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231 - 챕터 240

464 챕터

제231화

지난번 그린힐에서의 참혹했던 일 이후, 유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무엇보다 준서가 그 기억으로 씻기 힘든 상처를 입은 건 아닐까 두려웠다.그래서 잠시라도 아이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싶어 찾아왔는데, 방금 본 모습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다.’유하는 마지막으로 준서를 바라보고,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듯 한 번 깜박였다.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교실 안.준서는 연우의 손을 잡고 뛰놀다가, 무심코 시선을 옮겼다.그 순간, 교실 뒷편 창가에 머무른 눈동자가 멈칫 굳었다.심장이 불시에 두근거리며 요동쳤다.준서는 반사적으로 손을 놓고 교실 뒤편 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텅 빈 복도.작은 발걸음이 허공을 치듯 몇 번 부딪히다 멈추었다.아이의 시선은 허공에 매달린 듯 흔들리고, 무언가를 찾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준서의 입술이 저절로 열리며 소리가 흘러나왔다.“엄마...”뒤따라 나온 연우가 준서가 계단 쪽으로 향하려는 걸 붙잡았다.곧 품 안으로 아이를 안아 올리며 다급히 속삭였다.“준서야, 왜 그래?”준서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엄마 본 것 같아요.”연우는 순간 굳어졌다.급히 시선을 들어 주위를 훑었지만, 적막한 복도에는 자신과 준서밖에 없었다.“착각했을 거야. 기억하지? 엄마는 여기 올 수 없잖아.”말이 끝나자마자, 준서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목이 메 소리가 끊겼다.결국 연우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엄마... 보고 싶어.’준서는 며칠째 본가에서 편히 잠들지 못했다.그리고 계속 같은 악몽을 꾸었다.피로 얼룩진 침대 위에 앉아,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엄마는 슬퍼했고, 준서도 함께 슬펐다.그래서 준서는 물었다.“엄마 어디 갔어?”할아버지는 대답했다.“엄마는 일이 있어 멀리 갔다.”하지만 준서는 알고 있었다.‘거짓말이야... 난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어
더 보기

제232화

[와, 대박 터졌다!][하지철이랑 아내, 그 두 사람은 명문가 대표 잉꼬부부 아니었어?][윗분 아직도 인생에서 뭘 모르는 듯...][명문가에서 진짜 잉꼬부부 찾는 게 더 힘들지, 아직도 그런 거 믿는 사람이 있다니 순진하다.][솔직히 뭐든 상품화되는 세상인데, 부부애 마케팅도 하나의 전략이지.][근데 솔직히 하 회장 탓만 할 수 있나? 사모님이 그 세월 동안 겨우 딸 하나 낳았잖아. 아들을 못 낳으니 밖에서 아들 낳아줄 사람 찾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와, 바로 쌍팔년도 사고방식 나왔다 ㅋㅋ][근데 그 혼외 자식도 딸이래. 웃기지 않아?][20년 넘게 숨겨놓은 게 더 놀랍다. 대체 어떻게 감춘 거야?][나만 그런가? 혹시 사생아가 한둘이 아닐 수도 있지 않냐?][그건 아무도 모름...]폭로가 터진 직후, SNS 실시간 검색어는 순식간에 도배됐다.수많은 사람이 추측과 조롱을 늘어놓으며 불구경하듯 달려들었다.HK그룹의 주가는 급락했고, 하씨 저택은 들끓는 소문으로 폭풍전야 상태였다....짝!류정인의 손바닥이 하지철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눈가는 벌겋게 부어 있었고, 그동안 유지하던 고상한 기품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하지철!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여보, 인터넷에 떠도는 그 말 믿어? 다 꾸며낸 거야. 누가 일부러 우리를 흔들려고...”하지철은 다급히 다가와 아내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류정인은 거칠게 밀쳐냈다.류정인은 손에 쥔 핸드폰을 남편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출생증명서랑 사진까지 다 있는데, 뭘 더 속이겠다는 거야! 내가 바보로 보여? 그때 출장 간다고 했던 게 결국 그 여자 만나러 간 거였지?”“나는 이 집안을 위해 진심을 다했어. 내 친정도 당신 뒷배 돼줬고! 그런데 당신이 날 이렇게 짓밟아?”목소리는 날카롭게 갈라졌고, 마지막엔 울음 섞인 절규로 변해갔다.류정인의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그녀는 마치 숨이 막히는 듯 비
더 보기

