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Chapter 501 - Chapter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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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1화

외진 골목 끝에 있는 식당 안은 숨소리조차 울릴 만큼 고요했다.설아는 젓가락에 힘을 더 주면서도, 살짝 고개를 돌려 뒤쪽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는 태건을 바라봤다.둘 사이에는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태건 역시 설아가 모를 리 없는 사람이다. 오씨 가문 내에서 어떤 의미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설아 또한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건가?설아가 그딴 걸 무서워했으면 처음부터 유하한테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다.결국 지금 오씨 가문에서 실질적으로 중심을 쥔 사람은 딱 둘.승현의 아버지, 그리고 유하.설아는 그런 유하를 이렇게 잡아놓고도 아무렇지 않았다.지금 설아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태건을 한번 스쳐본 설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유하에게 압박을 이어가려 했다.그러자 태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배 대표님, 오늘 소 대표님을 데려가신다 해도 아드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전화는...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설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잠시 뜸을 들이다가 묻는다.“누구 전화인데?”“들어보시면 압니다.”“말을 제대로 안 하네.”기분 나빠하면서도, 설아는 짧게 불렀다.“남진.”반대쪽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던 남진이 그제야 벌떡 일어났다. 사색이 된 얼굴로 문가까지 달려가, 움직이지도 않던 태건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 들고 조심스레 설아에게 건넸다.설아는 반쯤 탄 담배를 입에 물고, 핸드폰을 받아들었다.검은 합금 젓가락에 경동맥이 눌린 유하는 이미 침착함을 되찾고 있었고, 더 나아가 옆눈으로 화면까지 흘끗 볼 여유가 생겼다.화면에 잠깐 뜬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다.‘누구지...?’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잠시 듣던 설아는 눈썹을 아주 얇게 치켜올리며, 흥미롭다는 듯 비웃음을 끼운 눈으로 유하를 바라봤다.“진짜?”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설아는 단 한 문장만 물었고, 그 다음엔 목소리가 훨씬 부드러워졌다.“그래. 너도 알잖아, 내 성질머리. 이 문제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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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남진은 멍하니 굳어 있었다.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누나... 누나는 재윤이를 뭐로 생각하는 거야?”“뭐로 생각하냐고?”설아는 피식, 냉소를 흘렸다.그 목소리는 너무도 태연했다.“내가 옛날에 눈이 멀어서 더러운 짐승이랑 뒤엉켜서 낳은, 나를 배신한 또 하나의 족속이지 뭐.”‘역시 피는 못 속여. 똑같은 놈들이야.’순간 설아는 지겨운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그러고는 멍하게 서 있는 남진을 두 손으로 밀쳐내고, 골목 반대편에 세워둔 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한참이 지나서야 남진은 정신이 든 듯 뒤늦게 따라붙었다.하지만 더는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둘은 긴 침묵 속에 골목 끝을 향해 걸었다.거의 다 나올 즈음, 설아는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손가락에 끼운 채 갑자기 멈춰섰다.그리고 무표정하게 남진을 돌아본다.“재윤이 전학, 빨리 처리해. 오씨 가문 애 있는 학교. 이름이 오... 준서 맞지? 그 애랑 같은 반에 넣어.”“안 돼!”남진 얼굴이 확 굳으며 바로 반대했다.1년 전, 재윤과 준서가 마지막으로 마주쳤던 날.재윤은 큰 충격을 받았다.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남진은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했다.준서 같은 성격의 아이가 재윤을 다시 마주친다면...그게 무슨 일이 될까?하지만 그 사실을 설아가 알게 둘 수도 없었다.설아는 자식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서도, 남이 재윤을 건드리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설아가 그걸 알게 되면...“누나... 재윤이 이제 막 돌아왔어. 일단 가정교사 붙이고 천천히 준비해도 돼. 학교는 좀 더 있다가 천천히...”“뭘 더 기다려?”