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341 - 챕터 350

464 챕터

제341화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승현이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내가 7년 전엔 너무 친절했나 봐. 괜찮아, 앞으로 시간 많잖아. 자, 산이라 온도가 더 빨리 떨어진다. 집에 가자.”그가 손을 내미는 순간...번뜩- 한 줄기 빛이 스쳤다.피가 터졌다. 깊게 팬 승현의 손바닥 상처에서 선홍빛 액체가 뚝뚝 흘러내렸다.문 밖에서 기다리던 태건이 놀라 뛰어들려 하자, 승현이 손을 들어 태건을 막았다.“가까이 오지 말랬지.”유하는 두 손으로 칼을 쥐고 있었다.남자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 하나 흔들림 없었다.“꽤 세게 나가네.”승현은 손바닥의 통증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웃었다.그는 멈추지 않았다.한 걸음, 또 한 걸음... 유하에게 다가갔다.그는 피로 번진 손으로 칼날을 꽉 움켜쥐며, 유하의 놀란 눈빛 속에서 그 칼끝을 자기 가슴께로 가져갔다.“내가 밉지? 좋아, 그럼 찔러.”“해봐.”승현이 몸을 조금 숙였다. 칼끝이 심장 바로 위에 닿았다.그는 낮게 웃으며 속삭였다.“여보, 무서워?”‘이러지 마... 제발...’유하의 손끝이 떨렸다.“소유하라는 사람, 난 너무 잘 알지.”승현의 목소리가 낮고 묘하게 따뜻했다.“당신은 언제나 이성적이지. 모든 일, 모든 사람을 저울질해. 자기가 손해 볼 일이라면, 감정 따윈 가볍게 배제하지.”“그게 당신이야. 그래서 넌 날 못 죽여. 네 인생이 걸려 있으니까. 감옥, 죄, 후회... 다 머릿속으로 계산 중이지?”그가 비웃듯 숨을 내쉬었다.“이 모든 세월 동안 생각했어. 정말로... 너한텐 감정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유하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눈가가 붉게 물들고, 숨이 거칠어졌다.“내가... 감정이 없다고?”“내가?”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칼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이 사람,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들어!’유하가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엔 비웃음도, 체념도, 한 줌의 절망도 섞여 있었다.“오승현,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아? 내가 감정이 없다고? 내가 먼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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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당신은 미쳤어!”“당신이 이렇게 냉정한데, 내가 안 미치는 게 이상하지.”승현은 손바닥에서 떨어지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가슴 위로 번지는 붉은 얼룩이 천천히 커지는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한 걸음, 또 한 걸음... 유하를 향해 다가왔다.유하는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이 사람, 정말 미쳤어... 완전히 돌아버렸어.’그는 지금 목숨조차 내던지고 있었다.유하는 그런 극단적인 얼굴, 그런 광기 어린 눈빛을 처음 봤다.‘어떡하지... 이대로면 진짜 큰일이야.’이런 남자에게 자기 인생을 내줄 이유는 없었다.이미 몇 년이나 낭비했는데, 또?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이 사람 목숨 하나 때문에 내 미래를 버리라고? 그럴 가치 없어.’“당신... 나 사랑한다고 했지?”그 순간, 유하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쳤다.빨간 중절모를 쓴 로봇, 그 안에 숨겨진 비밀 음성 파일.유하는 그 생각에 번쩍 정신이 들어, 급히 말을 꺼냈다.그러자 승현이 멈춰 섰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하를 바라봤다.그 시선이 유하의 얼굴을, 그리고 눈동자 속에 잠깐 스친 혐오와 증오를 포착했다.잠시 침묵.승현의 입꼬리가 천천히 휘어졌다.남자의 눈빛은 깊고 차가워, 도무지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다.“아니...”승현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난 널 사랑하지 않아. 넌 너무 매정해. 그런 사람한테 사랑이란 사치야. 너한텐 감옥이 어울리지. 쇠사슬, 어둠 같은 것들...”‘미쳤다. 진짜 완전히 미쳤어.’유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원래는 이 말로 승현의 마음을 흔들어 이용하려 했는데, 이제 그럴 여지도 사라졌다.‘역시, 이 사람하고는 말이 안 통해.’‘처음부터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어.’그 생각이 스친 순간, 유하는 스스로 깨달았다.그리고 곧 피식 웃었다.‘그래, 어쩌면 저 말이 맞을지도 몰라.’‘정말로... 난 저 사람에게 감정이 없는 건지도...’심장이 철렁하던 순간에도, 유하는 ‘어떻게 해야 이혼을 깔끔하게 끝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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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과거를 잊자고?”승현이 비웃듯 코끝으로 웃었다.그 소리엔 조롱이 섞여 있었다.피가 아직도 뚝뚝 떨어지는 손을 툭 털며 말했다.“손을 다쳤네. 사인 못 하겠어.”유하의 눈이 번쩍였다.‘그럼... 