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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의 꽃길: Chapter 471 - Chapter 480

482 Chapters

제471화

한씨 가문 고성에서 빠져나온 뒤, 방현준은 지금이 한시가 급한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단 1초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곧장 차를 주차해 둔 방향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그들이 이 음산한 고성을 벗어나 달빛이 쏟아진 공터로 막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일정하고도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방현준은 민감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고 달빛 아래 펼쳐진 풍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배씨 가문 사람들 일행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맨 앞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정승주였다. 그는 꼿꼿한 자세에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눈빛에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정승주는 방현준이 상처 하나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자 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폈고 마음이 놓인 듯 한숨을 돌렸다.“여긴 어떻게 온 거야?”방현준은 얼굴에 의문을 띤 채 정승주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렇게 사방이 위험투성이인 상황에서 정승주가 배씨 가문 사람들을 이끌고 제때 도착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놀란 표정을 한 방현준의 얼굴에서는 피로가 느껴졌다.“구조 문자를 보낸 사람이 형 아니야? 할머니한테 말이야.”정승주는 성큼성큼 다가와 방현준과 이연우를 재빨리 훑어보며 크게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말을 이었다.“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단 1초도 지체 안 하고 바로 구하러 온 거야. 둘 다 괜찮지?”정승주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고 눈빛에도 근심이 가득했다.요즘 들어 노세란의 도움 덕분에 정승주의 성격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방현준과 부딪히려 들지 않았고 마음가짐도 한층 더 온화하고 평온해져 있었다.“우린 괜찮아.”방현준은 고마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정승주 일행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훨씬 더 골치 아파졌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여긴 일단 너한테 맡길게. 안에 시신이 몇 구 있어.”방현준은 굳은 표정으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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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이연우의 눈빛에는 불안이 가득했고 기력이 떨어진 탓에 목소리까지 잠겼다.“다들 뒤처리하러 간 거야.”방현준은 이연우의 손을 꼭 잡고 낮은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이제 거의 다 끝났어. 더 이상 누구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리진 못할 거야.”이연우를 바라보는 방현준의 눈에는 걱정과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계속 자책하고 있었다.‘이렇게 위험한 상황을 왜 더 일찍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더 일찍, 더 철저하게 연우를 지켜 주지 못했을까.’그 자책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밧줄처럼 그의 가슴을 꽉 조여 왔다.“내가 임신한 걸 미리 말하지 않아서 나한테 조금은 서운할 수 있다는 거 알아요.”이연우는 살짝 고개를 들고는 미안함이 섞인 다정한 눈빛으로 방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근데 난 정말 걱정이 됐어요. 내가 임신한 걸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나랑 아이를 신경 쓰느라 당신이 위험해질까 봐서요. 당신은 항상 나를 지키려고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잖아요. 그래서 나랑 아이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이 주저하는 건 정말 보기 싫었어요. 그래서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그때 임신했다는 좋은 소식을 말해 주려고 했던 거예요. 근데 일이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에 터질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어요.”그녀는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두 눈에는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물 속에는 방현준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조금 전 겪은 죽을 뻔한 순간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다행히 너도 그렇고, 아이도 무사하잖아.”방현준은 이연우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마치 손을 놓는 순간 그녀가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는 듯싶었다.그의 목소리에서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뒤의 안도감이 느껴졌다.“아니었으면 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을 거야. 둘을 다 잃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깊은 공포와 불안이 남아 있었고 이연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한층 더 짙은 애정이 담겨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여도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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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좋아요.”이연우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두 눈은 밝게 빤짝이고 있었다.“이제부터는 나도 H국에서 가족이 있는 사람이에요. 더 이상 아무도 없이 혼자인 고아가 아니에요. 앞으로 오빠랑 언니랑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행복해요.”설렘이 북받쳐 올라 목소리는 살짝 떨렸고 그녀의 마음속은 앞으로 펼쳐질 평온하고 따뜻한 나날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동안의 휴식과 치료를 거치는 사이 그들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마침내 그들은 H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비행기는 천천히 활주로를 굴러가더니 이내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구름을 헤치고 솟구쳐 오르는 기체는 마치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향을 향해 곧장 날아가는 듯했다.