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Chapter 471 - Chapter 480

669 Chapters

제471화

본사 사무실.유하는 책상 위에 놓인 신규 프로젝트 제안서와 하연우가 올린 AI 자동화 시스템 연구 계획서를 한눈에 대충 훑었다.그리고 단 한 줄의 망설임도 없이 그 서류를 밀어냈다.“안 돼요.”목소리는 단호했다.“이사님,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죠. 이 프로젝트는 기술팀 역량으로는 감당이 안 돼요. 계획서를 아무리 수정해도 소용없습니다. 이건 그냥 밑 빠진 독이에요. 이사님, 다른 일거리 없으세요?”유하의 어조엔 이미 피로가 묻어 있었다.그래도 MB그룹의 주력 이사로 수십 년 일한 사람인데, 말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완강할 줄은 몰랐다.‘하연우, 이번엔 또 무슨 말로 꼬드긴 거야?’‘아니, 이 이사님이 이렇게까지 고집부릴 정도면... 혹시 진짜... 속은 건가?’유하는 속으로 혀를 찼다.이용석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도 아시잖습니까. 이 프로젝트, 아이디어 자체는 굉장히 훌륭합니다. 시작만 하면 시장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요. 초기 자금이 부담되신다면 소규모 테스트로 먼저...”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책상 위 이용석의 핸드폰이 진동했다.이용석은 처음엔 무시하려 했지만, 화면에 뜬 문자를 확인하자 얼굴이 굳었다.“죄송합니다. 잠깐만요.”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 전화받았다.사무실엔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유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연에게 눈짓했다.“저 서류들 정리 좀 해요.”“네, 대표님.”서류가 차곡차곡 정리되는 소리만 남았다.유하는 벽시계를 힐끗 봤는데, 곧 준서 하교 시간이었다.‘오늘은 약속 지켜야지.’‘저녁엔 아들이랑 같이 밥 먹고, 조금 놀다 와야겠다.’유하는 오랜만에 국내 일정이 비어 있었다.이번엔 진짜로 아이에게 시간을 써야 했다.그렇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내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체험전이나 공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그런데...쾅!문이 거칠게 열리며 이용석이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들어왔다.“대표님!”그는 숨을 고르기도 전에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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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아니야... 준서가 그렇게 쉽게 당하는 성격이 아닌데...’유하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준서는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아빠인 승현을 쏙 빼닮은 아이였다.얻어맞고 가만히 있을 애가 아니었다.혹시나 맞았다면 모를 리가 없었다.‘그럼 이번이... 처음인 건가?’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추측만 늘어가자 불안만 커졌다.유하는 태건을 재촉하여 일단 학교부터 가 보기로 했다....한빛초등학교.보건실 문을 밀고 들어선 유하는 그 안의 어수선한 풍경과, 선생님 송윤이 일부러 떼어 놓은 듯 서로 떨어져 앉아 있는, 멍든 두 아이를 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진짜로 싸운 거였다.“엄마!”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준서는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내며 달려와 유하의 허리를 꽉 안고, 엉엉 울면서 고자질하기 시작했다.“엄마, 애들이 저 괴롭혔어요... 때렸어요... 이도 빠졌어!”아들의 말에 유하는 이유를 묻기도 전에 얼른 허리를 굽혀 울다 지친 준서의 얼굴을 조심스레 감싸 올렸다.푸르스름한 멍과 붉은 상처가 뒤섞인 얼굴, 울음 때문에 드러난 윗니 사이엔 정말로 앞니 하나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입술엔 피까지 묻어 있었고, 말소리는 바람이 새듯 흘렀다.유하는 그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다.‘이렇게 세게?’“저... 준서 어머님, 사실은...”옆에서 송윤이 난처한 얼굴로 다가와 설명하려던 그때.쾅!문이 열렸다.좀 더 늦게 도착한 이용석이 씩씩대는 얼굴로 들어오고, 뒤엔 경호원 두 명이 따라 들어왔다.“우리 애 어디 있습니까!”“아빠... 흐흐흑!”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모세는 아빠를 보자마자 울음을 참지 못하고, 준서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대며 고자질했다.“아빠, 오준서가 나 때렸어! 나 욕도 했어!”“아니야! 너희가 나 욕하고 때려서 이빨까지 빠졌잖아! 거짓말하지 마!”준서는 더 크게 울며 유하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아... 애들이 저 괴롭혔어요... 으아아아...”