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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전쟁보다 위험한 사랑: Chapter 251 - Chapter 260

280 Chapters

제251화

“너... 일부러 구하지 않은 것이냐?”추소하는 심장이 여전히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전쟁의 신이라 불리던 진왕이 다리를 다치고 이제 다시는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말인즉 진왕의 명예와 공적은 모두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더구나 진왕은 황자로서 본래 태자 자리에 오를 가장 유력한 후보였건만 이제 다리를 잃은 진왕에게 그 자리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진왕은 이제 완전히 끝장났다.“그날 선우원영이 오라버니를 해치려 했을 때 그 사람은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라버니를 가둬 두었지요. 그래서 선우원영이 손쉽게 칼을 댈 수 있었던 겁니다.”추월녀의 말에 추소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 일이 있은 지 두 달이 넘었건만 매번 떠올릴 때마다 그 절망감은 여전히 뼈에 사무쳤다.추소하의 인생도 그때 이미 끝나버렸다.이제 남은 건 단 하나로, 추월녀와 국공부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추소하 자신은 이미 어찌 되어도 상관없었다.전장에서 죽든 흔적도 없이 사라지든 더는 개의치 않았다.그때 얼음처럼 차가운 손 위로 작은 손이 꼭 포개지더니 추월녀가 추소하의 손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오라버니, 오라버니의 두 원수는 이제 하나는 사람도 귀신도 아닌 꼴이 되었고 또 하나는 평생의 희망을 잃었습니다. 오라버니, 제가 그렇다고 기뻐하진 않겠지만 이건 동생으로서 오라버니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월녀야...”추소하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목소리가 잠겼다.“사실 나는 복수를 생각한 적도 없다. 월녀 네가 평안하면 난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오라버니께서 행복하지 않은데 제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추월녀는 추소하의 손을 꼭 쥐며 웃었다.“예전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오라버니를 지킬 수 있다고. 그건 허투루 한 말이 아닙니다.”“허나 진왕 대군은...”“저는 이제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 저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이제야 추소하는 추월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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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자객…?”추소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추월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예. 그 자객들은 저를 노리고 온 자들이었습니다.”“네가 무슨 원한을 살 일이 있겠느냐? 선우원영 자매 말고는 너에게 원수진 자가 없지 않으냐? 허나 그 자매는 도성 안에서 세력이라곤 없는 사람들이고...”추소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문득 손에 힘을 주었다.“혹시... 서비냐?”“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숨어 있는 다른 세력일 수도 있고요. 허나 만약 정말 서비라면 오히려 그쪽이 더 간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시간을 계산해 보니 자운선도 곧 돌아올 때였다.추월녀는 추소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저는 이제 셋째 숙모님을 모시고 조부님께 가보겠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지금 호륭군의 통령이시니 각 대군 나리들의 안전을 지켜야지 않겠습니까?”“나에게 시키고 싶은 일이라도 있느냐?”“사람을 배치해서 무왕 대군 나리를 지켜주십시오.”추월녀는 그 말을 끝으로 곧장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무슨 이유로 그리 말하는 것이냐?”추소하가 뒤따라오며 물었다.“누가 무왕 대군 나리를 해치려는 것이더냐?”“무왕 대군 나리께서 이번에 돌아왔다는 걸 안 사람들 중엔 분명 나리를 노릴 자들이 많을 겁니다. 게다가...”추월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돌아서서 추소하를 바라봤다.“이번 사냥터의 검은 늑대무리는 무왕 대군 나리를 겨냥한 덫이었습니다.”......무왕부는 원래부터 경비가 삼엄했다.무왕이 저택 안에 있는 한 호륭군이 나설 일은 없었다.허나 추소하가 통령의 자리에 있는 이상 아무 조치도 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나 다름없었다.추소하가 떠난 뒤 추월녀는 곧장 후원으로 향했다.역시나 자운선과 구청하가 함께 있었으며 구청하는 추월녀를 보자마자 어딘가 쑥스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추월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구청하의 부끄러움은 낯섦 때문이 아니라 잠시 후 해야 할 일 때문이었다.“월녀야, 좀... 