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Bab 461 - Bab 470

669 Bab

제461화

“무슨 상관이야.”청산은 끝내 태블릿을 유하 앞으로 밀어서 보여주었다.“너랑 나, 서로 속속들이 다 아는데. 너 아니면 내가 누굴 믿겠어?”청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청산의 회사 ‘유산’이 국가정보원의 CN 대형 언어 모델 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심지어 그 모델의 일부 설계에 유하가 직접 관여했다는 것도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청산은 언제나 유하 앞에서 방심했다.그러나 그 신뢰의 무게가 너무 커서, 잠시 망설이던 유하는 청산의 거듭된 부탁 끝에 결국 화면을 터치했다.그리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굳었다.국가 프로젝트뿐 아니라, 해외 쪽 자료까지 있었다.‘이건... 단순히 참고해달라는 게 아니잖아.’유하는 그제야 청산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었다.“선배, 이건...”유하는 어쩔 줄 몰라 시선을 들었다.청산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부담 갖지 마. 단지 참고만 해줘. 결정은 내가 할 테니까.”말은 그렇게 하지만, 유하는 이미 알고 있었다.‘결정’이란 말 뒤에 숨은 감정이 무엇인지.한참을 고민하던 유하는 천천히 태블릿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선배, 그런 뜻이 아니라면... 그냥 내가 오해했다고 생각해. 선배는 이제 날 기다리지 마. 선배는 너무 멋진 사람이고, 앞으로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유하야.”청산은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곧 담담하게, 그러나 단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내가 널 만날 자격 없는 거 알아. 그때 널 해외로 보낸 것도 나였고, 그래서 네가 그런 일을 겪게 된 거니까.”“그때 나는 국내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고, 구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그 뒤로는 차마 너에게 물어볼 용기도 없었는데...”“이제는 우리 둘 다 자유로워졌잖아. 그래서 묻고 싶었어. 그때 했던 그 말, 아직 유효해?”유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말’... 잊을 수가 없었다.1년 전, 출국 당일 공항 게이트 앞에서 청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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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태건은 전통찻집 앞에서 거의 두 시간동안 서 있었다.들어가서 직접 유하를 찾을까 고민하던 찰나, 유하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다.“임 대표가 또 대표님 괴롭혔어요?”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고, 코끝까지 붉은 걸 보니 방금 울었던 게 분명했다.태건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 말은 담담했지만, 몸은 이미 찻집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아니야!”유하는 급히 태건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끌어냈다.“승현 씨 할아버지가 저녁에 오라고 하셨어. 더 늦으면 안 돼. 그리고, 이게 비서실 일과 무슨 상관이야!”늘 이랬다.지난 1년 동안, 청산을 만날 때마다 태건은 어김없이 따라왔다.처음엔 그런 자리마다 꼭 함께 들어가서 곁을 지켰다.유하가 불편하다고 눈치를 줘도 태건은 늘 한마디였다.“오승현 대표님 유언이었습니다. 소유하 대표님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하지만 청산은 유하를 해칠 사람이 아니었다.유하가 몇 번이나 화를 내고서야 겨우 찻집 밖에서 기다리게 했지만, 그마저도 시간제한이 있었다.유하는 태건에게 명령할 수 있었지만, 그는 결국 오씨 가문이 길러낸 사람.유하 마음에 안 든다고 함부로 내칠 수도 없었다.그래서 유하는 바로 비서 차나연을 곁에 두며 태건과의 접점을 조금이라도 줄이려 애썼다.하지만 귀국만 하면 어김없이 태건이 나서서 유하 옆에서 철벽 마크했다.‘진짜 귀찮아, 이 사람...’차 안으로 들어서자 태건이 입을 열었다.“사... 대표님, 임 대표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겉보기와는 다릅니다. 앞으로는 임 대표님과의 접촉을 자제하셨으면 합니다.”유하가 고개를 돌렸다.“그 말, 임 대표 얘기하는 거야? 아니면 자기소개 중이야?”“저는 대표님께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하.”비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리고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기분도 이미 바닥이었고, 유하는 눈을 감고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전통찻집 2층.