설아가 짜증나듯 말을 끊었다.“그냥 그렇게 해. 다 큰 애가 학교도 못 가고, 사람 많은 곳 무섭다는 소리나 하고... 그러니까 더 나빠지는 거야.”“누나!”“왜? 내가 내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지 네가 가르칠 거야?”설아는 싸늘한 눈으로 남진을 내려다봤다.“나는 재윤이 외삼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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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네.”설아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왜냐면 소유하는 성이 배씨가 아니잖아.”“그럼 나는?”‘내 마음은 대체 어디에 두라는 거야?’“너는 내 친동생이지. 오늘 네가 남을 위해 누나인 나한테 몇 번이나 대들고 무례를 부린 것도... 그래서 내가 그냥 참아주는 거야. 배남진, 누나 기분 상하게 하지 마.”설아는 말이 끝나자마자 골목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그 뒷모습은 가녀린데도 곧고 날카로운 기세가 있었다.남진은 아무 말 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씁쓸하게 웃었다.‘그래, 이게 바로 우리 누나지.’배씨 가문이 처음부터 설아를 후계자로 길러온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설아는 특유의 강압적이고, 한 번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성격과 능력으로 어려서부터 남진을 압도했다. 뭐든지 남진보다 뛰어났고,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비상했다.성인이 되자마자 회사 말단에서 출발해 단숨에 성과를 내며, 결국 집안의 시선을 뒤집어놓았다.그렇게 설아는 진짜 후계자로 인정받게 되었다.그러나 남진은 누구보다도 누나를 잘 알고 있었다.설아는 승부욕 때문에 하는 것이지, 사실 집안의 회사나 재산 귀속 따위에는 큰 관심도 없었다.어릴 때부터 본성은 이기적이고, 고집 세고, 오만하고, 지독히도 제멋대로였다.태생이 왕의 기질을 갖고 있었다.설아는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자, 집안 체면이든 신분이든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고 가족을 굴복시켰다.남편의 외도를 알아냈을 때도 지체 없이 결단을 내렸고, 법정에서는 또다시 제멋대로 폭언을 쏟아냈다.결국 6년 형을 선고받았고, 배씨 가문은 자연스럽게 남진의 손에 넘어갔다.하지만 출소 후에도 설아의 성격은 여전했다.오히려 더 거칠고 강해졌으며, 눈에 띄게 독해졌다.설아가 무엇을 원하든, 누구를 상대하든... 누구도 말릴 수 없다.오늘은 누가 어떻게 설아를 막았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이 안 된다면 내일, 모레 또다시 움직일 것이다.배설아는 절대로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남진의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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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당시 식당에서 절망적이지는 않았지만, 유하는 설아가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극단적으로 행동할까 봐 조마조마했다.그때만 해도 유하는 거의 이를 악물고 설아의 말을 들어주려고 했다.어찌 됐든, 한 번 가자는 데 가면 되는 거고, 그 사이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게 훨씬 나았다.괜히 설아를 자극해 피를 보느니, 약간 협조하는 편이 백 번 낫다는 판단이었다.유하는 미친 사람에게 ‘이성’이라는 걸 기대하는 법이 없었다.그런데 정말로 누군가 설아를 말리는 데에 성공했다.누가 그런 능력자인지 모르겠지만, 유하는 그 사람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게다가 설아가 전화받은 순간, 자신을 힐끗 바라본 그 눈빛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다시 유하의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유하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질문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았다.운전석에 앉은 태건은 전방만 주시하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그냥... 배씨 가문의 어른분께서 잠깐 설득하신 겁니다.”‘배씨 가문의 어른?’“배씨 가문의 어른이 나한테 왜 신경을 써?”유하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태건은 한 손으로 핸들을 살짝 돌리며 덧붙였다.“배설아 대표님께서 이번 일로 또 처벌받으시면, 배씨 가문에서도 대외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미지 문제도 있고요.”“특히 배남진 회장님의 혼사도 중요하니까 가족 이슈로 잡음이 생기면 곤란하다는 입장이셨습니다.”‘이미지? 혼사?’말만 들으면 그럴듯했다.유하는 거의 설득될 뻔했다.‘근데, 단순히 배씨 가문에서 사고 치지 말라고 경고하는 전화였으면, 배설아가 전화받으면서 나를 보던 그 이상한 눈빛은 뭐지?’‘그리고... 배설아가 그렇게 고분고분한 사람이었으면, 6년 전에 이미 그런 사고는 안 쳤겠지.’