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631 - 챕터 640

665 챕터

제631화

“그래도 국내라서 다행이네.”청산이 문득 말을 꺼냈다.“왜?”그 말에 유하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국정원 프로젝트가 좀 꼬였어. 당분간은 해외를 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약혼 일정도 이렇게 촉박한데, 이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는 어렵겠더라.”청산은 담담하게 설명했지만, 말끝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유하는 바로 이상함을 느꼈고, 급히 말을 이었다.“아니야,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해.”그 프로젝트에 대해 유하는 알고 있었다. 일부 하위 소스 코드 제작에도 직접 관여했고, 구조와 성격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와 직접 연결된 사안이고, 보안 등급이 매우 높은 프로젝트였다. 함부로 묻거나 캐물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유하는 애초에 이 질문을 꺼내지 말아야 했다.청산은 고개를 끄덕였다.“미안, 이건 정말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야.”청산은 이미 철저한 보안 서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CN 대형 언어 모델’을 핵심으로 하는 이 국정원 프로젝트는 단순한 시스템 방어를 넘어,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정보 분석을 담당하고 있었고, 정보 부서와도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었다. 아주 작은 정보 누출조차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이번 사건 역시 외부 세력의 공격이 원인이었지만, 방어 체계가 견고했던 덕분에 역추적까지 성공했고 실질적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다만 결과가 괜찮았다는 것과 별개로, 조직에서는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공격당했다’라는 사실 그 자체였고, 이는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끝까지 추적할 경우 국제적인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에, 모든 과정은 극도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다.신호의 발신지는 해외로 특정되었지만, 상대는 다층 암호화를 적용해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프로젝트 총괄 책임자인 청산으로서는 이 중요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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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2화

청산은 사실 이 일을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두고 있었다. 단순히 마음속으로만 그려본 정도가 아니라, 결혼식 현장 구성까지 구체적으로 상상해 두었고, 공간 동선과 무대 배치, 전체 분위기 연출까지 포함된 완성된 기획안을 이미 갖고 있었다. 지금은 일정이 급박해 보였지만, 막상 하나하나 펼쳐 보니 디테일에 허술한 부분이 전혀 없었고, 그대로 가져다 써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유하는 그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이런 일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 버리자, 늘 직구만 던지던 청산도 조금은 쑥스러워진 기색이었다. 유하가 보내는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인 시선을 정면으로 받자, 남자의 눈길이 미묘하게 흔들리며 살짝 비껴갔다.“약혼이긴 하지만 네가 말했잖아, 우리 결혼식은 고모할머니가 전부 맡으신다고. 그러면 이번 약혼은 내가 준비해 둔 이 안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응, 난 다 괜찮아.”유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다 준비돼 있는데 굳이 손을 보탤 이유도 없었고, 청산이 준비한 약혼식은 오히려 자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큰 틀은 무리 없이 정리됐지만, 곧바로 두 사람은 초대 인원 명단 작성에서 난관에 부딪혔다.먼저 유하 쪽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이솔은 해외에 있어 올 수 없었고, 소성란 쪽 역시 건강을 생각하면 장거리 이동이 무리라 약혼식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소씨 집안 친척들은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관계를 정리한 사이였고, 초대할 이유도 없었다.문제는 박영심이었다. 박영심은 오랜 시간 유하의 마음속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해 준 사람이었다. 이런 중요한 순간을 함께해 주길 유하 역시 간절히 바랐지만, 이번 약혼식의 본래 목적이 오씨 가문과의 명확한 선 긋기였기 때문에, 결국 박영심 역시 초대 명단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하나하나 정리하고 나니, 유하는 결국 비즈니스 파트너 외에는 부를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청산 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하보다는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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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3화