제233화

하지철은 류정인의 얼굴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냈다.“여보, 걱정 마. 내가 다 잘 처리할게.”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말은 은근히 단호했다.“그 여자는 정말 우연이었어. 나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지. 게다가 지금은 식물인간 상태잖아.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동안 단 한 번도 연락한 적 없었어.”류정인의 눈매는 여전히 날카로웠다.“정말... 단 한 명뿐이야?”“정말이야!”하지철은 오른손을 곧게 들어 맹세하듯 힘주어 말했다.“내가 장담해. 단 한 번뿐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은 내 전부야. 만약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모두에게 버림받고 비참하게 죽을 거다.”류정인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막았다. 눈가에 눈물이 반짝이며 맺혔다.“그런 소리 하지 마.”“여보, 이제 화 풀린 거지?”류정인은 여전히 그를 노려봤지만,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하지철은 안도한 듯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두 입술이 겹쳤고, 손길은 능숙하게 류정인의 옷깃을 젖혔다.처음엔 류정인의 손길이 거칠게 그를 밀쳤지만, 곧 저항은 사라졌다. 하얀 손끝이 소파 옆을 붙잡고 가늘게 떨렸다.방 안에는 숨결이 얽히며 묘한 기운이 가득 번져갔다....뜨거운 부부관계로 아내의 화를 누그러뜨린 하지철은 샤워를 마친 뒤 새 잠옷으로 갈아입었다.전화기를 귀에 댄 채 거실로 내려가자, 연우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딸의 눈은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아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엄마는 지금 어떠세요?”“너희 엄마는 쉬고 있어.”전화를 끊은 하지철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조금 전 아내에게 했던 설명을 똑같이 들려주었다.연우는 목이 멘 듯 말했다.“근데... 진주연까지 우리 집 찾아왔어요. 폰만 열면 친구들이 전부 전화해서 비웃듯 물어보는 질문들로 가득해요... 너무 창피해서.”하지철은 딸을 꼭 안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연우야, 걱정하지 마라. 넌 언제까지나 HK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야.
더 보기

제234화

HK그룹의 스캔들은 하룻밤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가, 이튿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급반전되었다.먼저 HK그룹 공식 계정이 입장을 냈다.[하지철 회장은 딸 한 명뿐이며, 진주연 씨는 하지철 회장의 양녀일 뿐입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경고장 발송 포함)을 예고합니다. 절대 좌시하지 않겠습니다.]공식 입장 아래 댓글 창은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증명 서류랑 사진이 다 있는데 어떻게 양녀라는 말을 함부로 하나’라며 하지철 일가를 향한 성토가 쏟아졌고, ‘불륜은 불륜’이라며 비난을 멈추지 않는 글들도 넘쳐났다. 결국 공식 계정은 댓글 창을 폐쇄했다.‘기업에서 공식 입장을 냈어도 소용없다’라는 체념 섞인 반응과, ‘법적 대응이 진짜 통할까’라는 의심이 교차했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승현의 개인 계정에서 한 줄이 떴다.[하지철 회장은 딸 한 명뿐입니다.]공식 계정도 아니고, 개인 계정이었다. 하지만 오승현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달랐다. 단 한 줄의 글이었지만 파급력은 컸다.승현이 올린 한마디는 시장 분위기를 뒤집는 데 충분했다.네티즌들은 순식간에 승현과 연우의 관계를 다시 해석하기 시작했다. 승현이 연우 편을 공개적으로 옹호한 셈이니, 자연스레 ‘오승현 대표가 연우를 지키려 나섰다’는 식의 로맨틱한 해석까지 나왔다. ‘오승현 대표, 연인 지키려는 사랑꾼’ 같은 제목이 달리기도 했다.여기에 한 방 더 터졌다. MB그룹 계열사인 FK테크가 공시를 올렸다.[FK테크의 하연우 대표는 회사 발행주식의 20%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FK테크의 제2대 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갖습니다. 최대 주주는 오승현 대표입니다.]이 공시는 곧바로 금융·상업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주식시장과 재계 인사들, 그리고 각종 정보 채널이 이 소식을 쟁점으로 삼았다....온라인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유하가 모를 리 없었다.핸드폰 화면에 뜬 FK테크 지분 공시란을 한참 들여다보던 유하는 피식 웃
더 보기