사인할 생각은 있다는 거네?’그녀의 시선이 순식간에 문밖의 태건에게 향했다.눈빛 하나로 뜻이 통했다.“참, 독하네.”승현이 낮게 내뱉었다.태건이 안으로 들어와 그의 상처를 소독했다.태건이 상처에 부은 독주가 닿자 알코올 향이 퍼졌다. 꽤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승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그는 피가 마른 손을 느리게 탁자 위에 올려두고, 유하를 바라봤다.그 눈빛엔 묘한 낯섦과, 오래된 기억이 함께 섞여 있었다.‘이 여자... 이렇게 생생했었나?’예전보다 훨씬 강렬했다.빛이 났다.다시는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빛이었다.‘놓아달라고? 웃기지 마.’승현의 속에서 차가운 웃음이 일었다.그는 펜을 잡지 않은 채,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이 거래는 네가 너무 손해야. 그래도 7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려가면 새로 합의서 써서 재산 일부는 넘길게. 그게 맞지.”“필요 없어.”유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지금 안 끝내면, 절대 못 벗어나.’“난 다른 것 필요 없어. 아무것도 안 받아. 당장 사인 해.”승현이 코웃음을 쳤다.“좋아. 대신 조건이 세 가지 있어.”“뭐?”유하의 눈이 번쩍였다.“나는 이미 다 포기했는데, 이제 와서 조건을 건다고?”“손 아파서 서명을 못 하겠네.”승현이 일부러 몸을 일으켰다.유하가 재빨리 남자의 소매를 붙잡았다. 치아가 꽉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세 개는 너무 많아! 하나만 말해!”승현이 몸을 빼려 하자 유하가 힘껏 당겼다.탁자가 덜컹거렸고 승현이 살짝 찡그렸다.“두 개! 두 개면 돼?”그녀의 눈빛이 단호하게 번쩍였다.“더는 못 물러나. 그리고 조건 먼저 들어볼 거야. 말도 안 되는 건 안 받아.”하지만, 첫 번째 조건이 나오는 순간...“넌 해외 못 나가.”승현은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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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스님, 지금... 정말 내려갈 수 없는 건가요?”절의 측전 안, 유하가 초조하게 물었다.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져 있었다.그녀는 이제 막 이혼합의서에 승현의 사인을 받아냈다.지금 당장 산을 내려가 W시에 도착해야 했다.가정법원에 제출해야 30일 숙려기간이 시작된다.유하는 하루라도 빨리,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절차를 밟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하지만 내려가려던 순간 스님이 막아섰다.“산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 길이 얼었고, 신호도 끊겼습니다. 이 시각에 내려가면 위험합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게 좋습니다.”유하는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결국 스님은 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하룻밤만 더... 그게 뭐 어렵다고.’유하는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지만,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승현과 태건 역시 이 산에 함께 갇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유하는 사인된 이혼합의서를 방수팩에 넣고, 가방 깊숙이 넣었다.그리고 그 가방은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저녁 공양을 마친 후, 유하는 피곤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왔지만, 억지로 버텼다.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끌었다.경전의 구절이며, 산중의 사연이며 그녀는 어떤 화제든 붙잡고 말을 이어갔다.‘절대 혼자 있으면 안 돼.’‘오승현이랑 나태건은... 믿을 수 없어.’스님이 미소를 띠며 물었다.“이미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쉬시죠.”유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하나도 안 졸려요.”그러곤 자기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따끔한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식어버린 진한 차를 들이켰다.“전... 너무 졸립니다.”스님의 말이 들렸다.유하는 멋쩍게 웃었다.“아... 죄송해요, 금방 갈게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그녀는 몸이 휘청, 그대로 탁자 위로 쓰러졌다.찻잔이 기울어지며 차가 바닥에 쏟아졌다.이어서 측전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검은 옷자락이 바람처럼 스며들었다.승현이었다.그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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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유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승현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남자의 압도적인 힘에 유하는 그대로 침대에 다시 눕혀졌다.“움직이지 마.”낮고 단단한 목소리였다.