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Chapter 671 - Chapter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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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1화

순백의 병실 안.유하가 돌아가고 나자 조금 전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던 박영심은 거짓말처럼 기분이 가라앉았다. 손도 대지 않던 간식을 집어서 괜히 화풀이하듯 침대 옆을 지키고 있던 오광진의 손에 툭 쥐여 주고, 그대로 부드러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으로 몸을 말아 넣었다. 머리까지 꼭 덮은 채였다.오광진은 그런 박영심의 변덕스러운 기분을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그 작은 투정이 좋았다. 젊은 시절 박영심 특유의, 아무 계산도 없는 순수한 제멋대로. 오씨 가문과 박씨 가문 양가 어른들의 사랑과 응석 속에서 자란, 그 나이의 박영심만이 가질 수 있었던 투명한 고집이었다.하지만 유학을 떠나고, 코시오를 만난 그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박영심은 예민해졌고,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재고 확인하게 되었다.그래서 오광진은 박영심이 과거를 잊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괜찮다고 느꼈다. 어차피 오광진과 박영심이 함께 쌓아 온 기억은 유아기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기억이 아무리 점차 사라지면서, 설령 어린아이 시절까지 잊어버린다 해도, 오광진은 늘 박영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터였다. 두 사람은 언제나 함께였다.과거도 그랬고, 미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다.“자기야,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어?”오광진은 간식을 내려놓고 다가가 이불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 반쯤 내리다 말았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박영심이 약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다만 여기서 더 잡아당기면, 박영심은 더 삐져서 달래기 어려워진다. 손을 멈춘 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간식이 맛없어? 아니면... 유하가 좀 더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있으면 싫어?”“나 거짓말했어.”이불 속에서 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오광진은 잠시 굳었다. 그 순간, 박영심이 갑자기 이불을 걷어차듯 들추며 고개를 내밀었다. 코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썹은 축 늘어져 있었다. 기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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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2화

‘그럼... 결국 내가 위험을 어머님 곁으로 끌고 간 거잖아?’‘내가 어머님을 해친 거야!’‘어머님이 이걸 아시면 나한테 실망하실까?’‘혹시 나를 싫어하시면 어쩌지?’그런데 유하가 더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그 향, 혹시 문제 있는 거 아닐까? 코시오가 이런 걸 보냈다는 건 뭘 노린다는 거야? 코시오는...”“소유하!”청산이 낮게 호통치듯 불렀다. 동시에 허둥대는 유하의 손을 꽉 잡고, 한 글자씩 눌러 말하듯 단단하게 말했다.“일단, 아직은 다른 근거 없이 네 추측이 전부야. 그리고 향에 진짜 문제가 있었으면, 이렇게 오래 지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없어.”“또 하나, 우리는 지금 이걸 알게 됐고, 코시오 쪽은 우리가 안다는 걸 모르잖아. 그러면 확인하고 검증할 시간이 충분해.”‘맞아. 당황해 봤자 아무 소용 없어. 해결해야 해.’‘해결. 해결.’유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그리고 관심이 깊을수록 심장이 더 두근거렸지만, 몇 번의 호흡이 지나자 요동치던 박동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았다. 머리도 빠르게 차분해졌다.“그 향수... 내가 가져갔을 때 먼저 검사하고, 그다음에 어머님께 쓰게 해 드린 거였어.”그때는 문제를 찾지 못했다.그래도 유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 향수 조향 레시피만 구할 수 있으면 좋겠어.”유하는 스스로 다시 확인해야 했다. 정말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 물건이 코시오의 손을 거쳤을 가능성이 떠오르는 순간, 유하는 도저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지명훈이 가져온 거라고 했고, 자기 지도교수가 직접 만든 거라던데...”말이 끝에서 멈췄다. 유하는 이제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지명훈이 진짜 코시오랑 엮여 있으면... 지도교수도... 설마 코시오?’‘가능성이 없진 않아.’‘그리고 지명훈 문제는...’시차 따위는 신경 쓸 수 없었다. 유하는 소성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가 가고 나서야 나른하면서도 어딘가 들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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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3화

