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위험한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261 - 챕터 270

280 챕터

제261화

“궁형이 가해졌으니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상태일 겁니다. 천옥에 가두는 것도 더는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옷 보관소로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추월녀의 말에 안세권은 미소를 띠었다.“아씨께선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어찌하여 폐하께서 이토록 아씨와 추 장군님을 총애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 폐하께서 또 한마디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말씀하십시오.”추월녀가 급히 응답하자 안세권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갔다.“폐하께서는 월녀 아씨께서 지모와 용맹을 겸비하신 데다가 십팔반무예에도 능하다고 하시며 매우 흡족해하셨습니다. 앞으로 아씨와 추 장군님께서 충심으로 나라를 수호하신다면 폐하께서 반드시 국공부를 융성하게 하여 길이 번성케 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추월녀는 몸을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성은이 망극합니다.”잠시 후 추월녀는 몸을 일으키며 안세권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안 내관께서도 수고 많으셨습니다.”“천만의 말씀입니다. 모두 아씨와 추 장군님의 공이 크므로 국공부를 다시 번성하게 한 것입니다. 곧 봉작을 받을 날이 오면 반드시 조정에 충성하시어 보답하십시오.”“그것은 물론입니다.”안세권을 배웅한 뒤 자운선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씨, 안 내관의 말이 무슨 뜻입니까? 폐하께서 아씨를 무엇으로 봉하려 하신다는 것입니까?”안세권의 암시는 자운선도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구체적 단서는 전혀 없어서 자운선은 어쩔 줄 몰라 했다.“봉작은 분명 있을 테지만 그 명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성과에 따라 상이 내려지는 것인 이상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황제는 국공부에 은혜를 베풀려는 뜻을 비친 것이기에 추씨 가병의 위기는 당장은 해결되었다.자운선은 분개하여 물었다.“아씨, 어쩌자고 선우원영을 천옥에서 내보내셨습니까? 어찌하여 그 여인에게 그렇게 잘해 주셨냐 말입니다!”자운선의 마음속엔 여전히 원한이 가득했다. 선우원영이 추소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심정이었다.추월녀는 자운선의 말에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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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진무는 뒷문에서 오래 기다렸다.전에 무왕이 사냥터에서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은 제법 알려져 있었다.이제 추소하와 추월녀가 호륭군을 이끌고 직접 무왕을 호위하고 있으니 무왕부의 경비는 삼엄하여 신분 없는 자는 함부로 들여보내지 않았다.추월녀는 또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한참 있다가야 느긋하게 뒷문으로 나섰다.“월녀 아씨!”거의 한 시진이나 기다린 진무는 급히 다가와 말했다.“월녀 아씨, 저희 나리께서 아씨를 뵙고 싶어 하십니다. 진왕부로 함께 가실 수 있겠습니까?”“내가 지금은 볼일이 있어 무왕부에 머물면서 무왕 대군 나리를 지켜야 해서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구나.”추월녀는 진무에게 냉담하지는 않았으나 특별한 정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진왕 대군 나리께 예를 갖추지 않는 것이 아니다만 정말로 도저히 자리를 비우기 어렵구나. 만약 진왕 대군 나리께서 꼭 나를 만나고자 하신다면 무왕부로 직접 와주셔야 할 것 같구나.”“허나... 나리께서는...”진무는 난처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겨우 말했다.“저희 나리께서는 다리를 다치셔서 거동이 불편하십니다. 하여 밖으로 나오시기를 꺼리십니다.”“다친 건 언젠가 회복될 것이고 평생 망가질 일은 아니지 않으냐? 진왕 대군 나리께서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시는 것이냐?”추월녀는 웃으며 말했다.진무의 가슴은 답답했지만 추월녀가 추소하의 사건 때문에 여전히 화가 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허나 진무는 이번에는 진왕이 입은 상처가 심각하여 평생의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몰라 괴로웠다.추월녀는 진무의 난처함을 헤아리지 못한 듯 곧 제안했다.“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느냐? 만약 진왕 대군 나리께서 정말로 나를 만나고자 하신다면 호륭군의 이엽 시랑을 찾아 그분을 통해 나한테 통지하도록 하여라. 그러면 나도 정당한 명분으로 진왕부에 갈 수 있지 않으냐?”“아씨...”진무는 애달픈 심정으로 한숨을 쉴 뿐이었다. 왜 이젠 진왕이 추월녀를 한 번 만나는 것도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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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진무는 호륭군의 사랑 이엽을 찾아갔다.이엽은 호륭군의 문서를 담당하는 자로 신중하고 말이 적은 인물이었다.