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Chapter 251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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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화

유하를 안심시키려는 말이었다. 설령 승현이 와서 문제를 일으켜도 별일은 없을 거라고.유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승현이 직접 찾아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승현은 지금 연우와 함께 있었다. 애인 앞에서 아내에게 굳이 찾아와 시비를 건다면, 보고만 있을 애인은 없을 것이다.‘그럴 리 없어.’유하가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원하던 루비 귀걸이를 낙찰받고, 입금 절차까지 끝내면 유하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유하는 탁자 위에 놓인 출품작 목록을 다시 훑었다.그녀가 노리고 있는 루비 귀걸이는 중후반부에 배치된, 사실상 오늘 경매의 주요 작품이었다.곧 경매가 시작됐다.무대 위 경매사는 출품작 하나하나를 자세히 소개했고, 장내는 활기가 넘쳤다. 망치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유하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경매가 중반에 이르자, 임페리얼 그린 비취 팔찌가 올라왔다.상태가 완벽했고, 시작가는 무려 800억이었다. 유하조차 잠시 흔들릴 만큼 매혹적인 물건이었다.소성란이 마련해 둔 자금은 넉넉했지만, 잠시 고민 끝에 그녀는 손을 들지 않았다.‘내 목표는 오직 루비 귀걸이야.’임페리얼 그린 비취 팔찌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 경쟁은 치열해졌고, 순식간에 가격은 1000억을 돌파했다.그 순간까지 침묵을 지키던 1번 룸에서, 승현이 불쑥 번호판을 들어 올렸다.단번에 200억을 올린 것이다.결국 팔찌는 1200억이라는 고가에 낙찰됐고, 낙찰자는 다름 아닌 승현이었다.1번 룸과 6번 룸은 마주 보고 있어, 앞으로 이어질 경매 때문에 커튼을 칠 수도 없었다.그래서 유하는 연우 얼굴에 번지는 환희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역시 하연우를 위해 산 거겠지.’출품작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드디어 유하가 가장 원하던 루비 귀걸이 차례가 다가왔다.거대한 스크린에 귀걸이의 실물이 선명하게 비쳤다.다이아몬드 드롭 아래에 피전 블러드 루비 한 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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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현재 루비 귀걸이의 가격은 5000억까지 올라가 있었다.피전 블러드 루비가 희귀하긴 하지만, 거기에 정교한 세공과 세련된 디자인이 더해졌다 해도 지금의 가격은 이미 제 가치를 한참 넘어선, 터무니없는 프리미엄이었다.하지만 유하는 이 루비 귀걸이를 원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잠시 생각을 고른 뒤, 유하는 다시 번호판을 들었다.1000억 추가했다.‘오승현이 이번에 올린 건, 하연우가 일부러 나를 겨냥했기 때문이야.’그러나 지금 유하의 입찰가는 이미 6000억.‘오승현이 아무리 하연우를 위한다 해도, 이렇게 이성 잃고 돈을 태울 리는 없어.’ ‘말도 안 돼. 그럴 가치는 없으니까.’예상대로, 이번엔 승현이 움직이지 않았다.유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려던 순간, 연우가 승현의 손을 잡았다. 가볍게 흔들며 눈빛을 촉촉이 빛내는 모습이었다.멀리서 바라본 유하는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걸 보았다. 그리고 곧 승현이 다시 번호판을 들었다.1000억 추가했다.루비 귀걸이의 가격은 단숨에 7000억을 찍었다.유하는 입찰 번호판을 힘껏 쥐었다. 마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오늘 2조 원의 자금을 마련해 온 건 사실이지만, 더는 의미가 없었다.‘이건 미친 짓이야. 이렇게까지 웃돈을 얹을 필요는 없어.’게다가 지금 연우는 무조건 맞서려는 태도였다. 무엇보다 승현이 연우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걸 보면, 끝까지 맞붙을 기세였다.승현 집안의 재력을 생각하면, 몇조쯤은 가볍게 내던질 수 있는 위치였다.그때 곁에 서 있던 차동석이 핸드폰을 접어 들고, 몸을 굽혀 말했다.“유하 씨, 임 대표님 말씀 전해드립니다. 안심하고 입찰하세요. 임 대표님이 직접 결제하시겠답니다.”하지만 유하는 고개를 저으며 번호판을 내려놓았다.“6000억을 넘어서는 건 가치가 없어요. 다른 루비를 찾을 거예요.”결국 이 루비 귀걸이는 7000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가격에 승현에게 낙찰됐다.경매사가 낙찰의 의미로 망치가 내려치자, 1번 룸에서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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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유하는 차동석의 준비성에 놀라 순간 얼이 빠졌다.“네?”차동석은 약간 민망한 듯 웃었지만, 여전히 단정하고 우아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늘 신경 쓰시는 일이라 제가 따로 챙겨 두었습니다.”주인의 필요를 언제 어디서든 즉시 충족시키는 것, 그것이 유능한 집사의 첫 번째 덕목이었다.