상대를 자극해 경계심을 자극하면, 그다음부터는 더 단서를 잡기 어려워진다.그걸 알면서도 유하는 박영심의 상태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오늘 상황만 놓고 보면, 코시오가 박영심을 데려가지 못한 건 외부 요인이 컸다. 병원 주변의 통제 수준만 봐도 오씨 가문 쪽에서 이미 철저히 대비해 두었다는 게 분명했다. 다만 예상 밖이었던 건 코시오의 광기였다. 차를 몰고 그대로 절벽으로 돌진하다니.그 높이에... 차량 폭발까지.이성적으로만 보면, 코시오는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유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하지만 코시오가 정말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할 인간일까?설령 오씨 가문에서 코시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오승현이 ‘사라졌다’ 해도, 그렇다고 오씨 가문 자체가 무너진 건 아니었다. 상대가 대비하고 있을 거라는 계산을 전혀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박영심이 갑자기 외출한 시점도 이상했다.누가 보더라도 위험 요소가 뻔한 상황인데, 코시오는 결국 나타났다.매복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텐데도,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움직였다.코시오는 정말 죽음을 무릎쓴 걸까?이상하게도... 코시오의 고성에서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유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코시오 같은 인간이라면, 스스로 죽을 마음을 먹었다면 반드시 박영심을 끌고 갔을 것이다.혼자 죽겠다는 선택을 할 리가 없다.코시오는 철저한 변태였다.그런데도 박영심을 데려가지 않았다.그렇다면 코시오가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을까?수년을 집착해 온 대상인데?“진짜 귀찮아 죽겠네. 코시오 이 변태는 포기라는 걸 배울 줄도 모르나 봐. 어머님께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도 다 알고, 어머님이 자기 안 좋아하는 것도 알잖아. 그런데 뭘 더 집착해. 진짜 사람 질리게 하는 놈이야.”유하의 불평을 듣던 청산이 피식 웃었다.“그러니까 그런 인간들이 변태인 거지.”“그런 인간들?”유하가 멍하니 되물었다.코시오 말고 또 누가 있다는 거지?“아니야.”청산은 더 말하지 않고 웃으며 유하의 손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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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4화

밤이 점점 깊어 가고 있었다.레스토랑 내부는 조명이 화려했지만 손님은 많지 않았다. 특히 구석 자리에는 세 사람뿐이라, 식기 소리조차 들릴 만큼 조용했다. 겉으로 보기엔 각자 식사에 집중하고 있는 듯했지만, 테이블 위의 공기는 묘하게 팽팽했다.유하는 젓가락을 쥔 채 멍하니 굳어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배설아에게서, 박영심에게서 맡았던 것과 완전히 같은 향기가 나는지...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없는 공간이라서인지, 그 향기는 지나치게 또렷했다.분명히 같은 냄새였다. 착각이나 우연으로 넘길 여지는 없었다.‘그런데 왜? 배설아가... 코시오랑 아는 사이야? 둘이 어떤 관계인 거지? 서로 손잡고 있는 거야?’‘아니면 이번 약혼식에서 어머님이 끌려갈 뻔한 일에도 배설아가 관여한 건가?’‘그런데 배설아는 지금 오승현이랑 손잡고 있잖아?’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엉켰다.‘대체 뭐야, 이 상황은...’유하는 정말로 설아를 붙잡고, 속에 쌓인 의문을 전부 쏟아내고 싶었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가 이미 최악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설아가 순순히 말해 줄 리도 없고, 설령 말한다고 해도 유하가 그걸 믿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만약 배설아가 정말로 코시오랑 엮여 있다면...’‘지금 여기서 묻는 순간,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걸 스스로 들춰내는 꼴이잖아.’‘완전히 노출이야. 경고만 해 주는 셈이지.’‘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넘어가자니...’마음속에서 수없이 저울질하는 사이... 유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쫓아낼 타이밍도 놓쳤다.오히려 유하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설아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느긋하게 한 입 먹고는, 옆눈으로 유하를 바라봤다.“뭐 해, 안 먹어?”설아는 자신이 불청객이라는 자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설아를 바라보다가, 인상을 찌푸린 채 몸을 옆으로 조금 옮겼다.“더워요. 자리 좀 옮기실래요?”‘레스토랑에 에어컨도 잘 나오는데, 이렇게 붙어 있으면 답답하지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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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5화