승현의 손에는 감은 붕대가 다시 피로 물들어갔다.아까의 격한 움직임으로 상처가 다시 터진 것이다.피가 스며 나와 유하의 어깨를 붉게 적셨다.하지만 그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우리 아직 이혼 안 했잖아. 부부야. 오늘 밤 내가 널 원해도, 거절할 권리 없어. 그리고 거절해봤자... 의미 없을 거야. 괜히 날 자극하지 마.”그 말에 유하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이 인간은 언제나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그녀가 이를 악물었다.“넌 정말... 이런 더러운 짓밖에 할 줄 모르지?”승현은 미간을 약간 좁혔을 뿐, 담담하게 대답했다.“효과만 있으면 됐잖아.”그는 이불을 휙 젖히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 유하를 팔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더니, 그 위에 이불을 덮었다.“가만히 있어. 자.”“미쳤어?”유하가 몸을 떨었고, 숨이 막혔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머리를 세게 들어 올려 승현의 가슴팍을 들이받았다.“읍...!”승현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승현의 상처 부위였다.그러나 이내 웃음이 섞인 숨이 흘렀다.“이제 좀 제대로 싸우네.”유하의 몸을 감싸던 팔이 더 단단해졌다.남자의 품이 쇠사슬처럼 유하를 바짝 조였다.‘오승현, 이 사람은... 진짜 미쳤어.’‘세상 모든 규칙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야.’유하는 눈을 감았다. 불안이 턱끝까지 차올랐다.‘이혼숙려기간... 정말 30일만 버티면 끝날까?’‘아니, 이 사람이라면...’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안 돼. 그 전에 나가야 해. 무조건, 해외로 떠나야 해.’...다음날 새벽, 희미한 빛이 들어올 때 유하가 눈을 떴다.침대 위엔 아무도 없이 혼자였다.승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유하는 바쁘게 숨을 몰아쉬며 급히 짐을 챙겼다.가방을 어깨에 메고 방을 나섰다.밖은 이미 눈이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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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유하는 내내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다행히, 유하의 바람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차는 조용히, 매끄럽게 달렸다.도심의 신호등 몇 개를 지나고, 가정법원 정문이 눈에 들어오자 유하는 그제야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도착했어... 드디어.’서류 접수창구로 들어서자, 미리 앞서 내려갔던 태건이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준비해 놓고 있었다.그 덕분에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유하는 마침내 그동안 승현 쪽에 묶여 있던 증명 서류를 모두 돌려받았다.물론, 주민등록등본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자신이 세대주가 아니라 세대원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래서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던 틈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이혼 접수 끝나면, 전입신고도 같이 하면 될까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승현이 냉담하게 끼어들었다.“시간 없어.”그 말투는 차갑고 무심했다.“소유하, 나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야. 부탁할 거면 최소한 부탁하는 태도라도 보여야지.”그러고 나서 시선이 비스듬히 내려왔다.“언제쯤 배울래? 누군가에게 뭔가를 원한다면, 그만한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는 거.”유하는 말 없이 그를 노려봤다.‘진짜... 또 시작이네. 미친 사람.’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이제는 더 이상 이런 말에 반응할 가치도 없었다.‘좋아, 그냥 오늘까지만. 오늘만 잘 넘기면 돼.’그녀는 가방 속 서류를 다시 확인했다.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마음속에 한 가지 확신이 자리했다.‘이혼 접수만 끝내면... 그걸로 충분해.’‘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해결하면 돼.’심사 도중, 직원 한 명이 다시 들어왔다.승현과 유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두 분 모두 합의이혼을 원하시는 게 맞습니까?”승현과 유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직원은 서류를 정리하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합의이혼은 서류 접수 후 30일의 숙려기간이 주어집니다. 그 기간에 마음이 바뀌면, 접수를 취소하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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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차문이 닫히자, 차는 먼 곳으로 달려갔다....“와! 진짜 대박이다!”소성란의 별장 옥상, 노을빛이 붉게 물든 하늘 아래.