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261 - 챕터 270

464 챕터

제261화

“소유하, 네가 뭔데?”유하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연우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며 담담히 말했다.“얘기하기 싫으면 난 간다.”잠시 유하를 똑바로 노려보던 연우는, 갑자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손에 쥐고 있던 서류 뭉치를 탁 밀어내며 차갑게 내뱉었다.“소유하, 넌 참... 가끔 보면 딱하다 못해 불쌍해.”그 말만 던지고는, 연우는 미련 없이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룸 안엔 유하 혼자만 남았다.‘또 무슨 신경질이람...’유하는 고개를 저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채, 테이블 위 서류를 집어 들고 한 장씩 넘겼다.그런데 마지막 장에 다다르자, 손이 떨려 종이를 붙잡을 수조차 없었다.표정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거짓말이야...’유하는 눈으로 본 것을 부정하듯 속으로 중얼거렸다.‘저 여자 말 따위 어떻게 믿어. 분명 날 흔들려는 속셈이야.’하지만, 다시 속에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정말 다 거짓일까?’팔꿈치를 책상 위에 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그 사이 손가락 틈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유하는 바로 그 당사자였다.7년 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혼란과 치욕이, 서류 속 진실들이 한 줄로 꿰어지는 순간... 짙었던 안개가 걷히듯, 모든 것이 또렷해졌다.지독하고, 잔인하기 그지없었다....두 시간 뒤.밖에서 기다리던 차동석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 유하 때문에 불안해졌다.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문이 먼저 열렸다.얼굴이 창백하고 눈빛은 초점 없이 흔들린 채, 유하가 휘청이는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차동석은 황급히 달려가 부축했다.“유하 씨? 유하 씨!”희미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으나, 대답하려 입을 열기도 전에 눈앞이 까맣게 가려졌다.유하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유하 씨! 유하 씨!”차동석은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재빨리 유하를 품에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오래 앉아 있었던 데다 충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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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유하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자리에 앉아, 묵묵히 그것들을 바라봤다.이것들이 이 짧았던 결혼 생활의 끝에 자신에게 남겨진 전부였다.말할 것도 없이, 너무 보잘것없었다.마치 유하의 그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결혼처럼.‘내 결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웃음거리였어.’유하는 불현듯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가 칼을 집어 들고 와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승현에게 주소와 메시지를 보냈다.[여기서 기다릴게. 할 말이 있어. 혼자 와.]이제, 끝을 내야 했다.승현과의 모든 것을....4월 4일.가로수 가지마다 연둣빛 새싹이 터져 나와 싱그럽게 흔들리고,부슬비가 내리는 공기 속엔 흙냄새가 은근하게 번졌다.주성은 검은 SUV를 몰며, 얼굴에 가득 짜증을 담은 채 그린힐로 향하고 있었다.오늘은 대학이 휴일이라, 원래는 친구들과 술집에서 놀기로 했는데—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승현 형한테 가라. 배울 게 많다.]억지로 떠밀리듯,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흥, 귀찮게 진짜.’처음엔 주성도 승현의 바람기를 캐내 사진이라도 찍어두면 재밌겠다 싶어 흥미가 동했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자 이제는 지겨워졌다.그래도 안 가면, 아버지가 정말 비행기 타고 직접 멱살을 잡아끌고 갈지도 몰랐다.어쩔 수 없었다.주성은 핸들을 세게 움켜쥐며 중얼거렸다.‘짜증 나. 왜 맨날 형한테서 무슨 인생을 배우라는 거야. 배울 게 뭐 있다고.’그러던 중, 전방에서 눈길이 멈췄다.멀리서 보이는 승현의 차.승현은 혼자서 급히 차를 몰고 그린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얼굴에 여유라곤 없고, 다급함만 가득했다.‘애인 만나러 가는 거 아니야? 아니면 뭐가 그렇게 급한데 혼자 움직여?’주성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찾아낸 듯.재빨리 승현의 차를 뒤쫓았다.