쾅!“소유하, 이게 무슨 뜻이야?!”병실 안에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접이식 의자가 넘어지면서 바닥을 긁었고, 한 손에 구겨진 붉은색 청첩장이 배설아의 손에서 내던져져 바닥을 구르다 천천히 다가오는, 윤이 나게 닦인 적갈색 가죽 구두 앞에서 멈췄다.남진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별다른 표정이 없는 얼굴로 천천히 청첩장을 펼쳤다.종이 위에는 장미가 만개해 있었고, 맨 위에는 또렷하게 ‘배남진 회장님께’라고 적혀 있었다. 분명 남진에게 보내온 약혼 청첩장이었다. 이어서 믿기 어려울 만큼 촉박한 날짜와 장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약혼식의 주인공 두 사람의 서명이 있었다.소유하, 그리고 임청산.남진은 마치 꿈인 것 같았다.불과 하루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까지 뒤집힐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는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하지만 설아는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미 바닥에 완전히 넘어진 접이식 의자를 발로 차며, 병실 안에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남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고함쳤다.“이 쓸모없는 놈아, 기회를 줬으면 좀 써먹을 줄도 알아야지! 어제 소유하 만나서 그 무슨 송 씨선생인지 윤 씨 선생인지 하는 일 얘기하라고 보냈으면 거기서 기회를 잡아야 할 거 아니야! 약속 하나 제대로 못 잡고 와서 지금 이 꼴이야!”“소유하는 번개처럼 약혼해 버렸는데 너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그리고 소유하는 왜 너한테만 청첩장을 보내서, 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야? 배씨 가문의 실세가 누구인지도 모르나!”설아는 거의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승현과 더 이상 얽히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설아는 유하를 아예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집안에 묶어 둘 생각이었다. 마침 집에는 아직 미혼인 남동생도 있었고, 남진이 유하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손해 볼 일은 없다고 여겼다.그래서 어제 유하가 찾아와 성이 송인지 윤인지도 헷갈리는 그 선생의 문제를 꺼냈을 때, 설아는 곧바로 남진을 불러 내보냈다.하지만 결과는 이 모양이었다.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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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4화

“누나, 이제 그만해. 더 이상 유하 씨 건드리지 마. 준서랑 재윤이 일도 그렇고, 유하 씨 일도 그렇고... 이번엔 누나가 진짜 선 넘었어, 여기서 끝내.”남진은 문 앞까지 걸어가 문을 잡아당겼다. 뒤돌아보지 않은 채 낮고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누나가 그래도 계속하겠다면, 그게 재윤이든 유하 씨든 상관없이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누나 동생 아니야. 아무리 괴로워도, 난 끝까지 누나에게 맞설 거야.”쾅!닫힌 문짝에 물컵이 세게 부딪쳤다. 물이 문을 타고 흘러내렸고, 유리컵은 산산조각 나 바닥에 흩어졌다.설아는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손바닥 아래에는 붉게 구겨진 청첩장이 깔려 있었고, 얼굴은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쓸모없는 놈이 감히,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날뛰네.”...배씨 가문의 남매가 약혼 청첩장 하나로 거의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을 뻔한 일은, 유하의 귀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유하는 그 시각 약혼식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대부분은 청산이 직접 챙기거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있었지만, 중요한 전화 몇 통은 유하가 직접 받아야 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로 얽혔던 파트너들, 그리고 디자인 업계에서 함께 일해 온 협업자들까지 연락이 쏟아졌다. 확인차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고, 축하 인사를 전하는 전화도 있었다.유하는 하루 종일 전화를 받느라 목이 따가울 정도였다.서재 옆 작은 발코니.방금 유하는 전화를 하나 끊고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흔들의자에 기대 햇볕을 좀 쬐며 쉬려던 참에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또야.”유하는 숨을 두 번 고르고 화면도 보지 않은 채 전화받았다.“여보세요, 소유하입니다.”늘 하던 대로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불러도 여전히 침묵뿐이었다. 말하느라 산소가 부족해진 머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유하는 흔들의자 팔걸이를 짚고 천천히 몸을 세웠다.“여보세요?”[나다.]오광진의 목소리였다.유하는 통화 기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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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5화