유하와 이솔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샤브샤브 냄비를 가운데 두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유하는 해선사에 다녀온 그 파란만장한 여정을 이야기했고, 이솔은 눈을 반짝이며 그 기이한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들었다.웃음소리가 해질녘 바람에 섞여 흩어졌다.이솔이 유하를 보다가 감탄하며 말했다.“너 진짜 대단하다. 나도 같이 갔으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나도 그런 즉흥 여행 한 번 해보고 싶어!”유하는 웃으며 고기 완자를 집어 이솔의 그릇에 올려줬다.“그땐 상황이 갑자기 터져서 나도 정신이 없었어. 우리 나중에 해외 나가면, 기회 많을 거야.”“그치! 역시!”이솔은 완자를 한입 가득 베어 물자 볼이 부풀었다.그 모습이 귀여워서 유하가 피식 웃었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근데 너, 태준혁이랑은 어때? 아직도 나랑 같이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그 이름이 나오자, 이솔은 순식간에 멈칫하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커흠!” 이솔이 기침을 쏟아내자, 유하가 얼른 주스를 건넸다.“천천히 마셔, 뭐 그렇게 급해?”이솔은 몇 모금 들이켜더니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러다 괜히 딴소리로 화제를 돌렸다.“아무튼! 해외는 꼭 가야 돼. 근데 너는? 임청산이랑 대체 무슨 일이야?”이솔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너 없는 사이에 말이야, 오승현이 완전 미친 듯이 임청산을 몰아붙였대. 무슨 원수진 사람처럼...”“임청산도 가만있지 않았고... 태씨 가문까지 엮였대. 진짜 장난 아니야, 완전 드라마야...”유하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뛰었다.“그럼 청산 선배는?”이솔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하를 빤히 보더니, 그래도 먼저 안심시키듯 말했다.“걱정 마. 처음엔 좀 문제가 있었는데, 들으니까 임청산이 국가정보원이랑 프로젝트 계약을 성사시켰대. 지금은 국가정보원이 보호 중이라던데? 완전 철통 보안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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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유하는 잠시 눈썹을 찌푸렸다. 망설임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잘 모르겠어... 나도 요즘 계속 고민돼. 오승현이 서명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마음이 이상하게 불안하더라. 뭔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야.”이솔이 조심스레 물었다.“혹시 오승현이 마음 바꿀까 봐 그런 거야?”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해선사에서 그날 밤 이후로 계속 불안했어.’‘오승현이라는 사람은 늘 예측이 안 돼.’‘논리도, 이유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니까.’그 불안감이 유하의 가슴을 짓눌렀다.그렇다고 해서 단 30일만 기다리면 받을 수 있는 이혼의사확인서와 등본의 유혹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이 순간만 기다린 게 몇 년인데...’‘이제 와서 도망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이솔은 유하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다 알 것 같았다.그녀 역시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진짜 애매하네. 어느 쪽이든 리스크가 있어.”테이블 위 샤브샤브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김을 뿜었다.두 사람은 젓가락질을 멈춘 채,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노을이 붉게 번지며, 유리창에 반사된 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물들였다.그러다 이솔이 불쑥 입을 열었다.“근데, 유하야.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해? 둘 다 가질 방법은 없어?”유하가 고개를 들었다.“뭐...?”이솔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잘 생각해 봐. 네 말대로라면, 오승현이 진짜로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잖아. 근데 설령 바꾼다 해도, 그건 예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야.”“지금은 그때랑 달라. 넌 이제 언제든 떠날 힘이 있잖아. 그러니까 기다리면서도, 동시에 대비하면 되지 않아?”“언제든 떠날 힘?”유하는 그 말을 곱씹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치.”이솔이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변수는 임청산이지. 지난번엔 임청산이 아직 국가정보원이랑 계약 전이었잖아. 그땐 네 움직임이 다 감시당했고, 출국도 불가능했지.”“근데 지금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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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이솔은 아직도 기억한다.