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황제와 황후마저 입을 다문 가운데 오직 추월녀의 손끝만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맺혔다.지금 그녀의 마음이 어떠한지 스스로도 헤아릴 수 없었지만 다만 심장이 무언가에 찢기는 듯 아팠다.그때 유상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월녀야, 네가 어릴 적 나와 혼인하겠다고 정말 말했었다. 나는 그 약속을 굳건히 지키며 꼬박 9년을 기다렸거늘. 하지만 나는 봉진이가 너를 속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네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이 구해줬다고 거짓말을 하다니. 내가 북쪽 변방에서 왜적과 싸우는 틈을 타 봉진이가 네 마음을 가로챘구나!”“상무야!”황제는 얼굴을 굳히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형제간에 어찌 이런 말로 화합을 해칠 수 있냐는 뜻이다.그러나 유상무의 말은 이미 모든 이의 귀에 박혔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감히 대놓고 의논하지 못했지만 모두 마음속으로 진왕 대군에게 죄를 씌워버렸다.무왕이 중상을 입었을 때 그의 공을 가로채고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빼앗았다. 그 때문에 무왕은 하마터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잃을 뻔했다.더구나 진왕은 그전에 반역자의 딸을 위해 월녀 아씨를 버리기도 했었다.이렇게 보면 이 일에서 유일하게 나쁜 사람은 단 하나, 바로 진왕 대군이다.가엾은 것은 무왕이요, 이토록 오랫동안 속아온 월녀 아씨 역시 불쌍했다.유상무는 추월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더니 황제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아바마마, 소자는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빌미로 월녀와 억지로 혼인하고 싶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아바마마, 월녀가 제 마음을 받아준 후 다시 혼인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월녀가 정 때문에 상처를 입었는데 소자도 이 마음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소자는 월녀가 마음을 돌이킬 때까지 기다리겠사오니 아바마마께서 부디 소자의 청을 들어주시옵소서.”“흑흑...”드디어 한 처자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무왕의 이 깊은 진심에 감동했다.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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