차동석은 그런 점에서 조건을 완벽히 충족했다.“아... 감사합니다.”여전히 멍한 기분이었지만, 유하는 차동석이 내민 이혼합의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경호원 사이로 손을 뻗어 승현에게 내밀었다.“사인해.”승현은 말없이 합의서를 받아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눈길을 훑었지만, 바로 서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끝까지 고집했다.“사람들을 물려. 그래야 대화가 되지. 아니면...”그의 시선은 유하가 잡고 있는 작은 손으로 향했다.재윤... 남진의 조카임을 알아차리자, 승현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내 다시 유하의 얼굴을 훑으며 입꼬리를 올렸다.“여보, 알잖아. 나는 판이 얼마나 커지든 상관없어.”유하는 재윤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알고 있지. 오승현, 이 사람에게는 언제나 결과만 중요하지.’‘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과정이 얼마나 추악해져도 개의치 않아.’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그럴 수는 할 수 없었다.잠시 승현의 손에 들린 합의서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유하는 이를 악물고 차동석에게 말했다.“집사님, 재윤이 데리고 먼저 나가요. 경호원은 남기고... 제가 10분 안에 안 나가면 경찰 부르세요.”유하는 지금 승부수를 띄우고 있었다.‘혹시라도 오승현이 바로 서명할 수도 있잖아.’‘하연우한테 미쳐서 7000억도 던져 버린 사람인데...’‘당장 이혼해서 연우를 집안에 들이고 싶을 수도 있어.’‘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차동석은 곧 재윤을 데리고 복도를 빠져나갔다.양쪽 경호원들 역시 각자 뒤로 물러나 복도의 양 끝으로 물러섰다. 비로소 가운데 공간이 드러났다.물론 유하는 경호원들과 거리를 완전히 두진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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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유하의 희고 가는 손목에 닿았다.유하는 손목이 홱 흔들리는 걸 느꼈다. 화가 치밀어 눈꼬리가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승현의 발등을 밟아 제압하려 했고, 승현이 잠깐 흔들리는 사이에 힘껏 몸을 비틀어 승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몇 걸음 물러나 2미터쯤 거리를 유지했다.“다시 가까이 오면 소리 질러서 경호원 부를 거야!”유하는 목소리를 떨리게 하며 경고했다.승현은 입꼬리를 살짝 깨물며 아프다는 기색을 흘리다가도 여전히 웃음을 띠었다.“긴장하지 마, 여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고분고분 내 아내 노릇 잘하면,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 내가 다 줄 수 있다는 거야.”그 말 속엔 분명한 속뜻이 담겨 있었다.유하는 그 의미를 알아들었지만, 곧바로 허탈한 웃음이 흘렀다. 가슴 속에 끓어오르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지며 피곤이 밀려왔다.‘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오승현 같은 사람하고 무슨 대화를 하겠어.’‘쟤는 처음부터 도장 찍을 생각 같은 건 없었겠지.’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이어서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더니, 손목에 걸린 비취 팔찌를 조용히 풀어 손에 들었다.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물었다.“오승현, 그날 소유민하고 진주연 둘이 날 불러 20억을 요구하게 만든 사람, 당신이 시킨 거지?”승현은 잠깐 멈칫했다. 안색이 살짝 차가워졌다.“경고했었지.”역시 승현이었다. 이미 짐작은 했지만, 확인되자 유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오승현, 그날 내가 눈을 잃을 뻔했다는 거 알아?”승현은 유하를 가만히 바라봤다. 표정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모르지. 다만, 그 둘에겐 이후로 내가 따끔하게 말해뒀다.”‘말해뒀다’라는 말이 그 상황을 되돌릴 수 있을까? 유하는 비틀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억누르지 못했다. 그 웃음에 승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 유하는 무표정으로 팔찌를 힘주어 바닥에 내던졌다.1200억짜리 비취 팔찌가 우르르 굴러가며 산산이 깨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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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상황은 이미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연우의 인내심도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대나무숲’주택단지.경매장에서 벌어진 혼란 이후, 유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괜히 또 밖으로 나가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화실에 틀어박혀 붓을 잡았다. 