추월녀가 여러 업무를 정리한 뒤 진왕의 뜻을 받아 공무의 명목으로 진왕부에 도착한 건 이틀 뒤의 일이었다.유봉진은 상처가 조금 나았으나 얼굴빛은 여전히 창백했고 사람 자체가 시든 풀잎처럼 생기를 잃은 모습이었다.“저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호륭군은 황족의 안위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혹시 대군 나리께서 요즘 불미스러운 일을 겪으신 겁니까? 자객이라도 들이닥쳤습니까?”추월녀는 침상에서 마주한 유봉진과 열 걸음 남짓한 거리를 두고 서 있었으며 표정에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추계 사냥대회 이후 고작 일주일 남짓이 지났을 뿐인데 유봉진의 기운은 전과 전혀 달랐다.예전의 기개와 자존은 사라지고 지금은 허약한 환자만이 눈앞에 있었다.“월녀야...”“제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않으셨습니다.”추월녀의 눈빛은 차가웠다.“진왕부에 침입한 자가 있습니까?”“월녀야, 이제 나를 만나려면 그렇게 형식적인 말만 할 생각이냐?”추월녀의 냉정한 말투와 태도는 유봉진의 가슴을 후벼 팠다.그들은 한때 마음으로나마 서로 의지하던 사이였다.비록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켰지만 유봉진의 기억 속 추월녀는 언제나 따뜻했고 늘 곁에 함께했던 존재였다.허나 지금의 추월녀는 완전히 남이었다.“그땐 내가 잘못했다. 월녀야,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없겠느냐?”“나리께서는 선우원영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유봉진은 눈빛이 흔들리더니 잠깐의 침묵 후 낮게 대답했다.“알고 있다. 옷 보관소에 있더구나. 월녀야, 그 여인은 결국 내가 데려온 사람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나는 그저 원영이 고통받는 걸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월녀야, 원영을 옷 보관소에서 나오게 해 줄 수 있겠느냐?”“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추월녀는 탁자에 몸을 기댄 채 눈빛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분노하지도, 비웃지도 않았다.그저 차분히 완전히 감정이 닳아버린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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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그날 추월녀는 그 말들을 남기고 떠났다.어차피 유봉진에게 정말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추월녀가 호륭군의 부통령으로 남아 있을 이유도 없었다.그로부터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유봉진은 기력이 겨우 조금 회복되었고 상처도 대체로 아문 편이어서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허나 유봉진은 망가진 다리를 보며 끝내 집 밖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서비가 궁으로 불러 함께 할 것을 권유해도 유봉진이 응하지 않았기에 결국 서비가 직접 찾아왔다.“어마마마께서 사람을 보내 월녀를 암살하려 한 겁니까?”유봉진은 아무 감정이 섞이지 않은 눈으로 무심하게 서비를 바라보았다.서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눈을 크게 뜨고 불쾌하게 소리쳤다.“이게 네가 어미를 대하는 태도이냐?”유봉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으며 옆에는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다친 다리는 비록 완전히 걷지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처럼 씩씩하게 걸을 수는 없었다.유봉진은 한때 동릉 전쟁의 신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사람도 귀신도 아닌 처지가 되었다.유봉진이 잃은 것은 단지 다리뿐만이 아니라 명예와 영예, 그리고 자존심까지 상처 입었다.이제 추월녀마저 유봉진을 원치 않는다면 절뚝이는 몸으로는 태자 자리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유봉진 자신은 이미 이생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어마마마께서 월녀를 해치려고 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봉진아...”서비가 다급히 불렀다.“제 질문에 답하십시오!”유봉진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그건 다 추월녀가 자초한 것이다! 추월녀는 너를 배신하고 무왕과 결탁하여 너의 기회를 여러 번 빼앗았다! 심지어 석산 전투마저 너를 망치고자 일부러 꾸민 것이다!”아들이 이 지경이 된 것을 서비는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군주는 죽을 수도, 다칠 수도 있지만 불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서비는 믿었다.불구가 된 자가 어떻게 한 나라의 군주가 될 수 있겠는가?아들의 앞날이 이미 캄캄해졌기에 서비도 이젠 자기 앞길을 볼 수 없었다.“월녀는 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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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월녀가 아닙니다. 월녀는 단 한 번도 저를 해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유봉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추월녀는 천 리 길을 달려 유봉진을 구하러 왔다.