순식간에 보건실은 아이들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한 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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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어른이 ‘가르쳐 준 말’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었다.유하의 싸늘한 시선이 천천히 이용석에게 향했다.이용석은 잠시 시선을 피하더니, 곧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유하와 눈을 마주쳤다.그러고는 단정한 어조로 말했다.“우리 아들은 원래 착합니다. 동물도 잘 못 건드려요. 개미만 봐도 밟을까 봐 멀리 돌아가는 애인데, 사람을 때렸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분명 준서가 모세한테 뭔가 자극적인 말을 했겠죠. 게다가 준서 아버지는 원래...”쾅!유하의 손바닥이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약병이 덜컹 튀어 오를 정도였다.유하는 매서운 눈빛을 곧게 쏘며 차갑게 말했다.“이모세 아버님, 말조심하십시오.”이용석은 순간 말을 잃었다.가슴 한구석이 스르르 식어 내리는 느낌.하지만 그 불편함은 곧 불쾌로 바뀌었고, 자기 아이 앞에서 유하에게 눌리는 꼴이 더욱 자존심을 긁혔다.입을 다시 열려던 그 순간, 유하 뒤에 서 있던 태건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앞으로 반걸음 조용히 나섰다.그것만으로도 이용석은 입을 다물었다.유하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 편이었다.화를 내도 선은 지키고, 상대에게 퇴로도 어느 정도 남겨 두는 사람.하지만 태건은...‘저놈은 오승현이랑 똑같아.’이용석의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이미 죽은 상사와 똑같은 눈빛, 똑같은 기질.이런 사람들은 이성으로 설득되는 타입이 아니었다.한 번 틀어지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 상대를 태어나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하게 만드는 부류.승현이 죽었을 때, 이용석은 드디어 MB그룹을 자기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느닷없이 유하가 나타났다.승현의 그림자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강단과 속도감.그리고 정당한 신분.게다가 태건... 승현 옆에 오래된 그림자 같은 그 남자까지.그룹 내부의 누구나 유하의 말에 절대적으로 움직였다.유하의 자리는 누구도 손댈 수도, 흔들 수도 없었다.‘소유하는 그냥 골칫덩어리다!’하지만 이용석은 MB그룹은 참을 수 있어도, 아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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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준서와 이모세가 처음 몸을 부딪친 곳은 교실 한쪽, 좁은 모서리였다.하필이면 CCTV의 사각지대.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보건실의 CCTV는 모든 걸 담고 있었다.유하는 이미 마음을 정리해 두었다.‘보건실 영상에서 준서가 먼저 때렸다면... 준서의 잘못을 인정해야지.’‘사과할 건 사과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고.’‘하지만 아들 몸에 난 상처까지 없는 일로 만들 생각은 없다.’어쨌든 준서가 때렸다면 잘못은 잘못이었다.그리고 모세가 한 말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깊게 박히는 상처였다.잠시 후, 생활안전부장 선생님과 교감이 도착해 CCTV를 재생했다.보건실에 모인 어른들이 모니터 앞에 둘러섰다.영상이 천천히 지나갔다.송윤이 말한 대로 처음 두 아이는 보건실에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이후 두 아이가 각각 다른 방으로 분리되었고, 얼굴에 이미 상처가 난 준서가 갑자기 모세가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그리고 모세의 옷깃을 잡아 밖으로 끌어내려는 순간, 모세가 먼저 손을 올렸다.퍽!준서의 머리가 책상 모서리에 그대로 부딪혔다.앞니는 그때 빠져나간 것이었다.그 장면이 나오자 유하는 준서의 작은 손을 본능적으로 꽉 잡았다.이와 동시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눈앞이 잠시 아득해졌다.‘만약 저게 치아가 아니라 눈이었으면... 좀 더 위였으면...’‘아니, 다른 약한 곳이었다면...’그녀는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했다.다행히 이가 부러진 데에서 그쳤지... 그조차도 다행이라 해야 할 정도였다.아들에게 난 상처가 너무 많았다.영상이 끝나자 보건실은 조용해졌다.밖에서 난 첫 번째 싸움은 증거가 없다고 해도, 보건실에서 일어난 두 번째 충돌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모세가 먼저 때렸다.유하는 미간을 좁히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겨우 눌러 앉히고 품에 안겨 흐느끼는 아들의 등을 다독이며 시선을 이용석에게 옮겼다.목소리는 싸늘했다.“모세 아버님, 이 상황...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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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말도 안 됩니다!”