그림을 그리며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다.재윤은 곁에서 색연필을 쥐고, 묵묵히 엄마를 따라주었다.저녁이 되자, 유하는 재윤을 씻기고,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불안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지만, 아이를 품에 안으니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그 시각, 서재.회사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겨 늦게 돌아온 청산은 아직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서류를 넘기며, 오늘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을 차동석의 입을 통해 듣고 있었다.차동석은 이야기를 마친 후,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이 문서를 소유하 씨께 보여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럼 완전히 오승현을 끊어낼 수 있을 겁니다. 더는 두 사람 사이에 돌이킬 여지도 없어질 겁니다.”그 문서는 청산이 귀국하기 전부터 차동석에게 철저히 조사해 오라 지시한 것이었다.7년 전 유하의 결혼과 관련된 모든 기록.승현이 뒤에서 꾸민 일까지 낱낱이 담긴 자료였다.애초에 그 결혼은 기괴하게 시작되었다.이제 유하가 이 문서를 보고 진실을 알게 된다면, 마음속에 남은 승현의 흔적을 완전히 도려낼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때가 되면... 청산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서류를 넘기던 청산의 손이 순간 멈췄다.그 역시 알고 있었다.아무 말 없이 청산은 두꺼운 문서 더미를 다시 넘겼다. 그러다 중간에 끼워진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사진 속은 처참했다.망치에 으스러진 손.뼈가 부서지고, 피와 멍으로 얼룩진 모습.그 순간의 통증은 너무도 선명했다.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았다.비록 외국에서 수술과 치료 끝에 손은 고쳤지만, 마음속 깊은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다.신경성 통증은 불시에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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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경매가 끝난 다음 날.그린힐.이마에 큼직한 반창고를 붙인 태건이 서재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평소처럼 ‘대나무숲’ 주택단지 감시 보고를 올리기 위해서였다.“대표님, 사모님은 오늘도 ‘대나무숲’ 주택단지를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책상 뒤에 앉아 있던 승현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표정엔 흔들림이 없었지만,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결국 주민등록등본이 재발급되는 날까지만 버티겠다는 거군.”오늘은 4월 1일.나흘 뒤면 주민센터에서 통보한 15일의 발급 대기 기간이 끝나고, 유하의 이름으로 새 주민등록등본이 나온다.등본만 확보되면, 이후 다른 각종 증명서 재발급은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승현의 시선이 어두워졌다.‘절대로 유하를 해외로 내보낼 수는 없어.’잠시 생각을 정리한 승현은 태건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느리게 올렸다.“장인어른, 장모님... 몇 년 만에 따님이 보고 싶으실 거야. 장인, 장모님을 모셔 와. 부모와 딸이 오랜만에 정겹게 만나야지.”태건의 미간이 본능적으로 찌푸려졌다. 그러나 곧 고개를 숙이며 짧게 대답했다.“예.”그 순간,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하며 울렸다. 승현이 무심히 전화를 받자, 반대편에서 들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승현아! 네 덕에 지난번 우리 형 없을 때 친구들 정리 잘 됐잖아. 오늘 밤엔 내가 쏠 테니까, 남진이네 클럽에서 모이자. 꼭 나와야 해!]“알았다.”전화를 끊자, 태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머리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으셨습니다. 술은 삼가시는 게 좋습니다.”승현은 짧게 웃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조금 마시는 건 괜찮아.”최근의 불쾌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그는 오히려 술 한 잔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승현이 올 거라는 확답을 받은 뒤, 준범은 곧장 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연우야, 네 말대로 승현이랑 얘기했어. 오늘 밤엔 꼭 온대.”말을 끝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근데 넌 왜 직접 안 부른 거야? 승현이 네 부탁이라면 이런 자리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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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준범이 막 입을 열려던 순간, 들이켰던 술이 목에 걸려 크게 기침했다. 