유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그 살인 사건에 대해 이솔이 다 말해준 적이 있었다.본래 배씨 가문은 설아를 정신 병력과 합의서를 이용해 구속도 안 되고 그냥 바로 보석으로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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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다음 순간, 유하는 괜히 헛걸음한 듯 멈칫했다.유하의 핸드폰 불빛이 닿은 곳에는 남자 몇 명이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유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욕을 내뱉으며 비틀비틀 일어나, 주먹을 쥐고 유하 쪽으로 걸어오려 했다.10초 후.사람들이 다시 바닥에 전부 뻗어 있었다.유하는 그중 한 명에게 다가가 물었다.“아까 너희가 끌고 들어간 사람 어디 있어? 그 사람한테 무슨 짓 했어?”“뭘 하긴! 맞은 거 안 보여...”대답하던 남자가 퉁명스레 욕하려다 유하 옆에서 조용히 이를 꽉 깨물고 서 있는 태건과 눈이 마주치자, 목소리가 바로 작아졌다.“아...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그 자식이 술 처먹고 우리 가게에서 난동 부렸어요. 우린 그냥 얘기 좀 하자고 끌고 온 건데, 그 새끼가 먼저 주먹 휘둘러서...”상황과 행방까지 파악한 유하는 바닥에 뻗은 남자들을 지나 골목 깊숙이 뛰어갔다.술집 뒷문을 스쳐 지나갈 때, 유하는 문틈 사이로 익숙한 뒷모습 하나가 비치는 걸 보고 즉각 소리쳤다.“오승환!”불린 사람은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등이 딱 굳어졌다가 갑자기 걸음이 빨라져 사람들 사이로 쓱 사라졌다.“승환아!”유하는 바로 사람을 뒤쫓았다.뒤에서 그 이름을 들은 태건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따라붙었다.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채.술집 안은 색색의 조명이 흔들렸고 시끄러운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유하는 앞에서 도망치는 그 그림자만 똑바로 쫓았다.그리고 남자 화장실 입구 바로 앞에서 딱 가로막았다.유하는 들어갈 수 없어서 뒤따라온 태건을 불러 승환을 안에서 끌어내라고 했다.정확히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유하는 이미 확신했다.그 모습, 그 걸음, 그 어깨선... 오승환이 아닐 리 없었다.‘이 미친놈 지금 뭐 하는 거야? 술 처먹고 싸움질?’‘거기다 나를 피해? 어이가 없네.’“대표님, 혹시 사람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태건은 들어가기 싫어 보였다.그게 승환이 아니라면 괜찮지만, 맞다면... 태건은 관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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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아, 이거?”유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그냥 정신 나간 사람 하나 만난 거야. 이제 끝났어. 지금은 네 얘기 하고 있잖아!”“정신 나간 사람...?”승환의 눈빛이 더 깊게 가라앉았다.“일단 너부터 말해. 대체 무슨 일이야? 술은 왜 퍼마셔? 싸움은 또 왜 하고... 요즘 무슨 일... 콜록,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두 마디 하자마자 유하는 또 기침했다.“누나, 말하지 마요.”유하 목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챈 승환은 급히 말리면서도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근데... 내 일은, 누나가 안 물어보면 안 될까요?”“뭐라고?”유하는 눈썹을 찌푸렸다.“누나, 잠깐만요... 내 얘기 좀 들어봐요.”승환은 이를 악물 듯 잠시 입술을 눌렀다.결국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요즘 좀... 일이 있었어요. 기분도 별로였고... 술도 많이 마셔서 그래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누나는 안 물어보면 안 돼요?”유하는 한참을 조용히 승환을 바라보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네.”승환은 시선을 떨구었다.“누나한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저도 이 일이 정리되면... 제일 먼저 누나한테 말할게요. 정말이에요. 죄송해요, 누나.”“그게 뭐가 미안한데!”유하는 하루 종일 찌든 마음이 조금은 풀린 듯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오랜만에 만난 승환이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승환의 살짝 웨이브 진 머리칼을 부드럽게 헝클었다.“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사람 누구나 말 못 하는 비밀 하나 정도는 있지. 나도 그래. 완전 이해해. 근데... 진짜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꼭 나한테 와. 누나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줄게.”“네...!”“그리고 말인데, 콜록... 가능하면 폭력은 쓰지 마. 