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위험한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231 - 챕터 240

280 챕터

제231화

“저는... 일부러 엿본 게 아닙니다. 그분이 스스로 가면을 쓰지 않은 채 나왔을 뿐입니다.”자운선은 그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두 손을 꽉 쥐었다.어젯밤 무왕의 얼굴을 본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등줄기가 서늘했다.그 얼굴은 너무 완벽해서 현실감조차 없었다.자운선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하지만 문제는 유상무도 자운선을 봤다는 것이다. 설마 무왕의 비밀을 알아버려서 입막음이라도 당하는 건 아닐까?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자운선은 살짝 고개를 들었다.“아씨, 혹시... 이미 그분의 진짜 얼굴을 보신 겁니까?”무왕이 아씨의 천막에서 나왔으니 정말 입을 막을 생각이라면 제일 먼저 위험한 건 아씨였다.그런데 무왕이 그리한 걸 보면 둘 사이가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아씨, 그분이... 어젯밤에 아씨와... 그, 그러니까...”“아무 일도 없었으니 쓸데없는 상상을 하지 말거라!”추월녀가 단호히 말을 잘랐다.물론 자운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보다 추월녀의 얼굴에 번진 붉은 기운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느꼈다.다행히 자운선은 유상무의 보면 안 될 부분을 보진 못했다.그래서 추월녀의 기분은 어찌 되었든 나쁘지는 않았다.자운선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무왕과 아씨 사이는 분명 오래된 원한이 있지만 요즘 무왕의 태도는 원한 관계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했다.도무지 복수인지 다른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어젯밤, 그분이 아씨께 무슨 말을 하진 않으셨습니까?”진짜 얼굴까지 들켜버렸으니 보통이라면 협박 몇 마디쯤은 있을 법한데 말이다.추월녀는 여전히 볼이 붉게 물든 채 고개를 저었다.“오늘 시합은 아주 중요하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어서 폐하께서 어떤 규칙을 내리시는지 들으러 가자.”“예, 아씨.”자운선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오늘 자운선도 속옷 안에 가죽 갑옷을 덧입고 있었다.자운선과 추일은 직접 사냥에 나설 자격은 없었으나 부상자나 사냥감을 옮겨야 할 수도 있기에 모든 위험에 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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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오늘 황제는 뜻밖에도 나오지 않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어제 바람을 쐰 탓에 한데 감기가 들었다고 한다.작은 병이지만 신중을 기해 어의가 황제에게 당분간 막사를 떠나지 말라 권했다고 한다.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이른 가을 아침이라 바깥바람은 여전히 싸늘했다. 오늘 규칙은 안세권과 서비가 황제를 대신해 낭독했다.사냥해야 할 목표는 검은 곰 한 마리였다.다만 그 곰의 배에 동릉 황족의 문양이 새겨져 있지만 안세권조차 그것이 무슨 문양인지 분명히 설명하지 못했다.올해 규칙은 확실히 어딘가 좀 수상했다.일주향 이후 열 팀이 출발하게 되며 그 시간 동안 각 팀에서는 규칙을 연구하고 있었다.서비가 유봉진을 불렀다.“어젯밤에 내게 폐하의 규칙을 알아보려 했으나 폐하께선 조금도 밝히지 않으셨다. 그 문양은 나도 모르는 바다.”서비의 얼굴에는 불안이 역력했다.어제까지만 해도 선우명월이 추소하에 못지않은 조력자라 생각했다. 허나 이번 사냥대회에서 무왕과 추월녀의 기량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정보를 구해 온 척후가 전한 바로는 추월녀가 국공부 사람들을 거느리고 민후부 일행과 대치하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서비는 유봉진이 추소하를 선택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허나 해가 지기 전에 국공부 사냥대는 끝내 당당히 오늘 본선에 들어온 것이다. 서비는 믿기지 않으면서도 불안이 더해졌다.“봉진아, 어제 사냥터에서 국공부와 민후부가 싸우는 걸 보았느냐? 정말 듣던 대로 난장판이더냐?”유봉진은 서비의 질문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국공부 측의 냉대가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추월녀의 거침없는 자태를 떠올리면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예. 제 눈으로 보았사옵니다. 월녀의 기마와 사격 솜씨는 실로 대담하고 위엄 있었사옵니다.”그것은 단순한 거만이 아니라 지략과 용기를 지닌 모습이었다. 선우원영의 막무가내인 모습과 너무 달라 그 모습은 유봉진의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서비와 서 상궁은 그 미묘한 미소를 본 뒤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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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유봉진은 서비의 막사를 벗어나자마자 마침 멀리서 무언가를 들고 국공부 쪽으로 향하는 우금을 보았다.