비행기가 막 이륙을 마치고 곧 휴대폰을 꺼야 할 시간이 다가올 즈음 갑자기 방현준의 휴대폰 화면이 켜졌고 고요한 기내에서 알림음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궁금해진 방현준이 화면을 열어 보니 할머니에게서 도착한 문자 메시지가 떠 있었다.[돌아가서는 연우를 잘 챙겨 줘. 너희가 결혼할 때 내가 정승주 데리고 귀국해서 결혼식에 꼭 참석할게.]그 문자를 바라보고 있자 방현준의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노세란은 평생을 명예와 이익을 좇으며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만큼 그 모든 다툼과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자신만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삶을 즐겨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방현준의 머릿속에는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여유롭게 햇볕을 쬐고 있을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얼굴에는 분명 온화하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을 것만 같았다.그리고 자신과 이연우 역시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그들만의 아름다운 미래를 시작하게 되리라 그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얼마 후, 그들은 마침내 H국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익숙하고도 정겨운 공기가 얼굴을 스쳐 지나갔고 모두의 어깨에서 긴장이 풀려나가는 듯했다.강문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공항에서 그들을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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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방현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졌고 눈동자에는 기쁨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머니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설렘이 잔뜩 묻어 있었다.나정윤은 곧바로 눈치를 채고 잠시 멍해지더니 이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못 말리겠다는 듯 자기 아들을 가볍게 한 대 톡 치며 크게 웃었다.“세상에, 이 못된 녀석이 결국 사고를 쳤네. 우리 연우가 벌써 이렇게 좋은 소식을 가져오게 하다니!”그녀의 웃음소리는 방 안 가득 메아리쳤고 넘쳐나는 기쁨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나정윤은 이연우가 혹시라도 음식 냄새 때문에 더 힘들어질까 봐 아예 그녀 앞에 놓여 있던 그릇과 수저를 시원하게 한쪽으로 치워 버렸다.그 행동은 거침없었다. 이어서 그녀는 다정하게 이연우의 손을 꼭 잡고 옆으로 데려가며 애정 어린 미소를 띠고 말했다.“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내가 주방에 말해서 네가 좋아하는 걸로 따로 만들어 달라고 할게.”지금 순간, 나정윤의 마음속에서 이연우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없었다. 가문의 보물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어머님, 그렇게까지 하실 건 없어요. 전 지금은 그냥 조금 부끄러울 뿐이에요.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이연우는 볼이 붉게 달아오른 채 다소 쑥스러운 듯 말했다.그녀는 의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분간은 잘 쉬면서 몸을 추슬러 주기만 하면 되고 몸이 회복되면 그때 영양가 있는 걸 충분히 챙겨 먹으면 된다고 했으니 굳이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무슨 소리야. 원래 이렇게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경 써야 하는 거야. 넌 아무 생각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나정윤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고 눈빛은 확고했다.그때부터 이연우는 온 가족에게 철저하게 보호받기 시작했다. 회사에 나가 일할 필요도 없었고 일과라고는 먹고 쉬고, 산책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가족들의 세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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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심형빈은 조용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연우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목소리는 마치 산들바람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거칠게 일렁이던 불안의 호수를 스쳐 지나가며 차오르던 감정을 서서히 가라앉히고 괜한 초조함까지 조금은 누그러뜨려 주는 듯했다.그는 한동안 병세와 생활고, 두 가지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막 세상에 태어난 작은 생명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는 끝없는 막막함과 혼란이 밀려왔다.지금의 상태로는 이 아이를 온전히 책임지고 제대로 키워 낼 자신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연우야.”잠시 말을 고르던 심형빈은 조심스러운 기색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조금은 기대를 품은 듯 나직이 불렀다.“아이 이름을 네가 지어 줄 수 있을까?”왜 그런지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러면 자신이 품고 있는 이연우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이 아이에게까지 쏟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마치 이연우를 아끼고 사랑하듯 이 아이의 삶도 함께 곁에서 지켜볼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형빈 씨 아이잖아요. 내가 이름을 짓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이연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속으로는 왜 그런 부탁을 자신에게 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은 부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었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심형빈이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연우야, 내 병은 좋았다가도 나빠지고 의사들도 선뜻 단정하지 못해. 내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어. 우리 엄마도 나이가 많아서 이제 예전 같지 않아. 앞으로 아이를 혼자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게 쉽지 않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나중에 정말 내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 아이를 네 곁에 둘 수 있을까? 네가 좀 보살펴 줄 수 있어?”