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유하와 승현의 결혼은 하나의 희극에 불과했다.유하는 피식 웃으며 손을 풀었다.싸구려 반지는 손끝에서 미끄러져 떨어졌고, 그녀는 그 반지를 발끝으로 짓이겼다.버려진 휴지처럼, 아무 가치도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마지막으로, 유하는 테이블 위에 남은 한 가지를 집어 들었다.빨간 중절모를 쓴 작은 로봇.그건 결혼 첫날 밤, 승현이 유하에게 건넸던 선물이었다.승현이 직접 만든 것이라 했고, 유하는 그걸 승현이 준 ‘정표’라 믿으며 소중히 간직했다.하지만, 그 안에 깔린 AI 채팅 프로그램은 승현이 직접 코드를 짜 넣은 것이었고,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같았다.즉, 유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대답.단호하고, 명확했다.그게 곧 7년 결혼생활의 전부였다.시작부터 우스웠고, 끝까지 비참했다.그제야 유하는 알았다.그가 내민 이 ‘선물’이, 사실은 가장 잔인한 모욕이었다는 걸.과거의 유하는 알지 못했고, 애써 모른 척하며, 승현이 준 단 하나의 물건이라 여겨 보물처럼 껴안고 살았다.하지만 지금의 유하는 더 이상 속지 않았다.유하는 로봇을 높이 들어올려 그대로 승현에게 내던졌다.쾅!딱딱한 금속이 남자의 가슴팍을 스쳤다가 바닥에 떨어져, 몇 번을 데굴거리다 옆으로 쓰러졌다.빨간 중절모도 힘없이 벗겨져 구겨졌다.그 순간, 모든 게 끝났다.소유하와 오승현.이 결혼은, 이제 완전히 파멸했다.빗소리가 창유리를 때리며 날카롭게 울렸다. 바람도 거셌다. 방 안의 공기마저 떨리는 듯했다.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을까... 유하는 허스키하게 쉰 목소리로, 진심을 토하듯 말했다.“오승현, 난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는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제발 날 놔줘.’유하는 말 없이 이혼 합의서를 테이블 위로 밀어 놓고, 그 위에 펜 하나를 올려놓았다. 표정은 평온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처럼.승현은 종이를 보지 않았다. 손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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