이용석은 단칼에 거절했다.“소 대표님, 너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대표님 댁 아이가 잘못이 없다고 정말 믿으세요? 어떻게 됐든 먼저 때린 건 준서 아닙니까?”“그리고 우리 모세는 원래 거짓말 안 하는 애예요. 대표님, 준서가 우리 모세한테 욕 안 했다고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이어지는 이용석의 목소리는 점점 더 공격적이었다.“어쨌든 서로 감정 싸움할 필요 없습니다. 없던 일로 하든가, 아니면 둘 다 병원 가서 정밀 검사하고, 누가 더 크게 다쳤는지 보고 법정에서 보든가 하죠. 뭐, 힘 있으면 다입니까?”“좋습니다.”이용석의 말이 중간에 뚝 끊겼다.유하는 이미 준서의 손을 잡고 보건실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고개만 살짝 돌려 이용석을 스치는 한마디를 남겼다.“가시죠, 병원으로.”이용석의 얼굴이 새까맣게 굳었다.‘가면 가는 거지...’혹시 모세 쪽이 더 크게 다쳤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병원.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유하는 진료실로 뛰어들 듯 들어갔다.“선생님, 우리 준서... 많이 다친 건가요? 이가... 다시 날까요?”가벼운 상처라는 의사의 말에 유하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학교에서 괜히 말싸움하면서 시간만 끌지 않았다면 더 빨리 데려왔을 텐데...’그래도 큰 부상은 아니라는 말이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준서 옆에서 약을 바르던 유하는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무조건 엄마부터 찾아야 해, 알겠어? 엄마 못 찾으면 할아버지, 태건 삼촌, 아니면 선생님...”“폭력은 제일 마지막에 선택하는 거야. 남도 다치고 너도 다치고... 그런 건 절대 좋은 해결 방법이 아니야. 잘못한 거 알겠니?”준서는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약이 스치자 다시 몸을 움찔하며 얼굴을 찌푸리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유하는 급히 안아 달래 주었다.“그렇지만... 때린 건 잘못한 게 맞아. 그러니까 너는 이모세 그 친구한테 사과해야 해.”“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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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유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몸을 굽혀 아이를 안아 품에 끌어안았다. 준서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준서야, 너 이것만은 꼭 기억해야 해. 폭력은 정말 최후의 수단이야. 그걸로는 아무것도 해결 안 돼. 상황만 더 복잡해지고... 너도 다치고, 남도 다치고.”“이번엔 이렇게 끝났지만, 혹시라도 더 크게 잘못되면... 그때는 엄마는 어떡하지? 앞으로 이런 일 생기면 무조건 엄마부터 불러. 어른부터 찾고, 알았지?”준서는 안 다칠 거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오국수와 석현이 준서에게 사람을 세게 때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별로 안 아프게 치는 법을 알려준 적 있었다. 그리고 거의 자국도 안 남는 기술도 있다고 했다.아직 완전히 배우진 못했지만... 사실 준서의 반 친구들은 다 약해서 준서에게는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하지만 결국 준서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촉촉한 눈으로 유하의 품에 파고들었다. 엄마가 이렇게 준서를 바라보고, 이렇게 진지하게 말해준 게 참 오랜만이었다.이 정도면... 이 정도면 아깝지 않았다. 이 정도로만 엄마가 자신을 걱정하고 봐 준다면...‘역시 엄마한텐 내가 제일 소중한 보물이야... 아빠 말이 맞아.’준서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나는 엄마의 하나뿐인 아이. 엄마는 평생 나를 사랑할 거야.’준서는 엄마가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였다....그날 밤.유하는 아이를 오국수 쪽에 데려다주고 상황을 설명했다. 오국수는 예상보다는 노하지 않았다. 대신 준서를 서재에 붙잡아두고, 유하에게 며칠 더 국내에 머물라고 제안했다.준서가 막 이런 일을 겪은 터라 유하도 걱정돼서 결국 오국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소성란에게 뭐라고 설명하느냐였다.소성란은 분명 화를 낼 것이다.유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소성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준서가 싸운 이야기는 빼놓고 말했다. 오국수는 이미 준서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데, 이 일까지 알면 유하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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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서재 문이 스르르 열렸다.