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꽤 오랜 시간을 달린 승현의 차는 ‘대나무숲’ 주택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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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유하의 손끝에서 칼이 덜덜 떨렸다.그녀는 곁의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서류 뭉치를 움켜쥐어, 남자에게 힘껏 내던졌다.흩날린 종이들이 바닥을 덮었다.“이것들도... 전부 당신 짓이야?”목소리는 떨렸고, 그러나 분명했다.바닥에 흩어진 활자들은 차갑게 진실을 증명하고 있었다.7 년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황당하게 시작되었는지, 얼마나 비참하게 이어졌는지...적나라하고도 끔찍하게.승현은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내려다봤다.그러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우 같은 눈매가 깊이를 알 수 없이 어두웠고, 입술 사이로 뱉은 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내 뒷조사 한 거야?”그 한마디로, 모든 게 확인되었다.유하의 눈가가 붉어졌다. 눈앞의 남자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같은 침대에서 7 년을 함께한 사람이, 사실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괴물 같았다.‘이 사람이... 정말 내가 함께 살던 그 사람이 맞아?’유하의 숨소리가 떨렸다.“당신... 미친 거 아니야?”승현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소유하, 네가 먼저 날 배신했어. 난 그에 합당한 일을 했을 뿐이야.”“내가? 내가 당신을 배신했다고?”마치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농담을 들은 듯, 유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웃음은 곧 크게 번져 몸이 휘청일 만큼 격해졌다.겨우 한 손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짚어야만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붉어진 눈가, 흔들리는 어깨.유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눈가엔 눈물이 차올라 있었고, 매섭게 가늘어진 눈빛은 남자의 얼굴을 곧장 날카롭게 베어버릴 것 같았다.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오승현... 차라리 당신을 처음부터 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창밖에선 바람이 몰아쳤다.굵어진 빗방울이 창문을 세차게 때리며 방 안의 어둠과 뒤섞였다.숨 막히는 정적.숨조차 얼어붙은,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한참이나 호흡을 고른 끝에야, 유하는 간신히 감정을 가라앉혔다.어둠 속에 반쯤 가려진 승현을 더는 바라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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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애초부터, 유하와 승현의 결혼은 하나의 희극에 불과했다.유하는 피식 웃으며 손을 풀었다.싸구려 반지는 손끝에서 미끄러져 떨어졌고, 그녀는 그 반지를 발끝으로 짓이겼다.버려진 휴지처럼, 아무 가치도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마지막으로, 유하는 테이블 위에 남은 한 가지를 집어 들었다.빨간 중절모를 쓴 작은 로봇.그건 결혼 첫날 밤, 승현이 유하에게 건넸던 선물이었다.승현이 직접 만든 것이라 했고, 유하는 그걸 승현이 준 ‘정표’라 믿으며 소중히 간직했다.하지만, 그 안에 깔린 AI 채팅 프로그램은 승현이 직접 코드를 짜 넣은 것이었고,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같았다.즉, 유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대답.단호하고, 명확했다.그게 곧 7년 결혼생활의 전부였다.시작부터 우스웠고, 끝까지 비참했다.그제야 유하는 알았다.그가 내민 이 ‘선물’이, 사실은 가장 잔인한 모욕이었다는 걸.과거의 유하는 알지 못했고, 애써 모른 척하며, 승현이 준 단 하나의 물건이라 여겨 보물처럼 껴안고 살았다.하지만 지금의 유하는 더 이상 속지 않았다.유하는 로봇을 높이 들어올려 그대로 승현에게 내던졌다.쾅!딱딱한 금속이 남자의 가슴팍을 스쳤다가 바닥에 떨어져, 몇 번을 데굴거리다 옆으로 쓰러졌다.빨간 중절모도 힘없이 벗겨져 구겨졌다.그 순간, 모든 게 끝났다.소유하와 오승현.이 결혼은, 이제 완전히 파멸했다.빗소리가 창유리를 때리며 날카롭게 울렸다. 바람도 거셌다. 방 안의 공기마저 떨리는 듯했다.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을까... 유하는 허스키하게 쉰 목소리로, 진심을 토하듯 말했다.“오승현, 난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는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제발 날 놔줘.’유하는 말 없이 이혼 합의서를 테이블 위로 밀어 놓고, 그 위에 펜 하나를 올려놓았다. 표정은 평온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승현은 종이를 보지 않았다. 