창가에 서 있던 청산은 주황빛 차가 시야 끝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막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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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청산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자, 연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걱정 마세요. 지금 저는 소유하 씨한테 아무 관심 없어요. 지금 저에게는 더 갖고 싶은 게 있거든요. 거래 하나 하시죠.][제가 임 대표님이 유하 씨를 얻을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아니, 결혼까지... 유하 씨가 스스로 원하게 해드리면, 어때요?]“제가 왜 하 대표님을 믿어야 합니까?”[믿지 않아도 돼요. 일단 해보시죠. 안 되면 제가 받은 이익, 전부 돌려드리면 되잖아요.]연우가 부드럽게 웃었다.[그리고, 전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임 대표님보다... 아니 소유하 씨 본인보다 제가 소유하 씨를 더 잘 알아요.]“말이 지나치네요.”청산은 문고리를 놓고, 재킷을 다시 옷걸이에 걸었다.유하가 앉았던 자리에 천천히 앉아, 핸드폰을 탁자 위에 두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좋아요. 그럼 들어봅시다. 하 대표님은 뭘 원하십니까?”[역시 시원시원하시네요.]연우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기술이에요. 전 임 대표님의 기술이 필요합니다.]“그건 불가능합니다.”청산은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하 대표님이 뭘 원하든 상관없습니다만, 소유하 씨는 우리 관계를 절대 몰라야 합니다. 이해하셨죠?”[물론이죠. 우린 원래 모르는 사이 맞잖아요.]연우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임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요즘 AI 자동화 기술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솔직히 제 팀 역량이 부족하죠. 임 대표님을 직접 모실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그래서 제가 원하는 건, 임 대표님이 해외에서 관리 중인 기술 네트워크예요. 그쪽 팀에 있는 몇몇 인재들, 그 사람들이 제 프로젝트에 잠시 손을 빌려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기술적 안정성만 확보되면 자금은 바로 확보돼요. 그럼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승인받을 수 있고요. 게다가 그 인재들은 표면상 임 대표님과 아무 관련이 없어요. 소유하 씨는 절대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그리고, 그 인재들이 임 대표님 얼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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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뭐라고?’‘승현이? 오승현?’‘할아버님이 손자가 보고 싶으셔서 얘기 중이신 건가?’‘...’그런데... 뭔가 이상했다.유하는 무심코 숨을 죽이고 더 들으려 했지만,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문에 귀를 대고 있던 유하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안으로 쓰러졌다.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히며 이마가 욱신거렸다.“여기서 뭐 하세요?”머리 위로 낮고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차분하지만, 어딘가 놀란 기색이 묻어 있다.익숙한 목소리다.유하는 이마를 감싸 쥔 채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그대로 굳었다.검은 반팔 티셔츠 차림, 짧게 깎은 머리,뚜렷한 이목구비와 매서운 매의 눈.오석현이었다.‘오승현 사촌 형이 왜 여기 있는 거지?’‘그렇지, 할아버님... 예전 장군으로 퇴역하셨잖아.’‘오씨 가문 중에서도 지금 군에서 제일 두각을 나타내는 게 오석현이라던데...’‘왕래가 잦을 수밖에 없겠네.’‘내가 할아버님 댁에 자주 온 것도 아니니까 몰랐던 거고.’유하는 괜히 머쓱해져 더듬거리며 말했다.“할아버님께서 들르라고 하셔서요.”“유하 왔구나.”서재 안에서 오국수의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어서 들어오거라.”유하는 산처럼 서서 문 앞을 막고 있던 석현을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책상 뒤에서 붓을 움직이던 오국수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저 왔습니다.”석현도 문을 닫고 뒤따라 들어왔다.“왜, 승현이 그놈이 먼저 가버리니까 이젠 날 ‘할아버지’라 부르기도 싫으냐?”오국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할아버님, 안녕하세요.”유하가 곧장 인사를 건넸다.“그래, 그래.”오국수가 웃으며 손짓했다. 곁에 서 있던 집사 마재한이 황동 주전자 모양 장식 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유하에게 내밀었다.“한번 봐라. 글씨가 어떤가?”