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Chapter 171 - Chapter 180

212 Chapters

제171화

해외에서 쌓아온 소성란의 실력은 막강했다.그 자리에서 감히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통역이 말을 전하자, 한 투자자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그럼 소 대표님이 매번 말씀하시던 그 천재 제자라는 분 말씀입니까?”소성란은 웃음이 가득 번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주변 사람들이 연달아 맞장구쳤다.“그분 오시면 꼭 환영 파티를 여셔야죠. 다들 오래전부터 궁금해했는데.”“당연하지, 당연하지.”소성란은 연신 호응하며 더 깊은 미소를 지었다.오늘이 바로 유하의 이혼 소송이 열리는 날이었다.전문 변호사팀까지 붙여둔 터라, 결과에 문제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패리에 있는 자기 집도 이미 단장해 두었다.곱게, 화려하게.이제 남은 건 유하가 돌아오는 것뿐이었다....법원 옆 가로수길.유하는 온몸으로 버텨내며 몸부림쳤다.그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인적 드문 길에 울려 퍼진 벨소리가 유난히 날카로웠다.아마 변호사 쪽에서 유하를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건 게 분명했다.남자가 한 손을 뻗어 그녀의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끄려 했다.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유하는 힘껏 팔꿈치를 뒤로 찔러 넣었다. 그리고 손이 시뻘겋게 벗겨지도록 차문을 붙잡은 채, 필사적으로 몸을 밀어내며 외쳤다.“살려...!”그녀는 목이 갈라진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그러나 두 번째 소리를 내기도 전에, 남자는 더욱 거칠게 유하를 끌어당겼다.사나운 힘에 손이 문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유하의 손등에 붉은 상처가 길게 그어졌다.이와 동시에 따가운 고통이 전해졌다.유하의 코와 입은 단단히 막혀, 숨 막히는 답답함이 밀려왔다.게다가 눈앞이 어지럽게 흐려지고, 시야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철컥-문이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닫혀 들어오는 게 보였다.유하는 목이 찢어지도록 소리치고 싶었지만, 막힌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고, 눈물이 차오르다 못해 터져 내렸다.이어서 떨어진 눈물방울이 남자의 손등 위로 흩어졌다.그 순간, 남자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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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짝!그린힐, 승현의 저택 거실.맑고 날카로운 뺨 맞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뭐라고 했지?”승현의 여우 같은 눈매에 은근한 분노가 번졌다.“사람을 멀쩡히 데려오라고 했잖아. 네가 한 게 이 꼴이야?”승현이 집에 돌아왔을 때, 유하는 침대 위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손바닥엔 깊게 긁힌 상처가 여러 개.‘이게 멀쩡한 거라고?’고개를 옆으로 틀어 맞은 태건의 뺨에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픔조차 느끼지 않는 얼굴이었다.잠시 후, 승현은 다시 물었다.“사모님의 짐은?”“이미 사람을 보내 공항에서 가져오고 있습니다.”태건이 대답한 뒤, 조심스럽게 덧붙였다.“그... 강이솔 씨는 어떻게 처리할까요?”승현의 미간이 좁혀졌다.“강이솔은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 강산민에게 전해, 자기 딸 단속 똑바로 하라고. 남의 가정 흔들어놓을 생각하지 말라고. 그리고 강이솔이 일하는 로펌에도 말해. 근무에 집중 못 하겠다면, 그만두라고.”“네.”태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유하가 눈을 떴다.그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이 그린힐의 집이라는 걸.7년 동안 살았던 곳.7년 동안 누워온 바로 그 침대.공간의 구조와 공기까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순간, 지난 기억들이 차오르며 얼굴빛이 굳어졌다.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혐오와 분노에, 더는 침대 위에 있고 싶지 않았다.유하는 손바닥의 따끔거렸지만 통증을 무릅쓰고 몸을 일으켰다.“읏...”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손바닥을 펴니, 붉게 패인 상처 자국들이 보였다.차 문을 붙잡고 발버둥 치던 흔적이었다.그녀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오승현...!”“여보, 나 불렀어?”침실 문이 열렸다.유하가 이를 갈며 이름을 뱉은 바로 그 남자가 미소 어린 눈매로 들어왔다.게다가 여유 있는 걸음으로 순식간에 침대 곁에 다가섰다.유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손의 고통 따위 상관없고, 벌떡 일어나 맨발로 카펫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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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승현은 눈앞에서 분노를 꾹꾹 누르고 있는 유하를 바라보았지만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았다.