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위험한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221 - 챕터 230

280 챕터

제221화

“추 장군, 저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국공부 사람들과 제법 친해 보이는 넷째 형님의 모습에 유봉진은 거의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기세였다.추소하를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나, 우리 국공부 운운하지 않나, 국공부가 도대체 유상무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이건...”추소하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유봉진의 분노에 찬 기세와는 달리 추소하는 그나마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무왕 대군 나리의 생각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셨는지 저로서도... 알 길이 없습니다.”모른다, 알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한다, 분명치 않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하는 것이 정답이다!추월녀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막막할 땐 그저 그렇게 말하면 된다고 말했었다.유봉진이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는 걸 보고 추소하는 속으로 감탄했다.‘역시 월녀는 참 신통한 여인이로구나. 미리 이렇게 완벽한 정답을 주었으니.’“월녀와는 대체 어떤 사이란 말입니까?”누군가 엿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봉진은 소리를 낮추었다.이곳은 왕부처럼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다.추소하가 또 한마디 덧붙였다.“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월녀와 무왕 대군 나리께 직접 여쭈어야 할 듯합니다.”“그럼 본왕이 직접 나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물어보란 말입니까?”“그것도 나쁘진 않지요. 대군 나리께서 친히 가서 물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그저 물어보면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무왕도 방금 어차피 인정하지 않으면 황제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사적인 장소에서 실컷 떠들어대고 밖에 나가선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 된다.그렇게 생각하자 추소하의 얼굴빛이 훨씬 밝아지면서 유봉진에게 웃으며 말했다.“직접 가서 확인해 보십시오.”추소하가 정말로 유봉진에게 직접 확인하라는 뜻을 보이자, 유봉진은 분통이 터져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이런 문제를 어찌 사람들 앞에서 물을 수 있단 말인가. 정녕 추소하는 국공부가 화를 입을까 봐 두렵지도 않은 것일까?하지만 잠시 후 추월녀와 자운선이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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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우금과 가진명은 잽싸게 뛰어 들어와 낮은 걸상에 궁둥이를 철썩 붙이고 앉았다.그러고는 곧장 구청하가 내민 고기를 받아 감사하다는 한마디만 던지고 바로 입에 쑤셔 넣었다.예의라곤 한 점도 없는 행동에 추소하는 눈앞이 아찔했다.추일이 옆에서 재빨리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을 것이다.“월녀야...”추소하는 여동생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걸까? 국공부와 무왕부의 친목 모임이라도 열려는 셈인 걸까?모여 앉아 고기와 술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자리라니.추월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저쪽에서 아예 눌러앉았는데 제가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말을 마치고 구청하 곁으로 앉으려는 순간 유상무가 황급히 막아 나섰다.“월녀야, 이리 오너라. 내 할 말이 있다.”추월녀는 유상무를 쳐다보지도 않고 구청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구청하는 호탕하게 웃었다.“월녀야, 무왕이 너를 부르는구나. 젊은 사람끼리 앉아야 더 흥이 나지 않겠느냐? 나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셋째 숙모님, 두 분은 동갑이니 편히 부르십시오. 무왕이라고 부르니 괜히 멀어지는 느낌이지 않습니까?”유상무도 급히 맞장구를 쳤다.“제가 아랫사람입니다!”구청하도 맞장구쳤다.“그래, 아랫사람이지. 너하고 똑같이 어린놈일 뿐이다.”추월녀는 콧소리를 내며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세 숙모에게 술을 따라주었다.그때 빈 사발 하나가 슬며시 눈앞으로 밀려왔다.“손이 없습니까?”추월녀가 눈을 흘기자 유상무는 가볍게 웃었다.“네가 따라준 술을 마시고 싶을 뿐이다.”“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삼가십시오.”추월녀는 눈을 흘기며 잔을 채웠다.그때 우금이 고기를 한입 가득 넣은 채 손을 닦고 다른 술병을 들었다.“나, 나리... 제가... 따르겠...”“아유, 우금 오라버니!”