유하는 공손히 두루마리를 받아 조심스레 펼쳤다.그 위엔 붓으로 쓴 글과 시, 그리고 수묵으로 그린 그림이 있었다.붓끝은 아직 서툴렀고, 형태는 갖췄지만 기운이 덜했다.오국수가 직접 쓴 글씨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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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서재 안.눈앞의 준서를 보니, 못 본 사이에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유하는 허리를 문지르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준서의 힘은 점점 더 세졌다.‘역시 군에서 물러난 장군님 밑에서 크는 애는 다르네.’‘운동을 얼마나 시키셨길래...’그래도 나쁘지 않았다.‘튼튼하면 좋지. 건강하면 됐어. 누구한테도 쉽게 밀리지 않을 테고.’“엄마, 진짜 오랜만에 오셨잖아요.”석현의 손에서 빠져나온 준서가 유하의 손을 꼭 잡으며 투덜거렸다.“조금 바빴어.”유하는 조심스레 손을 빼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준서에겐 이제 아버지 승현이 없고, 자신만이 남은 가족이라는 걸.그래서 더 곁에 있어야 한다는 걸.하지만...‘그래도... 그 얼굴을 보면 아직도 숨이 막힌다.’‘승현이와 너무 닮았어. 표정, 말투, 심지어 웃는 모습까지도...’‘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사람이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지만, 그 상처는 뼛속 깊이 새겨진다.잊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그녀에게 1년은, 너무 짧았다.책상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오국수가 모든 걸 꿰뚫은 듯한 눈으로 둘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너희 두 모자 본 지 꽤 됐잖아. 내 앞에서 시끄럽게 굴지 말고, 밖에 나가서 놀아라.”말을 끝내고는 다시 붓을 들어 먹을 찍었다.유하는 순간 멈춰 섰다.“할아버님, 저... 용건이 있으셔서 부르신 거 아닌가요?”입 밖으로 나온 말에 스스로 멈칫했다.곧 깨달았다.‘역시 그거였구나.’준서가 여기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집의 규율이 까다롭고 자신도 오국수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보니, 올 때마다 부담스러워 피하고만 있었다.아마 그것 때문에, 오국수가 일부러 ‘용무가 있다’고 핑계를 대며 자신을 부른 거겠지.유하는 쓴웃음을 삼켰다.‘내가 아무리 숨겨도, 할아버님의 눈은 못 속이네.’그때 준서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증조할아버님!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하셨잖아요!”오국수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준서는 벌써 유하의 손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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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공부는 어때? 잘 하고 있어?”유하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일등이에요!”준서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책상 위엔 성적표와 시험지가 한가득 펼쳐졌다.그중에는 100점이 적힌 시험지도, 교사의 칭찬이 덧붙은 숙제도 있었다.‘역시 그렇지. 이 녀석은 머리가 좋다니까.’공부에 흥미 없던 시절에도 나쁜 성적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요즘은 마치 무언가 터진 듯, 발전 속도가 달랐다.‘이제는 정말 알아서 다 하는구나.’유하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우리 아들 잘했네. 엄마가 말한 대로 다 했네.”“엄마, 증조할아버님 말씀도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키도 컸고, 성적도 일등이에요. 엄마가 하라는 거 다 했잖아요. 그럼 이제 저 언제 엄마랑 같이 외국 갈 수 있어요?”준서가 금세 의기양양하게 물었다.유하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아니, 내가 언제 그 말 했지? 그거 한다고 당장 데려간다고 한 적 없는데.’‘요즘 애들은 다 왜 이렇게 외국 나가고 싶어 하는 거야.’‘코시오 문제만 해결되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절대 안 돼.’“아들, 넌 아직 어려. 그러니까... 수능 끝나고, 성적 잘 나오면 그때 엄마가 유학 준비 시켜줄게. 약속해.”유하는 속으로 되뇌었다.‘그때쯤이면 코시오 문제도 다 정리돼 있을 거야. 그땐 꼭 데려갈 수 있겠지.’“그런데 너무 오래 걸려요.”준서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그 말투엔 억울함이 묻어 있었다.‘또 그 표정이네.’유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준서는 속으로 생각했다.‘왜 항상 똑같은 말만 하시지.’‘다른 애들은 부모님이 이미 해외로 데려가는데, 우리 집은 더 잘살면서 왜.’‘왜 나는 안 되는 거야.’준서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게 싫었다.