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321 - 챕터 330

464 챕터

제321화

밤, 작은 여관.“의사 선생님, 정말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저희 누나 요즘 두통이 점점 더 심해지고, 가끔은 없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고... 심하면 그대로 쓰러지기도 합니다. 단순히 피로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주성이 다급하게, 침상 곁에서 유하의 맥을 짚고 있는 한의사에게 물었다.한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일어섰다.약상자에서 인센스 스틱 하나를 꺼내 머리맡 향로에 꽂고 불을 붙였다.옅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은근한 향내가 방 안에 번졌다.향이 고르게 타오르자, 한의사가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시오. 단순한 피로나 환경 탓만은 아니오. 오래전부터 남아 있던 병증이 이번에 드러난 것뿐, 오히려 나아지는 길목에 들어선 것이니, 이번에 눈을 뜨고 나면 한결 편안해질 것이오.”주성은 순간 멍해졌다.“병증이요? 무슨 병 말씀입니까? 형수님한테 그런 게 있었다고요? 지금까지 보기에 멀쩡했는데...”돌이켜 보면, 이 마을에 들어오고부터 몸이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한의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업보라는 것이지요...”그 한마디만 남기고, 약상자를 챙겨 방을 나섰다.주성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침상 곁에 앉아 유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잠들어 있는 유하는 꿈속에서도 이따금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괴로운 듯 몸을 움찔거렸다.그러다 은은한 향내가 코끝에 감돌자, 찌푸려 있던 미간이 조금은 풀렸다.유하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너, 날 사랑해?”어둠에 잠긴 방 안.희미한 빛만 스며드는 공간에서, 유하는 승현의 몸에 매달린 채, 남자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몇 번째인지 모를 질문이었다.그 순간, 유하의 눈에 선명한 두려움이 스쳤다.이번만큼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사랑해! 나... 당신 사랑해! 사랑한다고!”유하는 승현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한 치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으려, 떨리는 목소리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사랑해야 해. 망설이면 안 돼.주저하는 순간, 빛은 또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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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승현은 유하의 눈빛 속에 일렁이는 찰나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오히려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난 좋아해. 잘 치기도 하고. 내가 가르쳐 줄게.”말이 끝나자, 승현은 유하를 무릎 위로 끌어앉혔다.두 손이 유하의 손등을 덮어 감싸더니, 그대로 건반 위로 이끌었다.덜컥- 덜컥-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차례로 울렸다.유하의 손가락은 사소한 떨림에도 자유롭지 못해서 빼내려 했지만, 승현의 손이 더 깊이 눌렀다.피아노에서 어딘가 익숙한 음이 흘러나왔다.유하의 머릿속 어렴풋이, 누군가 자신을 위해 치던 멜로디가 겹쳤다.‘그만... 제발, 그만 치라고...’그리고 가슴이 죄어들었다.이어서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마치 그 절규가 전해진 듯, 갑자기 건반 소리가 멎었다.다음 순간, 몸이 휙 돌아가며 유하는 그대로 건반 위에 눌렸다.철컥- 날카롭고 불협한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승현은 흐느끼는 유하를 내려다보았다.남자의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지고, 눈동자는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젖어 있는 여자 눈가에 입술을 대었다.유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안 돼... 제발... 하지 마... 무서워.”“겁내지 마.”승현의 입술이 그대로 유하의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유하의 흐느낌을 거칠게 막아섰다.텅 빈 피아노실 안.한동안 건반은 무질서하게 짓눌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흘렸다.그 사이... 유하의 깨진 숨결과 흐느낌이 뒤섞여 흘러나왔다.하얀 살결이 차가운 건반 위에 눌렸다.피아노 소리는 흐트러지고, 유하는 허덕이며 시선을 잃었다.‘뭔가... 뭔가가 내 안에서 뜯겨 나가고 있어... 어둠으로 빠져들고 있어...’희미하게 남은 자아조차 무너졌다.그 순간, 유하는 확실히 알았다.‘난... 피아노가 싫어.’그날 이후로, 피아노는 유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시간이 지나 두려움이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다시는 손끝조차 대지 않았다.