자운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고기 먹으면서 말하지 마십시오! 고기에 침이 다 튀지 않습니까!”“어, 으음... 미, 미안...”방 안은 웃음소리가 넘치는 한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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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유봉진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걸음을 옮기며 온몸에 분노가 넘쳤다.돌아오는 길에 유봉진은 자신을 찾아 헤매는 선우원영의 모습을 보았다.유봉진이 보이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며 화내는 모습을 보니 유봉진은 그저 심기가 더더욱 불편해졌다. 몸을 돌려 피하고 싶었으나 결국 들키고 말았다.“봉진아, 어디 갔던 것이냐?”요즘의 선우원영은 선우명월이 나타난 뒤로부터 예전보다 한결 얌전해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 연회장에서 선우명월의 활약은 그녀를 분노케 했다. 십수 년간 속아 온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져 화를 참을 수 없었다.게다가 추월녀의 기마와 궁술까지 본 선우원영은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선우원영은 그동안 선우명월을 미워했지만 추월녀의 활 쏘는 모습을 본 후엔 두려운 마음 때문에 이상하게도 선우명월에 대한 미움이 옅어졌다.그동안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추월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니.그동안 추월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 사실 추월녀가 빛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 빛이 너무 강렬해 선우원영이 발 딛고 있던 자리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추월녀의 활약은 선우원영이 힘들게 지켜온 자존심을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그렇기에 선우원영은 더 두려웠으며 또한 확신했다.오늘 밤 유봉진이 보이지 않는 건 분명 추월녀를 만나러 간 것이라고.아니나 다를까 국공부 쪽에서 돌아오는 유봉진의 모습을 본 순간 선우원영은 억눌러온 분노가 폭발했다.“추월녀를 또 찾아간 것이냐? 널 거들떠나 보더냐? 네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르는구나. 추월녀는 널 이용해 자신이 더 돋보이고 싶을 뿐이다. 그 먼 길을 달려와 널 구한 것도 다 너를 짓밟고 올라서려는 수작일 뿐인데 어찌 그걸 모르는 것이냐?”선우원영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유봉진은 언제부터 이렇게 어리석어진 걸까? 자신을 이용한 여인을 아직도 잊지 못하다니!유봉진은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막사로 향했다.오늘 밤 국공부에서 이미 충분히 모욕을 당했는데 돌아오자마자 또 선우원영의 성화를 들어야 한다니.“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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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허튼 소리하지 마십시오! 유봉진이 추월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선우원영은 거의 발작하듯 외쳤다.무엇이든 참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유봉진이 추월녀를 애정하고 선우원영을 애정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처음 저를 도성으로 데려올 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평생 저 하나만을 애정하고 저만을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조했습니다!”선우원영에게 있어서 그때의 추월녀는 이미 손쉽게 이긴 상대에 불과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 패배자가 자신을 이긴다는 말도 안 된다.“제가 도대체 그 천한 년보다 뭐가 뒤진단 말입니까?”“네가 무엇으로 추월녀를 이기겠느냐?”선우명월의 목소리는 차가운 칼날처럼 날카롭게 내리꽂혔으며 한마디 한마디가 선우원영의 가슴을 꿰뚫었다.“추월녀는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미모를 지녔다. 넌 혼자 있을 때도 그저 그런 용모지만 추월녀 옆에 서면 오히려 추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그리고 추월녀의 기마술과 궁술은 네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절정의 고수일지도 모르지.”“그럴 리 없습니다! 추월녀는 무공 따위를 모릅니다!”선우원영이 절규하듯 소리치자 선우명월은 냉소를 흘렸다.“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날 국공부에서 복수하겠다며 달려들다가 추월녀의 손에 한 방에 쓰러지지 않았더냐? 그때 네가 뭐라 했느냐? 국공부 안에 숨은 고수가 있다고 떠들지 않았느냐? 근데 네가 말한 그 고수가 정녕 있긴 하더냐?”“그, 그자의 무공이 너무 뛰어나 보이지도 않았는데 누군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선우원영은 아직도 몸이 떨렸다.선우원영은 그때조차 누가 자신을 쓰러뜨렸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그건 분명 추월녀 본인이 직접 너를 제압한 것이다. 처음엔 네가 그렇게 단정하지 않았느냐? 그러다 유봉진의 말에 넘어가 고수가 있다고 믿은 거지.”