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상관이야.”청산은 끝내 태블릿을 유하 앞으로 밀어서 보여주었다.“너랑 나, 서로 속속들이 다 아는데. 너 아니면 내가 누굴 믿겠어?”청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청산의 회사 ‘유산’이 국가정보원의 CN 대형 언어 모델 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도, 심지어 그 모델의 일부 설계에 유하가 직접 관여했다는 것도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청산은 언제나 유하 앞에서 방심했다.그러나 그 신뢰의 무게가 너무 커서, 잠시 망설이던 유하는 청산의 거듭된 부탁 끝에 결국 화면을 터치했다.그리고 그 자리에서 멍하니 굳었다.국가 프로젝트뿐 아니라, 해외 쪽 자료까지 있었다.‘이건... 단순히 참고해달라는 게 아니잖아.’유하는 그제야 청산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었다.“선배, 이건...”유하는 어쩔 줄 몰라 시선을 들었다.청산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부담 갖지 마. 단지 참고만 해줘. 결정은 내가 할 테니까.”말은 그렇게 하지만, 유하는 이미 알고 있었다.‘결정’이란 말 뒤에 숨은 감정이 무엇인지.한참을 고민하던 유하는 천천히 태블릿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선배, 그런 뜻이 아니라면... 그냥 내가 오해했다고 생각해. 선배는 이제 날 기다리지 마. 선배는 너무 멋진 사람이고, 앞으로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유하야.”청산은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곧 담담하게, 그러나 단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내가 널 만날 자격 없는 거 알아. 그때 널 해외로 보낸 것도 나였고, 그래서 네가 그런 일을 겪게 된 거니까.”“그때 나는 국내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고, 구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그 뒤로는 차마 너에게 물어볼 용기도 없었는데...”“이제는 우리 둘 다 자유로워졌잖아. 그래서 묻고 싶었어. 그때 했던 그 말, 아직 유효해?”유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말’... 잊을 수가 없었다.1년 전, 출국 당일 공항 게이트 앞에서 청산에게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