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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의 꽃길: Chapter 461 - Chapter 470

482 Chapters

제461화

모두가 슬픔과 충격에 잠겨 있을 때 여도진이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의 표정은 엄숙했고 발걸음은 침착하면서도 어딘가 무겁게 느껴졌다. 조금 전 그들의 대화를 여도진은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들었다.사실 그는 처음부터 그 화재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고 그 내막에는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줄곧 실질적인 증거가 없어 애를 태워 왔을 뿐이다.지금에 와 보니 한씨 가문 부부가 저지른 일들이 명백한 증거로 드러났고 더는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연우야, 너는 이 일에 끼지 마.”여도진이 이연우 곁으로 다가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나랑 현준 씨가 해결할게.”그는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연우가 이 복잡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길 바라지 않았다.그의 마음속에서 이연우는 줄곧 순수하고 아무 죄가 없는 여동생이었다. 그녀만은 계속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야 했고 이러한 추악함에 물들어서는 안 됐다.“오빠, 나 이제야 오빠가 왜 도망치고 싶어 했는지 알겠어요.”이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여도진을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맺혀 반짝였고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오빠가 떠난 건 맞는 선택이었어요.”그녀는 속으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자신이 밖으로 보내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벌써 이 어두운 환경에 잠식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태어나 자란 가족이 이토록 역겹고 추악한 이면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생각은 마치 커다란 쇠망치로 변해 그녀의 가슴을 세게 내리치는 것 같았고 ‘가족’이라는 이름에 대해 완벽히 절망하게 했다.이 순간 이연우의 마음속에는 후회가 가득했고 가슴 한편에는 커다란 돌덩이가 무겁게 내려앉은 듯했다.그녀는 둘째 오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둘째 오빠는 H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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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한세현은 목소리가 떨렸고 그 한마디가 적막한 저택 안에 메아리치며 퍼져나가 한층 더 섬뜩하게 들렸다.“형,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걸 보고 많이 놀랐어?”여도진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노골적인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형이 보낸 킬러들이 생각보다 별로 쓸모가 없더라고.”그는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한세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날뛰는 한낱 광대를 내려다보는 듯했다.“말도 안 돼.”한세현은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세차게 저었고 두 눈에는 공포와 혼란이 뒤섞였다.“네 시체를 내가 직접 봤어. 네가 한세진일 리가 없잖아. 너 대체 누구야!”그는 거의 포효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눈앞의 모든 게 거짓이라고 자신에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당시 창고가 폭발했을 때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았고 그 정도 상황에서 한세진이 살아남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은 분명 방현준이 일부러 자신을 속이려고 데려온 배우일 거라고 굳게 믿었다.“형, 지난 몇 년 동안 의심병이 더 심해졌구나.”여도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말했다.“지금 내가 이렇게 눈앞에 서 있는데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용기가 없는 거야?”그는 한세현의 마음에 있는 상처를 가차 없이 후벼 파며 조롱했다.한편, 방현준은 두 사람의 대화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랐다.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한씨 가문 저택의 방들을 빠르게 오가며 사방을 샅샅이 뒤져 한세아와 한씨 가문 부부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그러나 샅샅이 뒤져봐도 오직 텅 빈 방뿐이었다. 사람이 얼마 전까지 방에 있었던 흔적조차 느낄 수 없었다.“한명훈 그 사람들은 어디 갔어?”방현준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고 가슴속 불안감이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황급히 한세현을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한세현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한겨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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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두 경찰은 한세현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얼굴빛이 확 굳더니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 들었다.그들은 양손으로 권총을 꽉 움켜쥐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총구는 곧장 한세현을 겨누고 있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다시 경솔한 행동을 보이기만 하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길 태세였다.그러나 한세현은 미친 사람처럼 광기 어린 눈빛을 하고 믿기 힘든 속도로 두 사람 앞으로 돌진했다.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두 경찰은 미처 대응할 틈도 없었다.한세현의 몸은 옆으로 스치듯이 빠르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두 경찰이 쥐고 있던 권총을 움켜잡았다.경찰들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버텨 보려고 했지만, 이 순간 한세현은 마치 거대한 힘을 지닌 사람처럼 느껴졌다.그는 손목을 힘껏 비틀었고 두 경찰의 입에서 눌러 삼킨 듯한 신음이 새어 나오는 찰나에 그들이 쥐고 있던 권총 두 자루를 낚아채 빼앗았다.이어서 한세현은 주저함이라고는 전혀 없이 손에 쥔 총으로 곧장 두 경찰을 겨누었다.곧이어 고성 안에 총성이 두 번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마치 냉혹한 사신의 선고처럼 메아리쳤다.