그걸로 해결되는 건 없어. 너만 손해 보는 짓이라고.”“알겠어요.”승환은 유하 손을 잡아 조심스럽게 쥐었다.“누나, 이렇게까지 목도 아픈데 이제 그만 말하고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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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통화가 끊어졌다.조용한 방 안에서 승환은 침대 끝에 앉아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다.핸드폰이 다시 진동하며 울리자 비로소 정신이 퍼뜩 들었다.본능적으로 전화받자 주문한 물품이 도착했다는 안내가 흘러나왔다.승환은 방을 나섰다.유하 방 앞을 지나칠 때는 일부러 발걸음을 죽이며 조용히 내려갔다.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대문 쪽으로 향했는데...기다리고 있어야 할 택배 직원 대신 거기엔 태건이 서 있었다.거리의 몇 개 가로등 아래, 정적만 가라앉아 있었다.태건은 배달 상자를 들고 서서 말없이 승환을 바라보고 있었고, 승환도 마찬가지였다.마당 철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철문 사이, 안과 밖.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끝내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태건이었다.상자를 건네며 단정하지만 절대 미뤄둘 수 없다는 투의 목소리로 말했다.“내일이면 나가십시오. 다시는 여기 오지 마시고요.”“누나가 오라 그래서 온 거야. 당신이 뭔데 나서?”승환은 상자를 낚아채듯 받아 들고, 철문을 ‘쾅’ 닫아버렸다.조금의 여지도 없이.태건은 놀라지 않았다.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승환의 성격이 제멋대로가 아니었으면, 승현이 그동안 고생할 이유도 없었다.승현의 생전엔 억지로라도 승환을 눌러놓을 수 있었지만, 승현이 세상을 떠난 지 겨우 일 년, 승환은 다시 벼랑 끝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렇다고 승현 정도의 ‘번거로움’에서 끝나는 문제도 아니었다.잠시 생각에 잠긴 태건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오승환한테 사람 몇 명 더 붙이고, 오늘부터 밀착 감시해. 이상 징후 포착되면 바로 제압하고.”‘이런 시기에... 이 애가 사고 치면 절대 안 돼.’조치를 마친 뒤, 태건은 길가에 세워둔 차에 올라 바로 근처의 별채 같은 집으로 이동했다.그날 밤은 그곳에서 묵었다.유하를 지키겠다고 약속한 태건은 유하 곁을 절대 비울 수 없었다....한밤중.승환은 배달 온 물건이 든 봉투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술 냄새가 잔뜩 밴 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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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누나, 이게...”만두를 한입 베어 문 승환은 고개를 막 들었을 뿐인데, 바로 마주친 유하의 원망 가득한 눈빛에 웃을지 말지 난감해졌다.“너 먹어. 난 냄새만 맡을게.”유하는 그 말을 핸드폰에 또박또박 적어 승환에게 조용히 내밀었다.원래부터 먹는 걸 좋아했지만, 재작년 코시오 사건 때 한 끼 아침을 굶고도 하루 종일 기분이 엉망이었던 일을 생각하면, 요즘 유하는 더더욱 먹는 것에 집착했다.게다가 지금 이런 목 상태라면 앞으로 몇 끼를 더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이 죽일 놈의 배설아...!’‘미친 인간들은 제발 내 삶에서 좀 사라지라고!’속에서 온갖 원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던 찰나, 유하가 들고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승환이 가장 먼저 발신자를 봤다. 국자로 계란 만둣국을 떠올리던 그의 손이 그대로 멈추고, 짙은 흑빛 눈동자가 단번에 가라앉았다.‘지명훈...?’유하도 봤다.2초 정도 멍하니 있다가, 유하는 그제야 기억해 냈다.소성란이 소개해 준 소개팅남.둘 다 그런 의미는 전혀 없었고, 결국 일 이야기로 이어져 협업으로 흘러갔던 그 사람.문제는 지금 유하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잠시 고민하더니, 유하는 전화를 끊고 목이 안 좋아서 통화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명훈은 예상외로 아주 젠틀했다. 몇 마디 예의를 갖춘 안부를 묻고는 예전에 말했던 ‘바람꽃의 기억’이라는 향수 얘기를 꺼냈다. 지도교수에게 이미 허락받아서 유하에게 선물로 줄 수 있다고.유하는 급하게 사양했다.향도 좋고, 특별한 장미로 만든 데다 뭔가 사연도 있는 듯한 향수라 이미 받을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물건인데, 그냥 받기엔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이 사거나 교환하겠다고 했다.하지만 명훈은 이렇게 답했다.“이건 원래 교수님이 만드신 비매품이라서요. 이걸 가격을 매기면 향수 본래 의미가 없어져요.”유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이 바닥이 어떤지는 유하가 더 잘 알았다.