심형빈은 온몸의 힘을 짜내며 한 마디 한 마디를 겨우 내뱉는 듯했다 그는 품에 안겨 깊이 잠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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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지난번 F국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성태훈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움직임도 매우 불편했으며 온몸에서 쓸쓸함이 느껴졌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그는 꼿꼿이 현관에 서 있었고 예전과는 완전히 딴 사람 같았다. 이렇게까지 빨리 회복될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우리 예쁜 동생.”성태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기가 묻어 있는 미소를 지었다.“예전에 나한테 재활 치료를 열심히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네가 중간에 떠나고 나서도 어째선지 다른 한의사가 대신 봐주더라?”그는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장난스레 말했다.“예전부터 말했잖아요. 나보다 실력 좋은 사람들 세상에 널렸다고요.”이연우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굳이 나한테 집착할 필요가 어딨어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두 다리로 서 있는 거 보니까 정말 진심으로 기쁘네요.”이연우는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몸을 옆으로 비켜 성태훈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어서 들어와서 앉아요.”성태훈은 안정된 걸음으로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이연우의 안내를 따라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그는 가볍게 옷자락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어 따뜻한 눈빛으로 이연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왔어.”사실 그동안 성태훈의 마음은 꽤 복잡했다. 자신의 두 다리가 완벽히 회복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과연 결혼식 날까지 무사히 몸을 추스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이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치료받는 동안 틈날 때마다 재활 훈련에 매달렸다.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든 훈련의 매 순간, 쏟아지는 땀 한 방울 한 방울마다 언젠가 꼭 이 자리에 와서 이연우의 행복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너희 식구들 전부 F국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어.”성태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앞으로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더라고. 그래서 너희 결혼식만큼은 꼭 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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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방현준은 평생 자신이 이연우를 배신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감정이었다.그런데도 이상하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치 언젠가 그가 배신할 것처럼 생각하는 눈치였다.이런 근거 없는 의심들은 그를 내심 난처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다.성태훈도 방현준을 보자마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턱을 약간 들고 방현준을 똑바로 응시하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쨌든 우리 동생한테는 평생 잘해야 할 거예요. 내 여동생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현준 씨도 알죠? 현준 씨가 우리 동생을 놓치게 되면 그 사람들은 줄을 서서 우리 연우한테 고백하려고 달려들걸요?”성태훈의 말투는 장난처럼 들리면서도 전혀 농담 같지 않았다. 사실 이연우의 선함과 영리함, 그리고 외모까지 생각해 보면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적을 리 없었다. 그중에는 가문이나 능력, 조건 등 어느 하나를 따져 봐도 방현준 못지않거나 어쩌면 더 나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이 말을 들은 이연우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성태훈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 마음이 고마워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그녀는 조용히 다가가 자연스럽게 성태훈의 팔짱을 끼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걱정 안 해도 돼요. 나랑 현준 오빠는 분명히 행복하게 잘 살 거예요. 결혼식 때 오빠는 꼭 상석에 앉아 있어야 해요.”이연우는 줄곧 성태훈이 자신에게 준 도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그의 응원과 지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그녀는 박명주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결혼식 날엔 꼭 직접 모시고 와서 자기 행복한 순간을 함께 지켜보게 해 드리겠다고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성태훈은 위협적인 눈빛으로 방현준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 시선은 이연우에게 잘하라고, 아니면 가만 안 둔다는 경고를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이내 그는 이연우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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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이연우는 눈을 한껏 크게 뜨며 물었다. 눈동자에는 초조함이 가득했고 저도 모르게 한세영의 팔을 꽉 붙잡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진실을 들을 수 있을 듯 목소리도 한층 높아졌다.“사람은 찾았는데 이미 죽었대.”한세영은 고개를 살짝 떨구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슬픔과 홀가분해진 안도감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몸에 칼을 여러 번 맞아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었대.”그녀는 말을 이어가며 목소리는 어렴풋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힘겨워 보였다.한세영의 마음은 오만 가지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어쨌든 라은혜는 자신의 어머니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아무리 우여곡절이 많아도 혈연이라는 끈은 완전히 끊어내기 어려운 법이었다.하지만 라은혜가 그동안 저질러 온 일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에서는 또 다른 안도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기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들을 짓누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이연우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결국 라은혜가 죽을 때까지 자신과 그녀는 끝내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 채 남처럼 지내다 그렇게 끝나 버렸다.