우금은 처음엔 모른 척하고 지나치려 했으나 유봉진이 곧장 자기 쪽으로 걸어오자 어쩔 수 없이 억지웃음을 띠며 허리를 숙였다.“진왕 대군 나리를 뵙겠습니다.”“손에 든 건 무엇이냐?”유봉진은 우금의 손에 든 쟁반을 가리키며 물었다.쟁반에는 덮개가 씌워져 있어 안은 보이지 않았다.우금은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대답했다.“아뢰옵기에 황공하오나 저희 무왕 대군 나리께서 특별히 부엌에서 만든 대추떡입니다. 월녀 아씨께서 아침에 고기를 즐기지 않으시는 걸 아시고 미리 준비해 두시라 명하셨습니다.”이곳은 사냥터다.황제와 몇몇 황자들은 따로 요리사를 데려왔지만 다른 팀들은 대부분 무인들이라 직접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어젯밤 각 진영이 고기를 굽고 술을 나누며 밤을 지새웠으니 오늘 아침 식사도 대부분 남은 고기였다.그런데 무왕은 그런 사소한 취향까지 챙겨두고 있었다.유봉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멀찍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유상무를 바라보았다.겉보기엔 태연했지만 그 시선은 거리낌 없이 정면의 한 여인을 향하고 있었다.그 여인은 바로 추월녀였다.추월녀는 오늘 더더욱 담백한 차림이었다.화장은 거의 없었고 단정한 전투복 차림에 머리를 높이 묶어 올려 묵직한 기세를 더했다. 머리끈조차 여느 사내들이 쓰는 간결한 끈이었다.그런데 어쩐지 낯익어 유봉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저 머리끈은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유봉진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우금은 재빨리 몸을 숙여 그의 시선을 피해 지나갔다.그리고 곧장 추월녀 쪽으로 다가가 대추떡을 내밀었다.“월녀 아씨, 저희 대군 나리의 머리끈이 어찌 아씨 머리에 있는 겁니까?”그 말에 추월녀는 막 들이켠 차를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자운선도 재빠르게 눈치를 챘다.“아, 아씨... 머리 위에 무왕 무자가 있습니다.“입 다물어라!”추월녀는 얼굴이 단숨에 붉게 물들었으나 이를 악물고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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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향 하나가 다 타기도 전에 사냥대 열 팀이 동시에 출발하였다.초반에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움직였으나 맹수 구역에 들어서자 금세 다들 흩어졌다.각 팀끼리 흩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 팀 안에서도 제각기 갈라져 나갔다.“나는 월녀와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세 숙모님께서 한 조로 움직이십시오.”추소하는 말을 마치며 말고삐를 다잡았다.이번 사냥은 단순히 누가 더 많은 짐승을 잡는가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라 배에 표식이 새겨진 검은 곰 한 마리를 찾는 것이 목표였다.허나 그 표식이 무엇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아 이번 임무는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이토록 넓은 사냥터에서 운이 나쁘면 하루 종일 찾아 헤맨다 해도 그 곰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두 팀만으로는 그 곰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영아란이 말을 이끌며 말했다.“내가 혼자 움직일 테니 너희는 둘씩 짝을 지어 곰을 찾도록 해라.”“안 됩니다.”추월녀가 말렸다.“그들이 고른 곰이라면 분명 사납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숙모님을 홀로 보내면 제가 불안합니다.”추월녀는 곁눈질로 추소하를 바라보았다.“오라버니께서 숙모님과 함께 가세요.”“그럼 너는 혼자 남겠다는 것이냐?”추소하의 추월녀를 혼자 보낼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월녀와 함께하겠습니다.”그때 말 한 필이 바람처럼 다가왔고 그 위에는 무왕이 앉아 있었다.“대군 나리...”추소하는 난처한 기색이었으나 구청하는 오히려 반가운 듯 웃으며 말했다.“무왕은 무공이 높으니 월녀 곁에 두면 마음이 놓이겠구나.”“허나...”문채이는 뭔가 말하려다가 결국 말을 삼켰다.유상무는 태연히 말을 이어갔다.“만약 제가 월녀와 함께 그 곰을 발견한다면 함께 힘을 모아 잡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두 가문이 다시 겨루어 기마와 궁술로 승부를 가리고 이긴 쪽이 곰을 차지하면 될 듯합니다. 어찌들 생각하십니까? 숙모님들.”그 마지막 호칭에 추소하는 거의 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추월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유상무를 노려보았다.“대군 나리,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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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대군 나리, 뭘 하려는 겁니까?”추월녀는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면서 몸을 피하려다 막 말에서 내린 터라 옆에 있던 말에 부딪칠 뻔했다.유상무가 재빨리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었다.“움직이지 말거라. 여긴 맹수 구역이라 말이 놀라면 그대로 달아날 수도 있다.”