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Bab 291 - Bab 300

673 Bab

제291화

‘임청산? 무슨 일이지?’유하는 순간 멍해졌다.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 더 컸다. 지난번 남자 탈의실 사건 이후로 태건에 대한 두려움과 불쾌감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도 그 낯선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하지만 청산은 이번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대학교 3학년인 유하는 전공 실습에서 청산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거리를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이 일을 안 하겠다고? 말도 안 되지.’“뭐야, 또 왜?”유하는 차갑게 내뱉었다. 더 길게 대화할 생각조차 없다는 태도였다.태건은 그 표정을 보고도 말없이 종이봉투를 내밀었다.“도련님이 주라더라. 오늘 밤에 데리러 온대.”말을 끝내자마자 태건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돌아섰다.남겨진 유하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종이봉투를 열어 보았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안에는 하얀 시스루 원피스가 들어 있었다. 거의 비칠 정도로 얇고, 잘게 박힌 큐빅이 빛을 흩뿌렸다. 걸치기만 해도 아무것도 가려지지 않을 듯한 옷이었다.‘저 색골... 오승현 머릿속엔 도대체 이런 것밖에 없는 거야?’계약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어 가는데, 싫증은커녕 오히려 점점 더 노골적이었다. 처음의 어설픔은 사라지고, 요즘은 기상천외한 요구가 이어졌다.‘이솔 말대로라면 괜찮은 거래라고 했는데...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유하는 종이봉투를 집어 드는 순간 손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당장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싶었다. 실행에 옮기려던 찰나, 문득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그래?”세미나실 반쯤 열린 문 앞에 청산이 서 있었다. 호기심과 염려가 섞인 눈길이 유하를 향했다.“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어디 아픈 거야?”“아, 아뇨, 아니에요.”유하는 종이봉투를 움켜쥐고 식은땀을 흘렸다.“저, 저 갑자기 좀 배가 고파서요. 선배님, 그 코드 부분은 오후에 고쳐서 다시 여쭤봐도 될까요?”“응, 그래.”청산은 부드럽게 대답했다가, 잠시 망설인 뒤 말을 이었다.“나도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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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그날 밤, 승현은 전화를 받자마자 별다른 설명도 없이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길로 바로 가버렸다.그때 유하는 태건의 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그 후 며칠 동안, 승현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일도 없었고, 심지어 태건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그 시절의 유하는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차라리 잘됐다. 오승현이 바쁘면 바쁠수록 나한테는 더 편한 거지.’‘저 사람 상대하려면 진짜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정신력이 필요한데...’찾아오지 않는 게 훨씬 나았다.시간은 흘러 계약 연애의 기한도 점점 줄어들었다.유하는 프로젝트 학습에 몰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그러다 계약 연애가 끝나기 일주일 전, 청산이 이끄는 프로젝트가 드디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날, 팀원들과 함께 식당에서 회식하던 중이었다.우연히 승현과 자주 어울려 농구하던 학생들이 복도에서 시끌시끌 떠들며 지나갔다.“야, 승현은 왜 이렇게 오래 안 보이냐? 농구도 안 하고,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고.”“농구는 무슨, 이제 다시는 안 올걸.”“뭔 소리야?”“너희 몰라? 승현 형이랑 연우 누나 미국으로 유학 갔잖아. 벌써 일주일 넘었어. 앞으로 몇 년은 안 돌아올 거래.”“연우 누나?”“설마 저번에 회식 때, 승현 형이랑 같이 왔던 그 예쁘던 선배? 맞은편 인새대학교 다니던 미녀 수재 말이야?”“그 여자 맞아.”“이름이 하... 맞다, 하연우!”“와, 진짜 예쁘더라. 듣자 하니 집도 엄청 잘 산다던데? 얼굴도 예쁘지, 전공도 잘하지, 집안도 좋지. 어쩐지 승현 형이 그동안 여자친구 얘기 하나 없더라니,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 정해져 있었던 거네. 그것도 완벽한 사람으로.”“마음 정한 정도가 아니지.”“...”‘연우 누나’라고 부른 학생은 아는 게 더 있는 듯,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둘이 어릴 적부터 약혼한 관계였어. 소꿉친구로 같이 자라왔지. 이번에 같이 유학 간 건 사실상 신혼여행이나 다름없어. 