손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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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천둥이 요란하게 터지고, 번개가 창문을 가르며 흘렀다.어둑한 실내는 정적에 잠겨 있었고, 바닥에 쓰러진 로봇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위태롭게 기울어진 빨간 중절모가 머리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었다.유하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눈물이 차오르며 시야가 흔들렸다.그 순간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환청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너무나 익숙했다.승현의 대학 시절 목소리.그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머릿속이 터져나갈 듯 뒤엉켰다.‘이 결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가 웃음거리였어.’‘그런데 만약, 그 수많은 “사랑하지 않아”가 거짓이었다면?’‘그럼 이 7년은 뭐였던 거지? 대체 뭐가 진짜였던 거야!’유하는 침묵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여보...”승현의 눈매가 흔들렸다.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는 당혹감이 스쳐 갔다.그는 유하를 낮게 불렀다. 유하에게 다가오려 했다.그러나 유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그 순간, 머리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아니, 너무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와 오히려 텅 비어버린 듯했다.유하는 단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숨을 쉴 수가 없어. 여기서 벗어나야 해.’‘아무도 없는 좁은 공간에 숨어서, 문을 걸어 잠그고...’‘한동안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제발 혼자 있고 싶어.’거칠게 뛰어가는 발걸음 뒤로, 급박하게 뒤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하는 본능적으로 거실에 쌓여 있던 옷걸이를 밀어 넘어뜨렸다. 철제와 옷감이 쏟아져 내려, 뒤따라오는 소리를 막아섰다.그사이 유하는 현관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밖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그러나 유하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대로 폭우 속으로 몸을 던졌다.순간, 온 세상이 빗물로 가득 차 유하를 삼켜버렸다....승현이 뛰쳐나왔을 때, 집 앞은 텅 비어 있었다.먹구름 드리운 하늘 아래, 폭우가 쏟아지고 거센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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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승현은 눈썹을 천천히 치켜올렸다.“네 엄마?”그가 피식 웃으며, 잔혹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뱉어냈다.“네 그 엄마, 지금 교도소에...”“오승현!”날카로운 고함이 겹치며 터졌다.다음 순간, 한 손이 승현의 어깨를 거칠게 낚아챘고, 곧바로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쿵!승현의 머리가 옆으로 꺾이며 벽에 부딪혔다.남진의 거친 숨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방금 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던 거야!”오늘, 남진은 원래 유하랑 재윤을 불러내 같이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아 불안한 마음에 직접 찾아온 것이다.설마 이런 꼴을 보게 될 줄 몰랐다.‘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승현이 재윤에게 무슨 말을 내뱉으려 했을까?’‘‘네 엄마는 네 아빠를 죽이고 감옥에 있다’?’‘이 자식, 미쳤구나.’승현은 고개를 돌려, 엄지로 입술에 맺힌 피를 가볍게 훔쳤다. 얼굴에는 태연한 웃음이 걸렸다.“그냥, 사실을 말하려던 거지.”남진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수십 년의 형제 같은 우정이고 뭐고, 더 이상은 신경 쓸 수 없었다.“네가 지금 제정신이야?!”남진의 주먹이 다시 휘둘러졌다.하지만 이번엔 허공에서 막혔다. 승현은 남진의 주먹을 손쉽게 받아내더니, 힘껏 밀쳐냈다.“누가 미친 건지 똑똑히 생각해.”승현의 차가운 시선이 남진을 꿰뚫었다.“배남진. 소유하는 내 아내야. 그런데 유하에게 아이를 갖다붙인 건 무슨 뜻이지? 내가 눈먼 장님인 줄 알아?”남진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거칠게 숨을 고르며 오래 참은 끝에야 낮게 터져 나왔다.“승현아... 넌 정말 재윤이 사정을 몰라서 그래? 내가 다른 방법이 있었겠냐? 내가 뭘 하려는 건지 정말 모른다고?”승현은 잠시 남진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봤다.그러고는 서늘하게 뱉었다.“그 말, 사실이길 바라.”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청산의 집에는 유하가 없었다.