걱정되는구나.”휘연각 앞에 이르자 구청하는 걸음을 멈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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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추씨 집안의 세 형제가 함께 전장에 나가 전사했을 때 추씨 가문은 전례 없는 절망에 빠졌다.큰부인 명여윤은 전사하였고 둘째 부인인 문채이는 이미 추씨 가문에 시집왔으니 되돌아갈 길이 없었다.히지만 구청하는 달랐다.추삼근과 정식으로 예를 올리지는 않았으니 세상 사람의 눈에는 여전히 시집가지 않은 규수였다.“우리 삼근의 성품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아이가 내 허락 없이 여인을 욕보일 리는 없다.”선대 국공은 심청하를 바라보며 마른 얼굴에 억누른 듯한 온정을 띠었다.“너와 삼근이 비록 마음을 약조했을지언정 삼근의 인품으로 보아 결코 혼인 전에 너에게 손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몸도 마음도 깨끗한 몸인 것이지?”심청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으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선대 국공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렇다면 네가 삼근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가끔 떠올려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삼근은 하늘에서 기뻐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차가운 과거에 자신을 묶어두지 말고 새로운 삶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구청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울먹였다.“삼근 공자는 저에게 평생의 은인이자 마음의 주인입니다. 이번 생에 인연이 닿지 못했다면 다음 생엔 꼭 다시 만나겠습니다. 어르신, 저는 다른 사내에게 마음을 줄 수 없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한은 삼근 공자의 사람이고 죽어서도 삼근 공자의 귀신이 되겠습니다!”구청하는 머리를 조아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아니, 일어날 마음조차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어르신, 제발 저를 허락해 주십시오. 삼근 공자가 머물던 뜰에 살면서 공자의 숨결이 남은 곳에서 하루하루를 함께하게 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추월녀가 곁에 다가와 구청하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셋째 숙모님, 조부님의 뜻을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육 년 전, 셋째 숙모님은 고작 열 여섯이셨고 인생은 아직 한참 남아 있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허나 국공부에 발을 들이는 순간 세상은 셋째 숙모님을 유부녀로 보게 됩니다. 그럼 그 뒤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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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더는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안 구청하에게 잠시 뜰에서 기다려 달라고 당부한 뒤 서둘러 선대 국공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자기 잘못을 아는 모양이구나.”선대 국공은 낮게 콧소리를 내며 조금 전보다 정신이 또렷해진 눈빛으로 추월녀를 바라보았다.“조부님을 실망시켜 드린 건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추월녀는 고개를 들어 단단한 눈빛으로 마주했다.“조부님, 그날 제가 조부님께 사람들 앞에서 무공을 보이지 않겠다고 약속드린 것은 조부님께서 너무 큰 상처를 받으셨고 또 혹여 제가 부모님처럼 될까 두려우셨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제 저는 다 컸습니다. 이젠 오라버니와 조부님만이 아니라 국공부와 바깥의 십만 추씨 가병까지 지켜야 합니다.”추월녀는 두 걸음 앞으로 다가가 국공의 차가운 손을 꼭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조부님,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선대 국공은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묻고 싶은 것도 많았으나 결국 그저 깊은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진왕 대군 나리와는 잘되지 못한 것이냐?”낮고 묻는 소리에 추월녀 곁눈질로 진 집사를 바라보자 진 집사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씨, 저는 입을 뻥끗한 적도 없습니다.”선대 국공은 무력하게 웃으며 말했다.“만일 진왕 대군과의 사이가 여전했다면 그가 우리 국공부를 지켜주었을 터. 허나 네가 직접 나서서 집안을 지키겠다고 나선 걸 보면... 조부가 늙긴 늙었어도 멍청하지는 않다.”“그럼, 화가 나신 겁니까? 저와 진왕 대군 나리는 이번 생에서 더는 인연이 없습니다.”추월녀와 담담한 얼굴과 맑고 투명한 눈빛을 한참 바라보던 선대 국공은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건 그 망할 놈의 복이 짧은 탓이지. 우리 월녀의 탓은 아니지. 우리 집 손녀의 귀함을 몰랐으니 복을 스스로 걷어찬 셈이 아니겠느냐? 