두 경찰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원망과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휘청거리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곧 붉은 피가 바닥에 빠르게 번졌다.이 격렬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한씨 가문 부부와 한세아도 위층에서 천천히 내려왔다.알고 보니 한세아가 조금 전까지 한씨 가문 부부를 다락방에 가둬두고 있었다. 다락방은 어둡고 눅눅했으며 썩은 듯한 냄새가 진동했다.그들은 그 안에서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두려워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러다 아래층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자 잔뜩 겁먹은 채로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왔다.한명훈은 아들 한세현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 손에 아직도 총이 들려 있는 것을 확인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윽고 그의 눈에는 감격에 겨운 눈물이 차올랐다.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다시 품에 안은 사람처럼 한명훈은 서둘러 뛰어가 두 손으로 여도진의 손을 꽉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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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여도진의 목소리는 고성 안에서 메아리쳤고 이미 모든 걸 내던진 사람처럼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한세현은 그 말을 듣고 일그러진 웃음을 지었다. 그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힘껏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박수 소리는 이 적막하고 피비린내로 가득한 고성 안에서 유난히 날카롭고 거슬리게 들렸다.“한 가족이 드디어 다 모였네. 참으로 감동적인 상봉이야.”그는 일부러 말끝을 늘이며 조롱했다.“근데 안타깝지만 모두 곧 여기서 죽게 될 거야. 어차피 나는 나가도 오래 못 살 거란 거 잘 알아. 그렇다면 차라리 다 같이 나랑 죽어줘.”광기 어린 한세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광란의 상태에 빠져 버린 사람 같았다.이때 한세아가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며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눈앞의 한세현을 향해 애원하듯 말했다.“오빠, 난 줄곧 오빠 편이었어. 제발, 제발 나만은 내보내 줘.”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절망에 차 있었다. 온몸이 자신도 모르게 떨려왔고 마치 찬바람 속에서 바스러질 듯 떠는 마른 낙엽 한 조각 같았다.하지만 한세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세현은 눈에 살기가 번뜩이더니 천천히 총을 들어 올려 한세아의 머리를 정확히 겨누었다.한세아는 두 눈을 크게 치켜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끝까지 한세현이 정말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거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탕!”고막을 찢을 듯한 총성이 정적을 산산이 깨뜨리며 울려 퍼졌다. 한세아의 머리에 총알이 그대로 박혔고 붉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액체가 주변의 벽과 바닥에 사방으로 튀었다.짙은 피비린내가 순식간에 퍼져나가 숨만 쉬어도 메스꺼움이 밀려올 만큼 끔찍한 냄새가 고성을 뒤덮었다.이연우의 몸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눈동자 속에는 공포와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이렇게까지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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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연우야, 예전 일은 정말 미안하다.”딸을 바라보는 한명훈의 두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지금 네가 우리 두 사람을 부모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결국 피로 이어진 사이잖아. 우리가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엄마 아빠라고 불러주면 안 되겠니?”그의 목소리는 간절했고 몸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인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 같았다.어차피 곧 죽게 될 터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딸과 조금이나마 따뜻한 말을 나누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이연우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져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몸도 계속해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방현준의 어깨에 기대선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눈빛에는 공포와 무력감이 가득했다. 아직도 조금 전 그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장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연우를 더 이상 몰아붙이지 마세요.”한세진은 이연우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한 눈빛으로 한명훈을 제지했다.“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망가진 애예요. 두 사람은 정말 자신들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세요?”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늘처럼 한씨 가문 부부의 가슴을 찔렀다.한씨 가문 부부의 얼굴은 순식간에 몹시 험악하게 변했고 마치 먹구름이 드리운 듯 음울해졌다. 그들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마치 목구멍에 뭔가가 꽉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들도 지난 세월 동안 자신들의 행동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뼈저리게 느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이 모습을 본 방현준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신호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나 화면에 떠 있는 신호 없다는 표시가 차가운 사형 선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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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이연우는 발걸음이 급하고 허둥댔지만 결연했다. 고성은 지대가 비교적 높아서 지하실 위치가 다른 집들로 치면 1층에 해당했다. 