그 말에 추월녀도 정신을 차리고 말의 갈기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밖에서 기다리거라, 알겠느냐?”마치 알아들은 듯 말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유상무의 말도 마찬가지로 그가 시선만 주자 알아서 멀리 달려가 버렸다.“대군 나리. 이제 제게서 조금 떨어져 주시겠습니까?”추월녀가 옆으로 두 발짝 물러서자 유상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젯밤... 혹 상처는 없었느냐?”“무, 무슨 허튼소릴 하십니까!”추월녀는 뺨이 한순간 불처럼 달아오르더니 자기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저릿했다.게다가 유상무의 시선은 어찌 된 일인지 추월녀의 얼굴에서 내려가 가슴 쪽으로 떨어졌다.“대군 나리! 또 그런 무례를 범하신다면 저는 혼자 가겠습니다!”유상무는 눈동자가 흔들리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급히 시선을 거두었다.“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미안하구나. 어젯밤에는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을 뿐이다. 허나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적어도 네가 내 부인이 되기 전까진 손끝 하나 대지 않겠다.”그 말은 진심이었다.추월녀는 유상무 인생의 전부인데 어찌 다치게 할 수 있단 말인가.“다만... 가능하다면 조금만 더 빨리 나와 혼인해 주면 안 되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에도 나를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구나.”추월녀는 유상무를 노려보며 입술을 떨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월녀야.”유상무가 부드럽게 부르자 추월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저는 폐하께 장군의 직을 청할 생각입니다. 장차 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설 텐데 그런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추월녀는 그저 겁을 주려 한 말이었으나 유상무는 오히려 눈을 번쩍였다.“오히려 더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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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나리, 제 생각에는 얼른 그 흑곰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추월녀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이대로 계속 이야기하다가는 자신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대체 어쩌다 혼인 얘기까지 흘러가게 된 것이야!’추월녀가 앞에서, 유상무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이들은 활을 멘 채 이미 맹수가 있는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비록 황실 사냥터라 큰 위험은 없었으나 이곳에는 흑곰이 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유상무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며 물었다.“조금 전에는 제가 가는 길을 탐탁지 않아 하시더니 왜 따라오시는 겁니까?”추월녀는 잠깐 뒤돌아보며 묻더니,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네가 어디로 갈지 모르니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물론 네가 어디를 가든 계속 뒤따르겠지만 말이다.”추월녀가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유상무는 그녀와 3보 떨어져 걷고 있었다.“하면 지금도 그리 생각합니까?”“지금은...”유상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당연히 우리 월녀가 영리하다고 생각하지.”그러자 추월녀는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것이 바로 무왕과 함께하는 장점이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 흑곰에 표식이 찍혔다는 것은 황제 가문의 사람들에게 쫓긴 적이 있다는 것을 뜻해. 그렇다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보다는 겁을 먹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이 사냥터는 익숙하지 않아서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리.”이 사냥터를 추월녀는 처음 왔고, 유상무도 예전에 몇 번 온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이미 5년 전의 일이었다.“너무 겁먹을 것 없다. 비록 흑곰이 사납다고는 하나 무리 지어 다니는 맹수가 아니니 그리 위험하지 않아.”무리 지어 다니는 맹수라는 말에 갑자기 뒤돌아본 추월녀의 시선이 그 순간, 유상무의 시선과 딱 마주쳤다.“계속 앞으로 갈 생각이냐? 한데 왠지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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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전설 속에 바로 스스로 한기를 내뿜는다는 그 궁창이란 말인가?’