남자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죽은 듯 차가운 고요.“잊지 마. 시작하자고 먼저 말한 건 당신이었어. 그래서 내가 받아들였지. 오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게 해줬어. 그런데 시작은 당신이 하고, 끝내는 것도 본인이 하겠다?”유하는 멍하니 그 말을 듣다가, 허탈한 웃음이 나올 듯 말 듯한 허무에 휩싸였다.목소리조차 힘이 빠져나간 채 흘러나왔다.“좋아. 그럼 당신이 끝내자고 해. 당신이 말해.”승현은 차갑게 대꾸했다.“난 지금... 이혼할 생각 없어.”유하의 머릿속에 피가 확 치밀었다.‘이 인간이랑은 진짜 말 한마디도 아깝다!’더는 참을 수 없어 손바닥을 들어 올려 힘껏 후려치려 했다.그러나 유하의 손목은 허공에 닿기도 전에 단단히 붙잡혔다.승현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다.“손 다쳤잖아. 때려봤자 아픈 건 너야.”“역겨운 소리 하지 마!”분노에 치밀어 오른 유하는 다른 손으로 다시 내리치려 했지만, 그마저도 가로막혔다.승현의 큰손에 유하의 양 손목이 쉽게 묶여 버렸다. 거센 몸부림도 소용없었다.승현은 힘으로 눌러 유하를 침대 가장자리에 앉혔고, 스스로는 그 앞에 반쯤 무릎을 꿇었고, 곧 작은 구급상자를 꺼냈다.유하의 단단히 쥔 손을 억지로 펴려 했지만, 함부로 힘을 줄 수는 없었다.승현은 잠시 고개를 들어 유하를 바라봤다.“치료 안 하고 상처 덧나길 바라? 곪으면 어쩔 건데?”‘내 손 망가뜨릴 수 없어. 그래선 안 돼.’‘그림도, 디자인도, 다 내 손으로 해야 하는데...’유하는 속으로 분노를 삼키며 말했다.“내가 직접 할게.”승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끝내 손을 놓지 않았다.계속되는 불필요한 다툼에 지친 유하는 결국 손을 내주고 말았다.차갑고 시원한 약이 피부에 스며드는 순간, 유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소리를 삼켰다.승현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손길은 어느새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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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승현은 분명 유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유하는 온몸이 제멋대로 떨렸다. 억눌러온 감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머리는 핑 돌고, 콧등은 시큰했다.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결국 참지 못한 눈물이 한줄기, 긴 속눈썹을 타고 흘러내렸다.승현의 손등 위에 닿자, 그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유하의 목소리는 이미 메마른 울음이었다.“오승현... 당신 진짜 쓰레기야.”승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 침묵 속에 서 있었다.천천히 몸을 숙인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유하의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하나하나 입술로 지워냈다.하얗고 부드러운 볼, 촘촘한 속눈썹을 스쳐 올라가 이마 한쪽의 옅은 분홍빛 흉터에 닿았다.승현의 입술이 거기에 머무르며 천천히 눌렀다.씁쓸한 맛이 남자의 입안에 번졌다.그 흉터는 예전에 유민이 밀쳤을 때 생긴 것이었다. 최고급 흉터 연고 덕분에 거의 사라졌지만, 옅은 분홍빛이 아직 남아 있었다.유하는 그 감촉이 뜨겁고 간질거려 견딜 수가 없어서 거칠게 남자를 밀쳐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방 안 공기는 아직도 서로의 호흡으로 뒤섞여 있었고, 승현의 눈빛에는 이미 욕망의 불길이 번졌다.그러나 그는 끝내 다가가지 않았다.‘지금 더 밀어붙였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겠지.’승현은 억눌린 채로 몸을 일으켰다. 눈 속의 집착을 가려내듯, 무심히 구급상자를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았다.그러고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는 유하를 한 번 바라본 뒤, 조용히 방을 나섰다.문이 닫히기 직전, 그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곧 준서가 학교에서 돌아올 거야.”유하의 손끝이 순간 움찔했다.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졌다.그러자 유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달려갔다.손잡이를 아무리 돌려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잠겼어... 날 가둔 거야.’분노는 이미 사라지고, 오히려 서늘한 결심이 자리 잡았다.유하는 방 안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핸드폰만 찾을 수 있다면...연락만 닿는다면...‘난 절대 여기서 끝내지 않아. 절대 굴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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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태건은 즉시 당시 차량을 확인했던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답은 금방 돌아왔다.