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Bab 1001 - Bab 1010

1021 Bab

제1001화

하지만 아쉽게도 승현은 너무 소란스러운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유하가 그렇게 빨리 이혼을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승현은 지나치게 사람을 흔들었고, 지나치게 많은 일을 벌였다. 유하는 각성할 수밖에 없었다.정신을 차린 뒤, 유하는 더 이상 도전을 좇지 않았다. 차분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청산이 다시 나타났다.연꽃처럼 희고 깨끗한 사람.유하는 청산을 좋아했다.청산에게는 유하가 동경하는 무언가가 있었다.하지만 유하는 늘 생각하곤 했다.‘청산 선배가 내 마음속의 냉혈한을 알게 되어도... 그래도 나를 좋아할까?’자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자신은 악인이었다. 스스로 도덕의 선을 그어 놓은 악인. 진짜 선의는 존재하지 않았다.그녀가 사람들과 잘 지내고, 부드럽게 대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상대가 기뻐했기 때문이었다. 자신 역시 귀한 감정의 체험을 얻을 수 있었고, 일을 처리할 때도 훨씬 편했다. 골치 아픈 일도 훨씬 줄어들었다.하연우에게도 그랬고, 배설아에게도 그랬다.승현과 연우의 일이 떠들썩해졌을 때, 아직 또렷하게 깨어 있지 못했던 유하는 그저 짜증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짜증의 대부분은 두 사람의 일이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해야 할 일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 별것 아닌 일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유하 앞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유하를 괴롭혔다.성가셨다.귀찮았다.그렇다고 연우를 싫어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유하는 그런 감정을 좀처럼 품지 않았다. 나중에 승현이 연우를 무엇에 이용했는지 알게 되었고, 연우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지까지 알게 된 뒤에는 오히려 연우를 안쓰럽다고 생각했다.연우는 승현이 아닌 다른 길을 골랐다면 더 잘 살 수 있었다.그 여자는 그럴 능력도, 재주도 있었다.하지만 거기까지였다.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설아는 달랐다.설아 역시 유하에게 적지 않은 문제를 만들었지만, 유하는 설아를 싫어하지 않았다.연우를 싫어하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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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2화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야?’‘드디어?’‘오승현...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그 짧은 틈에 유하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마터면 충동적으로 승현의 몸에 연결된 산소줄을 뽑아 버릴 뻔했다. 물론 유하는 앞이 보이지 않아 줄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박차고 나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참았다.정확히는, 승현이 유하의 손을 너무 세게 잡고 있어서 빼낼 수가 없었다.‘이 망할 인간은 늘 이래. 내가 아픈지는 신경도 안 쓰지.’이유 모를 화가 확 치밀었다. 유하는 곧장 비어 있는 손을 들어 올렸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이 이제 막 응급 처치를 넘긴 환자라는 사실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대로 손바닥을 내리쳤다.어디를 때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상처 부근이었는지, 승현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승현이 이를 악문 듯 숨을 들이켰다.“나 아직 다 안 나았어. 이러다 다시 수술실 들어가게 할 생각이야?”“네가 자초했잖아.”유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래, 그래. 내가 다 자초했지.”승현이 낮게 웃었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승현은 지금 이상할 만큼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왜. 들켜서 화났어?“우리 그래도 한 침대에서 꽤 오래 살았잖아. 내가 너한테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네가 모를 리 없잖아.”“물방울도 오래 떨어지면 돌을 뚫는다는데, 나는 한 번도 네게서 눈을 뗀 적이 없어. 그런 내가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것 같아?“내가 늘 말했지. 참지 말라고. 나한테도 참을 필요 없는데, 왜 남한테 참고 살아? 지금처럼 하면 돼. 내가 많이 다쳤든 말든, 화나면 그냥 때려.“다른 사람한테도 그래. 누가 널 거슬리게 하면 바로 치워 버려. 네가 귀찮으면 내가 할게.”“넌 늘 가면을 쓰고 있어. 나한테도 그래. 나는 가면을 벗고 진짜 나로 너를 마주했는데, 너는 끝까지 그러고 있잖아. 내가 어떻게 화가 안 나?”“네가 어떤 사람이든 난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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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3화