그렇다면, 더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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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그날 밤.‘대나무숲’ 주택단지는 새벽까지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결국 승현은 아버지 오광진의 전화를 받고 본가로 불려갔다....본가 서재.탁자 위에는 찻잔 속에 아직 김이 오르는 찻물이 놓여 있었지만,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네가 미쳤구나, 진짜.”얼굴이 굳어진 오광진의 목소리는 분노를 꾹 눌러 참고 있었다.밤새 수십 명을 풀어 뒤집어 놓은 난장판.재벌가의 체면은 온데간데없이 이미 재계 안팎으로 소문이 파다했다.평소 일을 손 놓고 있던 오광진마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승현은 빗물에 젖은 채로 서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 축축이 젖은 머리칼.그러나 눈빛은 오직 광기로 번들거렸다.“생각할 겨를 없습니다. 소유하, 무조건 찾아야 합니다.”탁!오광진의 인내가 무너졌다.손에 잡힌 찻잔이 그대로 바닥에 내던져졌다.“이제 와서 제 마누라 걱정을 해?!”호통이 터지려던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이는 준서였다.“준서야, 아직 이른데 왜 안 자고 있니?”손자가 눈에 들어오자, 오광진의 얼굴은 조금 풀어졌다.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할아버지, 잠이 안 와요.”아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손가락은 초조하게 꼼지락거렸다.“또 꿈꿨어요. 엄마가 물속에 빠져 울고 있었어요. 계속, 계속 울고 있어서... 잠이 안 와요.”마지막 말은 거의 울먹임으로 이어졌다.준서는 곧장 승현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승현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아빠...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는 언제 와요? 제발... 다시는 안 말썽 안 부릴게요. 엄마 데려와 주면 안 돼요?”승현의 눈매가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는 아이의 말에 짧게 답했다.“엄마... 곧 온다.”그러고는 더 머물지 않았다. 대답을 남기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서재를 떠나버렸다.뒤에 남은 건 오광진과 어린 손자뿐이었다.오광진은 무겁게 한숨을 토해내며, 겁에 질려 눈물 글썽이는 준서를 안아 올렸다.“괜찮아, 준서야. 괜찮아. 조금만 자자.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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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오승현, 이제 스스로 속이는 거 그만둬!”임청산의 목소리가 거칠게 터져 나왔다.“과거에도, 지금도! 유하를 먼저 버린 건 너였어! 매번 떠밀고, 매번 몰아붙여서 결국 이렇게 무너진 거야!”“넌 겁쟁이에 불과해! 비겁한 인간!”“당시에 네가 술수만 안 부렸어도, 나와 유하는 이미 부부였을 거다! 우리를 짓밟은 건 바로 너야!”그 말에 승현의 눈이 피로 물든 듯 붉게 물들었다.이성이 산산이 부서졌다.‘감히...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승현은 미친 듯이 달려들어 청산을 바닥에 메쳤다.주먹이 얼굴을 향해 쉼 없이 쏟아졌다.쾅! 쾅!피가 튀고, 살이 터졌다.오씨 가문은 대대로 군인 집안 때문에 어릴 적부터 군사 훈련에 익숙한 승현에게 주먹은 본능이었다.일단 폭주하면 막을 수 없었다.평생 책과 연구실에서 살던 청산은 버틸 수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눌린 채, 무자비한 폭격 같은 주먹질에 피투성이가 되어갔다.옆에서 윤해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러다 정말 죽겠어!’하지만 섣불리 손댔다간 자신이 먼저 날아가리란 걸 알았다.발만 동동 구르며 숨을 삼켰다.다행히 그때 태건이 사람들을 이끌고 뛰어들었다.여러 명이 합세해서 겨우 청산에게서 승현을 떼어냈다.승현은 제압당한 채 한쪽에 붙잡혔고, 청산은 땅바닥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었다.그 순간, 청산이 몸을 비틀며 벌떡 일어나더니, 끌려 나가는 와중에도 승현의 옆구리를 발로 세차게 걷어찼다.쾅!승현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했다.청산은 멀찍이 물러서며, 피투성이 얼굴을 손등으로 훔쳤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번뜩였다.“오승현!!”청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만약 유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넌 나와 끝을 보게 될 거다.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진 끝나지 않아.”차갑게 선언하듯 내뱉은 뒤, 청산은 돌아서 그대로 집을 나섰다. 