제235화

석진과 유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서로의 가정사에 대해선 굳이 캐묻지 않았고, 일정한 거리를 지켜왔다. 그래서 석진은 유하와 승현이 부부였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덕분에 이런저런 가십을 입에 올릴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사실 웬만한 언론계 사람들은 승현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결혼식조차 치르지 않았고, 결혼 후 7년이 지나도록 아내의 정체를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기자들이 기삿거리를 찾아 끈질기게 파고들었지만, 승현의 아내에 대한 정보는 단 한 줄도 건져낼 수 없었다.게다가 승현은 결혼 후 각종 연회에 늘 다른 여성을 동반했다. 아내에 대해선 노골적으로 무심하고, 때로는 경멸까지 담긴 태도를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론도 더 이상 오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연우를 향한 승현의 고집스러운 태도, 그리고 노골적인 편애는 누가 봐도 진심이었다.이 얘기를 꺼내며 석진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누나, 오승현의 아내라는 분도 참 대단하네요. 남편 애인이 저렇게 성대하게 대접받는데 본인은 얼굴조차 안 비치고... 만약 제게 찾아와서 폭로라도 해줬으면 얼마나 재밌겠어요?]석진은 무려 7년 동안 그림자처럼 숨어 지낸 그 신비로운 사모님이 무척 궁금했다. 만약 지금 모습을 드러낸다면, 오씨 가문과 하씨 가문은 곧장 피바람이 불 게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석진은 입가에 웃음을 흘렸다.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건 석진조차 손쓸 수 없는 영역의 정보였다.‘솔직히 말해서, 만약 그 사모님이 날 찾아와 폭로를 의뢰한다 해도... 감히 기사화할 수 있을까?’하씨 가문 정도는 석진이 과감히 건드릴 만했다. 하지만 오씨 가문은 달랐다. 거대한 산맥 같은 존재였다. 감히 쉽게 도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게다가 지금의 오씨 가문을 이끄는 수장은 바로 오승현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서늘해지는 인물. 그는 권력을
더 보기

제236화

하씨 저택이 또다시 술렁였다.“하지철, 당신 분명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여자가 낳은 천한 것까지 집에 들여앉았다고!”류정인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얼굴이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하지철은 다급히 아내를 끌어안고 저자세로 달래기 시작했다.“여보, 제발 화 좀 가라앉혀. 주연이는 어쨌든 내 딸이잖아. 물론 지금은 법적으로 양녀로 신분을 돌려놨지만, 기자들이 조금만 파고들면 들킬 수도 있어.”“게다가 주연이 엄마는 지금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잖아. 만약 이 사실이 밖으로 새 나가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어?”“나더러 무정한 남편, 무책임한 아버지라고 욕할 게 뻔해. 지금은 겨우 상황을 진정시켜 놓았으니까, 더 큰 파문은 막아야 해.”“그럼, 당신 설마 그 여자 치료라도 해주겠다는 거야?”류정인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그럴 리가 있겠어?!”하지철은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아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그 여자는 오래 못 버틸 거야. 천벌 받아 곧 죽을 거고. 우리는 먼저 주연이만 달래두고, 때가 오면 적당한 이유를 붙여 쫓아내면 되잖아.”“정말이야?”류정인의 눈길에 여전히 의심이 비쳤다.“당연하지. HK그룹은 당신과 내가 함께 지켜온 거잖아. 내가 어떻게 감히 당신 돈을 그런 천한 여자에게 쓰겠어? 괜히 집안에 분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잖아.”그제야 류정인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남편의 어깨를 주먹으로 한두 번 툭툭 치며 화풀이하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하지철은 가슴에 안긴 아내를 달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하씨 저택, 다이닝룸.점심시간이 되어, 드물게 한자리에 모인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때, 또각또각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단아하게 차려입은 진주연이 홀로 나타났다.“아빠, 식사 시간인데 왜 저 안 불렀어요?”주연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자리를 잡은 곳은 연우 바로 옆자리. 미소를 머금은
더 보기