아마 돌아오면 바로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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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너지? 유하 맞지?]여자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감히 전화까지 해? 승현이 지금 샤워 중이니까 전화 못 받아. 앞으로 다시는 전화하지 마. 남의 약혼자 뺏는 쓰레기! 나쁜 년!]“아니, 전 진짜 오승현이 약혼한지 몰...”유하의 변명은 끝까지 나오지 못한 채, 짧은 ‘뚝뚝’ 하는 통화 종료음으로 잘려버렸다.저녁노을이 내려앉은 거리 한복판, 유하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귀에서 윙윙 소리가 울렸다.‘나쁜 년?’단 한 번도 자신에게 붙을 거라 상상조차 못 했던 단어가, 날카롭게 꽂혀왔다.거대한 무력감과 터무니없는 억울함이 한꺼번에 덮쳐왔다.‘대체 왜...? 나는 정말 몰랐는데...’‘오승현이 약혼자 있다는 사실을 숨긴 거잖아...’‘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해?’유하는 목구멍이 메어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질문조차 할 용기를 잃은 듯, 대로변 한복판에서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그러나 한참이 지나서야 유하는 겨우 숨을 고르며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숨이 막히듯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며, 이솔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유하에게는 승현의 약혼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이솔밖에 없었다.강씨 가문도 분명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오씨 가문과는 급이 달랐다.이솔 역시 구체적인 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한번 알아봐 줄게’라는 대답만 건네왔다.되려 왜 그런 걸 묻느냐는 의아한 반응에, 유하는 얼버무리듯 몇 마디로 상황을 가려야 했다.통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계속 상황을 곱씹을수록, 억울함이 목까지 차올랐다.‘이건 내가 삼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더러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이대로 흘려보낼 수는 없어. 반드시 확인해야 해.’‘그리고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나, 못 버텨.’노을빛이 사라지고 어둑해지는 거리, 유하는 이를 꼭 물며 한 걸음 내딛었다....강라시.이른 아침, 유하와 주성은 작은 산골 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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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눈발이 거세게 흩날리고 있었다.구불구불 이어진 산길 한쪽에 검은 SUV가 멈춰 서 있었다.주성은 조수석에 기대앉아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고산증에 창백한 얼굴로 어지럼 증세를 견디던 주성은, 유하가 내민 물병을 손으로 밀어냈다.“잠깐만요... 조금만 버티면 돼요.”유하는 두툼한 패딩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이미 꽤 올라왔어. 무리하지 마. 여기서 쓰러지면 진짜 곤란해.”하지만 주성은 이를 악물고 버티려 했다.유하는 더 말싸움할 기운도 없었다.강제로 물병을 입에 갖다 대자, 결국 주성은 억지로 뜨거운 물을 한 모금 삼켰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어때, 아직 어지러워?”“조금 괜찮아졌어요.”주성은 고개를 젖히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아니, 제가 체력도 좋고 운동도 하는데... 저는 이 모양이고, 형수님은 여전히 멀쩡하세요?”“글쎄... 통뼈라서 그런 거 아닐까?”유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됐어. 네가 쓰러지면 큰일이야. 아직 갈 길 멀잖아.”괜한 주성의 자존심을 건져주듯 말한 뒤, 유하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시간을 다투듯 서둘러 나아갔다.중간에 유하가 너무 지쳐 잠깐은 주성이 운전대를 잡았다.그는 두통약을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시며 간신히 버텼다.결국 새벽이 오기 전, 두 사람은 겨우 목운에 도착했다.주성이가 미리 예약한 그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둘 다 더는 버틸 힘도 없이 침대에 쓰러졌다....고리대학교.이솔은 여전히 유하의 부탁을 받아 승현의 약혼 이야기를 수소문하고 있었다.그 사이, 유하는 끝없는 갈등 끝에 결심을 내렸다.다시 한번, 직접 오승현에게 연락하자.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내가 왜 억울하게 나쁜 년이 돼야 하는데!’‘처음 시작할 때 분명 물어봤잖아. 약혼녀가 있으면, 애초에 말했어야지!’‘대체 왜 거짓말까지 하면서 날 이런 더러운 상황에 끌어들인 거야?’‘오승현, 날 원수로 생각하는 거야? 이렇게까지 기만하다니!’