추월녀는 스스로 부정했지만 그날 그녀가 죽음을 무릅쓰고 유봉진을 찾아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그날 유봉진은 이미 삶을 포기하고 있다가 그 혼란 속에서 추월녀를 본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추월녀는 유봉진에게 있어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 같았다.유봉진은 지금도 그때 느꼈던 감격과 구원받았다는 기쁨을 기억한다.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얼마나 그 소중함을 몰랐는지 절실히 깨달았다.추월녀를 잃고 나서야 유봉진은 비로소 미친 듯이 후회했다.“월녀와 추 장군은 언제나 저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해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마마마, 월녀와 저 사이의 불미스러운 소문도 어마마마께서 퍼뜨리게 한 게 아닙니까? 저는 멍청하지도 않고, 세상일을 다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유봉진은 한때 분노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자 모든 것이 너무나 잘 보였다.이제 유봉진은 절망 속에서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월녀는 언제나 올곧은 사람이었습니다. 잘못은 제게 있고 월녀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저입니다. 어마마마 또한 월녀를 구박하면서 늘 몰아세우셨지요.”서비는 여전히 한가득 억울함을 품고 있었지만 아들의 절뚝인 다리를 보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바람이 서늘하게 스쳐 서비는 고개를 들어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하늘은 청명했지만 서비의 가슴속은 잿빛 구름으로 가득했다.그때 유봉진이 문득 몸을 돌려 서비의 손을 잡았다.“어마마마, 앞으로는 제발 월녀에게 손대지 마십시오. 모든 잘못은 제게 있고 월녀는 단 한 번도 저를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이제 와서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았기에 서비는 아무 답도 없었다.서비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뿐이었다.“봉진아, 너는 포기하면 안 된다. 결코 이대로 무너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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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선우원영에 대해 진무는 약간 혐오감을 느꼈다.‘만약 이 여인이 아니었다면 진왕 대군도 월녀와 헤어지는 일이 없었을 터인데. 어찌 보면 하늘이 정한 운명인 것일 수도. 원영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진왕 대군은 월녀와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몰라.’“앞으로 여기서 몸조리하며 지내라고 나리께서 말씀하셨습니다.”“몸조리해도 아무 소용이 없단 말이다.”몸이 온전치 않은 선우원영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난 단지 그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을 뿐이야. 내게 아직도 조금의 감정이라도 남아있다면...”“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아씨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는 겁니까?”‘이 여인은 대체 무엇을 바라기에 이러고 있는 것이야?’“봉진이 내게 말했단 말이다. 이번 생은 오직 나만 사랑하겠다고!”선우원영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그가 나를 사랑했다면 내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나를 버리지 말아야지. 진무야, 부탁이니 제발 나리를 뵙게 해주라.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런다.”진무는 이를 거절하려 했으나 선우원영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랐다.그리고 유봉진이 여전히 선우원영에게 감정이 남아 있는지도 몰랐고.‘만에 하나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면 이 여인을 왕부로 불러들일 필요가 없잖아.’“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다시 나리께 여쭤보지요. 하나 그래도 아씨를 만나기를 거부한다면 미련을 버리십시오.”진무가 떠난 후, 선우원영은 방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으나 그가 아닌 의원이 왔다.의원을 보자마자 선우원영은 즉시 침대로 다가가 몸을 움츠리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의원을 쏘아보았다.“가까이 오지 마라!”“아씨, 저는 그냥 진맥하러 왔을 뿐입니다.”의원이 말에도 선우원영은 여전히 공포에 질린 얼굴로 외쳤다.“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다!”그러자 의원과 함께 온 어멈이 선우원영의 그런 태도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아씨, 좋게 말할 때 협조 좀 하십시오. 그래야 의원이 아씨의 상태를 보고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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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그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화가 치밀어오른 선우원영은 눈물을 쏟아내며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그 어멈을 향해 달려들었다.