그때는 차 내부에 혈흔 반응만 확인했고, 블랙박스는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승현은 짧게 웃었다.“다시 확인해. 우리가 그렇게 난리를 치고도 단서 하나 못 잡은 게 처음부터 이상했어.”태건은 잠시 멈칫했다.“그런데... 대표님, 그때는 아예 조사 안 하기로 하신 거 아닙니까?”애초에 태준혁이 짠 판일 가능성이 크다 보니, 괜히 발을 더 들이는 게 의미 없다고 판단했던 터였다. 지금 밖에 나가 있는 인원들도 사실상 형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승현의 시선이 가늘게 빛났다.“해. 강이솔이 이 판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난 알아야겠어. 그 여자가 감히 사람을 숨길 배짱이 있다고는 보이지 않거든.”그러면서 그는 비웃듯 시선을 위층으로 흘렸다.“이건 다른 사람 시켜. 너는 여기서 사모님 잘 지켜. 만약 사모님 사라지면... 바로 해외로 내보낼 거야.”“알겠습니다.”태건은 낮게 대답했다....방 안.유하는 방 구석구석을 뒤졌다.그러나 핸드폰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결국 이번에는 문고리를 붙잡고 열쇠 구멍을 만지작거리며 억지로 돌려봤다.그런데 몇 번 시도하지도 않았는데, 바깥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유하는 손을 멈췄다. 잠시 귀를 기울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오승현이라면 바로 들어왔을 텐데...’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태건 비서님?”밖에서 낮고 짧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예, 접니다.”그 목소리를 듣자, 유하는 낮에 차 안에서 자신을 억눌렀던 손길이 번뜩 떠올랐다.분노가 치밀어 올라 문을 세차게 내리쳤다.“당장 열어요! 문 열어요!”문 앞에 선 태건은 움직이지 않았다.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태건의 표정은 드물게 불편했다.잠깐의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일곱 해 전 그 겨울밤으로 끌려갔다.차갑게 얼어붙은 공기, 똑같이 닫힌 문.그때도 유하는 안에서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목소리는 아직 앳되고, 떨림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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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핸드폰을 손에 쥔 유하는 가장 먼저 이솔에게 전화를 걸었다.둘은 함께 출발하기로 약속했는데, 유하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솔은 유하의 상황을 알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연락조차 닿지 않으니 이솔도 분명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전화는 거의 동시에 받아졌다.“이솔아.”유하가 먼저 낮게 불렀다.[정말 너구나!]이솔은 모르는 번호는 절대 받지 않는 편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정말 유하였다.[지금 괜찮아? 오승현 그 미친놈이 널 어떻게 하진 않았지?]이솔의 다급한 목소리에 유하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가가 붉어졌다.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나 괜찮아. ...너는? 너 비행기 안 탄 거야?”이 시간이라면 아직 하늘 위에 있어야 정상일 텐데.그 말에 이솔이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높였다.[무슨 비행기! 오승현 진짜 미쳤어. 공항에서 그쪽 사람들이 내 짐 다 뺏어갔어. 나까지 억지로 집으로 끌려왔어! 아빠는 또 그 일로 나를 한참 혼내고... 미치겠어, 진짜!]유하는 죄책감에 목이 메었다.“미안해. 내가...”‘네 친구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그러면 네가 내 일에 휘말려 협박당하지도,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유하야!]그 미안함을 끝내 말로 내뱉기도 전에, 이솔이 목소리를 더 높여 끊어냈다.[걱정 마. 내가 꼭 방법을 찾아낼 거야. 학교 다닐 때 우리 얘기했잖아. 평생 절친으로 지내자고. 같이 산으로 바다로 다 다니고, 세상의 멋진 풍경 다 보자고, 우리 그렇게 약속했잖아.][그러니까 날 믿어. 난 널 도울 거야. 네가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줬던 것처럼.]유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소리 내어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솔의 말은 그 순간 무엇보다 확실한 버팀목이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느냐는 별개로, 말만으로도 힘이 되었다.“이솔아...”[그만해, 우리 사이에 뭘 그런 소리까지 해.]유하는 눈가의 눈물을 닦아내며 피식 웃었다.“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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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소성란을 더 걱정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고모가 그 나이에 괜히 흥분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유하는 그게 두려웠다.