단풍잎 흩날리는 숲길에서, 유하는 해외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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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게다가 ‘유이’라는 이름...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귀에 익은 듯, 가슴 어딘가를 건드렸다.“선배님, 지금 저 뭐라고 부르셨어요?”유하는 멍하니 물었다.“유이야.”청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단정한 얼굴에 묘한 아픔을 드리웠다.“너무 오래 지나서 날 기억 못 하는 건가?”‘유이...?’유하는 얼굴이 굳은 채, 눈앞의 남자를 처음으로 똑바로 바라보았다.청산의 곱고 단정한 이목구비가 서서히 유하의 기억 속 어느 소년의 얼굴과 겹쳤다.잊고 지냈던 오래전 여름날의 풍경이, 갑자기 유하의 눈앞에 선명하게 되살아났다.유하의 열두 살 여름방학이었다.부모의 구박 속에 늘 배가 고팠던 유하.그때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누에 키우기가 유행이었지만, 좋은 뽕잎은 구하기 어려웠다.그래서 유하는 근처 폐공장에 있는 오래된 뽕나무에 올라가 뽕잎을 따곤 했다.그녀는 깨끗이 씻은 뽕잎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대신 작은 용돈이나 과자를 얻어 배고픔을 달랬다.그날도 평소처럼 나무에 올라갔을 때였다.어디선가 조용히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호기심에 고개를 내밀다 발이 미끄러졌다.쿵!유하는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정확히는 그곳에 있던 소년 위로 곤두박질쳤다.“아, 오빠...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뽕잎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유하는 허겁지겁 일어나며 사과했다.소년이 고개를 들었다.햇살이 뽕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며, 새하얀 셔츠를 입은 그의 얼굴을 금빛으로 감싸고 있었다.방금 울었는지 눈가와 콧등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모습은 유하가 이야기 속에서 읽은 요정보다도 더 눈부셨다.유하는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소년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소년의 미간이 살짝 구겨지고, 눈가에 맺힌 눈물이 몇 방울 또르르 떨어졌다.‘나 때문에 다친 건가? 혹시 뼈라도 부러진 건 아니겠지?‘만약 오빠 부모님이 오면... 나 때리는 거 아냐?’‘맞으면 진짜 아플 텐데... 의자에 맞아도 피 나는데...’갑작스러운 두려움이 밀려오자 유하는 발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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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가랑비가 흩날리고, 단풍잎이 빗물에 젖어 천천히 흩어졌다.새하얀 우산 아래, 유하는 고개를 조금 들어 올렸다.남자의 청초한 얼굴이 시야 속에서 서서히 흐릿해지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유하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떠올라 입술이 떨렸지만, 목이 메어 나오지 않았다.그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숨이 막히듯 아렸다.한참 만에, 유하는 겨우 한 마디 말했다.그 말은 마치 온 힘을 다 짜내어 겨우 건져 올린 것 같았다.“오빠, 저 너무 아파요.”그 순간은 본능이었다. 어릴 적 가장 초라한 자신을 이미 본 적 있는 이 사람 앞에서, 감추거나 가릴 이유가 없었다.청산의 눈가가 단번에 붉어졌다.더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는 조용히 몸을 낮춰 빗속에서 떨고 있는 유하를 품에 안았다.차갑게 젖은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리며, 아무 말 없이 다만 온기로 위로했다.비 내리는 숲속,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꼭 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유하는 가장 큰 위로를 얻었다.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리며, 다시 살아 숨 쉬는 듯한 힘이 스며들었다....연구소 휴게실.샤워를 마친 유하는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 머리를 닦고 있었다.얼굴엔 아직도 어색함과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선배님...”청산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 청산이라고 불러. 아니면... 오빠. 예전에도 늘 그렇게 불렀잖아.”그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 한 잔을 건네고, 자연스럽게 유하 손에서 수건을 받아 들었다.직접 머리를 닦아주려고 했지만, 유하는 깜짝 놀라 몸을 빼며 고개를 저었다.“아, 아뇨. 제가 할게요.”청산은 굳이 고집하지 않았다.대신 헤어드라이어를 건네며 말했다.“머리 꼭 잘 말려. 안 그러면 감기 걸려.”유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청산의 말대로 머리를 말렸다.머리가 반쯤 마르자, 그녀는 조심스레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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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모든 게 유하에겐 아직 입에 담기 힘든 이야기였다. 