싫어하는 게 아니라, 몸속 깊숙이 새겨진 공포였다.이후 유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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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또 한 줄기 불꽃이 밤하늘 높이 치솟았다.귀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승현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유하, 나 좀 안아 줘. 제발 안아 줘. 나... 너무 힘들다.”그 한마디가, 유하의 귓가에서 불꽃과 함께 터졌다.‘이건 뭐지... 두려움? 본능? 아니면 지금까지 뼛속에 새겨진 공포?’‘아니면... 설날 밤이 너무 외로워서?’머릿속은 이미 혼란으로 뒤섞여 분간할 수 없었다.유하는 느릿하게 몸을 돌려, 두 손으로 승현의 얼굴을 감싸 올렸다.불꽃이 내는 빛이 창가를 물들이며, 남자의 얼굴을 더욱 또렷하게 비췄다.언제나 강하고 완벽하기만 했던 눈매 속에, 처음 보는 깨진 그림자 같은 나약함이 드러났다.촉촉이 젖은 눈동자에 불꽃이 비쳤다.부서져 내리는 듯한 아름다움이었다.유하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승현의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간이 정지한 듯한 순간.한참 후, 조심스럽게 승현의 볼에, 콧등에, 입술이 아닌 살짝 스치는 입맞춤을 남겼다.서로의 숨결이 섞였다.뜨겁지도, 욕망도 아닌, 단순한 온기.‘위로... 그저 위로일 뿐이야.’승현의 길고 짙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러나 평소처럼 탐욕스럽게 파고들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유하의 손길을 받아냈다.마침내 유하가 승현을 끌어안았다. 가만히 등을 두드리고,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귓가에 속삭였다.“새해 복 많이 받아. 내가 옆에 있을게.”창밖에서는 불꽃이 연달아 터졌다.형형색색의 빛이 방 안 가득 퍼졌다.승현과 유하는 서로를 놓지 않고 꽉 끌어안았다.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오직 두 사람뿐인 듯했다.승현은 유하의 품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눈을 감았다.평화로웠다. 고요했고, 안도였다.‘역시 틀리지 않았어. 설령 꿈이라 해도, 내가 붙잡은 건 내 거야.’‘평생 내 거야. 난... 다시는 놓지 않을 거야.’승현은 더 깊게 유하를 껴안았다. 마치 유하의 몸이 뼛속까지 각인되기를 바라듯.그날 밤, 승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창가에 나란히 앉아 불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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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승현은 이미 유하 쪽으로 수많은 걸음을 내디뎠다.이번에는 반드시 유하가 승현 쪽으로 걸어와야 했다.승현을 향해, 스스로....유하는 눈을 떴다.입술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이름.“승현?”그러나 대답은 없었다.순간, 유하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밖에 있나? 늘 있던 사람인데... 어디 간 거지?’급히 솜털 슬리퍼를 신고 집안을 돌았다.별장 구석구석을 뒤져도, 그 남자의 그림자조차 없었다.승현이... 사라졌다.유하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쑤시는 관자놀이를 움켜쥐며, 그는 결국 대문 앞에 섰다.쿵!문은 너무도 쉽게 열렸다.유하는 멍하니 굳었다.문밖은 겨울의 정원.바람에 실려 온 흙 내음, 빗방울에 섞인 싸늘한 눈발이 스쳐 갔다.그녀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앞으로 향했다.그러나 막상 문턱을 넘어가기 직전, 유하는 움찔하며 발을 거둬들였다.‘안 돼... 나가면 승현이 화낼 거야. 화내면... 그다음은...’머릿속이 찌르르 울리며 통증이 몰려왔다.유하는 머리를 부여잡고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한참을 숨 고르듯 버티다, 겨우 몸을 일으켜 안으로 돌아왔다.그리고 필사적으로 집안을 뒤져, 결국 침대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찾아냈다.그녀는 떨리는 손끝으로 전화를 걸었다.신호는 이어졌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이 느낌... 이거... 설마 또 버려진 건가? 또...?’불길한 기억이 고개를 들려는 순간...삐삐삐...귀를 찢는 벨 소리.무심코 화면을 밀자, 거친 여자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소유하! 이 썩을 계집애야, 감히 우릴 속여? 당장 안 기어 오면 네 교수, 네 학교 친구들 전부 다 알게 해 줄 거다!][부모 버린 천하의 불효막심한 년이라고, 학교 앞에서 내가 목매달아 줄 테니, 네년은 평생 지옥에서 살아라...]말은 점점 더 추잡해졌다.유하는 손을 떨며 통화를 끊었다. 머릿속이 빙빙 돌고 속이 뒤집혔다.결국 욕실로 달려가 토악질을 쏟아냈다.한참 후, 그녀가 겨우 진정됐을 때, 토사물 속 붉은 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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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승현의 목소리는 차갑고 낯설었다. 