이에 어멈이 다리를 들어 그녀의 배를 걷어차자, 선우원영은 복부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바로 바닥에서 뒹굴더니 일어설 힘조차 없어서 간신히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이미 궁형을 당했던지라 포궁이 망가져서 겨우 목숨을 건졌던 그녀였다.무엇보다도 가장 끔찍했던 것은 상궁들이 그녀의 아랫도리마저 꿰맨 것이었다.이는 궁형 중에서 가장 잔혹했으니.사실 자신이 괴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선우원영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몸이 허약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으나 이리 버티고 있는 이유는 단지 유봉진을 한 번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집착 때문이었다.“엉... 엉엉...”어멈의 상대가 되지 않자, 선우원영은 바닥에 엎드린 채 울기 시작했다.“참으로 재수 없네!”어멈은 그녀에게 침을 뱉은 후, 의원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선생님, 그냥 맥만 한번 짚어보시지요. 생명에 문제만 없다면 보고하기가 훨씬 수월해지지 않겠습니까.”의원 역시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선우원영을 쏘아보았다.비록 그녀에게 아무 원한이나 동정심이 없었으나 그저 궁형을 당한 여인을 만지는 것이 더럽고 불길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진무가 오라 하지 않았다면 이 뜰로 한 발짝도 들어오지 않았을 터인데.’선우원영이 여전히 거부하려는 것을 보고 의원이 냉정하게 말했다.“저는 단지 아씨께서 살 수 있는지 없는지만 보려는 것뿐입니다. 저를 포함한 세상천지의 모든 사내가 괴물이 된 아씨를 꺼린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죠?”의원의 말이 비수가 되어 선우원영의 가슴을 찌르자, 선우원영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저 의원이 맥을 짚게 내버려두었다.맥을 짚고 나서 그녀가 죽지 않을 거라는 말을 남긴 뒤에 의원과 어멈은 자리를 떴다.그들이 떠난 후, 그녀는 오랫동안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갑자기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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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제 몸은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단 말입니다.”선우명월은 한 걸음 다가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선우원영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그 순간, 선우명월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갑고 어두워졌다.“역시 궁형은 잔혹하구나. 넌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어.”자리에서 일어난 선우명월이 핏기 하나 없는 선우원영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그 얼굴은 어둡고 초라하기 그지없었다.“언니…”선우원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언니라고 부르지 마. 몸이 더럽혀져서 너는 이제 더 이상 선우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할 자격이 없다.”궁형이란 여인의 포궁을 망가뜨려 다시는 회임하지 못하게 만들고 또 하체까지 꿰매서 사내와 정을 통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죽음보다 더 잔인한 형벌을 뜻했다.“이 지경이 되고도 네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구나. 오만이 하늘을 찌르던 기세는 다 어디 간 것이야?”이 말을 들은 선우원영은 눈을 크게 뜨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선우명월을 바라보았다.“저는 언니의 동생인데... 정말로 제가 죽기를 바라는 겁니까?”“예전에 대진에서 지냈을 때, 단 하루라도 나를 언니로 인정하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얼어 죽을.”“언니, 제가 알아봤는데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찾아 꿰맨 아랫도리를 풀면 몸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아이는 낳지 못하겠지만.”선우원영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봉진은 나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니까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만나야 해. 내 상태가 좋아진다면 예전처럼 나를 사랑해 줄 거야.’“뛰어난 의원을 찾아 아랫도리를 풀어준다고?”선우명월은 조롱이 담긴 눈빛으로 선우원영을 쳐다보며 말했다.“정녕 부끄럽지도 않단 말이냐? 아랫도리를 풀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내들이 네 아랫도리를 만지고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런 너를 진왕 대군이 받아줄 것 같으냐?”꿰맨 아랫도리를 다시 푸는 것은 극도로 세밀한 수술이라 많은 사람이 보고 만지면서 관찰할 수밖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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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추월녀가 사흘째 무왕부에 오지 않아서 유상무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월녀가 진왕부에 갔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그렇다면 마음속에 여전히 유봉진이 남아 있는 것인가? 