추월녀가 시험 삼아 궁창을 휘두르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 있던 바위의 한 귀퉁이가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내력을 쓰지 않았는데 떨어져 나가다니! 진짜가 확실해!’“저...”“검을 도로 줄 생각이라면 그럴 필요 없다. 받기 싫으면 버리던가.”추월녀의 생각을 꿰뚫은 듯 유상무는 코웃음을 친 뒤, 그녀를 앞질러 걷기 시작했다.비록 불안한 마음도 있었으나 검을 받은 추월녀는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이 검만 있으면 두려운 것이 없겠는데?’“나리, 앞쪽에서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니 조심하십시오.”뒤에서 걷고 있던 추월녀가 주의를 주자, 유상무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상무’라고 부른다면 내 조심하마.”이에 추월녀는 아무 대거리도 하지 않았다.‘사냥터 안에 도는 썩은 듯한 냄새와 음산한 기운은 대체 무엇인 걸까?’정오가 지나서 사냥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한 시진도 채 남지 않았으나 전날 밤에 바람을 맞아 고뿔이 들었는지 황제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황제의 옆에 있던 안세권이 말을 건넸다.“폐하, 올해의 사냥 시험은 지난해보다 어려워 보이옵니다. 다들 좀 지나야 돌아올 것 같으니, 잠시 들어가 쉬시는 것이 어떨는지요?”전에 있었던 대회에서 이 시간대에 몇몇 사람들이 돌아왔던 터라 황제가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하지만 아직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아서 사냥터는 너무 조용했다.‘안 내관의 말대로 올해의 시험 문제가 확실히 어려운가 보군.’창백한 황제의 얼굴을 보며 황후도 한마디 했다.“폐하, 안 내관의 말대로 잠시 들어가 쉬시옵소서.”이렇게 말한 뒤, 또 서비가 줄곧 사냥터 입구만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더니 황후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서비, 혹 봉진이 다칠까 봐 이리 초조해하는 것이오?”그 말에 눈빛이 어두워진 서비가 대거리했다.“봉진의 무예가 뛰어난데 제가 왜 걱정하겠사옵니까? 그저 누가 가장 먼저 돌아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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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추월녀가 상처를 입은 건 맞으나 가벼운 상처에 불과했다.말 등에서 훌쩍 내린 후에 그녀가 한 손으로 흑곰을 들어 올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내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겉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여인이 이리도 날렵하다니.’“저희 국공부가 폐하께서 지정하신 사냥감을 사냥했사옵니다.”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하는 추월녀에게서는 여인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하나에 장수의 기개가 서려 있는 것을 본 황제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쳤다.안세권도 복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그때, 넋 놓고 있던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참으로 대단하군! 역시 월녀는 명여윤의 여식답게 여장부로다. 국공부에는 약해빠진 여인들이 없다니까.”이를 보던 황제는 잠시 멍해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하면 지정한 그 곰이 맞는지 안 내관이 확인해 보라.”“예, 폐하.”안세권이 흑곰의 근처에 다가갔으나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추소하와 구청하가 곰을 뒤집었다.“맞사옵니다, 폐하. 바로 이 곰이옵니다!”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세권은 큰 소리로 선언했다.“가을 사냥 대회는 국공부의 승리입니다!”국공부의 사람들과 황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박수를 보내지 않아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한참 지나서야 박수 소리가 하나둘 들리기 시작했다.처음 출전한 국공부가 이런 성과를 거둘 줄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이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달가워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폐하, 무왕 대군도 돌아왔사옵니다.”잠시 후, 무왕부의 사람들이 흑곰 몇 마리를 싣고 왔으나 이는 황제가 지정한 곰이 아니었다.무왕부의 사람들은 대부분 무사했으나 무왕의 몸은 피가 묻은 채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상무야, 다친 데는 없느냐?”황후가 서둘러 물었다.유상무는 황제와 황후에게 예를 갖춘 뒤에 입을 열었다.“아바마마, 황후 마마, 그저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그 말에 황후는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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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서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분노를 표했다.