말끝마다 날 선 칼이 되어 유하의 가슴을 찔렀다.그녀는 숨이 막히고, 피가 거꾸로 치밀었다.울컥 치미는 구역질에 유하는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거울 속 여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그리고 어깨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간호사가 다급히 들어와 의사를 불렀다.짧은 문진과 약 처방.“움직이지 말고, 병실에서 좀 쉬세요. 절대 화내지 마시고요.”침대에 누운 유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방금까지 이어지던 따스한 일상, 함께 웃고 밥을 먹고, 같은 꿈을 꾸던 순간들이... 모두 한순간에 부서진 환영 같았다.곁의 탁자 위, 핸드폰은 쉬지 않고 울렸다.유하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퇴학해라. 돌아와서 결혼해라. 넌 이제 선택지가 없다.’부모의 메시지... 숨을 끊으려는 듯 잔혹하게 몰아붙였다.‘다들... 다들 날 몰아붙이는 거야.’‘나한테 남은 길은 아무것도 없는 거야?’유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쾅!창밖에서 천둥이 터졌다.그 순간, 귓가에 낯선 목소리가 스쳤다.“소유하, 왜 오승현은 원할 땐 너를 붙잡고, 필요 없을 땐 버려도 되는 건데? 왜 그 사람은 모든 걸 쥐고 흔드는데, 넌 아무 말도 못 하는데? 왜!’정신이 아무리 짓눌리고, 고립당해도, 유하의 뼛속 깊은 곳에 남은 고집만은 꺼지지 않았다.긴 정적 끝에,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결국 코트를 걸쳤다.바깥은 눈발 섞인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유하는 택시를 불러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승현과 태건이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그때 흘려들었던, 승현 부모의 거처.‘오승현이 날 버려도 상관없어. 그럼 난... 그 부모를 찾아가면 돼.’‘이제... 다른 방법이 없어. 더는 끌려가지 않으려면,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해.’...밤.폭우가 쏟아졌다.굵은 빗줄기가 지붕과 마당을 마구 때리며, 그 속에 묻히듯 둔탁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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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유하.”“유하, 여기야. 여기.”“유하.”붉은 옷을 걸친 유하가 깊은 밤을 걸었다.코끝에 은은한 향기가 맴돌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부름이 귓가에 맴돌며 그녀를 이끌었다.밤은 점점 짙어졌다.유하는 한 발, 또 한 발, 소리에 끌리듯 발걸음을 옮겼다.가까워진다.더 가까워진다.그 순간, 손목이 묵직하게 끌려 내려갔다.찰칵-쇳소리가 밤을 찢었다.유하는 고개를 숙였다.언제부터인가 손목엔 굵은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피부를 파고드는 압박감에 숨이 막혔다.‘이게... 언제...? 어디서 온 거야?’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산도, 돌길도, 하늘도 사라지고, 남은 건 오직 농밀한 어둠뿐이었다.그때, 뒤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터졌다.“하나, 둘, 셋... 천국! 하하하! 나 천국이야! 내가 이겼다!”유하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뒤편, 따스한 전등 불빛 아래.낡은 옷을 입은 단발머리 여자아이가 분필로 그린 사방치기 칸을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마지막 칸, ‘천국’에 닿자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곁의 아이들도 손뼉을 치며 함께 웃었다.불빛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그 여자아이는 조금 자라 있었다.친구들과 꽃줄을 엮으며, 또다시 웃었다.“내가 이겼지!”불빛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중학교 교실.여자아이는 좀 더 자라서 중학생이 되었다.국어 선생님이 단상 위에서 크게 외쳤다.“소유하 학생, 이번 그림 대회에서 일등을 차지했습니다!”교실 가득 박수가 쏟아졌다.소녀 유하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내가 이겼다!”소녀 유하는 도의 수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전국 상위권 성적으로 고리대학교에 합격했다.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각종 대회에서 국가 단위 상을 휩쓸며, 그야말로 ‘승리’를 써 내려갔다.따스한 불빛이 꺼졌다가 다시 켜질 때마다, 그것은 곧 또 한 번의 승리를 의미했다.소녀 유하는 그렇게 자라났다.허름한 옷차림에서 화려한 옷매무새로, 상처투성이의 어린 시절에서 반짝이는 청춘으로.가시밭길을 딛고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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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소녀 유하는 늘 거기에 있었다...유하는 사라져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시야를 가득 채우던 어둠이 천천히 흩어졌다.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머리 위로 별빛이 쏟아졌다.