‘이제는 같이 있고 싶은데...’“준서야, 엄마가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근데 약속할게. 네 수능 끝내고 좋은 성적 받으면, 그때 꼭 보내줄게. 엄마가 직접 해줄게.”유하의 말은 단호하면서도 다정했다.준서는 잠시 유하의 얼굴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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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나연은 유하가 화를 내지 않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마음속은 궁금증으로 가득했다.‘진짜 이상해... 대표님은 왜 저 사람만 보면 저렇게 냉정해질까?’나연이 유하 곁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그 시간 동안 나연이 본 태건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비서였다.업무 보고를 할 때도, 별다른 지시 없이 알아서 자료를 준비했고, 중요한 일정이 잡히면 늘 세 가지 이상의 대안을 마련해서 가져왔다.‘이 정도면 사실 대표님 옆에 비서 한 명 더 있을 필요도 없는데...’‘나 비서님 혼자서도 충분히 회사 돌아가겠어.’그래서 나연은 가끔 스스로가 단지 둘 사이의 ‘연결선’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일의 중심엔 언제나 태건이 있었다.자신은 그저 전달만 하는 사람.즉, 전달 담당 비서.‘솔직히 나 없어도 티도 안 날걸...’그런데도 유하는 확실히 태건을 꺼렸다. 업무 외엔 태건과 단 한마디도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고, 국내 사무실조차 태건의 자리와 자신을 멀찍이 떨어뜨려 두었다.‘나 비서님 같은 사람을 싫어할 이유가 있나?’‘일 잘하지, 충성스럽지, 거기다 잘생겼지.’나연은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외모도 능력도 완벽한 나 비서님을 왜 저렇게 냉대하시는지...’‘소 대표님과 나 비서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뭐, 재벌가 일이야 늘 복잡하니까.’‘괜히 신경 써봤자 나만손해지. 난 그냥 월급이나 따박따박 잘 받으면 돼.’나연은 스스로를 달래듯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그리곤 무심코 고개를 돌려 조용히 뒤를 따르는 태건을 흘깃 바라봤다.조명 아래로 드러난 태건의 옆모습은 매끈했다.단정한 정장 자락이 흔들릴 때마다 어깨선이 한층 또렷해 보였다.‘와... 진짜 조각이 따로 없네.’나연은 순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이런 비주얼을 공짜로 매일 볼 수 있다니, 비서 생활도 나쁘지 않네.’그렇게 속으로 흡족하게 웃으며,나연은 종종걸음으로 유하를 따라잡았다.‘연봉 높고, 일 편하고, 눈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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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소유하, 맞지?”낯선, 칼날 같은 목소리였다.유하는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나며 이마를 매만졌다.시선을 들자마자 마주친 것은, 붉게 물든 눈꼬리와 그 아래 서늘하게 빛나는 눈동자였다.여자였다.연회장에서 담배를 입에 문 여자는 드물었다.그녀는 길게 뻗은 다리와 곧은 자세, 짙은 자주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그 한 벌 옷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랐다.가까이 다가오자,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여자의 시선이 유하의 얼굴에서 발끝까지 천천히 훑었다.짙은 레드 네일이 칠해진 손끝엔 얇고 긴 담배가 걸려 있었다.그 손이 살짝 들어가며 그녀가 몸을 숙였다.“소유하가 맞냐고 물었어.”“맞아요.”말이 끝나자마자 하얀 연기가 얼굴 가까이서 흩어졌다.자극적이진 않았다.시원한 멘톨 향.그런데도 유하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조금 몸을 비켰다.‘담배 냄새, 정말 싫어.’‘누구든, 어떤 향이든 상관없이 다 싫어.’“누구세요?”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이 여자는 분명 처음이다.유하는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기억을 더듬었다.‘하연우가 아까 뭐라 그랬지?’‘날 보러 왔다고?’‘설마, 이 여자랑 같이 온 건가?’그 순간, 뒤쪽에서 들리던 구두 소리가 가까워졌다.“언니, 왔군요.”하연우였다.연우가 다가와 여자의 재킷 소매를 살짝 잡으며 반가운 듯 말했다.“응.”여자는 짧게 대꾸했다.눈길은 단 한 번도 연우에게 가지 않았다.오히려 다시 유하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손가락 사이의 담배를 가볍게 비틀며 말했다.목소리는 낮고, 매서웠다.“우리 처음 만나지? 배설아.”잠시 뜸을 두더니,“재윤이 엄마.”유하의 표정이 단단히 굳었다.‘배설아?’‘그 재윤이 엄마? 남편 죽이고 징역 6년 살았다는 그 사람?’머릿속이 순식간에 하얘졌다.‘진짜... 출소했구나.’‘아니, 출소한 지는 꽤 됐지... 내가 해외에 있느라 못 마주친 거고.’‘근데 왜... 오늘 여기서?’