철컥-병실 문이 열리고, 유하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나왔습니까?”앞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유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곧 자신이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오래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뒤이어 밀려온 긴장이 유하를 그 자리에 붙들어 세웠다.‘언제부터 와 있었지?’‘나랑 오승현이 한 말, 전부 들은 건가? 어디까지 들었지?’‘아... 됐어. 어차피 이제 와서 무슨 상관이야.’‘들었으면 들은 대로... 마음대로 하라지.’유하는 다시 힘을 풀고 차분히 말했다.“제 눈 상태는 굳이 병원에 계속 있을 필요 없어요. 오국수 어르신 댁에 가고 싶습니다. 어르신을 뵙고 싶어요.”석현은 유하를 바라보다가 닫힌 병실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표정은 잔잔했다.“알겠습니다.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유하가 병원을 나갈 때도 정문은 이용하지 않았다. 차는 곧장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오국수가 머무는 저택으로 향했다.바깥은 이미 어두웠다.날씨는 병원에 올 때와 비슷했다. 가는 비가 내렸고, 그 사이로 잘게 부서진 눈발이 섞인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빗방울과 눈발이 차창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석현은 이번에도 뒷좌석에 앉아 유하의 곁을 지켰다.두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석현이 고개를 살짝 돌리면, 창밖을 향한 유하의 옆모습이 보였다. 하얀 천이 유하의 눈을 감싸고 있었다.유하는 유난히 고요해 보였다.병원으로 올 때 차 안에 앉아 있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때의 유하도 겉으로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눌러 둔 것이 느껴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지금의 유하는 정말로 평온했다.방금 병실 안에서 승현과 나눴던 말들 때문일까?‘이 여자, 참...’병실 밖에서 들었던 말들이 떠오르자, 석현은 유하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은 깊고, 차 안 조명은 누렇게 가라앉아 있었다. 유하 쪽 차창에는 빗물이 가득 맺혀 있었고, 그 물기 사이로 흐릿한 주황빛이 번졌다.석현의 머릿속에 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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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4화

두 사람의 감정은 대등하지 않았다.석현은 이미 그때 느꼈다.우습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석현의 직감은 분명했다. 그 불공평한 관계 안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쪽은 승현이었다. 지나치게 아름답고, 묘한 분위기를 가진 승현의 아내는 승현에게 같은 무게의 진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식사가 끝난 뒤, 석현은 오국수를 찾아갔다. 그가 품은 의문에 오국수는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석현은 제 동생이 괴롭힘 당하는 꼴을 그냥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부러 유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이후 석현은 더는 승현의 집에 가지 않았다. 유하를 따로 만나러 가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마주친 것은 오국수 쪽에서 우연히 몇 번 스친 정도가 전부였다.뭐라고 해야 할까?석현도 유하를 볼 낯이 없었다.제 동생이 그런 짓을 해 놓고, 이제 와 감정의 공평함을 따지는 건 너무 뻔뻔한 일이었다.그렇다고 승현에게 이혼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석현은 잊을 수 없었다. 승현이 신혼 소식을 알리던 전화 속에서 들려오던 기쁨을...또 그날 식사 자리에서 승현이 가끔 유하를 바라볼 때 눈가에 희미하게 번지던 절망을...그 모습 때문에 석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저 피하고, 보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땅속에 묻힌 지뢰는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었다.석현도 예감하고 있었다.다만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이렇게 격렬한 방식으로 터질 줄은 몰랐다.석현 역시 알고 있었다. 이 일에 대해서 오씨 가문은 어떤 말도 할 자격이 없었다. 더구나 유하는 끝까지 몰고 가지 않았다.끝까지 몰고 간 사람은 승현이었다.박건이었다.사실 석현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그날 밤 석현이 제때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 승현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빨리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승현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교통사고가 난 뒤, 승현은 곧바로 의식을 잃지 않았다.승현은 석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믿기 어려울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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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5화