오국수의 꾸지람을 갓 듣고 나온 준서가 문 안쪽에서 툭 뛰어나왔다. 싸움 때문에 구겨진 네이비색 교복 상의가 준서 손에 아무렇게나 매달려 흔들렸다. 잠시 뒤 태건이 조용히 따라 나와 서재 문을 닫았다.어른과 아이가 한 줄로, 회색 석재와 붉은 원목이 이어진 긴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조금 걷던 준서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태건을 바라본다.“삼촌, 이번에도 제가 잘못한 건가요? 근데 엄마는 화 안 내셨는데요.”준서는 자신이 원하는 걸 이뤘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했는데, 증조할아버님이 왜 화를 내시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난 잘했는데...’태건도 걸음을 멈췄다.약물이 발라진 작은 얼굴 곳곳이 군데군데 퍼렇게 멍들어 있는 준서를 내려다보며 말한다.“도련님, 어르신이랑 사모님 말씀이 맞습니다. 폭력은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합니다.”“후유증도 크고요. 그리고 이번 일... 도련님이 너무 티 나게 처리하셨습니다.”만약 준서가 다치지 않았고, 유하가 걱정에 휩쓸리지 않았다면...그리고 당시 현장이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았더라면... 밖에서 보기엔 허점이 아주 많았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바로 드러날 정도로.태건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적어도 도련님 아버지라면, 비슷한 일이 생겨도 이렇게 하진 않으셨을 겁니다.”“아빠...요?”준서의 눈이 잠깐 반짝였지만 금세 흐려졌다.그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태건의 반듯한 검은 정장 자락을 살짝 잡고 흔들었다.“삼촌,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요?”“오 대표님 말이세요?”태건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짧게 고민하더니 단정하게 말했다.“오 대표님이라면, 애초에 누구한테도 말이 새어나갈 틈을 안 주셨을 겁니다. 이번 일은 소 대표님 귀에 들어갈 일도 없이,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끝났겠죠.”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승현의 성격상 애초에 승현 앞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분란을 일으키려는 사람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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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그것도 준서와 승현의 가장 큰 차이였다.준서는 약해질 줄 안다.태건은 가끔 생각하곤 했다.만약 승현이 준서처럼 울 줄 알고, 유하 앞에서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일 줄 알았다면... 모든 일이 이렇게까지 비틀렸을까?하지만 승현은 절대 약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승현에게 ‘연약함’은 허락되지 않았다.심지어 사랑하는 유하 앞에서도, 드물게 드러낸 승현의 연약함은 언제나 강압과 억눌림을 품고 있었다.유하가 거부할 틈도, 물러설 여지도 없게 만드는... 그런 ‘약함’은 오히려 유하를 더 두렵게 하고, 승현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물과 약함은 유하를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그게 바로 준서였다.언제, 누구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여줘야 하는지...어디에서 쉬어갈 안전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그걸 아는 건... 준서가 가진 가장 영리한 재능이었다.물론, 아마도 아직 어려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어른이 되면... 달라질 수도 있다.태건은 마음속 깊숙이 아주 조용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준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도련님, 하고 싶으신 일을 하십시오. 도련님 또래라면 원래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련님은... 더더욱 그렇고요.”준서는 오씨 가문의 아이, 미래 이 집안의 주인이 될 사람.앞으로는 멈칫거릴 이유가 없다.우유부단함도, 불필요한 연약함도 짐이 될 뿐이다.그래서 준서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망설이지 않아도 된다.준서도 잘 이해한 듯, 어리지만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발걸음 또한 한결 가벼워졌다.그러나 몇 걸음 뒤, 아이는 문득 멈춰 섰다.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거기에 태건이 있었다.‘삼촌은... 항상 아빠 뒤에 있었고, 아빠가 사라지고 나서는 엄마 뒤에...’‘그리고 지금은 내 뒤에...’준서는 갑자기 들어 올린 마음의 무게에 이끌리듯 뛰어가 태건의 손을 꼭 잡았다.