예술 하는 사람들이나 그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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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두 회사 일 모두 정리해 놓고서야 유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평소에 즐겨 입는 니트 롱 원피스로 갈아입고, 곧바로 별장 안의 작업실로 향했다. 왕실 웨딩드레스의 초안 스케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의뢰인은 급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이런 커스텀 웨딩드레스는 공정도 복잡하고 제작 기간도 길다.당연히 방심할 수 없다.무엇보다 유하는 이번 작업 자체에 큰 기대와 의미를 걸고 있었다.한편, 승환은 집을 나오고도 바로 지명훈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학교에 들러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끝낸 뒤, 주말 특유의 번잡하고 꽉 막힌 인파를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와, 어디선가 나타난 차에 올라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차는 곧 한 고급 회원제 클럽의 지하 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검은 야구모자, 검은 반팔 스포츠웨어 차림의 승환은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엘리베이터로 직행했고, 위층 어느 복도 끝의 프라이빗 룸으로 곧장 들어갔다.문을 열자마자 승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담배 냄새나 술 냄새로 가득한 건 아니었지만, 좋다고 할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안에는 각기 다른 분위기의 여자들이 열댓 명쯤 앉아 있었다.노출 많고 화끈한 스타일, 조용하고 청초한 스타일, 귀엽고 말랑한 스타일... 온갖 타입의 여자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그 중심에서 하늘색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 구릿빛 선명한 복근을 드러낸 명훈이, 몸매 좋은 여자를 품에 안은 채 문가에 멈춰 선 승환을 향해 느긋하게 미소 지었다.“안 들어와?”명훈이 손을 가볍게 휘젓자, 귀엽고 애교 많은 여자애 하나가 금세 다가와 승환의 팔을 끼고, 어깨에 살짝 기대며 나긋하게 말했다.“오빠, 나랑 잠깐만 놀아 줘. 응?”물론 ‘질문’처럼 말했지만, 그녀는 이미 승환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문이 덜컥 닫혔다.한 여자가 거의 승환 무릎 위에 앉을 기세로 들러붙고, 심지어 그의 셔츠 단추에 손을 대려는 순간, 승환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손을 탁 잡아 막고, 여자애를 부드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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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마음속 분노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승환은 여기 온 본래 목적을 잊지 않았다.숨을 길게 들이쉬고 소파에 앉았다. 술잔은 건드리지 않고, 테이블 위의 태블릿만 집어 들었다.그 안에는 승환이 며칠 전 요청했던 정보들이 있었다.유하가 어제 누구를 만났는지, 그리고 청산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심지어 설아와의 언쟁까지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고 명확하게 정리돼 있었다.청산의 말도 안 되는 집착을 비웃을 여유도 없었고, 설아의 극단성에 분노할 겨를도 없었다.승환은 먼저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과 기이함을 느꼈다.천천히 고개를 들며, 눈빛을 곧게 세우고 명훈을 겨냥했다.“당신들... 소유하를 미행하고 감시하는 거야?”승환이 알고 싶었던 건 단순했다.유하가 그제 누구를 만났는지... 그걸 토대로 유하를 해친 범인을 추적하려던 것뿐이다.그런데 이 정보는 ‘조사’라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다.대화 내용까지 전부, 숨소리 하나 빠짐없이 기록돼 있었다.“미행?”명훈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는 그런 짓 안 해.”“그럼 누나 주변에 사람을 심어놨다는 거네?”승환은 단호하게 받아치며, 굳은 얼굴로 태블릿을 살짝 흔들며 명훈을 압박했다.“어떻게 누나가 한 말까지 전부 알아?”“그건 우리 능력이지.”명훈은 미소를 유지한 채 부드럽게 말했다.“근데 미행이니 사람 심는 거니... 우린 하고 싶어도 못 해. 승환 도련님도 잘 알잖아. 오씨 가문 사람들이 소유하 주변을 철통같이 둘러싸고 있어서, 틈이 없다는 걸.”승환은 잘 알고 있었다.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간간이 유하의 행적을 직접 파악할 수 있었다.하지만 해외에서 승현에게 일이 터진 이후, 어떤 방법을 써도 유하와 관련된 정보에는 일체 접근할 수 없었다.명백히 봉쇄됐고, 암호화까지 되어 있었다.그래서 결국 명훈에게 도움을 청한 건 승환이었다.하지만 명훈이 가져온 정보는 ‘지나치게’ 완벽했다.상상조차 못 할 정도의 정밀함이었다.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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