유하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멘톨 향이 가볍게 흩어졌지만,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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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짝!설아의 손바닥이 남진의 뒤통수를 정확히 가격했다.묵직한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퍼졌다.“누구한테 화난 거야?”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남진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설아의 시선이 곧 유하에게 옮겨갔다.그 눈빛엔 웃음기가 스며 있었지만, 그 아래로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가 도사리고 있었다.“소유하.”설아의 입꼬리가 천천히 말려 올랐다.“멍청한 내 아들이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더라. 시간 나면 우리 집에도 좀 놀러 와. 우리... 오래 봐야지.”말끝이 미묘하게 길게 늘어졌다.담배 연기처럼 스치는 그 목소리는 기분 나쁘게 부드러웠다.설아가 돌아서며 흘긴 마지막 시선은 날이 선 미소와 다를 바 없었다.연우가 그 뒤에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눈빛 속의 악의가 거의 넘쳐흐를 듯했다.“언니, 같이 가요.”연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설아의 뒤를 따라가 버렸다.남진만이 남았다.남자의 표정은 난처함과 피로가 섞여 있었다.“죄송합니다.”남진이 작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누나가 조금 오해하고 있어요. 제가 나중에 꼭 말씀드리고, 직접 찾아뵙고 사과드리게 하겠습니다.”유하는 대답 대신 짧게 숨을 내쉬었다.‘이걸 어떻게 설명한다는 거야.’‘그 오해가 풀릴 리가 없지.’‘출소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아직 저러는 거 보면...’‘배설아는 그냥 그렇게 믿고 있는 거야.’재윤이 자기 친엄마를 외면하게 된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었다.설아가 모를 리가 없었다.‘알면서도 계속 날 물고 늘어지는 거겠지.’‘피곤하다, 정말...’유하는 숨을 고르고, 억눌린 짜증을 삼킨 채 담담히 물었다.“재윤이는 요즘 좀 어떤가요? 아직도... 엄마를 잘 못 알아보나요?”남진이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예... 아직도요.”그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작년에 누나가 출소했을 때 재윤이 피하려고 제가 아이를 해외로 보냈었거든요. 어머니 계신 쪽으로... 치료도 조금 받았는데... 효과가 크진 않았어요. 그래도 그때보다 안정은 됐죠.”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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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준서는 아무 말 없이 갑자기 뛰어올랐다.순식간에 모세의 몸통을 걷어차며 바닥으로 내리꽂았다.쾅!모세가 바닥에 넘어지기도 전에 준서는 이미 모세의 위로 올라타 주먹을 내리꽂았다.움직임엔 망설임도, 망설일 틈도 없었다.“그만하라고!”“야, 준서야!”“...”다른 애들이 놀라 달려와 붙잡으려 했지만, 준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국수에게 특별히 체력 훈련을 받아온 몸이었다.붙잡던 아이들이 되레 주먹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야, 미쳤어?!”“도망쳐, 도망쳐!”순식간에 운동장 구석이 아수라장이 됐다.준서와 모세는 뒹굴며 서로 엉켜 싸웠다.모세도 쉽게 지지 않았다.몸을 비틀며 준서의 어깨를 밀쳐내고, 팔을 휘둘러 그의 옆구리를 때렸다.“오준서! 너 진짜 미쳤냐!”“네가 뭔데!”모세의 입에서 거친 숨이 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넌 애초에 아빠도 없고, 엄마한테도 버림받았잖아!”준서의 주먹이 잠시 멈칫했다.하지만 금세 다시 떨어졌다.“몰랐지? 네 아빠 안 죽었어도, 엄마는 이미 너 버렸어! 우리 아빠가 그랬다! 너 같은 재수 없는 놈 때문에 네 아빠가... 윽!”피 튀기는 소리와 함께 모세의 말이 끊겼다.준서의 눈은 이미 흔들림이 없었다.얼굴에 놀람도, 분노도 없었다.‘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했겠지. 나 같은 놈은 애초에 필요 없다고.’그는 말없이 주먹을 더 세게 쥐었다.모세의 코에서 피가 튀었다.비명이 섞인 숨소리가 이어졌다.“살려줘... 으악...!”주변의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선생님을 부르러 뛰쳐나갔다.잠시 후, 헐레벌떡 달려온 송윤 선생이 두 아이를 떼어냈다.송윤은 두 아이 양쪽 어깨를 붙잡고 억지로 떼어내며 외쳤다.“이모세! 오준서! 너희 둘 다 지금 뭐 하는 거야!”보건실로 끌려온 둘은 각자 다른 침대에 앉았다.“이게 애들 싸움 맞아? 싸움을 이렇게 해?”송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모세는 약을 바르며 울먹이는 소리로 떠들었다.“불러요! 불러! 우리 아빠 오면 오준서 가만 안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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