선우명월은 코웃음을 쳤다.“진왕도 어리석기 그지없는 사내다. 그토록 오래 함께했으면서 추월녀가 어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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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언니, 도대체 무얼 하려는 겁니까?”얼음장 같은 한마디에 선우원영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선우명월이 진왕부에 들어온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선우명월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원래 나는 진왕부 같은 곳에 올 생각이 없었다.”아니, 처음에는 진왕이 동릉에서 가장 강한 사내일 거라 믿어서 온 것이었다.허나 도성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확인한 결과 전투의 신이란 이름은 허울뿐이었다.훗날 현성 석산에서의 전투를 통해 유봉진이 여태 전투의 신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건 뒤에 추월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지금은 추월녀가 돕지 않으니 남은 건 그냥 빈 껍데기뿐이다.그리고 이 사실은 곧 온 동릉이 다 알게 될 것이다.“진왕에게 가서 말하거라. 추월녀의 마음이 얼마나 악독한지를. 계속 여색에 빠져 있으면 황제가 되기는커녕 전투신 칭호마저 무왕과 추월녀에게 빼앗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왕은 가진 걸 모두 잃게 될 것이니.”선우원영은 고개를 떨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언니도 방금 봉진은 지금 추월녀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런 말을 한들 제 말을 들어줄 리가 있겠습니까?”요즘 선우원영은 패배감에 빠져 있었다.무얼 해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모든 게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기분이었다.선우명월은 차갑게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그래, 추월녀를 좋아하지. 허나 그 추월녀는 지금 무왕과 얽혀 있지 않으냐? 그걸 바로 너의 유일한 기회다.”만약 지금 추월녀가 유봉진을 향해 단 한 번이라도 미소를 보였다면 두 사람은 아무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타인의 마음에 자신들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선우명월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선우명월은 이를 악물며 십여 년을 참고 견뎌온 이유가 지금 이 순간 무의미해지는 듯했다.이번 사냥 시험에서도 자신이 단연 돋보일 줄 알았다.황제조차 선우명월을 눈여겨보았고 그 시선엔 분명한 찬탄이 담겨 있었다.이번 사냥대회의 주인공은 본디 선우명월이어야 했으나 갑자기 나타난 추월녀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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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유상무는 책을 읽고 있는 추월녀를 바라보며 정말 괴로웠다.반쪽짜리 가면으로는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얼굴의 수심은 누가 보아도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였다.추월녀는 어이없다는 듯 책장을 덮었다.“대군 나리께서 제 처소에 오신 지 벌써 반 시진이 지났습니다. 도대체 어인 일로 이러고 계십니까?”정확히 말하자면 추월녀는 유상무가 언제쯤 돌아갈 셈인지 궁금했다.고기도 먹고 술도 마신 뒤 가진명과 우금이 조금 과음한 그를 부축해 겨우 데려갔을 때만 해도 추월녀는 속으로 이제야 조용해지겠구나 싶어 안도했었다.허나 목욕을 마치고 옷까지 갈아입은 유상무가 또다시 문을 두드린 것이다.적어도 이번엔 깨끗한 옷차림이었다.유상무는 추월녀가 자신이 지저분한 꼴로 나타나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후로 그저 의자에 걸터앉아 한마디 말도 없이 추월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 시선이 얼마나 집요하고 조용한지 추월녀는 속이 간질간질해질 만큼 신경이 곤두섰다.“딱히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저는 이제 쉬어야 합니다.”“쉬면 되지 않으냐? 내가 막은 것도 아니고.”유상무는 의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턱을 괸 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추월녀를 응시했다.그 눈빛은 어딘가 불안하고 복잡했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추월녀가 물었다.“월녀야.”유상무가 낮고 묵직한 음성으로 추월녀의 이름을 불렀다.“난 왠지 조금 불안하구나.”추월녀는 대마왕의 입에서 불안하다는 말이 나오자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불안하시다니... 뭐가 불안하신 겁니까?”추월녀는 조금 호기심이 일었다.유상무와 처음 마주했을 때 분명 낯설고 까다로운 사내라고 생각했다.허나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유상무의 마음속엔 생각보다 단순하고 진솔한 부분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때로는 너무 깊어서 헤아릴 수 없지만 때로는 그저 서툰 아이 같았다.“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출중하구나.”그것이 유상무가 밤새 괴로워한 이유였다.오늘 유상무는 추월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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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7화