유하가 이곳에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이상, 시간은 단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청산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유하야, 제발 무사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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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W시 외곽.근교 마을 초입의 한 집 안은 분주했다.주성은 객실 문 앞을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했다.한참 뒤, 방에서 집주인이 나와 고개를 끄덕였다.“젊은이, 여자친구는 몸을 따뜻한 물로 닦아주고 생강차도 조금 먹였네. 옷도 갈아입혔고, 지금은 잠들었어.”그러곤 얼굴을 굳히며 불만스레 덧붙였다.“대체 여자친구를 어떻게 돌본 거야? 이런 비 오는 날씨에 흠뻑 젖게 두다니, 그러다 큰일 나.”주성은 머쓱해졌다.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아, 여자친구 아니고... 사촌 누나요.”원래는 ‘형수님’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 상황에선 아무리 봐도 어색했다.주성은 얼른 말을 바꿨다.집주인은 의심 없이 몇 마디 더 당부하다가 자리를 비켰다.그제야 주성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곁에 걸터앉아 다리를 꼰 채, 이불 속에 꼭 싸여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유하를 바라봤다.마음이 복잡했다.주성은 어제 승현을 몰래 따라다니며 승현의 불륜 현장을 찍어 부모님께 들이밀 작정이었다.그런데 예상 못 한 대형 사건을 목격해 버린 것이다.‘와, 진짜 대박이다. 이런 막장 드라마를 내가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비록 방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형수가 더 못 참고 폭발한 거지.’‘유하 형수가 결국 참다못해 형을 뒤집어엎었네.’주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형이 불행할수록 자기 행복지수는 두 배로 뛰니까.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그 빨간 중절모를 쓴 로봇.주성은 창가에 엎드려 있다가, 유하 손에 들린 그 로봇을 보곤 얼이 빠졌다.너무 낯익은 모습.‘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 에 나오는 로봇이잖아?’순간, 머릿속에 번뜩 드는 대담한 추측.‘설마... 그 로봇이 만화 속 캐릭터의 원형?’‘그럼 유하 형수가 바로 드림 작가?’“설마...”주성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분명 알기로는 형수는 컴퓨터 쪽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언제부터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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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서재 안.승현은 담담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리고 목소리 또한 아무런 기복이 없었다.“잠시 후 하연우를 본가로 데려다 줘. 준서를 하씨 가문으로 보낼 거다. 한동안 잘 돌봐주라시고 전해.”태건은 순간 놀란 듯 눈을 깜빡였으나 곧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승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바깥에 내보낸 사람들... 찾는다는 티 너무 내지 말고, 소문도 퍼지지 않게 해.”“예.”“가 봐라.”...서재 밖.연우는 기분이 한껏 오른 얼굴이었다.“나 비서님, 갑시다.”태건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앞장서 걸었다.차에 올라 본가로 향했다.예상대로 본가에 도착해 준서를 데리러 가자, 태건은 오광진에게 또 한 차례 호되게 욕을 먹었다.그러나 막상 행동을 막지는 않았다.아들의 결정은 불만스러워도 굳이 반대하지 않는 게 오광진의 성정이었다.준서 역시 거부감은 보이지 않았다.원래도 일정한 기간마다 하씨 가문에서 지내곤 했고, 최근 등하교도 줄곧 연우가 맡아왔기에 익숙한 일이었다.다만 차에 오르는 순간, 아이의 표정은 여전히 우울했다.연우는 준서를 품에 안고 달래며, 게임기를 꺼내 함께 버튼을 눌러주었다.한참 웃고 떠드는 사이, 아이의 얼굴 남아 있던 그늘이 조금씩 옅어졌다.태건은 그렇게 연우와 준서를 하씨 가문 대저택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고, 곧장 자리를 떴다....하씨 저택.류정인은 준서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손을 잡아끌고 장난감방으로 데려가 같이 놀았다.거실.하지철은 본래 굳은 얼굴이었으나, 아이를 본 순간 눈빛이 풀렸다.최근 승현이 얼굴을 내밀지 않아 불쾌함과 불안함이 섞여 있었지만, 이렇게 준서를 맡기고 가는 걸 보면 아직 자신들을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그제야 하지철은 차분히 물었다.“오씨 가문에 무슨 일 있는 건가?”어젯밤 승현 쪽에서 크게 움직인 건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다.연우는 시선을 낮춘 채 담담히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며칠 안에 정리될 겁니다.”“흠, 그렇다면 다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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