다.“알겠습니다.”하지율과 안병철이 진료실로 사라지자, 단종건이 말했다.“어차피 기다릴 거면 나랑 바둑이나 한 판 두자.”주용화는 거절하지 않았다.“좋습니다.”...30분 뒤.단종건은 몇 번이나 수를 무르며 버텼지만 결국 대국에서 패하고 말았다.단종건은 희끗희끗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바둑판을 내려다봤다.“평생 바둑을 두고 살아온 내가 너 같은 후배한테 이렇게 맥없이 질 줄은 몰랐구나. 역시 주씨 가문은 인재가 끊이지 않는군.”주용화는 담담하게 답했다.“어르신께서 봐주신 덕분입니다.”단종건은 눈을 들어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주용화를 바라봤다.“불길이 너무 거세면 남을 태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자신마저 집어삼키고 말지. 원래 너는 이토록 살기가 짙고 험한 기운을 품은 아이가 아니었는데.”주용화는 바둑판 위에 놓인 대마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누구든 달라지는 법입니다. 무엇이든 감수하게 되고, 어떤 대가도 마다하지 않게 되죠.”주용화는 문득 화제를 돌렸다.“단아 그룹을 지금의 규모로 키워 오신 걸 보면 어르신 역시 평범한 분이 아니십니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단종건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말해 봐라.”“후계자를 바꿀 생각은 없으십니까?”그 순간 단종건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조금 전까지 여유를 담고 있던 눈빛이 순식간에 매서워졌다.“너 이 자식, 이제는 본심을 숨길 생각조차 안 하는구나?”주용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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