유하는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개를 높이 들었다.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살아 있어. 나, 아직 살아 있잖아.’별빛은 은하수처럼 흘러내리며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유하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자유로운 공기가 폐 속을 가득 채웠다.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유하는 울면서도 웃었다.심장이 터지도록 거친 산길을 내달렸다.붉은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밤하늘의 별빛 아래에서 불길처럼 타올랐다.불사조의 날갯짓처럼, 타오르는 생의 기운.유하는 달리고 또 달리며 외쳤다.“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소유하야! 들려? 나는... 소유하라고!”그 울부짖음은 웃음이 되었고, 웃음은 곧 울음이 되었다.기쁨과 해방감이 뒤섞인 눈물이 흘러내렸다.광막한 벌판에서 바람은 세차게 불어와 유하의 머리칼을 흩날리고 붉은 옷자락을 감싸안았다.그 바람은 마치 유하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여자의 외침을 실어 나르며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끝없는 들판과 산하 위로, 여자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져갔다....“형수님!”“형수님 어디 갔어요, 형수님!”“형수님, 어디 갔었어요? 저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눈 떠 보니까 형수님 안 보여서, 혼이 나가버리는 줄 알았다니까요.”“우리 둘이 같이 왔는데, 혼자 돌아가면 저 우리 부모님께 맞아 죽어요!”유하는 주위를 빙빙 돌며 쉴 새 없이 떠드는 주성을 확 잡아끌었다.“먹을 거 있지? 나 배고파.”식당 안.커다란 갈비뼈를 들고, 고기를 뜯는 유하의 손길은 빠르고도 우아했다.주성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뭐지... 뭔가 좀 이상한데.’“형수님, 머리 안 아파요?”유하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고개만 휙 저었다.“아니, 근데 이렇게까지 잘 드세요?”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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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답?’이번 여행의 이유는 단 하나였다.수많은 고승이 모여 있는 해선사, 그곳에서 유하는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답’을 찾으려 했다.하지만, 아직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유하는 이미 답을 찾아버렸다.그것은 다름 아닌 진정한 자신을 되찾은 것.그렇다면, 이 여행은 계속해야 할까?눈앞에서 긴장한 듯 눈치를 보는 주성을 바라보다가, 유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어서 손에 들린 소뼈를 크게 뜯어내고, 고기를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가야지, 왜 안 가. 난 끝까지 갈 거야. 거기서 어떤 사람을 기다려, 그리고... 끝을 봐야지.”살점을 씹어 삼키는 여자의 표정은 묘하게 단호했다.주성은 그 기세에 순간 움찔했다가, 이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그럼 다행입니다! 여행이라는 게 목적지가 있고, 거기에 도착해야 의미가 있는 거죠. 끝이 있어야죠.”그의 첫 장거리 드라이브였다.목적지가 없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근데 형수님, 누구랑 끝내려는 겁니까? 어떤 끝이에요?”주성은 못 참고 물었다.유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으니,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그녀는 잠시 주성을 바라보다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그만 불러. 형수님 같은 소리 하지 마. 나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지금까지는 애가 그냥 철없고 장난스럽게 부르는 거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하지만 이제는 더 견딜 수 없었다.주성은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끔뻑였다. 곧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의자에 몸을 기대고,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낀 채 다리를 꼬았다.“안 부르면 되죠, 뭘 그렇게 무섭게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그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얼굴에는 약간 당황한 표정이 비쳤다.유하는 그저 빙긋이 웃더니, 접시에서 살이 많은 뼈를 하나 골라 주성의 그릇에 툭 얹어주었다.그러곤 자기 그릇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같이 뜯자. 많이 먹어.”주성은 말없이 그녀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식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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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그 형제라는 이들의 차는 역시 길에서 멈춰 섰다. 