유하를 오국수에게 데려다준 뒤, 오국수가 석현의 혼사 이야기를 몇 마디 꺼내자 석현은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석현은 병원으로 돌아갔다.유하가 왜 갑자기 오국수를 찾아가려 했는지 이상하긴 했지만, 지금 석현은 어렵게 의식을 되찾은 승현을 더 보고 싶었다.병원에 도착한 뒤, 승현이 짧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석현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형.”회복 중인 몸에 약기운까지 겹친 데다 막 잠에서 깬 승현은 아직 정신이 또렷하지 않았다.석현은 대답 대신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유하와 이야기할 때처럼 망설이지 않았다. 곧장 물었다.“꼭 소유하 씨여야 하니?”승현의 눈이 바로 맑아졌다. 형제 사이에는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석현이 무엇을 묻는지 승현은 알아들었다.석현은 사촌동생의 침묵을 듣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너도 소유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 뻔히 보이잖아.”“그게 뭐가 나빠?”승현이 되물었다. 석현을 바라보는 가느다란 눈매가 맑았다.“나한테는 그런 유하가 매력 있어. 제일 매력 있어. 내 마음속에서는.”석현은 머리가 아픈 듯 말했다.“불공평하다고는 생각 안 해?”“형.”승현이 웃었다. 조금은 자조 섞인,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어. 불공평하다고. 왜 나만 이래야 하냐고... 그런데 감정에 공평한 게 어디 있어.”“게다가 유하는 인색한 사람이 아니야. 마음은 넓어. 다만 사랑이 딱 그만큼밖에 없는 거야. 더 줄 게 없는 사람이지.”“그래도 적어도... 유하에게 나는 가장 특별한 사람이야. 유일하고... 난 그걸로 됐어.”승현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애정보다 더 중요했다.사랑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하지만 특별한 것은 특별한 것이고, 유일한 것은 유일한 것이었다.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다.승현은 이미 확신했다. 마음속 질투와 분노는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다른 가족이 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승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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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6화

승현의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석현에게 대강 전해 들었다.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박씨 집안의 어린 자식이 벌인 일이라고 했다. 승현이 일을 끝까지 몰고 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었고, 상대가 앙심을 품고 보복했다는 말이었다.하지만 오국수가 어떤 사람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이었다.그 안에 얽힌 사정을 몇 마디만 물어도 오국수는 금세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고작 박씨 집안의 보복을... 오국수가 직접 키워 낸 승현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문제의 핵심은 박씨 집안 그 어린놈에게 있지 않았다. 그래도 오국수는 나서서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다.젊은 부부의 일이었다. 아무리 속이 뒤집어져도 결국 당사자들의 일이었다. 예전에 승현이 유하를 망가뜨릴 때도 오국수는 나서지 않았다. 지금 유하가 몸도 마음도 병든 채 이 지경이 되었는데, 오국수에게 무슨 낯으로 말을 보탤 수 있겠는가?오국수는 차라리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어쨌든 승현이 살아 있으니, 조금 고생하는 건 전부 자업자득이었다.오국수는 아예 눈을 감고 귀 막아 모르는 척했다.다만 유하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두 사람 모두 승현이 입원한 일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오늘 유하가 한 말을 보면 아예 오국수가 알고 있다고 전제한 듯했다.명확히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말끝마다 은근히 뜻은 드러나 있었다. 이런 일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을 테니, 오국수는 마음 놓으라는 뜻이었다.그 나름의 설명이자, 마무리였다.“저 아이가...”오국수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영리하고 독하기까지 해. 큰일을 해낼 그릇인데, 아깝구나.”“무엇이 아까우십니까?”마재한이 조심스럽게 말을 받았다.오국수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하필 우리 집 놈이 먼저 만난 게 아깝지. 아니었으면 저 아이 성정이 제법...”오국수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결국 끝까지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곁에 서 있던 마재한이 길게 숨을 내쉬더니,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일 아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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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7화