추월녀는 눈을 흘기고 싶었으나 참았다.유상무는 추월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는 한 걸까?추월녀가 하려던 말의 요지는 그게 아닌데...“대군 나리...”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유상무는 어느새 추월녀 옆으로 와서는 같이 양반다리를 틀고 양탄자 위에 앉았다.“월녀야, 무슨 책을 보고 있는 게냐? 앞으로 네가 읽는 책은 나도 함께 읽을 것이다.”유상무는 가까이 몸을 숙이며 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에 추월녀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어찌하여 그러십니까?”“네가 너무 출중해서 괜히 나 같은 사내가 못 미칠까 두려워서 그러는 게다. 혹여 다른 사내들이 네 뒤를 쫓아 몰려들면 그 준수한 사내들 중에서 누군가 너를 홀려버릴지도 모르지 않느냐?”유상무는 고개를 들어 한껏 억울하고 원망 어린 눈으로 추월녀를 바라보았다.추월녀는 순간 숨이 막혔다.북강의 군주이자 냉혹한 무왕이라는 사내가 어찌 이토록 애달픈 눈을 할 수도 있단 말인가?하지만 유상무의 마음은 이미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때 내가 너를 몇 번만 더 쳐다봤어도 너는 봉진에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넌 사내에게 참 쉽게 흔들리는 나쁜 여인이로구나.”“......”추월녀는 유상무의 궤변에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그때 저는 대군 나리를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보아라! 넌 다른 사내에게 넘어갔을 뿐만 아니라 나를 완전히 잊고 있었으니 역시 정 없는 나쁜 여인이구나.”유상무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괜찮다. 예전 일을 따질 생각은 없다. 어차피 네가 유봉진과 틀어진 건 내겐 좋은 일이니 말이다. 내가 따로 손을 쓸 필요도 없겠구나.”사실 유상무는 북강에 있을 때부터 이미 온갖 이간책을 구상해 두었었다.심지어 유봉진에게 약을 먹여 외간 여인과 엮이게 만들려는 수상쩍은 계책까지 생각해 두었을 정도였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이간책들을 쓸 기회는 없었다.유상무는 이내 자신을 달래듯 중얼거렸다.“모두 내 탓이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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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추월녀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문득 이 대마왕에게서 다른 누구에게서도 본 적 없는 장점을 하나 발견했다.유상무는 화가 날 때마다 자신을 억누르고, 달래고, 자신을설득하려 애쓴다.화를 내지 말자,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듯했다.이런 성격은 실로 드물며 심지어 추월녀도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대군 나리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리도 관대하십니까?”“관대하다고?”유상무는 그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사람들은 무왕이라고 하면 언제나 잔혹하고, 폭력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무왕에게 관대하다는 단어가 과연 어울리기나 할까?그런데 추월녀는 지금 유상무를 관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그 말 한마디에 유상무는 마음이 단번에 풀렸다.유상무는 고개를 숙여 추월녀의 손에 들린 병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그 책이라면 난 이미 다 읽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묻거라. 내가 다 알려주마.”“다 읽으셨다고요?”추월녀는 곁눈질로 유상무를 보며 물었다.“당연하지. 예로부터 내려온 병법서란 병법서는 모두 익혔다. 북강에 있을 적에 전쟁이 뜸할 땐 무공을 익히거나 책을 읽는 것뿐이었으니.”유상무는 잠시 웃었다.“세월이 지루하긴 했지. 허나 도성으로 돌아가면 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모든 나날이 견딜 만했다. 이 책은 내용이 평범하다. 월녀야, 무왕부에 전왕 삼부곡이 있다. 보고 싶으냐?”“전왕이라고 하셨습니까?”추월녀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혹여 십사국 시기의 그 전왕을 말하는 것입니까?”“그렇다.”“허나 그 세 권은 황궁에 소장되어 있다가 그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들었습니다.”추월녀는 과거 유봉진에게 여러 차례 수소문하게 했지만 매번 허탕이었다.심지어 안세권에게도 알아보게 했으나 책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세상에 세 권뿐인 절본이지. 내가 훔쳤으니 사라진 게 아니겠느냐?”“예?”추월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유상무를 노려보았다.“그게 대군 나리 짓이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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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월녀야, 너를... 