유하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이상했다. 뭔가 계속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멍청한 것.”설아가 툭 던지듯 욕하고는 결국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자기 젓가락을 집어 들더니 툭 돌려서 눈앞에 있는 소고기볶음 접시를 가리켰다.“나 이거 먹을래.”그러면서 설아의 시선이 유하에게로 향했다.‘왜 나를 봐?’유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먹고 싶으면 자기가 집어먹으면 되잖아.’유하는 바로 받아칠 생각으로 입을 열려 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설아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유하 쪽으로 던졌다.청산이 반사적으로 그걸 받아 들고 유하에게 화면이 보이게 건넸다.그 순간, 유하의 표정이 확 변했다.화면 속에는 유리병에 밀봉된 검은 장미 한 송이가 담겨 있었다.유하의 눈에 너무도 낯익은 물건이었다.유하의 머릿속에, 코시오의 고성이 떠올랐다.정원 가득, 집 안 곳곳을 장식하던 검은 장미들.짙고 깊은 흑색 속에, 자세히 보면 피처럼 어둡게 가라앉은 붉은 기운이 숨어 있는 희귀한 품종.시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장미.화면 속 장미는 그때 보았던 것과 완전히 같았다.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것은, 지명훈이 말했던 향수에 쓰인 ‘특별한 장미 품종’이라는 말이었다.‘설마... 이 장미가...?’“이거 어디서 구했어요?”유하는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설아는 유하를 한 번 흘끗 보더니, 다시 젓가락으로 소고기볶음 접시를 톡톡 두드렸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아까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나 이거 먹고 싶다고.”유하는 아무 말 없이 설아를 바라봤다.잠시 후, 결국 젓가락을 들었다. 고작 한 입 집어 주는 것뿐이었다.그런데 유하의 젓가락이 접시에 닿기도 전에, 다른 젓가락이 더 빨랐다. 청산이 자연스럽게 소고기 한 점을 집어 설아의 그릇에 놓으려는 순간이었다.그러나 설아의 젓가락이 그걸 가로막았다.설아는 청산을 똑바로 보며 차갑게 말했다.“네가 집은 건 안 먹어. 역겨워.”“배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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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6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유하는 그 물건을 원했다.그 점만은 분명했다.설아는 웃으며 젓가락 끝으로 접시를 가볍게 두드렸다. 말투는 느슨하고, 태도는 거리낌 없었다.“고작 장미 한 송이야. 네가 원하면 당연히 줄 수 있지. 근데 너도 알잖아, 내가 무슨 헌신적인 성인군자도 아니고.”“전에 말한 제안, 제대로 한 번 생각해 봐. 내가 아직 이 ‘동맹 놀이’에 흥미를 느끼고 있을 때 말이야. 서둘러.”그 말을 남기고 설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몸을 일으키면서 살짝 치켜든 턱 아래로 드리운 속눈썹 너머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청산을 무심하게 훑어봤다. 그리고 아주 가볍게 비웃는 소리를 냈다.‘고작 임청산 하나 이겼다고 뭐가 달라져?’‘약혼일 뿐이잖아. 소유하가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니고.’‘우리 남진이한테도 아직 기회는 있어. 누가 결국 소유하를 차지할지는 두고 봐야지.’하지만 레스토랑 문을 나서며, 설아의 얼굴에는 금세 냉기가 내려앉았다.‘한심한 배남진.’‘집안을 위해서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든, 이 정도 일 하나 제대로 못 해?’‘결국은 내가 나서야 하잖아. 진짜 쓸모없는 놈.’...레스토랑을 나선 뒤.유하와 청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있었던 일을 굳이 다시 꺼내지도 않았다.다만, 이런 소동을 겪고 나니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 지금 리조트로 이동하기엔 무리였다.청산은 차를 몰아 ‘대나무숲’ 주택단지 방향으로 향했다.계획했던 리조트 휴가는,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었다.깊은 밤, 도로에는 사람도 차도 드물었다. 가로등만이 길을 따라 늘어서서 아스팔트를 황금빛으로 비추고 있었다.조수석에 앉은 유하는 반쯤 내려진 창밖을 바라보며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멍하니,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유하는 계속해서 조금 전의 일을 곱씹고 있었다.그 검은 장미.유하는 분명 그 장미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설아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고, 터무니없기까지 한 협력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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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7화