지하실 안에는 축축하고 곰팡내 냄새가 가득했고 어둡고 답답했다.벽에는 누렇게 빛바랜 전등 몇 개가 매달려 있었는데 불빛이 깜빡이며 금방이라도 꺼질 듯해 음산한 분위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이연우는 지하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곧장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거운 상자와 장을 다급하게 옮겨 가며 어느 한구석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줄줄 흘러내려 옷깃을 흠뻑 적셨지만, 그녀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반드시 그 구멍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맨 안쪽에 놓인 장 뒤편에서 이연우는 그 익숙한 구멍을 찾아냈다.구멍 주변에는 먼지와 거미줄이 잔뜩 끼어 있어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듯했다.그 구멍을 발견하는 순간, 이연우의 눈에는 벅찬 눈물이 맺혔다.어릴 적에 그녀는 자주 이곳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놀곤 했었다.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마치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들을 구해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수호자 같았다.“구멍이 너무 작아요.”이연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구멍을 살펴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아무래도 제가 빠져나가긴 힘들 것 같아요. 게다가 함부로 벽을 부순다면 그 소리 때문에 한세현한테 들켜 버릴 수도 있어요.”그녀의 눈빛에는 난감함과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어쨌든 한세현의 손에는 총이 쥐어져 있고 자칫 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모두가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내가 방법을 생각해볼게.”방현준은 그 좁디좁은 구멍을 바라보다가 잔뜩 찌푸렸던 미간을 조금 풀며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이 구멍은 사람이 빠져나가기엔 확실히 너무 작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구멍을 통해서라도 바깥쪽 신호를 잡을 수만 있다면 외부와 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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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방현준과 이연우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둘은 똑같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결국 당장은 이 작은 구멍을 어떻게든 넓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이연우가 최대한 빨리 밖으로 나가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체구가 가장 작은 편인 이연우가 성공적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가장 컸다.이연우와 방현준은 지하실에서 올라온 뒤, 그곳의 상황을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설명해 주었다.이야기를 들은 모두의 얼굴에는 미묘한 표정이 떠올랐다.희망과 불안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라은혜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지하실 쪽으로 달려 내려갔다.라은혜는 지하실로 뛰어 들어가 그 구멍 앞에 다가서더니 쪼그리고 앉아 구멍의 크기를 자세히 살폈다.그 좁디좁은 구멍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녀는 조금 전까지의 들뜬 표정이 눈에 띄게 가라앉으며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작게 투덜거리기까지 했다.그러나 곧 그녀의 얼굴에 다시 무언가 떠오른 듯한 기색이 스쳤고 눈빛에는 또다시 희망의 불꽃이 타올랐다.라은혜는 허겁지겁 사람들 쪽으로 돌아와 여도진을 애타게 바라보며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이미 밖으로 나간 뒤의 상황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그녀의 얼굴은 무척 들떠있었다.라은혜는 여도진의 팔을 꽉 움켜쥐며 다급하게 말했다.“어떻게든 저 구멍을 좀 더 크게 만들 수는 없겠어? 그러면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야.”흥분으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고 두 손은 여도진의 팔을 세차게 붙잡은 채 좀처럼 놓으려 하지 않았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어 쥐고 있었다.여도진은 어머니의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고 얼굴에는 비웃음을 띠었다.이윽고 여도진은 한 걸음 다가와 어머니의 몸을 확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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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라은혜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손톱이 손바닥의 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그러나 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들고 여도진을 원망에 가까운 눈빛으로 한 번 쏘아보더니 곧 고개를 돌려 더 이상 아무도 바라보지 않았다.저녁이 가까워지자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고성 안의 분위기는 침울했다.그때 한세현이 위층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의 발걸음은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았고 그 소리가 적막한 고성 안에 또렷이 울려 퍼졌다.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안색이 하나같이 심각하게 굳어 있는 것을 보자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사람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모두 이익만 좇는 자들이라 이런 막다른 궁지에서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나설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한세현은 태연한 걸음으로 사람들 앞까지 다가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띠고 느릿하게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지금 저를 얼마나 미워하고 계실지 잘 알아요. 당장이라도 절 죽이고 싶으시겠죠.”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그래도 어쨌든 이 장치들은 전부 제 손에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기만 한다면 당신들 중 한 명 정도는 밖으로 내보내 줄까 생각은 해 볼 수 있어요.”그는 비아냥거리고 있었고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고 있는 사람처럼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한세현!”