말을 잇지 못해 머뭇거리던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유하는 황급히 가방 속을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자는 이솔이었다.청산을 향해 짧게 양해를 구한 뒤, 전화를 받았다.[유하야, 네가 부탁한 거 알아봤어.]이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하연우라는 애, 사실 오승현이랑 꼭 약혼 관계라 하긴 어려워. 그냥 어릴 적에 집안 어른들이 장난처럼 오갔던 소꿉놀이 같은 약속이지.][정식으로 약혼식을 올린 것도 아니고, 둘이 공식적으로 사귀었다는 얘기도 들은 적 없어.]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솔이 덧붙였다.[근데 뭐, 확실하진 않아. 어쨌든 둘이 같이 해외 유학 간 건 사실이니까. 아마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정해지지 않겠어?]통화가 끝나자, 유하의 가슴 속에서 무겁게 눌러오던 돌덩이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아직 약혼식도 없었고, 공식적인 관계도 아니었다.‘그렇다면... 난 남의 관계에 끼어든 게 아니야.’‘애초에 난 몰랐고, 오히려 속은 쪽이 나잖아.’‘진짜 나쁜 건 오승현이지. 그 인간이 날 속이고 끌어들인 거잖아!’유하의 눈가가 환하게 빛났다. 어느새 다시 호흡이 트이고, 얼굴에도 생기가 돌아왔다.전화기를 내려놓자, 청산은 눈앞에서 달라진 유하의 표정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없이 고개를 떨구던 그녀가, 눈동자에 빛을 담아 환히 웃고 있었다.“괜찮아졌어요. 이제 다 괜찮아요.”유하의 잡초 같은 강인한 생명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청산도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넌 참... 한결같다.”유하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무슨 뜻인지 몰라 눈웃음을 지었다....그 후, 유하는 모든 어두운 기억을 훌훌 털어냈다. 곧장 다시 활기를 되찾아 청산과 함께 프로젝트에 몰두했고, 눈부신 속도로 성장했다.학교 안에서 마주하는 유하의 얼굴은 점점 더 빛나기 시작했다.청산과 유하의 사이도 점점 가까워졌다. 특히 음식과 풍경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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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사찰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계곡처럼 움푹 팬 곳에 금빛 지붕과 붉은 기와집들이 층층이 겹쳐 올라가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가자 붉은 가사를 입은 신도들이 서둘러 지나갔고, 좁은 골목 사이에서는 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스쳐 지나는 법당마다 은은한 향냄새가 흘러나와 코끝을 간질였다.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머리 위로 독수리 한 마리가 커다란 날개를 펴며 울음을 내질렀다.독수리는 푸른 하늘을 가르며 산마루 쪽으로 사라져 갔다.순간, 여기가 인간 세상인지 극락정토인지 모호해졌다.유하는 언덕 위에 서서 독수리가 사라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발을 옮기려는 찰나였다.등 뒤에서 낮고 온화한 목소리가 울렸다.마치 영혼까지 잠잠해지는 듯한 울림이었다.“혹시, 저 독수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십니까?”유하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멀리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 한 분이 눈을 꼭 감은 채 서 있었다.얼굴은 따뜻하고 자비로웠다.그 물음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저었는데, 스님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시선이 닫힌 두 눈에 머무른 순간, 유하는 깨달았다.잠시 망설이다가, 확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내뱉었다.“다비장...?”유하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불가의 장례 풍습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의식을 치르는 공간 가운데에 시신이 놓이고, 승려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진다.잠시 후, 하늘에서 커다란 독수리 떼가 내려와 남은 육신을 쪼아 먹는다.겉으로 보기엔 잔혹해 보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자비로운 행위라 믿었다.영혼은 하늘로 오르고, 남은 육신은 독수리의 먹이가 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그것이 삶의 마지막 선행, 마지막 회향이라 여겼다.육신은 사라져도, 영혼은 이어진다.대자연과 다시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이 땅의 생사관이었다.스님이 불현듯 물었다.“시주님, 직접 가서 보고 싶으십니까?”유하는 고개를 저었다.