유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진지하게 대답했다.“엄마가 여기 있는 건 몸을 회복하려고 그런 거야. 여긴 조용하니까. 집에 안 가는 게 준서 때문은 아니야.”“엄마는 저 좋아해요?”“당연하지.”“지금도 좋아해요?”“응.”“...”준서는 한참 조용했다. 그러다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유하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 전에, 준서가 먼저 말했다.“그럼 제가 거짓말을 많이 했어도요?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애가 아니어도, 그래도 저 좋아해요?”유하는 팔걸이를 짚고 몸을 일으키려던 동작 그대로 멈췄다. 눈에는 여전히 하얀 천이 감겨 있었지만, 그 아래로 새어 나오는 놀람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유하는 너무 놀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준서는 그 침묵을 부정으로 받아들였는지, 곧 울먹이기 시작했다.“학교에서 이모세 때린 일도, 제가 맞서려고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제가 먼저 때렸어요. 모세가 저를 기분 나쁘게 했거든요...”“그리고 하, 하연우 아줌마랑도 몰래 여러 번 밖에 나가서 놀았어요. 엄마가 가끔 전화해서 저 찾을 때, 저 다 거짓말했어요. 화나면 물건도 부쉈어요.”“아빠가 똑같은 가구로 몇 번이나 바꿨는데 엄마한테 말 안 했어요... 청산 아저씨 집에서도... 저...”준서는 금세 흐느낌에 막혀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문장은 점점 끊어졌고, 알아듣기 어려워졌다.하지만 유하는 더 들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유하는 준서를 끌어안았다.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낮은 목소리로 달랬다.“그만 말해도 돼. 괜찮아, 아들. 이제 그만 말해... 괜찮아졌어...”“엄마.”준서는 그제야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죄송해요.”유하는 품 안의 아이를 더 꼭 안았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괜찮다고, 이제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하얀 천 틈새로 물기가 떨어져 약붕대를 적셨다.마음속 무언가가 깨졌다.하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모양을 갖추는 듯했다....울다 지친 준서를 침실에 재운 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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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8화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썩 내키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그래도 준서는 유하의 아이였다. 현주에게도 준서는 친구의 아들이었다.“현주야.”유하는 기분이 조금 좋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말을 이어 갔다.“준서가 스스로 깨달은 건지, 아니면 누가 무슨 말을 해 준 건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이제야 내 앞에서 감추거나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하더라. 나를 믿어 보려고 하는 거겠지.”“응?”현주는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말이 반대 아니야? 거짓말을 한 건 준서잖아. 그러면 네가 준서를 한 번 더 믿어 주느냐의 문제 아니야?”유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거짓말은 아마 누구나 한 번쯤 지나야 하는 숙제 같은 거겠지. 사람에게는 비밀이 생기니까. 특히 어른이 되기 전에는 더 그렇고. 내가 화가 나서 피했던 건, 내 아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야.”“준서가 언제부터 저렇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어. 언제부터 나를 믿지 않고, 많은 일에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는지. 그 거짓말들은 정말 서툴렀고, 나는 다 알았지만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어.”“내가 필요했던 건 설명도 아니고, 사과도 아니었어. 나는 그냥 기다렸어. 준서가 언제쯤 스스로 사실을 말하고 싶어 할지.”“준서가 어떤 모습이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어 주기를. 내가 준서와 함께 앞으로의 일을 마주하고, 고쳐 나갈 수 있다고 믿어 주기를...”“내가 계속 화가 났던 건 준서가 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야. 준서가 어디서 나를 믿을 수 없다는 신호를 얻었는지 모르겠어. 준서는 한 번 시도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어.”현주가 약상자를 정리하던 손을 조금 늦췄다. 곁눈질로 침대 위에 옆으로 누워 꼼짝하지 않는 준서를 바라본 뒤 물었다.“그럼 왜 네가 말해 주지 않았어? 끝까지 못 기다릴까 봐 겁나지 않았어?”“내가 먼저 말하면 의미가 없어.”유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일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잖아. 준서가 아직 아이라고 해도. 특히 준서는 자기 아빠처럼 고집이 세니까.”유하는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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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9화