그는 목에 걸린 액체를 억지로 삼키며 남진을 노려봤다.“뭐 하는 거야!”남진은 짧게 흘겨보더니, 옆에 앉아 있는 승현을 흘끔 보았다. 여전히 담담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낮은 목소리로 남진이 속삭였다.“괜히 나대지 마. 눈치 좀 챙겨.”“내가 뭘...”준범의 말은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탁-승현은 손에 든 술잔을 책상 위에 세게 내려놓았다. 작은 소리였지만, 공기를 가르는 묵직한 울림이 룸 안을 가득 채웠다.승현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눈으로 테이블을 빙 둘러 훑었다.“왜, 술 안 마셔?”그 순간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만 볼 뿐, 감히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정적을 가장 먼저 깨뜨린 건 남진이었다.그는 재빨리 술잔을 들어 올리며 큰소리로 외쳤다.“자자! 그냥 마시는 건 재미없잖아. 술 게임이나 하자. 진 사람은 원샷! 오늘은 절대 그냥 못 간다!”“좋다, 안 취하면 못 가지!”“마셔, 마셔!”곧 분위기는 다시 떠들썩해졌다. 조금 전의 무거움은 감쪽같이 묻혔다.연우는 옆에 앉아 있는 승현을 힐끔 바라봤다.그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연거푸 비워냈다.연우는 무릎 위에 얹은 손을 조용히 움켜쥐었다.‘제발, 조금만 절제해...’그러나 얼굴에는 여전히 결점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같은 시각, 화실.유하는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며 이혼 전문 변호사팀의 전화가 걸려 왔다.통화를 마친 유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오승현이랑 하연우가 지금 클럽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런 걸 굳이 저한테 왜 알려주는 거예요?”솔직히 지금은 두 사람 얘기조차 듣기 싫었다.변호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소유하 씨, 저희는 며칠째 오승현과 하연우를 추적해왔습니다. 불륜 증거를 잡아야 하니까요. 경험상 이런 사교 모임 자리가 쓸만한 사진을 건질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미리 알려드리는 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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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대나무숲’ 주택단지.깊은 밤, 유하는 변호사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몹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못 찍었습니다.]유하가 되물었다.“못 찍었다고요?”[저희는 오승현이 하연우와 함께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럼 분명 키스 같은 친밀한 장면이 있을 거로 생각했죠. 그런데... 혼자 나왔습니다.]“혼자?”[네, 혼자였습니다.곧 단체 채팅방에 영상 하나가 공유되었다.영상 속에는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남자가 클럽 현관에서 나와, 여유 있는 걸음으로 걸어갔다.그는 곧장 길가에 세워진 롤스로이스 팬텀에 올라타더니, 짙은 밤 안으로 사라졌다.승현은 혼자 나갔다. 연우와 함께가 아니었다.유하는 뜻밖이라 놀랐고, 동시에 묘한 허탈함에 사로잡혔다.‘이번엔 확실한 증거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변호사팀은 밤늦도록 잠복하다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유하는 곧바로 격려금을 송금하며 단체방에 메시지를 남겼다.[고생 많으십니다.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어둠 깔린 방 안.연우의 온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었다.갑작스레 덮쳐온 욕망에 정신은 흐려지고, 감각은 무뎌졌다.남자는 그 열기를 그대로 받아내며 격렬히 응답했다.숨 막히는 향과 달뜬 기운이 공기를 메웠다.어디든 스치기만 해도 아찔한 소리들이 흘러나와, 방 안의 두 사람은 뜨겁게 뒤엉켰다.침대 머리맡, 작은 카메라 렌즈가 은은히 불빛을 반짝였다....다음 날 아침.연우는 온몸이 부서진 듯한 통증에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그러나 얼굴 위로는 숨길 수 없는 달콤한 기색이 번졌다.곁에서 아직 잠든 남자의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연우의 알몸은 그대로 그 품에 파묻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친밀하게 얽혀 있었다.‘드디어... 오승현은 내 것이야.’연우의 눈매에 행복이 가득 번졌다.그녀는 조심스레 남자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들어 그의 턱에 입을 맞추려 했다.그 순간, 연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곧이어 터져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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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연우는 다시 고요하고 온화한 얼굴을 되찾았다.