여도진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한세현을 노려보았다.“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진짜 눈이 멀었지. 널 가문의 친아들처럼 대해 줬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뻔뻔한 인간일 줄은 몰랐어.”그의 가슴은 거칠게 들썩였고 두 주먹을 꽉 쥔 채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한세현을 치고 싶은 기세였다.“헛소리 집어치워!”한세현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얼굴에 있던 웃음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일그러진 분노만이 남았다.“무슨 개 같은 친아들 타령이야. 너희한테는 이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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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방현준은 충격받은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이연우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이 터무니없는 허황한 얘기 같았다.“언제 알게 된 거야? 왜 진작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그의 목소리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눈빛에는 초조함과 걱정이 가득했다.이연우는 체념한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방현준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H국에 돌아갔을 때 알게 됐어요. 그런데 현준 씨가 F국 일로 계속 고민하면서 너무 지쳐 있는 걸 보니까 도저히 거기에 또 걱정을 보태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말 안 했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산들바람 스치듯 아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이연우는 자신이 과연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이 순간, 죽기 전에라도 이 사실을 방현준에게 알려 주는 것이 둘 사이의 감정에 그나마 조금은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 일이라 여겨졌다.방현준은 이연우의 말을 듣고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그는 황급히 두 팔을 뻗어 이연우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그녀가 금방이라도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사람처럼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품에 그녀를 가뒀다.그는 깊은 죄책감이 느껴지는 표정을 하고 약간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진작 말해 줬어야지. 진작 알았더라면 절대 너를 이렇게 위험한 곳에 데리고 오지 않았을 거야.”그는 눈을 꼭 감고 턱을 살짝 이연우의 머리 위에 기댄 채 서 있었다.그는 끝없이 자책하고 있었다. 방현준은 자신이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평생 이연우와 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곁에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명은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 주었다.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방현준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여도진은 옆에서 자기 여동생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볼록해진 이연우의 아랫배를 보고 있자니 이 사실을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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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방현준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다정한 눈빛으로 이연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연우야, 네가 먼저 나가.”방현준은 이연우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모두가 이제야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고 생각하고 방현준이 이연우를 보호하며 이 악몽 같은 곳에서 구멍을 통해 탈출하려던 그때, 이미 죽은 줄 알았던 한세현이 유령이라도 된 듯 느닷없이 지하실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일그러져 있었고 눈에는 실핏줄이 가득 터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흉악한 짐승 같았다.한세현의 손에는 권총 한 자루가 들려 있었고 새까만 총구는 곧장 빠져나가려는 방현준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순간 방현준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현준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한세현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거로 생각했어? 너희들 중 그 누구도 살아서 못 나가!”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세현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바로 그 일촉즉발의 순간, 여도진이 날카롭게 위험을 감지했다.그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한번 몸을 날렸고 순식간에 달려들어 한세현을 거칠게 바닥에 밀쳤지만, 한세현은 바닥에 넘어지면서도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탕!”귀청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총알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그 한 발은 마치 운명의 장난인 듯 기가 막히게도 한명훈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한명훈은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치켜떴고 몸을 휘청거리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라은혜는 갑작스러운 광경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더니 거의 굴러가다시피 구멍 쪽으로 몸을 날려 필사적으로 밖으로 기어나갔다.자기 남편이 총에 맞아 쓰러져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나, 이 끔찍한 곳에서 어떻게든 도망쳐 자신만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한편, 구멍 밖으로 나온 뒤 방현준은 애가 타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재빨리 근처의 경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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