현주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하의 시력은 설 전에 회복되었다. 아직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가 남기는 했지만, 희미한 빛 정도는 볼 수 있었다.다만 눈을 오래 쓰는 것은 여전히 금지였다.빛을 볼 수 있게 되어서인지, 유하의 기분도 조금씩 밝아졌다.유하를 유쾌하지 않게 만드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어떤 골칫덩어리가 의사 말을 듣지 않고, 몸도 다 낫기 전에 억지로 퇴원해 유하 앞에 다시 나타난 일이었다.“눈 보고 싶다고 했잖아.”아직 몸이 아파 걸음마저 느린 승현이 천천히 다가왔다.“곧 설이야. 눈 한 번 올 거야. 네 시력도 거의 돌아왔으니까, 내가 데리고 갈게.”긴 툇마루에서 유하는 흔들의자에 기대 누워 있었다. 선글라스 아래의 눈꺼풀조차 들어 올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네가 데려가야 해?”“아니면 네가 나 데려가.”승현은 이제 그런 말에는 능숙하게 올라탈 줄 알았다.“시력 다 회복하면 나 본사로 돌아갈 거야.”유하는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Y국 ‘Splendid’ 쪽 일을 언제까지나 원격으로만 처리할 수는 없었다. 아직 눈을 자주 쓰면 안 되긴 했지만, 설 전이면 사물을 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러니 본사에 직접 가 있어야 했다.원격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도 유하가 직접 해야 했다.“아마 올해 마지막 눈일지도 몰라.”승현은 툇마루 기둥을 짚고 몸을 숙였다. 유하 위로 내려앉던 햇빛이 승현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힘 있는 손가락이 유하의 선글라스를 살짝 벗겨 냈고, 남자의 얼굴이 가까워졌다.“가자. 눈 보고 설 지나면 내가 본사까지 데려다줄게.”승현이 옅게 웃었다.“네 길 막지 않을게.”완전히 낫지 않은 유하의 눈앞에는 얇은 안개가 낀 듯했다.그 안개 너머로 위에서 몸을 숙인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햇빛이 번져 사람 모양의 가장자리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빛 안쪽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가까워진 얼굴은 창백하고 병색이 짙었지만, 처음 보았을 때처럼 여전히 선명하게 빛났다.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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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0화

석현은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동생 승현도, 전 제수였던 유하도,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었다.결국 오씨 가문의 설 명절 모임은 산에서 하기로 정해졌다. 물론 오국수와 오광진 부부는 그 소란에 끼지 않겠다고 했다.한겨울에 산에 올라 눈을 보겠다는 것은... 고생을 사서 하는 짓이었다.결국 산에 올라 설맞이를 하게 된 사람은 유하와 승현, 재윤과 준서, 희은과 성찬, 이렇게 몇몇 아이들뿐이었다. 물론 석현도 따라갔다. 다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지켜야 한다는 이유였다.그 밖에도 의사 몇 명이 동행했다. 현주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대신 다른 의사들에게 유하의 상태와 주의할 점을 자세히 설명해 둔 뒤, 남편과 집에서 조용히 명절을 보내기로 했다.조용히 쉬기 위해 고른 곳은 산 위에 자리한, 외부 손님을 받지 않는 산사였다.풍경은 확실히 좋았다.다만 뒤쪽 길은 가팔라서 차가 올라갈 수 없어 직접 걸어야 했다. 그 점이 조금 힘들었다. 유하는 눈을 다쳤을 뿐이라 움직이는 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루를 꼬박 쉬고 나서야 몸이 풀렸다. 반면 아직 몸이 전혀 회복되지 않은 승현은 아무리 체력이 좋다 해도 산에 오른 뒤 사흘 동안 방 안에 누워 지냈다.유하는 사흘 내내 승현을 놀리며 즐거워했다.가장 신이 난 것은 아이들이었다. 산에 도착하자마자 온 산을 누비듯 뛰어다녔고, 뒤에서는 어른 몇 명이 멀찍이 따라다니며 지켜보았다.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마음까지 시원하게 확 트이는 듯했다. 세상 모든 일이 가볍고 아득해지고, 오직 자신만 또렷하게 남는 기분이었다. 산에 온 뒤 유하의 눈도 회복 속도가 더 빨라졌다. 다만 유하가 보고 싶어하던 눈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어느 오전이었다.간신히 방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승현은 아직도 가끔 잔기침을 했다. 두꺼운 패딩을 겹겹이 걸친 채, 산사의 한쪽 마당에 놓인 화로 곁에 앉아 있었다.옆에는 장작불 위로 커다란 무쇠 냄비가 걸려 있었다. 냄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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