[내가 진작 눈치채야 했는데! 그 잡놈, 아니 그 미친놈 자식은 애초부터 문제였어! 오씨 집안, 죄다 미쳐서 그런 괴물 같은 걸 세상에 내놓은 거지!]다음 말은 더 이상 차분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터져 나온 건 분노로 가득 찬 소성란의 목소리였다.“고모할머니, 그러지 마세요...”[내가 왜 안 그래야 하는데!]“아니에요.”소성란의 화가 폭발 직전인 게 느껴지자, 유하는 결국 ‘괜히 다른 사람까지 싸잡아 욕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대신 조심스럽게 말을 돌리며 소성란을 안심시키려 했다.한참을 더 퍼붓던 소성란이 불현듯 조용해졌다. 순간 유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모할머니? 고모할머니!”[유하 씨, 걱정 마세요. 저 여기 있어요.]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온 건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늘 소성란 곁을 지키던 비서, 원이정이었다.유하는 조금 마음을 놓으며 다급히 물었다.“지금 고모할머니 상태가 어떠세요?”그때 전화기 너머로 약병이 흔들리는 소리, 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숨 고른 뒤에야 소성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이번엔 조금 가라앉은 어조였다.[괜찮아.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니?]소성란이 진정된 걸 확인하고서야, 팽팽하게 긴장했던 유하의 심장이 겨우 진정되었다.“일단 변호사한테 연락해서 재소할 수 있는지 알아볼게요. 이번에는 분명 이길 기회가 있어요.”“아니었으면 오승현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거예요.”[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됐다.]잠시 뜸을 들인 소성란은 다시 단호하게 덧붙였다.[여긴 오트쿠튀르 쇼 준비가 한창이라 내가 당장은 귀국할 수 없어. 너는 당분간 보디가드 몇 명 더 붙여.][그리고 변호사랑 얘기 끝내고 어떻게 되는지 바로 알려. 내가 상황을 알아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네, 알았어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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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그린힐.안방 문이 덜컥 열리더니, 준서가 작은 발소리를 내며 달려 들어왔다. 그리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엄마 품으로 그대로 파고든다.“엄마! 아빠가 엄마 요즘 바빠서 집에 잘 없다고, 괜히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어. 근데... 나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유하는 아들의 여린 몸을 안으며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혈연 이상의 감정이 밀려와 가슴을 흔들었다가, 곧 다시 담담하게 가라앉았다.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건 법원에 가기 전날의 기억이었다. 준서가 연우의 손을 잡고 승현 옆에 나란히 서서 걷던 모습. 준서가 좋아하는 사탕 가게로 향하는 길, 마치 화목한 한 가족 같았던 장면.‘준서가 지금 하는 말에 진심이 얼마나 담겨 있을까?’준서는 그래도 아들이었다. 유하는 아이를 살짝 떼어 옆자리에 앉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학교생활과 요즘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이에게 물었다.그러나 준서는 곧 고개를 흔들며 좀처럼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오랫동안 엄마와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는 늘 연우와 지내며 놀았고, 엄마 생각은 가끔에 불과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눈앞에 마주하니, 준서도 본능처럼 엄마 품으로 안기고 싶어졌다.준서는 엄마에게서 나는 익숙한 향기를 좋아했다. 따뜻한 품이 좋았다.다시 유하의 품에 얼굴을 묻고, 새하얀 니트 자락을 꼭 움켜쥐며 놓으려 하지 않았다. 유하는 억지로 떼어낼 수 없어 그냥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준서가 쏟아내는 수다를 다 들어주었다.학교 이야기, 생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엄마, 저 요즘 새 친구도 사귀었어요.”준서가 고개를 까딱이며 자랑하듯 말했다.“근데 그 친구가 오늘 학교에 안 왔어요. 아픈 것 같아요. 그 친구 다 나으면 우리 집에 데려올게요.”유하는 순간 가볍게 눈길이 흔들렸다.“그래? 그럼 지금이라도 친구 집에 가서 문병할까? 엄마가 같이 가줄 수 있는데.”하지만 준서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싫어요, 귀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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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아마 엄마를 오랜만에 본 탓일까?준서는 저녁을 먹자마자 유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숙제할 때도, 씻을 때도, 밤이 되자 결국 잠까지 같이 자겠다고 버텼다.