언제부터였을까... 유하가 오승현과 함께 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그때는 그냥, ‘그래도 행복해 보이네’ 하고 넘겼다. 친구가 웃는 모습이 그저 보기 좋아서 더 묻지 않았다.하지만 그게 다 거짓이었다니.행복도, 미소도, 전부 진실을 감추는 도구에 불과했다...‘나... 도대체 그동안 뭐 했던 거야?’유하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이솔은 자신이 친구의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 담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단 한 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유하가 지옥 같은 세월을 무려 7년이나 혼자 버텼다는 걸 알고 나서야... 이솔은 숨이 막혔다.“7... 년이라니...”이솔은 목이 꽉 막혀서 말이 잘 나오지 않고, 주먹을 꽉 쥐고 유하의 등을 툭툭 치며 울분을 터뜨렸다.“어떻게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참았어?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진짜 미치겠어...”“오승현 그 인간이 어떻게 너한테 그런 짓을... 너... 너는 어떻게 그렇게 버텼냐고...”이솔은 알고 있었다.유하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하고 외로웠는지...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버티는 일이라는 걸...하지만 이솔은 몰랐다.이솔이 모르는 그 시간 속,7년 전... 유하가 얼마나 끔찍한 절망 속에 있었는지를...정신이 짓눌리고, 마음을 조종당한 채,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유하가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그 시절...그 절망이 얼마나 깊었을까?이솔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유하의 눈가도 붉게 물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울지 않으려는 듯 떨리는 손으로 이솔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정말이야. 나 이제 괜찮아.”“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어!”이솔은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7년이야, 유하야. 오승현 같은 악마랑 매일 같이 있었잖아. 그게 어떻게 괜찮아... 얼마나 무서웠겠어...”유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그땐 몰랐어.”“뭘 몰랐다고?”“그게 그렇게 끔찍한 일인지. 그게... 나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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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이른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유하는 초인종 소리에 깨서 잠결에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을 열자, 하얀 정장을 입은 청산이 서 있었다.긴 몸, 곧은 어깨, 깨끗한 인상.아침 햇살이 그의 옷자락 위로 번지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유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내가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만 했는데, 먼저 온다고?’“잘... 지냈어요?”손이 문손잡이를 꽉 쥐었다.유하는 청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수척해진 듯한 얼굴, 눈 밑엔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청산은 짧게 웃었다.“아니, 잘 못 지냈어.”목소리에 쓴맛이 섞여 있었다.“보고 싶었어, 유하야. 어젯밤에 ‘대나무숲’에서 널 기다렸거든. 밤새 불 켜놓고. 근데 안 오더라.”청산은 잠시 고개를 떨궜다.“나, 또 늦은 거야?”유하는 숨이 막혔다.그 말 한마디가 가슴을 저미듯 내려앉았다.“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청산의 목소리 속에 스친 낙심이 너무 선명해서 유하는 문을 더 활짝 열었다.“들어오세요.”집 안으로 들어온 청산은 낯익은 공간을 천천히 둘러봤다.유하는 자연스럽게 거실 쪽으로 걸어가며 물었다.“뭐로 드실래요? 커피... 드시겠어요?”청산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따라오며 대답했다.“응. 우유만 좀 넣어줘.”유하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살짝 미소가 번졌다.“알아요. 설탕은 빼고, 뜨겁게.”청산의 눈에도 짧은 웃음이 번졌다.“그걸 아직 기억하네.”‘잊을 리가 있나...’‘선배가 얼마나 예전과 똑같은지, 나는 다 기억해요.’잠시 후, 청산은 들고 온 종이봉투를 흔들며 말했다.“접시 좀 써도 될까?”유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이른 시간이라, 혹시 아침 안 먹었을까 싶어서. 오는 길에 1번 빵집 들렀거든. 단팥빵 좀 사 왔어.”“1번 빵집이요?”유하의 눈이 반짝였다.“거기 단팥빵 완전 인기잖아요! 매번 줄 서도 못 사는데...”청산이 어깨를 으쓱였다.“오늘은 운이 좋았나 봐. 마지막에 딱 세 개 남았더라.”그가 건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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