됐다, 됐어. 조부는 이제 늙었으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네 어미보다 더 현명하고 침착한 듯하니 네가 내리는 결정이라면 모두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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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오라버니께서는 줄곧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본인도 다소 몸을 피한 터라 상처가 깊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사내 몸이라 제가 직접 살피기에는 제약이 많았습니다.”추월녀는 구청하의 짐을 정리해 단출히 꾸렸으며 구청하의 짐은 그녀 자신처럼 담백하고 단정했다.작은 집을 나와 마차에 오르자 추월녀는 그제야 말을 이었다.“허나 그런 상처는 본디 치료가 어렵습니다. 지금 제가 쓰는 약으로는 그저 정신과 원기를 조금 붙들어 두는 것뿐입니다.”“정말... 방법이 없겠느냐?”구청하의 목소리에는 무거운 근심이 배어 있었다.“지금으로선 없습니다만 제 석 사부님은 천하의 명의십니다. 도성의 혼란이 모두 가라앉으면 오라버니를 모시고 남강으로 내려가 사부님께 진찰을 부탁드릴 생각입니다.”“석 사부님이라니?”“전설 속에 사는 여인이십니다.”추월녀는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허나 그 말만으로도 구청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희망의 끈이 다시 손끝에 닿는 듯했다.국공부로 돌아온 추월녀는 곧장 추삼근이 생전에 머물던 낭월각으로 향했다.여섯 해가 지났다.그 오랜 세월 동안 구청하는 단 한 번도 그곳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오늘 다시 낭월각에 들어서자 구청하는 눈가가 금세 젖어 들었다.“셋째 숙모님, 이제 여기가 숙모님의 집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시녀들에게 말씀하십시오. 그 아이들이 진 집사에게 전하면 집사님께서 모두 챙기실 겁니다.”추월녀는 구청하를 위해 시녀 두 명과 요리사 한 명을 따로 남겨 주었다. 그리고 또 원래부터 낭월각에 있던 화공과 청소 하인도 남겨 두었다.“이 길을 따라가면 얼마 안 가 둘째 숙모님의 적성각이 있습니다. 둘째 숙모님께서도 그곳에서 홀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지내십니다. 제가 늘 곁을 지키지 못했는데 셋째 숙모님께서 오신 김에 종종 찾아뵙고 함께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둘째 숙모님께서는 무공에 능하고 성격이 호탕하신 분이니 분명 잘 맞으실 겁니다.”“그래, 종종 찾아뵙도록 하마.”추월녀가 말을 마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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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추월녀는 깜짝 놀랐다.무왕이 사냥터에서 부상을 입었고 상처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설마 중간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일까?추월녀는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약상자를 들고 추소하와 함께 밖으로 나서며 급히 물었다.“어째서 상태가 좋지 않은 겁니까? 상처를 제대로 소독하지 못해 열이 난 것입니까? 지금은 어떻습니까? 의식은 또렷합니까?”걸음을 옮기면서도 추월녀의 눈빛에는 의문이 스쳤다.무왕은 대마왕이라 불릴 정도의 사내고 북강의 왕이자 전쟁의 신이라 몸 또한 쇠처럼 단단해야 할 터였다.그런데 어찌하여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토록 허약해진단 말인가?추소하는 미묘한 표정으로 추월녀와 함께 마차에 올라탄 뒤에야 입을 열었다.“무왕 대군 나리의 상처는 악화되지 않았다. 정신도 멀쩡하다만... 마음이 좋지 않다는구나.”“마음이 좋지 않다니요?”추월녀는 잠시 멈칫하며 대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았다.오라버니가 말을 돌려 하고 있으니 추월녀는 괜히 덩달아 긴장해졌다.추소하는 추월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월녀야, 혹시 무왕 대군 나리가 아주 신경 쓰이는 것이냐?”“그분은 저를 구하려다 다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걱정하는 게 그리 이상한 겁니까?”추월녀의 대답은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했다.“그게 전부이냐? 다른 감정은 없느냐?”추소하의 눈빛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반짝였다.“오라버니, 언제부터 그렇게 수다스러워지셨습니까?”추월녀는 추소하의 생각을 읽고는 그냥 피식 웃을 뿐 화를 내지는 않았다.“저는 이번 생에는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오라버니, 괜한 상상은 거두십시오. 그날 저는 무왕 대군 나리와 함께 검은 늑대에게 포위당했습니다. 무왕 대군 나리께서는 제 무공을 몰라서 끝까지 저를 지키려다 상처를 입은 겁니다.”“월녀야, 그래도 그분의 뜻은 고마우니 너무 무심하게 넘기지 말거라.”그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추월녀가 워낙 차분하고 능숙하다 보니 누구든 그녀를 여린 여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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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추월녀는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가 손으로 눌렀다.