“황후 마마! 봉진은 전쟁의 신입니다. 어찌 수년간 나라를 위해 싸워온 충신을 이리 모욕할 수 있사옵니까?”황후가 비록 육궁의 우두머리라고는 하나 아들이 없어서 실질적인 영향력이 서비보다 못하단 것을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바로 이를 증명한 셈이었는데 공식적인 연회를 제외하고 서비가 황후와 동등한 대우를 받은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들 유봉진 때문이었다.그래서 황제도 가끔 황후를 무시한 채 서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고.자식의 덕을 본다는 말이 서비에게 딱 들어맞는 셈이었다.흙투성이가 된 추월녀가 자기 자리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있다가 고개 들어 무왕을 보니 그도 천천히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상처가 깊었으나 무왕은 내색하지 않고 누더기에 묻은 피가 사냥감의 피라고 우긴 탓에 황제와 황후, 그리고 서비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물론 황후와 서비의 다툼에 황제는 머리가 아파 쉬고 싶었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들이 있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어찌 되었든 사냥터는 그래도 맹수 구역이라서 위험하긴 해.’황제가 명을 내렸다.“안 내관, 사람을 보내 무슨 상황인지 살피라.”“예, 폐하.”안세권이 사람을 보내려던 찰나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진왕부의 사람들입니다!”눈이 밝은 안세권이 바로 이를 알아챘다.“폐하, 속히 진왕 대군을 구해주시옵소서!”진왕부의 두 용사가 말에서 내리더니 땅에 엎드리며 울부짖었다.“폐하, 황후 마마, 서비 마마, 사냥터 안에 검은 늑대무리가 있사옵니다!”“뭐라?”그 말에 황제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안세권도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사냥터에 검은 늑대무리라니? 그대들이 잘못 본 것이 아닌가?”“검은 늑대무리가 확실합니다. 소인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요. 진... 진왕 대군께서...”그 용사는 여유롭게 차 마시고 있던 추월녀를 흘끗 쳐다본 후에 말을 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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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유상무가 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서려 하자, 가진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리께서는 다쳤으니 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늑대무리가 만만치가 않아요.”그때, 안세권이 초조한 눈빛으로 추월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월녀 아씨, 검은 늑대무리를 만났다고 했으니 얼마나 위험한지 말씀해 보십시오.”그러자 추월녀는 황제 앞에 다가가 예를 올리며 답했다.“어찌 되었든 늑대무리가 매우 위험한 건 사실입니다, 폐하. 저도 오라버니와 숙모들의 덕분에 가까스로 늑대무리에서 벗어나 이리 돌아오게 되었나이다.”“하면 봉진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 말해보거라!”서비가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하게 물었다.‘봉진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데 이 빌어먹을 년은 왜 이리 태연한 것이야!’“진왕 대군과 마주치지 않아서 어떤 상황인지 저도 모르겠사옵니다, 마마.”“그가 너를 구하기 위해 늑대무리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이리 태연한 척할 것이냐?”서비가 손가락질하며 분노를 표했는데도 추월녀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진왕 대군께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으니 이 일이 저와 관계가 없지요, 마마.”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진왕 대군이 늑대무리에 갇혀 생사가 불투명한데도 월녀 아씨는 왜 초조한 기색이 전혀 없이 이리 차분함을 유지하는 걸까?’‘보름 전에는 사랑하는 진왕 대군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다가 어찌 지금은 이리 무관심해질 수 있지?’그때, 갑자기 막사 쪽에서 한 사람이 달려오며 다급하게 외쳤다.“추월녀! 봉진은 어찌 되었느냐? 혹 네가 그를 늑대무리 속으로 유인한 것이냐?”다소 무례한 말소리가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추월녀는 바로 알아차렸으나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여전히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저와 무왕 대군은 사냥터에서 마주쳤는데...”“월녀가 구해줬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소자는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유상무가 한마디 보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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