“우선... 옷부터 입자.”두 사람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잠시 후, 연우는 이미 결심한 듯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길고 고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맑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아름다운 여자의 눈물은 그 자체로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이는... 연우를 누구보다 사무치게 좋아하는 태준범이었다.준범은 즉시 반쯤 무릎을 꿇은 채 다가왔다.조심스레 연우의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연우야, 울지 마. 내가 꼭 책임질게. 앞으로 천 배, 만 배 더 잘할게. 내 모든 걸 네게 줄 거야.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다 구해줄게.”‘책임?’연우의 눈동자에 차가운 조소가 스쳤다.그녀는 애초에 준범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그 손에 쥔 건 고작 삼류 재산. 만약 준혁이 이런 말을 했다면, 잠깐쯤은 마음이 흔들렸을지 모른다.하지만 태준범?그저 집안에 기댄, 허세뿐인 쓸모없는 방탕아일 뿐이었다.속으로는 멸시했지만, 준범을 대하는 얼굴에는 한 번도 내색한 적 없었다.그녀는 눈물이 오히려 더 쏟아졌고, 준범은 안달이 난 듯 애원하듯 말을 이어갔다.연우는 마침내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하지만... 난 오직 승현이만 좋아해. 승현이만 원하고.”준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눈빛 속 빛이 서서히 꺼져 갔다. 한참이 지나, 겨우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힘겹게 말했다.“연우야... 난 정말로 너에게 잘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나를...”‘봐 달라’는 말은 끝내 삼켜졌다.연우의 눈물이 모든 말을 막아섰다.준범은 끝내 이해했다. 울음이 터져 나올 듯한 충동을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일은... 다 잊을게. 그리고... 널 도와줄게.”그는 연우의 눈가를 닦아주며, 억눌린 울음을 삼켰다.“울지 마. 네가 원한다면 내가 꼭 도와줄게. 널 오씨 가문의 안주인으로 만들어줄게.”연우는 그 손을 가만히 잡았다. 흐린 눈망울 속에서 낮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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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내가 알고 싶어 하던 것...?’연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메일을 열었다. 안에는 방대한 자료와 함께 사진 여러 장이 첨부돼 있었다.끝까지 확인한 순간, 연우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손아귀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핸드폰이 부서질 듯 삐걱거렸다.그것은 분명, 연우가 알고 싶어 하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해외에 있던 자신이 알 수 없었던, 일곱 해 전 오승현·소유하·임청산의 과거.모든 내막이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었다.누가 보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연우가 이미 조사한 것과도 대체로 일치했고, 내용도 훨씬 더 구체적이었다.거짓일 리가 없었다.“날 속였어.”연우의 입술에서 낮은 신음 같은 말이 흘렀다.“오승현... 넌 날 속였어.”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핸드폰이 벽에 세차게 내던져졌다.깨진 화면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연우는 미친 듯 방 안의 모든 물건을 집어 던졌다. 눈은 충혈되고, 입술은 떨렸다.“오승현! 감히 날 속이다니!”방 안은 곧 아수라장이 됐다.거친 숨을 몰아쉰 뒤, 연우는 파편과 잔해 속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다가,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그 속엔 오직 광기뿐이었다.‘나만 불행하게 된다고?’‘좋아... 그렇다면 누구도 행복하게 두지 않겠어. 아무도...’연우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어수선한 바닥에서 예비폰을 찾아냈다.그녀는 곧장 메일 속 사진 중 한 장을 캡처해 전송했다.수신인은 소유하.함께 메시지가 따라갔다.[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궁금하지?][내일 이 주소로 와. 혼자 와... 하.]...화실.유하는 재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었다.그때 핸드폰이 진동하며 알림이 떴다.무심코 화면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얼굴빛이 변했다.사진 속에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손 한 쌍이 찍혀 있었다.심각하게 훼손된 모습, 뼈마디가 산산이 부서진 흔적이 역력했다.‘보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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