도대체 뭐가 짠하다는 건지.대마왕이란 자는 겉으로만 약한 척할 뿐 속으로는 사람을 잡아먹고 뼈마저 남기지 않는 늑대였다.추소하가 괜히 마음이 여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뿐이다.무왕이 짠하다는 말은 세상 어디에 내놔도 믿을 자가 없었다.마차가 무왕부의 뒷문 앞에 멈추자 추월녀는 갑자기 말했다.“정문으로 가겠습니다.”“정문?”추소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한밤중에 남의 저택 정문으로 들어가 무왕을 만나겠다는 것인가?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인가?“지금 저는 호륭군의 부통령입니다. 무왕 대군 나리의 안위가 걸린 문제로 의논하러 가는 길이니 떳떳이 정문으로 드나드는 게 뭐가 문제가 된단 말입니까?”단호한 추월녀의 주장에 결국 마차는 곧장 무왕부의 정문에 멈춰 섰다.추월녀는 고개를 곧추세우고 당당히 걸음을 내디뎠다.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에는 단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으며 모든 것이 당당하게 떳떳했다.적어도 유상무가 입을 열기 전까진 그랬다.“너 혹시 외간 남자를 만나러 간 것이냐? 그래서 날 보러 올 시간도 없었던 거냐? 월녀야, 참 너무 불공평하구나. 내가 국공 어른께 고할 것이다!”우금은 그 말을 듣고 거의 무릎을 꿇을 뻔하여 놀라서 손까지 부들부들 떨렸다.그 순간 가진명이 번개처럼 옷깃을 잡아 우금을 문밖으로 던져 버렸다.“나가 있으십시오.”문이 쾅 닫히며 가진명 자신도 함께 밖에 남겨졌으며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추월녀는 무표정하게 유상무를 보면서 그 눈빛엔 피곤함과 체념이 반반이었다.추월녀는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제게 진맥을 부탁하려고 부르신 겁니까?”“네가 의술도 아느냐?”유상무의 눈빛에는 묘한 흥미가 떠올랐다.“제 과거를 이미 조사하셨지 않습니까?”추월녀가 살짝 짜증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자 유상무는 헛기침을 했다.“나는 네가 절정의 고수인 줄도 몰랐고 의술까지 익힌 줄은 더 몰랐다. 다 남강에서 배운 것이냐?”추월녀는 어릴 적부터 해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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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추월녀는 잠시 넋을 잃고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천천히 시선을 거두며 호흡을 고르게 다잡았다.“마음이 어지러워 보이는데 어찌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냐?”유상무가 불현듯 몸을 숙이며 바로 눈앞에서 추월녀의 얼굴을 꿰뚫듯 마주했다.“월녀야, 너도 분명 나에게 마음이 있을 것이다.”“없습니다!”추월녀가 깜짝 놀라며 손을 홱 놓았다.고개를 들자 유상무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이마 언저리가 그의 입술에 스쳤다.부드럽고 따뜻하고 향기가 났다.심장이 북을 치듯 요란히 뛰어 추월녀는 숨을 들이마시며 뒷걸음질 쳤다.“무왕 대군 나리...”“너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리 나를 또박또박 부르더구나.”유상무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내 얼굴을 보고 매료된 것이냐?”“너무 자만하십니다.”추월녀는 얼굴을 굳히며 단호히 말했다.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 걸까?유상무는 태연히 어깨를 젖히며 대답했다.“너무 많은 여인들이 내 얼굴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너만 특별한 것도 아니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솔직히 인정해도 내가 웃지 않겠다.”유상무는 침상에 기대앉아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띠었으며 그 눈빛은 놀랍도록 여유로웠다.추월녀는 짧게 숨을 내쉬며 유상무를 노려보았다.“그럼 정말 많은 여인들이 대군 나리께 마음을 고백했단 말입니까?”“그렇하다.”유상무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추월녀는 말을 잃었다.이젠 진심인지 장난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았다.그러던 중 문득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대군 나리께서는 얼굴이 멀쩡하신데 어찌하여 늘 가면을 쓰십니까? 모두가 북강 전투에서 상처를 입어 얼굴이 망가졌다고 소문을 퍼뜨리지 않습니까? 저도 그 일로 오래 죄책감을 느껴 왔습니다.”유상무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그렇다면 그 죄책감으로 몸소 나를 위로해 줄 생각은 없느냐?”“이렇게 얼굴이 멀쩡하지 않습니까! 결국 세상을 속이신 겁니까?”추월녀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오히려 놀라워 물었다.“대체 왜 그런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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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사실 이건 나쁜 일도 아니었다. 