햇살이 딱 좋았다.유하는 발코니에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리는 하얀 커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의자가 천천히 움직이는 리듬에 맞춰, 유하의 눈빛도 긴장이 풀려 있었다.‘그래도 다행이야. 아까 그 전화에서 오 회장이 어머님 이야기를 꺼내서 나를 흔들려고 하지는 않았어.’‘물론 꺼냈다 해도 이제는 소용없지만,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니까.’‘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다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던 오씨 가문에 대한 마지막이라고 할 만한 좋은 기억마저 완전히 부서졌을 거야.’‘그건 나랑 어머님이 함께 가진 기억이었는데.’유하는 오광진이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용히 안도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기억만은 봉인해 둘 수 있으니까.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등 뒤에서 유리문이 미끄러지듯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직 돌아보기도 전에, 햇볕에 달아오른 뺨에 갑자기 차갑고 촉촉한 감촉이 닿았다.“차가워.”유하는 짧게 외치며 몸을 피했고, 고개를 들자 웃는 얼굴로 들어오는 청산이 보였다.청산의 손에는 과일이 가득 들어간 분홍빛 음료가 들려 있었다.“방금 만든 아이스 음료야, 복숭아 레몬 주스인데 한번 마셔볼래?”청산이 잔을 가볍게 흔들자 얼음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시원한 기운이 얼굴에 닿았다. 흔들의자에 누워 있던 유하는 불편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청산이 내미는 방향에 맞춰 빨대를 물고 한 모금 빨아들였다.상큼한 신맛과 달콤한 맛이 동시에 퍼졌다.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던 목도 한결 편해졌다. 유하는 한 모금 더 마신 뒤 말했다.“맛있다, 근데 좀 차갑네.”“조금씩 마시면 괜찮아.”청산은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유리컵을 들고 있는 그의 손놀림은 시종일관 안정적이었고, 유하가 한 모금씩 주스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다른 레시피도 몇 개 더 생각해 뒀어, 하나씩 만들어 줄게.”“응응.”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맛있어.”몇 모금 마시자 유하는 문득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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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6화

유하는 마우스로 화면 위의 파일을 하나하나 클릭하며 내용을 훑기 시작했다.그중 하나를 열자마자, 유하의 미간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다른 것들은 그래도 정리하거나 이관이 가능한데, 이건 좀...”“많이 번거로워?”청산이 물었다.“응.”유하는 고개를 들어 청산을 바라봤다.“선배도 알잖아, 하연우가 맡고 있는 그 AI 자동화 연구 프로젝트.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원래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서 하연우의 진짜 목적을 파악한 다음에, 그에 맞춰서 하연우랑 하씨 집안을 정리하려고 했거든.”“그런데 내가 이사회에서 완전히 물러나면, 더 이상 이 프로젝트를 직접 들여다볼 수가 없잖아. 그게 좀 골치 아파.”“바보.”유하는 이해가 안 됐다.“어?”청산은 손을 들어 노트북 가장자리에 얹으며 가볍게 웃었다.“그게 왜 문제야. 또 잊은 거 아니야? 하연우 프로젝트에 들어간 기술팀, 애초에 내가 붙여준 사람들이잖아. 진행 방향이랑 속도도 다 따로 보고받고 있고. 아직 가공도 안 된 최신 원본 자료도 있는데, 볼래?”“볼래.”“오케이.”청산은 옆에 있던 다른 노트북을 가져와 자신의 계정으로 로그인한 뒤, 자료 하나를 열어 유하에게 넘겼다.유하는 빠르게 훑어보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역시 그렇네. 하연우가 요즘 본사로 올려보낸 진행 보고 자료들, 전부 다 손질된 가짜야. 실제 진행 속도는 훨씬 빠른데... MB그룹 연구비 받아 놓고, 본사까지 속인다는 거네. 대단하다 정말.”“하연우는 원래 야망이 작지 않은 사람이야.”청산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은 표정으로 옅게 웃었다.“겉으로는 AI 자동화 연구라고는 하지만, 실제 방향은 하연우가 밖에다 말한 그 내용이 아니지. 저 정도면 하연우도 사실대로 보고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을 거야.”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올라온 보고서들을 떠올려 봐도, 실제 연구 상황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이 원본 자료... 꽤 흥미로운데.’“하연우... 미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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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7화