고개를 올려 바라보는 눈동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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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대표님.”“네.”“방금 사모님과 도련님이 계셔서... 통화가 조금 늦었습니다.”“알겠습니다.”...준서의 방 안.작은 조명이 포근하게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유하와 준서는 저녁을 먹은 뒤 약까지 먹고, 이제는 책상에 나란히 앉았다.유하는 준서의 숙제를 봐준다고 앉아 있었지만, 사실 ‘봐준다’기보단, 그저 옆에 조용히 곁에 앉아 있어주는 정도였다.준서는 공부에 손이 거의 가지 않는 아이였다.유하는 노트북을 품에 안고 자기 일을 하며 그저 준서 옆을 지켜줄 뿐이었다.아이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원래는 싸움 때문에 다친 걸 보고 유하가 학교에 일주일 결석 사유서를 낼까 했는데, 준서는 결석 자체는 순순히 받아들이면서도, 숙제는 하겠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준서는 요즘 들어 아이 치고 믿기지 않을 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한 아이’가 되었다.유하는 이 변화가 아직도 낯설었다.예전에야 준서의 성적은 괜찮았지만, 숙제는 죽도록 싫어해 게임이니 애니니 핑계로 도망 다니기 일쑤였고, 숙제만 하면 집안이 전쟁터가 됐다.나중엔 준서가 유하가 잔소리하는 걸 더 귀찮아해 유하도 ‘그냥 알아서 하게 둬야겠구나’ 하고 손을 놨었다.그런 준서가 이젠 시간이 되면 스스로 책을 펴고, 심지어 계획적으로 시간을 나누며 숙제하고 있었다.불과 1년 만의 변화였다.‘할아버님이 대단하신 거지. 내가 했다면 절대 이렇게 안 됐을 텐데...’유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생각을 털어내듯, 유하는 그래픽 태블릿을 꺼내 노트북에 연결했다.아직 완성되지 않은 웨딩드레스 도안을 열고, 섬세한 선을 조심스레 그려 나갔다.이번 의뢰는 Y국 고객이 직접 의뢰한 것이었다.Splendid를 찾으며 ‘소유하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싶다’라고 디자이너를 콕 찍어 주문한 고객.직접 만나진 않았으나, 듣자 하니 Y국 왕실의 어떤 왕자가 결혼을 앞두고 있고, 신부의 드레스를 Splendid에 맡기려고 한다는 소식이었다.이 1년, 국내외를 오가며 MB그룹과 Splendid의 경영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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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디자인이든 회사 일이든 유하는 단 한 번도 준서에게 숨겨본 적이 없었다.아들이 묻는다면 아들이 이해하든 못 하든, 차근차근 설명해 주곤 했다.모르면 모르는 대로 좋았다.옆에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하나의 ‘배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에는... 준서가 제대로 이해했다.웨딩드레스.그게 뭔지, 무엇을 위한 옷인지... 준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엄마... 결혼하려고요?”준서의 목소리는 기쁘지 않았다.차갑게 식어 있었다.유하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이건 엄마가 맡은 고객 결혼식용이야. 엄마가 입는 거 아니고.”그러나 말한 순간, 유하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그래, 마침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볼까...’‘준서는 엄마 재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그녀는 펜을 내려두고, 아이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근데 준서야. 엄마가 만약... 다시 결혼하고 싶다면, 준서는 새아빠가 생기는 거 어때?”준서는 얼굴을 완전히 구겼다.“싫어요.”그는 단호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였다.“엄마, 저는 새아빠 싫어요. 저는 그냥... 저는...”그는 말끝을 흐렸다. 말하고 싶은 이름이 있었으니까.오승현.늘 무섭고, 준서를 힘들게 했던 사람.‘그래도... 그래도 아빠면 좋겠는데...’준서의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엄마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슬퍼질 걸 알기 때문에.준서는 서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대신 말했다.“저는 엄마만 있으면 돼요.”그리고 이어서 목소리는 더 확실하게 굳어졌다.“엄마가 결혼하면... 다른 애기도 생기는 거예요? 그거 싫어요. 좋아하지도 않을 거고요!”엄마는 준서만 있으면 된다.준서도 엄마만 있으면 된다.유하는 잠시 멍해졌다.준서가 새아빠를 싫어할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다른 아이가 생길까 봐’까지 걱정할 줄은 몰랐다.뜻밖의 놀라운 경계심과 독점욕.고작 이 나이에.그렇지만... 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유하 역시 지금 다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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