제237화

류정인의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입을 열려던 순간, 주연이 먼저 치고 들어왔다.“근데 오늘 사모님이 제게 하신 말, 이게 사모님의 본모습인가요? 이렇게나 독한 분이었어요? 아무 잘못도 없는 저 같은 어린애조차 용납 못 한다니...”“전 그저 아빠와 오랜만에 밥 한 끼 먹고 싶었을 뿐인데.”말끝을 낮춘 듯하더니, 주연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뀌었다.“물론 이해해요. 사모님도 분노와 서러움이 있겠죠. 괜찮아요. 제가 밥상에 못 앉는다면... 대문 앞에 무릎 꿇고 먹겠습니다.”“앞으로 이 집의 문지기 개가 되면 되죠. 그러면 제 어머니의 죄도 조금은 갚을 수 있겠죠. 그 딸인 저에겐 당연한 일이에요.”그 말을 끝내고, 주연은 천연덕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식탁 위 한가운데 있던 고기 접시를 들어 올렸다. 정말로 대문 앞에 가서 무릎 꿇고 먹을 기세였다.주연에게 체면 따윈 사치였다.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병든 어머니의 약값을 벌겠다고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다. 무릎이 부서지도록 꿇어봤고, 머리가 터져라 조아려도 봤다.‘내게 명예 같은 건 없어. 얼굴 팔리는 게 뭐 대수야.’‘엄마만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주연은 접시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다이닝룸 밖으로 향했다. 뒤에서는 소란이 터졌다.류정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주연의 말이 가슴팍을 후벼 팠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분노에 목이 막혀 숨조차 쉬지 못하다가, 눈앞이 하얘지며 끝내 의자에 쓰러졌다.“엄마!”그제야 연우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하지철의 관자놀이 핏줄이 툭 불거졌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여전히 문 쪽을 향하는 주연에게 고함쳤다.“멈춰! 돌아와서 앉아!”주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철이 다시금 목청을 세워 두 번이나 부르자, 주연은 비로소 걸음을 멈췄다. 입술 끝이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사모님이 쓰러지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하지철은 사람을 불러 류정인을 방으로
더 보기

제238화

밤, 병원.태건이 평소처럼 승현을 찾아와 업무 보고를 마쳤다. 조용히 듣고 있던 승현이 불현듯 입을 열었다.“소유하, 요즘 어떠냐?”태건은 순간 멈칫했으나, 이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승현은 잠시 침묵하다 다시 물었다.“어젯밤에 갔을 땐, 소유하가 뭐 묻지 않았어?”요즘 승현은 병원에 묶여 있으니, 매일 밤 태건을 그린힐로 보내 상황을 살피게 했다. 승현의 질문에 유하가 이미 그린힐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태건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성격을 떠올리며 답을 꾸몄다.“아무것도 안 물었습니다.”“기분은?”“괜찮았을 겁니다.”승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눈매에 어둡고 깊은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결국 씁쓸하게 웃었다.“소유하가 내 머리를 가격하고, 병원에도 얼굴 한번 안 비추는데, 기분은 좋다 이거야?”태건은 두어 초 침묵하다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이번 주말, 임청산 회사 상장 기념 연회 초청장이 왔습니다. 대표님도 참석하시겠습니까?”승현은 차갑게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내 꼴이 이런데,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아?”태건은 승현의 이마를 흘끗 보았다. 방금 풀린 거즈 아래,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선명했다. 그는 다시 말을 삼켰다....‘대나무숲’ 주택단지.저녁 식사 후, 재윤을 재우고 유하도 막 자리에 누우려던 찰나였다.노크 소리가 나서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청산이 문 앞에 서 있었다.“유하야, 회사 상장 기념 연회가 내일 밤에 있어. 혹시 내 파트너로 같이 동석해 주겠어?”‘연회? MB그룹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게다가 최근 청산에게 들은 얘기로는, 오승현의 회복도 빠르다던데...’‘혹시 그 사람도 나타나는 건 아닐까?’‘그 사람은 보고 싶지 않아.’유하는 반사적으로 거절하려 했다.그때 청산이 덧붙였다.“그 사람은 오지 않아.”유하는 눈을 크게 뜨며 멈췄다. 청산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유야하. 사실 너에게 늘 묻고 싶은 게 있었어. 네가
더 보기