“국경 쪽이라고?”청산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 눈빛이 진지해졌다.“그러고 보니, 너 아직 기억나? 한 1년 조금 넘었을 거야. 너랑 이솔이가 태준혁 구했던 그 일.”“기억나.”유하는 그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당시 태씨 가문은 일부 자산이 불법 자금과 얽혀 있다는 의혹으로 당국의 주시를 받고 있었고, 그 와중에 태준혁이 습격당했다.그날 밤, 우연히 현장에 휘말린 이솔이 총상을 입은 태준혁을 구했고,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지금까지도 정리되지 못한 질긴 인연이 생겨버렸다.유하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이 얘기를 왜 지금 꺼내지?’청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우리 쪽에서도 그날 태준혁을 노렸던 세력을 계속 추적해 왔거든. 그런데 W시 외곽까지 따라가다가, 그 사람들의 흔적도 국경에서 끊겼어.”서재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거의 동시에 같은 가능성을 떠올린 듯했다.“설마...”유하는 혀를 차며 말했다.“하씨 집안이 태씨 가문한테까지 손을 댔다는 거야?”두 집안은 체급부터가 달랐다.하지만 오씨 가문까지 넘보던 하씨 집안이라면, 못 할 짓이 뭐가 있겠나 싶기도 했다.게다가 그 당시 태씨 가문은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었고, 이 틈을 노려 한몫 챙기려는 세력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고층 빌딩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면, 달려들어 케이크 한 조각이라도 뜯어가려는 놈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어쩌면 그때 유하와 이솔의 ‘순간적인 선택’이 물에 떠내려가는 태씨 가문을 한 번 건져 올렸을지도 몰랐다.‘근데 태준혁은 진짜... 내 절친을 그렇게 몰아붙여서 결혼을 강요하다니.’속으로 한 번 욕을 삼킨 유하가 다시 화제를 돌렸다.“확실해?”청산은 고개를 저었다.“확실했으면 진작 말했겠지. 오늘 네가 이 얘기 꺼내서 나도 다시 떠올린 거야. 우리도 얼마 전에서야 국경 쪽까지 끈이 닿았거든.”“이렇게까지 추적이 어려운 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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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8화

문이 요란하게 흔들렸고, 그보다 더 크게 울린 건 준서의 분노 섞인 고함이었다.“엄마!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문밖에서 들려오는 준서의 목소리에 유하는 청산의 옷자락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입술을 가볍게 다물었다. 심지어 얼굴의 절반은 그림자 속에 묻혀 있었다.이번 약혼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유하는 준서에게 미리 말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결정해 버렸다.이건 유하 자신의 일이었다. 준서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게 이 선택의 최종 기준이 될 수는 없었다. 다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직 정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래도 이제 아들이 알게 된 이상, 피할 수는 없었다. 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기 마련이었다.유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청산을 밀치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 청산은 땀에 젖은 유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이어서 여자의 머리 위에서 남자의 차분하고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다녀올게, 너는 여기서 정리하고 있어.”말과 함께 청산은 손에 들고 있던 차가운 복숭아 음료를 유하에게 건넸다.유하가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청산은 웃으며 덧붙였다.“앞으로는 아버지 역할도 해야 하잖아, 아들이랑 관계 하나 제대로 못 풀면 그게 말이 되겠어.”맞는 말이었다.유하는 청산이 준서에게 잘할 거라는 것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준서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유하 혼자서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너는 이미 할 만큼 했어, 이제부터는 내 몫이야.”청산은 유하의 귀 옆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며 말했다.“나 다녀올게.”“응.”유하는 짧게 대답했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생각하더니 팔을 뻗어 청산의 목을 감싸 끌어당겼다. 그리고 남자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보상?”은은한 복숭아 향이 청산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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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9화