설마... 이제 내가 싫어진 것은 아니겠지?’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는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껴졌다.“나리, 밖에 한 낭자가 뵙기를 청합니다.”“어서 들라 하라!”유상무는 재빨리 흰옷으로 갈아입었다.하루 종일 어두운 옷만 입고 있으면 무섭게 보인다고 며칠 전에 추월녀가 말한 적이 있어서.흰옷을 입고 보니 제법 근사해 보였다.하지만 막상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유상무는 눈살을 찌푸렸다.‘한 낭자가 찾아왔다고? 만약 월녀가 찾아왔다면 호위무사가 ‘월녀 아씨’라고 불렀을 터인데. 그렇다면 월녀가 아닌 걸까?’유상무는 괜히 답답해져서 서책이나 보려고 서재에 가려는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정말로 월녀가 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걸음을 옮겨 대청으로 향하자, 대청 안에는 확실히 한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유상무가 들어오는 순간, 불어온 한 줄기의 바람이 하얀 옷을 입은 그의 옷자락을 스쳤다.여인이 유상무를 보자마자 강렬하고 차가운 기풍이 느껴졌으나 다시 보니 제법 품격 있고 우아해 보였다.‘어찌 한 사람의 기운이 이토록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단 말인가?’가면으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어서 오래전부터 유상무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선우명월에게 또 한 번 신비로움을 가져다주었다.유상무의 이 모습이 눈에 각인되어 그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나리...”하지만 선우명월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상무는 고개를 돌려 그냥 가려고 했다.“나리! 저는 진왕부와 함께 추계 사냥대회에 참가한 선우명월이라 합니다!”선우명월은 재빨리 다가가 유상무의 앞을 막아 나섰다.“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이리 나리를 찾아왔습니다.”‘선우명월’이라는 이름이 유상무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으나 진왕부의 언급에 귀가 솔깃해졌다.“봉진은 요즘 어찌 지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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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다른 사람이었다면 권세도 힘도 없는 여인의 말을 듣고 아마 비웃기 바빴을 터.하지만 유상무는 그러지 않았다.북강에 있을 때, 그의 부하 중에도 여러 여장군이 있었는데 그중 무예가 뛰어난 몇몇은 공까지 세워 대장군까지 되었던지라.그는 선우명월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네게 일각의 시간을 주겠으니 말해보거라.”이에 눈을 번쩍 뜬 선우명월이 서둘러 말했다.“나리께서 아실지 모르겠으나 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대진을 통일하셨습니다. 우하다 초원에서 우하주 사막에 이르기까지 모두 아버지의 세력들이었지요.”하지만 유상무가 차 마시는 데 집중한 듯 말하지도,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자, 그가 이미 모든 것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선우명월은 알아차렸다.“나리께서는 우하주의 현재 상황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우하주의 난신적자들을 네가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냐?”유상무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하자, 선우명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리께서 왜 그들을 모두 난신적자라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은 동릉의 황제가 그들을 포용하지 않아서 ‘난신적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뿐입니다.”“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명월 낭자!”유상무의 옆에 있던 가진명이 안색이 어두워진 채 말을 불쑥 내뱉었다.무왕부에서 황제의 험담을 하는 것은 대역죄에 해당했으나 유상무는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는 손을 내저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네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으니 계속 말해보거라.”선우명월은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 사내가 평범하지 않은 것은 물론 생각 또한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웃으며 말했다.“나리는 북강의 왕이니 북강 백성들이 예전에 난신적자의 명단에 올랐던 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나 평범한 백성에 불과했던 그들은 단지 안정을 바랐을 뿐입니다.”그 말에 눈이 반짝인 유상무가 손을 흔들자, 가진명은 손수 선우명월에게 차를 따라주었다.선우명월이 이어서 말했다.“나리, 만약 조정이 나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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