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니 유하는 변호사에게 연락할 겨를조차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음 날로 연락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아들을 씻기는 일은 손에 상처가 있어 직접 나서지 않았다. 그저 곁에 앉아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같이 자자는 아들의 제안도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그날 밤, 승현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방문밖에는 태건이 밤새도록 지키고 서 있었다....다음 날 이른 아침.“엄마, 저 학교 갈 때 같이 안 가줘요?”작은 가방을 멘 준서가 차 앞에서 시무룩하게 서 있었다. 겨우 엄마와 다시 만났는데, 학교까지 함께 데려다 주지 않는다고 하니 섭섭했다.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 역시 데려다주지 않았다.“사모님 손이 아직 안 좋으셔서 외출이 어려우십니다. 다음에 괜찮아지시면 같이 가실 거예요.”밤새 버텼을 텐데도 태건은 조금의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반쯤 몸을 낮춰 아이를 달래고, 마지못해 차에 오르는 준서를 지켜본 뒤 기사에게 학교까지 잘 모시라 당부했다.안방에 갇힌 유하는 이미 일찍 일어나 있었다.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는 발코니에 앉아, 저택 정문이 뚫어져라 바라보며 전화를 걸었다.받은 쪽은 변호사팀의 중심인물, 중년 여성 변호사 이민주였다.그녀는 전날 법정에서 벌어진 일을 이미 소성란과 공유하고 있었기에 유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화가 곧 연결되었다.간단히 상황을 확인한 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민주는 현재 상황을 정리했다.첫 번째 소송은 이미 기각되었고, 다시 제기하려면 원칙적으로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다만 그사이 특별한 사유가 생긴다면 예외적으로 곧바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특별한 사유라면 어떤 겁니까?”유하는 기다림 따위는 무시하듯 바로 조건부터 물었다.[남편의 가정 폭력, 학대, 도박 같은 중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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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유하는 아직 돌아보기도 전에,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순식간에 빼앗겼다.발코니에 있는 의자 뒤에 서 있는 승현이 엄지로 화면을 툭툭 넘겼다. 통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승현은 개의치 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뚜... 뚜...짧은 신호음이 몇 번 울렸지만, 받지도 끊지도 않았다. 자동으로 통화가 종료될 때까지.승현은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허, 참 무례하네.”비웃음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무심히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버렸다.“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유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봉긋 솟은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눈빛은 불길처럼 타올라, 바로 앞까지 파고든 남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우리 여보가 또 누구한테 속을까 봐. 내가 대신 걸러준 거지.”승현은 유하의 분노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커다란 보폭으로 다가서자 유하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뒷걸음질 치던 발이 곧 유리창에 닿을 만큼 닫혔을 때...승현의 팔이 허리를 감싸며 그녀를 단단히 끌어안았다.작은 체구가 그대로 남자의 넓은 가슴팍에 부딪혔다. 억지로 밀착된 숨결 속에서 익숙한 재스민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놔...!”유하는 버둥거렸지만, 승현은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코끝을 묻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낮게 웃었다. 이내 눈을 반쯤 감고, 차갑고도 집요한 입술이 그녀의 살결을 훑었다.‘역겨워. 뜨겁고 답답해. 제발... 떨어져!’유하는 손에 힘을 꽉 줬다. 상처가 아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대로 남자의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하지만 몇 번 버티지도 못해 손목이 거칠게 잡혔다.승현은 그녀를 의자에 앉히며 몸을 뒤로 뺐다. 두 손목을 틀어쥔 채 움직이지 못하게 눌러댔다.아침 햇살이 발코니를 가득 채웠다. 금빛으로 가득한 빛이 두 사람의 얽힌 그림자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남자의 키 큰 실루엣은 의자 뒤에서 거대한 장벽처럼 드리워졌다. 한 손으로는 유하의 손목을 옥죄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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