이연우의 눈에는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나직이 말했다.“지은 죄가 너무 컸으니까 결국 제대로 된 끝은 못 맞은 거죠.”지금 이연우의 마음 역시 말로 다 하기 힘들 만큼 복잡했다. 라은혜와 함께 보낸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권력에 눈이 먼 라은혜와의 삐걱거리는 관계뿐이었다.권력이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수록 둘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정까지 산산이 부서져 버려 예전처럼 되돌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만약 처음 다시 만났을 때 바로 서로를 알아보고 어머니와 딸로서 관계를 회복했다면 지금 이연우도 더 슬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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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이연우는 그 말을 들은 뒤에도 마음 한편에 여전히 한세영과 가족 사이의 일이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한세영의 말속에서 단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미 스스로 선택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것저것 캐묻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저 살며시 한세영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우리 일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한세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이연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넌 지금 결혼 준비만 잘하면 돼. 방현준 그 사람 꽤 괜찮은 남자야.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고 너를 지켜 줄 사람이야.”그렇게 말하는 한세영의 눈에는 잠시 부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자신의 결혼생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결혼이란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차갑디 찬 거래에 불과했다. 서로의 이해관계만 맞아떨어지면 이어졌다가도 틀어지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관계였다.심지어 자신이 F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조차 남편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이혼 서류에 서명했고 붙잡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마치 그들 사이에 처음부터 어떤 감정의 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두 사람 사이에는 애초에 사랑이라 부를 만한 감정은 없었고 남아 있던 것도 계산과 이익뿐이었다.“넌 지금 임신한 몸이니까.”한세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연우를 바라봤다.“몸부터 잘 챙겨야 해. 다른 건 전부 내려놓고 너무 마음 쓰지 말고.”말을 하다 보니 그녀의 생각은 어느새 자신이 임신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새 생명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리며 누구보다 기쁘고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하지만 운명은 너무도 잔인했다. 남편의 외도 상대가 일부러 일으킨 그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자신에게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었을 것이다.다른 엄마들처럼 아기를 품에 안고 웃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모든 꿈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남은 것은 지워지지 않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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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지나온 모든 일들이 두꺼운 고치처럼 그의 마음을 겹겹이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최나린과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 그는 어느새 전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연 듯한 느낌을 받았다.서지훈에게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최나린은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한 줄기 빛처럼 조용히 스며들어 그의 마음 깊숙이 오래전부터 먼지 쌓인 채 봉인돼 있던 그 구석까지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최나린은 성격이 온화하고 선한 여자였다. 그녀의 눈길 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신기한 마력을 지닌 것처럼 원래 쇠처럼 단단했던 서지훈의 마음을 서서히 풀어내고 부드럽게 만들었다.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서지훈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좋은 남편이 되어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사랑과 보살핌을 최나린에게 쏟겠다고 말이다.“사실 예전부터 한번 찾아뵙고 싶었어요.”최나린은 미소를 머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 그동안 연우 씨가 집에 안 계신 날이 많아서 저희도 함부로 찾아오기가 좀 어려웠어요.”최나린은 매우 단정하고 기품 있는 여자였다. 그녀도 이연우가 한때 서지훈이 좋아했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질투나 불편함은 조금도 품지 않았다.처음부터 끝까지 태연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우아한 품격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얼마 전에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잠깐 외국에 다녀왔어요.”이연우는 미소를 지으며 친근한 눈빛으로 대답했다.“이제 그 일도 다 정리돼서 앞으로는 다시 해외에 나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연우 씨,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최나린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두었던 가방에서 정성스럽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꺼내서는 두 손으로 이연우에게 내밀며 말했다.“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이연우는 상자를 받아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 보았다. 순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고급 맞춤 예복 한 벌이 시야에 들어왔다.그 옷은 재단이 매우 정교했고 전체적인 라인이 자연스럽고 유려해 마치 처음부터 이연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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