“괜히 방해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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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유하는 멍하니 굳어 있었다. 차에 올라서도 표정은 여전히 얼떨떨했다.주성이 옆에서 운전하다 못 견디고 물었다.“형수님, 왜 그래요? 오늘 절에 다녀온 게 무슨 일 있었어요?”유하는 고개를 저었지만, 주성에게 딱히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주성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냥 던져본 말이었으니까.컨디션을 되찾은 그는 한쪽 손에 육포를 쥔 채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마치 세상이 자기 것인 양 신나 보였다.검은 SUV는 천천히 길을 달렸다.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하는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어제 거의 하루 종일 운전했고, 아침에도 서둘러 다녀온 탓에 이제는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나도 혹시 탈이 난 걸까...’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가방에서 두통약을 꺼내 삼켰다.이어서 패딩과 무릎담요를 덮고, 눈을 감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또 어느 해의 겨울.주말을 맞아 프로젝트도 잠시 숨을 고르던 때, 유하와 청산은 교외로 맛집 탐방을 나섰다가, 곧바로 캠핑까지 이어졌다.함께한 사람들도 많아 분위기는 유난히 활기찼다.밤이 깊어지자, 누군가 준비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어둠을 가르고 터져 오르는 색색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유하는 고개를 들어 올려 그 장관을 바라보았다.하늘에 폭죽이 터질 때마다 얼굴빛이 화사하게 비추었고, 눈동자도 그 불빛을 닮아 반짝였다.그 순간, 눈앞에 은빛 불꽃이 ‘팍’ 하고 터졌다.놀라 눈을 크게 뜬 유하의 시야에는... 손에 폭죽을 들고, 옆에서 웃고 있는 청산이 있었다.“같이 해볼래?”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장난스레 웃었다.“와... 이거 어디서 구하셨어요?”유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오늘은 큰 폭죽만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불꽃놀이까지 준비돼 있을 줄은 몰랐다.어릴 적 늘 멀리서 남들이 하는 걸 보기만 했지, 정작 직접 해 본 건 처음이었다.두근거림에 설레며 폭죽을 받아 쥐자, 금세 은빛 불꽃이 터져 나와 작은 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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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해 질 무렵, 기숙사 건물 모퉁이.유하는 앞을 가로막은 승현을 올려다보았다.예상치 못한 조우에 놀랐지만, 더 큰 건 혼란스러움이었다.1년 만의 재회.가까이 다가와 보니, 승현의 얼굴은 전과 달랐다.잘생긴 이목구비 위로 지친 기색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어딘가 무너져 내린 듯한 파편 같은 기운이 묻어 있었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아니,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우린 이제 남보다도 더 못한 사이잖아.’생각을 다잡은 유하는 몇 걸음 물러섰다.차갑게 표정을 가다듬고는 아무 말 없이 지나치려 했다.둘 사이에는 더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다.그러나 승현의 손이 유하의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에 유하는 벽에 몸을 부딪쳤다.순식간에 다가온 승현의 체온이 눈앞을 뒤덮었다.도망칠 수 없는 좁은 공간, 유하는 벽과 승현의 몸 사이에 갇혀버렸다.그녀는 심장이 순간적으로 철렁 내려앉았다. 이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안 돼... 누가 보면? 오승현은 약혼자가 있는 사람이잖아.’‘누가 이런 걸 목격이라도 하면, 어떻게 설명해야 해?’다행히도 이곳은 건물 뒤편 모퉁이, 어두워서 눈에 띄지 않았다.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자, 유하는 겨우 숨을 내쉬었고, 곧장 팔에 힘을 주어 승현을 밀쳐냈다.그리고 낮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떨며 말했다.“오승현, 미쳤어?”“읏...”승현은 짧게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찌푸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몸을 숙여, 유하의 어깨와 목덜미 사이로 파고들었다.“가만히 있어. 잠깐만 안겨 있어.”낮고 흐린 목소리.그 속에는 낯선 허약함과 이상한 절박함이 뒤섞여 있었다.유하는 눈살을 찌푸렸다.‘뭔가 이상해... 이건 내가 알던 승현이 아닌데...’하지만 목덜미에 와 닿는 뜨겁고 거친 남자의 숨결이 점점 더 성가시게 파고들었다.결국 유하는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강하게 밀쳤다.이번엔 승현이 쉽게 밀려났다.승현의 몸이 휘청하며 떨어지자, 유하는 즉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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