유하는 차 문을 열고 가볍게 내려섰다.다시 몸을 돌려 한 손으로 문을 짚은 채, 상체를 살짝 숙여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청산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눈꼬리가 예쁘게 휘어졌다.“가자. 조금만 빨리.”“갑자기 왜?”청산이 묻는 사이, 유하는 이미 차에서 내려 있었다.유하는 그대로 청산의 손을 잡아끌었고,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심야의 거리.대부분의 상점은 셔터를 내린 상태였고, 거리엔 적막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딱 한 곳만 불이 켜져 있었다. 외관은 소박하고, 어딘가 오래된 느낌의 작은 꽃집이었다.간판 위 LED 띠 조명은 몇 군데가 고장 나서,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겨우 간판의 이름을 읽을 수 있었다.‘순간의 꽃집’이었다.조금 이상한 이름이었다.딸랑-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가게 안은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간을 꽉 채운 꽃향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유하는 안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불렀다.“사장님, 계세요?”“네, 있어요, 있어요!”꽃이 빽빽하게 놓인 진열대 뒤에서, 장미로 가득한 통을 안은 여자애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동그랗게 묶은 번 머리였고, 햇볕에 그을린 듯한 얼굴에는 옅은 갈색 주근깨가 몇 점 흩어져 있었다. 작업복 같은 멜빵바지를 입은 모습이 유난히 발랄했다.청산과 유하를 보자마자, 여자애는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었다.“와, 두 분 진짜 잘생기고 예쁘네요. 커플이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꽃 사러 오셨어요? 천천히 보세요.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할인도 해 드릴게요.”“오늘 약혼했어요.”청산이 웃으며 대답했다.“와... 진짜요? 축하드려요!”여자애의 눈이 더 환하게 빛났다.“그럼 삼십 퍼센트 할인! 아니, 그냥 삼분의 일만 받을게요. 고르시면 제가 꽃도 좀 더 얹어 드릴게요. 진짜 축하드려요.”“아니에요, 괜찮아요.”유하도 웃으며 말했다.“그렇게까지 하시면 손해잖아요. 이 시간에 와서 혹시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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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8화

청산은 반사적으로 그걸 받아 들었다.그러나 손에 닿은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꽃가지를 쥔 손가락만 가늘게 떨렸다.“유하야...”“왜, 또 내가 속 좁고 소심하다고 할 거야?”유하는 시선을 슬쩍 피한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대답이 없었다.한참 동안 기다려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자, 유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청산을 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안해졌다.“뭐가, 안 좋아?”왜 이렇게 아무 반응도 없지.“그럴 리가.”청산이 낮게 웃었다. 너무 좋아서 오히려 말을 잃은 쪽이었다.“그냥... 좀 놀라서.”청산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 위에는 은빛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대나무 마디를 형상화한 은반지.마디마다 촘촘히 박힌 다이아몬드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부서지는 별처럼 반짝였다.“미안.”유하는 코끝을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오늘 하루가 너무 정신없어서... 방금에서야 생각났어. 우리 아직 약혼반지도 교환하지 않았다는 거.”조금 머쓱한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늦긴 했지만, 아직 자정은 안 지났잖아. 그럼 아직 끝난 거 아니지.”유하는 그렇게 말하며 반지를 집어 들었다.반지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청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따라 나갔다가, 정신을 차리듯 멈췄다.그러나 중간에서 유하가 그 손을 붙잡았다.손가락 하나하나에 닿는 감촉이 또렷했다.부드럽고, 따뜻하고, 너무도 현실적이었다.청산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가, 이내 잠잠해졌다.“유하야.”청산의 목소리가 조금 잠겼다.“기억하고 있었어?”청산은 유하가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다.오늘이 두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오늘이 약혼식이라는 사실조차.하지만 그건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촉즉발의 문제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청산은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청산은 잘 알고 있었다. 이 관계도, 이 약혼식도, 결국은 자신이 계산하고, 밀어붙이고, 간신히 얻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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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9화