결국 이런 스마트 시스템 같은 것들은 청산 앞에서는 무력했다.모두가 명확한 규칙을 가진 코드일 뿐이었다.청산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공중으로 날아든 레고 블록을 피하자, 문을 닫고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는 준서에 대한 미안함이라곤 거의 없었다.“미안하다, 문을 따고 들어온 건 좀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대화를 피하는 건 곤란하거든.”문제는 언젠가 마주해야 한다. 방법이 어떻든 간에.특히 준서처럼 까다로운 아이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청산도 가끔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일단 진정 좀 하고, 차가운 음료 한 모금 할래?”청산은 웃으며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컵 하나를 내밀었다.그러자 준서가 갑자기 손을 휘둘러 컵을 쳐냈다. 유리컵은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기울어진 컵에서 분홍빛 과즙이 흘러 청산의 손에 쏟아졌다. 길고 단정한 손가락을 타고 끈적한 주스가 흘러내렸고, 복숭아 향이 방 안 가득 퍼졌다.“나가세요!”준서는 차갑게 청산을 노려봤다.“아깝네.”청산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책상 쪽으로 걸어가 빈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멀쩡한 다른 한 잔을 내려놓은 뒤, 티슈를 꺼내 손에 묻은 끈적한 과즙을 천천히 닦기 시작했다.“이거 아저씨가 꽤 공들여 만든 건데. 네 엄마는 정말 좋아하더라.”“저는 엄마처럼 아저씨한테 속지 않아요!”준서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속아?”손을 닦던 청산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그는 고개를 숙여 준서를 내려다봤다. 얼굴의 미소는 조금 옅어졌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다만 안경 너머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파문도 없었다.“거꾸로 말한 것 같은데, 준서.”청산은 준서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 분노를 숨기지 못한 아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아저씨는 네 엄마한테 단 한 번도 거짓말한 적 없어. 그런데 너는?”“거짓말하는 건, 좋은 아이가 할 행동은 아니야.”준서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전, 청산도 처음에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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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0화

이번 약혼은 단순히 오씨 가문과의 단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오국수가 정말로 마음을 놓고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하루 종일 이 사람 저 사람을 걱정하며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게, 괜한 일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하려는 의미였다.그 덕에 청산은 어부지리를 얻은 셈이었다.지금까지 돌이켜 봐도, 그날 유하와 함께 해외로 나가 소성란을 만나기로 했던 것은, 청산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더라도 손에 꼽을 만큼 잘 둔 신의 한 수였다.소성란이 청산에게 명확한 거부나 반감을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그 순간 이미 판은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유하 역시 청산을 강하게 밀어내던 상태는 아니었고, 소성란만 노골적으로 싫어하지 않는다면, 모든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고 판단했다.준서의 입장도 중요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잘 풀리면 가산점이 될 뿐이고, 조금 삐걱거려도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유하를 실망하게 하는 건 절대 피해야 했다. 그건 청산에게 있어서 용납할 수 없는 실패일 것이다.무엇보다도 청산은 이 일로 유하가 더 이상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길 원하지 않았다. 기쁘게 받아들이길 바랐지, 나중에 후회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그건 너무도 허무한 결말이 될 테니까....준서는 눈을 부릅뜨고 청산을 노려보고 있었다.준서는 멍청하지 않았다. 청산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도 싫었다.이유 없이, 본능적으로.준서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움켜쥐고 잡아당기려 했다.“아저씨가 한 말들, 제가 엄마한테 그대로 말하면 엄마가...”“그래도 돼.”청산은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준서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낮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준서, 너는 아저씨의 비밀을 알고 있고, 아저씨도 네 비밀을 알고 있어. 내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그건 괜찮아. 우리 사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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