제239화

사람들은 잠시 청산의 주위를 빙 둘러서서 덕담을 나누었다. 그러다 곧 곁에 선 여인을 향한 호기심이 터져 나왔다.“이분은 누구시죠?”“안녕하세요. 저는 소유하라고 합니다. 임 대표님의 친구예요.”청산이 입을 열기 전에, 유하가 먼저 침착하고 단정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했다.청산은 옆을 바라보다가, 미소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소유하 씨는 저와 함께 전공 공부를 한 후배입니다. 기술 쪽에서 상당히 뛰어나죠. ‘CN 대형 언어 모델’ 개발에도 큰 도움을 준 친구예요.”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놀람과 감탄으로 물들었다.“그럼 소유하 씨와 임 대표님이 기술 파트너 관계인가요?”“그렇진 않습니다.”청산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지금 소유하 씨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어요. 현재는 디자이너로 활동 중입니다. 오늘은 단순히 시간이 맞아 이렇게 자리를 함께한 거죠. 앞으로 혹시 뵙게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그럼요, 당연히...”“어쩐지 분위기가 남다르시다 했더니, 예술가셨군요...”청산이 굳이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자, 사람들도 눈치껏 화제를 돌렸다. 잠시 뒤, 인파가 흩어지고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그제야 유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까 고마워요. 근데 사실 선배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오늘 이 자리는 어디까지나 청산의 파트너 자격으로 동행한 것이었다. 유하는 애초에 이 자리에서 고객을 만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작업실을 잠시 접고, 여름 시즌 국제 쇼 준비에 모든 힘을 쏟고 있었으니. 무대에만 오를 수 있다면, 좋은 고객은 자연히 따라올 거였다.청산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 그냥 얼굴만 익히자는 거야. 네 실력은 결국 작품이 말해주겠지만, 네가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가길 바랄 뿐이지. 그리고... 나는 늘 네 곁을 챙기는 게 익숙해져서.”유하는 복잡한 눈빛을 드러냈다. 뭐라 답하려는 순간,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임 대표님, 오랜만입니다.”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다
더 보기

제240화

“안녕하세요, 임 대표님. 예전부터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연우는 눈부신 미소를 띠며 청산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은은한 파문이 번져,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빼앗길 만큼 매혹적이었다.“안녕하세요.”청산은 늘 그렇듯 온화한 표정으로 가볍게 손을 맞잡았다가 금세 놓았다.몇 마디 형식적인 대화를 나눈 뒤에도, 청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름조차 물어오지 않자, 연우가 직접 입을 열었다.“저는 FK테크 대표이사, 하연우라고 합니다.”“음...”연우는 마음속으로 미리 준비해 둔 정보들을 떠올렸다. 이번에 오기 전, 그녀는 청산을 세세히 조사했다. AI 분야에 지나치리만큼 몰입한 천재, 그리고 대학 시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평가는 늘 공통적이었다.천재. 말이 없다. 잘생겼다. 온화하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에게 거리를 둔다.그래서 지금처럼 청산이 말수가 적은 모습은 연우에게 전혀 불쾌감을 주지 않았다.‘천재들은 대개 특이하지. 그런 성격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연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귀 옆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했다.“임 대표님은 고리대학교 출신이시죠? 저도 대학 시절 인새대학교에 다녔는데, 두 학교가 마주 보고 있었어요.”“예전에 두 학교가 함께 교류 행사를 했을 때, 고리대 친구들에게서 임 대표님 피아노 연주 실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청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과찬입니다.”연우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임 대표님은 늘 겸손하시네요. AI 쪽은 제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저도 음악에는 조금 관심이 있어서요.”“하프에는 자신 있는데 피아노는 익숙하지 않거든요.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혹시 조금만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청산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그 속에 얕은 거리가 분명히 느껴졌다.“죄송합니다. 피아노를 치지 않은지 이미 오래라 손이 굳었습니다.”연우가 다시 무언가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 청산의 표정이 서늘하게
더 보기
이전
1
...
2223242526
...
47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