유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선배는... 좋은 사람이잖아.”‘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야.’청산의 마음속에서 말이 겹쳤다.“그럼 만약에...”청산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언젠가 네가 내가 네가 생각하는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때도 넌...”말끝이 흐려졌다.‘그때도 이렇게 날 대할까?’‘그때도 변하지 않을까?’‘아니면... 날 놓아버릴까?’“왜 그런 가정을 해?”유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었다.유하는 청산의 말을... 세상 모든 연인과 부부가 시간이 지나며 변할 수 있다는, 아주 보편적인 불안으로 받아들였다.유하는 그런 장면을 이미 많이 봐 왔다.자신의 이전 결혼도 그중 하나였다.사람은 변한다.그리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기도 한다.그래서 유하는 오히려 의외였다.청산처럼 자신감 있고,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 이런 막연하고 붙잡기 어려운 고민을 품고 있다는 게.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인데도.유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말했다.“사실 나도 감정이나 관계에 능숙한 편은 아니야. 근데 이런 건... 세상에서 제일 확실하지 않은 일이잖아.”유하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우리가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전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그렇다면... 그냥 지금을 같이 걸으면 되지 않을까? 매 순간,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현실을.”그리고 덧붙였다.“선배는 지금 진심으로 나를 대하고 있잖아.”그 말은 지금 유하가 보고 있는 청산의 모습이었다. 달빛 아래에서 미소 짓는 얼굴을 바라보며, 청산은 꽉 쥐고 있던 주먹을 조금 풀었다.‘지금 이 순간을 살자...’“그럼, 끼운다?”유하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 결심한 듯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아까의 긴장과 불안은 눈에 띄게 옅어져 있었다.유하는 청산의 왼손을 들어 올렸다. 아직도 조금 굽혀져 있던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주며, 반지를 중지에 조심스럽게 끼웠다.천천히, 확실하게.심장과 가장 가깝게 이어진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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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0화

‘뭐가 다르다는 거지?’청산이 벨벳 재질의 보석함을 꺼내 들고도 한참 동안 열지 않자, 유하의 호기심은 점점 더 커졌다.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대체 어떤 반지이길래 선배가 이렇게 망설여?’이러다 정말 자정을 넘기겠다 싶었다.유하는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끼워 줄 거야?”그 말에 청산은 이를 한 번 꽉 물었다가 천천히 보석함 뚜껑을 열었다.유하는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이상한 디자인이어서가 아니었다.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화려했다.보석함 안에는 왕관 형태의 은반지가 놓여 있었다.섬세하게 배열된 다이아몬드들이 왕관의 윤곽을 따라 촘촘히 박혀 있었고, 중앙에는 거꾸로 매달린 하트 형태의 물방울 같은 붉은 루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크고 선명했다.가로등과 달빛을 함께 받은 보석은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빛났다.유하는 말 없이 숨을 삼켰다.루비 다이아몬드 반지였다.유하가 멍하니 있는 사이, 청산은 조심스럽게 반지를 꺼냈다.그리고 공중에 멈춰 있던 유하의 왼손을 잡아, 중지 위에 살며시 얹었다.그제야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유하야, 이 반지 이름은... ‘왕관’이야.”‘왕관?’‘왜 그런 이름을 붙였지?’이상하게도 그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유하의 시선은 반지 중앙의 루비에 오래 머물렀다. 그 사이, 청산은 천천히 반지를 중지에 끼워 주고 있었다.유하의 시선이 서서히 올라가, 청산의 얼굴에 닿았다.그리고 거기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단정하고 잘생긴 얼굴 위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과 진지함이 동시에 깔려 있었다.순간 유하는 착각했다.이건 약혼반지를 끼워 주는 장면이 아니라 왕관을 씌워 주는 의식 같았다.‘정신 차려, 소유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유하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그 모습을 본 청산의 손이 잠시 굳었다. 목소리에도 긴장이 스쳤다.“마음에 안 들어?”이 반지에는 청산의 말로 할 수 없는 생각들이 꽤 많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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