사내가 사내답게 살면 되는 것이지 얼굴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못생겼으면 못생긴 대로 살면 되었기에 유상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만약 언젠가 얼굴과 손가락 하나를 맞바꿔야 한다면 그는 주저 없이 얼굴을 버리고 손가락을 택할 사람이었다.유상무에게 이 얼굴은 그저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추월녀는 한참이나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리듯 침상 곁으로 걸어갔다.그러고는 무심코 유상무의 얼굴에 씌워진 가면을 벗겼다.오랜 세월 가면을 쓰고 살아서인지 유상무의 피부는 다른 사내들보다 한결 희고 매끄러웠다.전장을 누비던 장수의 얼굴이라기보다는 바람과 햇빛 한 줌 닿지 않은 도화처럼 고요했다.‘가면을 쓰는 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네. 바람도, 햇빛도 막아주니까 얼굴이 상하지 않으니.’생각이 이상하게 멀리까지 흘렀고 정신을 차렸을 때 추월녀는 이미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리고 무심결에 유상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이제 믿겠느냐?”유상무가 조용히 웃으며 묻자 추월녀의 얼굴이 확 달아올라 급히 시선을 돌렸다.남색은 화를 부른다.추월녀는 유상무가 설마 이토록 잘생길 줄은 몰랐다.한눈 보았지만 마치 평생 잊지 못할 꿈을 본 듯했으며 찰나였지만 마치 천년이 지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그제야 추월녀는 유상무가 했던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식색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추월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자리를 옮겨 앉았다.“이리 멀리 오게 하셨는데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리고 대군 나리의 몸은 이제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 괜히 아픈 척은 그만하시고 조용히 요양하시면 됩니다.”“나는 중상을 입었다.”유상무가 낮게 말했다.그날 추월녀를 구하려다 검은 늑대의 발톱이 가슴을 스쳤는데 그 흉터가 아직 남아 있었다.물론 그보다 더 깊은 상처는 추월녀가 오지 않은 열흘의 시간이었다.“그때는 분명 위험했지만 심맥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진짜로 상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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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추월녀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이런 말이 대마왕의 입에서 나오는 날도 다 있구나 싶었다.“남녀유별이라는 말을 모르십니까?”“그렇다면 내가 너를 여자로 여기지 않으면 되는 것이냐?”유상무가 태연하게 받아치자 추월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유상무는 그제야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너도 나를 사내로 여기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방 안에서는 피식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문밖에서 몰래 엿듣던 우금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팔꿈치로 옆의 가진명을 슬쩍 찔렀다.“들었느냐? 우리 왕부에도 드디어 봄이 오는 게 아닐지 싶구나.”“주인의 일에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십시오.”가진명은 여전히 냉정했으나 우금은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흥, 모른 척하긴. 너도 기대되지 않느냐?”“뭘 말입니까?”“왕부가 다시 활기차지는 거 말이다! 생각해 보아라, 저 안에서 저 두 분 사이가 잘돼서 얼마 안 있어 왕부에 조그만 애들이 깡충깡충 뛰어다닌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다. 그럼 너도 웃음 참지 못할 것이다.”가진명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냉정한 무왕이 아이들 사이에서 지금의 추월녀에게 하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스쳐 갔다.그 상상이 묘하게 따뜻해서 가진명의 입가에도 알게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흠... 꼬마들이 뛰노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추월녀와 추소하는 정말로 무왕부에 이틀 동안 머물렀다.셋째 날 안세권이 찾아왔다.“월녀 아씨, 폐하께서 선우원영의 처분을 아씨께서 결정하시랍니다.”“제가 결정하라니요?”추월녀는 방금 후원을 둘러보고 돌아오다가 대청 앞에 선 안세권과 호위무사들과 마주쳤다.‘선우원영은 이미 진왕부로 넘겨지지 않았나?’사실 유봉진이 사냥터에서 실려 간 뒤로 추월녀는 그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으며 선우원영의 일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추월녀의 머릿속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며칠 전 만영호가 보고한 검은 늑대 사건이었다.그날 이후 황실 군대는 사냥터를 샅샅이 수색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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