짧은 시간 안에 고쳐질 기미가 없자, 야생 생존 전문가들은 두 젊은 남자가 야영지에 텐트를 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이런 상황에서는 장난칠 마음도 없었다. 대충 요기를 하고 각자 텐트로 들어가 쉬었지만, 진짜로 잠드는 사람은 드물었다.유하와 주성은 함께 남아 있었다.주성은 유하에게 호신용 칼 하나를 건네고, 자신은 망치를 들었다. 둘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호신용으로 산 것이었다.만약 이 둘이 무서운 야생동물을 만난다면 이 정도로는 역부족일 테지만, 손에 쥐고 있으면 그나마 위안은 되었다.당연히 교대로 지키기로 했지만, 둘은 마음을 놓지 못해 항상 한 사람은 깨어 있었다.밤이 깊어지자 먼저 잠들었던 유하가 깨어났다. 이제 유하가 밤을 지킬 차례였다.유하와 함께 지키고 있던 이는 야생 전문가 김진호였다. 전문가가 함께 있으니 안심이 됐고, 한참 지켜보다가 야영지 쪽에서 소리가 들리자 김진호가 먼저 가서 확인하겠다고 나섰다.“여기서 불 지키고 있어요. 이상하면 소리 질러요.”김진호는 그렇게 말하고 어두운 나무숲 쪽으로 걸어갔다.유하는 잠시 기다렸지만 김진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이 밀려와 유하는 일어나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 둥근 쇠 파이프로 유하의 뒤통수를 눌렀다. 차갑고 단단한 물체가 머리에 닿자 유하의 시야가 순간 흐려졌다.뒤에서 낮고 흐릿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움직이지 마. 소리 지르지 마.”유하의 온몸이 곧바로 곤두섰다. 목구멍에 막힌 비명이 맴돌았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녀는 총을 본 적도 다뤄 본 적도 있는 데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좋지 않다는 감각이 즉시 왔다. 여기 누가 총을 갖고 있는 걸까?국경 근처의 스파이인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인가? 왜 하필 자신을 노리는 걸까?유하의 머리 뒤에서 차가운 숨이 스쳤다. 다른 목소리가 하나 더 들렸다. 복수의 사람이 왔다는 뜻이었다. 공기의 온도가 내려가듯 유하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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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이름?”“소유하요.”“나이?”“스물아홉이에요.”“성별?”“여자요.”“어디서 왔지?”“W시에서요.”“어디로 가던 중이었나?”“해선사요.”“왜 숲에 들어간 거지?”“여행 관광버스가 숲을 지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몇 대가 고장이 나서...”군인이 말을 끊었다.“몇 대?”“네 대요.”“계속해.”유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남은 열세 명이 그 자리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임시로 캠프를 꾸렸어요. 그런데 도중에 두 남자가 나타났고...”“후반부에 야간 순찰을 제가 서고 있었는데, 그중 한 남자가 총을 겨누며 저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고 했고, 분명히 목표는 저 하나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희미한 전등 불빛이 깔린 작은 방.철제 책상 뒤로 몇 명의 군인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군복 매무새는 흠잡을 데 없이 가지런했고, 표정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책상 맞은편,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이는 바로 유하였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흙투성이, 눈 밑에는 깊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녀 역시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총성이 먼저였다.쫓기던 발걸음이 그 소리에 멈춰 섰고, 본능처럼 몸을 웅크린 순간, 유하는 군의 경계 구역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뒤에서 달려오던 사람들의 발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순찰 중이던 군인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가 번뜩이며 경고탄이 울렸고, 조금만 늦었더라면 이미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죽는 줄 알았어...’유하는 그 순간의 공포를 다시 떠올리자, 여전히 손끝이 차갑게 떨렸다.사정을 확인한 군인들은 그녀에게 곧바로 두건을 씌우고, 지금 이곳으로 데려왔다. 이후로 이어진 건 끝없는 심문이었다.군인들은 교대로 들어왔다.얼굴만 달라질 뿐, 계속 같은 것을 물었다.동선, 시각, 이유, 그날 밤의 모든 상황...단 한 줄이라도 맞지 않으면,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되었다.‘빼먹으면 안 돼. 잘못 말하면 안 돼...’유하는 애써 머릿속을 끌어모아, W시를 떠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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