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녀는 나무 상자를 추소하의 손에 쥐여주었다.“오라버니, 번거로우시겠지만 무왕부에 직접 다녀와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가셔서 이 말만 전해 주십시오. ‘파혼당한 불길한 여인은 대군 나리와 어울릴 자격이 없다’고요.”“무슨 허튼소릴 하느냐. 파혼당한 게 아니라 진왕 대군을 마다한 건 네 쪽이지 않느냐.”동생을 불길하다고 말하다니, 추소하로서는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 말을 듣는 것조차 가슴이 아려왔다.“지금 제가 떠올릴 수 있는 핑계는 이것뿐입니다. 오라버니, 시간이 없습니다. 얼른 가십시오!”추월녀는 그를 재촉했다.추소하는 상황이 급박하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일단 그녀 말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챙긴 뒤 곧장 문을 나섰다.추월녀가 앞마당에 서둘러 도착했는데 그곳에 와 있던 사람은 뜻밖에도 서비 곁의 서 상궁이었다.황제 쪽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자 추월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다가갔다.“서 상궁 아닙니까? 오늘 무슨 일로 직접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습니까?”서 상궁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가씨, 저희 마마께서 최근에 아주 좋은 차를 구하셨습니다. 아가씨와 함께 마시고 싶어 하셔서 직접 마차까지 준비하셨답니다. 얼마나 아가씨를 그리워하시는지 알겠지요?”추월녀가 거절할 새도 없이 서 상궁이 말을 이었다.“마마께서 오래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가시지요.”...춘하궁 안, 향로에서 연기가 은은하게 피어올랐다.서비는 손에 고운 백자 잔을 들고 있었다.“월녀야, 도성에 온 지 꽤 됐는데도 정작 나를 찾아오지 않았구나. 나를 잊은 건 아니더냐?”추월녀가 고개 숙여 답했다.“송구하오나 그런 불경한 뜻은 전혀 없사옵니다. 다만 조부께서 요즘 몸이 편찮으셔서 제가 부득이 조부를 돌보느라 궁에 들어와 마마께 인사 올릴 겨를이 없었사옵니다. 부디 널리 헤아려 주시옵소서.”“그래? 국공 나리께서 또 몸이 안 좋으시다니 걱정이구나.”서비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말을 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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