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유하가 고개를 돌리자, 얇은 청자켓 하나만 달랑 걸친 채 한겨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주성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웃음은 제멋대로였고, 표정은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다.“형수님, 안녕하세요!”...서재 안.“영심아, 우리도 별다른 수가 없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야.”박학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너도 알다시피, 나랑 네 언니는 지난 몇 년 동안 일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신이 없었지. 그 사이 주성이는 사실상 방치된거나 다름없었고...”“부모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예쁘다고, 너무 아낀다고, 아예 지켜야 할 선을 안 알려주셨어. 그 결과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야. 이젠... 이젠 정말 말도 안 되게...”말끝을 잇지 못한 채, 그는 고개를 떨궜다.박영심과 오광진이 눈을 마주쳤다. 눈빛엔 걱정이 가득했다.“오빠, 대체 무슨 일이야?”“내가 말할게.”강문영이 길게 숨을 내쉬며 대화를 이어받았다.“고모도 알다시피, 우리 집안은 대대로 예술로 먹고 살아왔잖아요. 세대마다 예술계에서 이름을 떨친 사람이 꼭 하나는 있었고, 우리도 당연히 주성이에게 그런 기대를 했죠.”“주성이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국내에서 손꼽히는 예술가들이잖아요. 우리 부부는 늘 바쁘니까, 아이를 곁에 두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겠다 싶었는데, 실제로 주성이도 꽤 소질이 있었어요.”“근데...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졌어요. 작년에 대학 입시에서 주성이가 홍이대 수석을 했는데, 원래 정해져 있던 홍이대로 진학하지 않고, 뜬금없이 하용대 기계공학과에 들어갔어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박영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얘기는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원서 지원 마감 쯤에 부부가 해외에 있어서 끝까지 챙기지 못한 사이, 주성이가 부모에게 장난 아닌 큰 반전을 안겼다.하지만 그건 작년의 일이었다.“그래도 나중에는 우리도 마음을 돌렸어요.”강문영의 얼굴에는 이미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뭘 배우든 배움이지, 아이가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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