안아보고 싶구나.”사내의 낮고 자극적인 목소리에 추월녀는 하마터면 그의 숨결에 취할 뻔했다.특히 유상무가 가까이 다가올 때 은은하게 퍼지는 자연스러운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건 사내로서의 가장 깨끗한 향이자 은은한 사내의 체취였다.추월녀는 심장이 순식간에 빨라졌다.‘방금 무왕이 무슨 말을 한 거지? 안아보고 싶다니.’그러나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추월녀였다.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병서가 발밑 양탄자 위에 떨어져 있었다. 추월녀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손을 뻗어 유상무의 가면을 더듬었다.그윽한 향기는 유상무의 코끝과 심장에 불을 질렀다. 추월녀의 손끝이 가면에 닿자 유상무는 뜨거운 피가 치솟아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길게 뻗은 팔로 그녀를 품에 안아 가두었다.부드러운 몸이 유상무의 몸에 달라붙었으며 남녀의 체격 차이로 두 사람은 동시에 흠칫했다. 유상무의 크고 강인한 몸이 추월녀를 순식간에 감싸안았고 추월녀의 부드러움은 그가 가졌던 허전함을 단번에 채워주었다.추월녀는 숨이 거칠고 머리가 어지러워졌으며 의식도 조금 흐려졌다. 어렴풋이 한때 보았던 불길을 떠올랐고, 불길에 삼켜지려 할 때 한 소년이 불길 속을 걸어와 추월녀를 안아 들었다.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이 풍기는 향은 좋았고 그가 안아 올릴 때 추월녀는 안심을 느꼈다. 불길은 여전히 주위를 태웠지만 소년이 있기에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 안심되는 느낌을 추월녀는 지금 이 순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언제인지 모르게 가면은 바닥에 떨어졌고 추월녀의 시야에 드러난 얼굴은 흠 하나 없이 깨끗했으며 타고난 준수함과 자연스러운 완벽함이 빛났다. 나라를 무너뜨릴 만큼 아름답다는 말은 여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내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음을 추월녀는 처음 알았다.눈앞의 사내는 호흡이 멈출 만큼, 미친 듯이 빠져들 만큼 아름다웠다.얼굴이 점차 커지며 정신이 흐릿해질 무렵 온몸은 이미 유상무의 숨결로 가득 찼다. 몸은 뜨겁고도 말랑말랑하여 스스로 주무르고 싶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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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0화

추월녀는 긴 시간을 들여서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비로소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바닥에는 유상무의 가면이 고요히 놓여 있었다.추월녀는 그것을 들어 올려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점점 눈빛이 깊어졌다.유상무의 얼굴이 멀쩡했으며 그토록 떠들썩하게 퍼졌던 북강 전선에서 부상으로 인해 얼굴이 망가졌다는 소문은 거짓이었다.그건 도대체 어디서부터 흘러나온 것이란 소문인 걸까?그 거짓된 소문 때문에 추월녀는 수년간 유상무에게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두려움, 그리고... 죄책감.그런데 실상 유상무는 상처 하나 없는 얼굴로 멀쩡히 살아 있었고 그 얼굴은 오히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완벽했다.방금 그 얼굴은 무섭도록 완벽했다.동릉 전체를 통틀어도 감히 견줄 사내가 없을 것이다.그건 여인의 미모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신이 깎아놓은 듯한 얼굴이었다.그런데 왜 그런 얼굴을 감추며 일부러 세상에 무왕은 흉터투성이 괴물이라고 떠들고 다닌 걸까?이 대마왕의 속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추월녀는 가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제 유상무가 또다시 이 일로 추월녀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 것 같았다.책임을 져야 한다라...책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 추월녀는 본능적으로 시선이 가슴으로 향했다.옷자락은 여전히 흐트러져 있었고 그 광경을 확인하자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참 너무한 사내다!추월녀는 열일곱 해를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이토록 방탕하게 굴어본 적이 없었다.물론 그녀가 너무하다고 생각한 것은 유상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도대체 언제부터 사내의 얼굴에, 그의 향기에, 그의 숨결에 취해 정신을 놓을 정도로 변한 걸까?언제부터 이토록 색정에 약해진 건지!그날 밤 추월녀는 이상하게도 참으로 오랜만에 푹 잤다.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새벽 공기가 채 걷히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매년 추계 사냥대회마다 둘째 날은 시험 규칙이 달랐다.오늘 황제는 새로운 시험 내용을 직접 선포할 것이다.이번은 호룡군 영패의 귀속이 걸린 중요한 시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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