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구공주, 그녀의 당찬 인생》全部章節:第 581 章 - 第 590 章

656 章節

제581화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가운데, 어둠 속에서 가냘픈 그림자 하나가 멈춰 섰다. 뒤따라오는 남자의 인기척에 그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대체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구공주는 어디 있고? 그 여자는 언제 도착하는 건데?"문정수는 진성만 떠나면 구공주와 어딘가에서 합류하게 될 거라고 말했었다.그런데 분명 진성을 떠난 지 사흘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이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아무 말도 하지 않는 문정수의 모습에 칠조는 순간 싸한 기분이 들었다."혹시 날 속인 거야?"그녀의 마음속에 순식간에 경계심이 차올랐다."나를 진성에서 데리고 나와 여기까지 오게 한 진짜 속내가 뭐야?""구공주 마마의 뜻이야.""안 믿어! 공주가 너더러 나를 데려오라고 했을 리가 없어."설령 그랬다 해도 연지가 데리러 왔을 것이다.공주가 굳이 왜 문정수에게 그런 일을 시키겠는가?사실 문정수는 거짓말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사흘 동안이나 칠조를 속일 수 있었던 건, 칠조가 다소 눈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당장 실토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칠조는 갑자기 몸을 날려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들었다.긴 나뭇가지를 쥔 채 문정수의 심장을 겨누었다.밖으로 나오면서 칼 하나 챙기지 않은 게 그녀의 실책이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전혀 모를 거라 확신하지 마. 난 네가 아는 그런 멍청한 사람이 아니야. 나를 속이려 해 봤자 소용없어!""혹시 내가 너한테 마음이 있어서 데리고 나왔다고 생각하는 거야?"문정수는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칠조는 확실히 초아와 똑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긴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아내는 오직 초아뿐이었다.칠조는 그저 초아의 여동생처럼 여겨질 뿐이었다.즉, 칠조 역시 그의 가족이자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었다."칠조, 널 데리고 나온 건 마마의 뜻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역시, 공주의 뜻은 아니었어!"순간 칠조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그녀는 나뭇가지를 든 채 문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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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비밀?"그 말에 문정수는 눈썹을 찌푸렸다."응. 아주아주 큰 비밀이 있어. 반드시 구공주한테 전해야 해.""무슨 비밀인데?"너무도 당당한 물음에 칠조는 어이가 없었다. 비밀이라고 했으면 아무에게나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니, 물어보면 안 되는 게 아닌가?"구공주와 깊이 관련된 일이라서, 내가 직접 전해야 해.""하지만 너는 지금 진성으로 돌아갈 수 없어."문정수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더 이상 사실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대황자랑 육공주가 모두 죽었어. 내가 너를 데리고 떠난 그날 밤에.""뭐라고?"그들이… 그들이 다 죽었다고?칠조는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왜… 어쩌다가?""아직 자세한 상황은 몰라. 나도 두 사람 다 죽었다는 밀보만 받았을 뿐이야. 이 일이 여황제 폐하께 전해지고, 너와 관련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넌 돌아가는 순간 바로 죽어.""게다가 구공주와 세자도 진성에 없어. 두 사람은 지금 북란관 쪽으로 가고 있어.""정말 전쟁이 나려나 보네!"칠조는 북란관으로 가서 북란성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해내는 일에는 당연히 찬성했다.하지만…"누가 주장이지?"문정수가 대답했다."주장은 전하 이서영이야.""안 돼! 절대 안 돼! 그 여자는 그런 자리에 설 자격이 없어!"깜짝 놀란 칠조는 바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그 여자는… 절… 절대 안 돼!""뭐가 안 된다는 건데?"문정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칠조를 바라보았다.이 아이는 어째서 이서영에게 조금도 존경심이 없는 것 같지?칠조도 남진의 백성이 아니던가? 남진 백성이라면 당연히 남성의 딸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여자는 안 돼!"칠조는 매우 단호했다.그녀는 당시 중독된 영은이 흐릿한 정신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영은이 한 말은 분명 사실일 거라고 믿었다.그때 영은은 이서영이 절대 남성의 딸이 아니라고 했었다.예로부터 황실의 혈통에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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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널 찾으러 온 거야?”칠조는 순간 멍해지며, 곧바로 원망이 밀려왔다.여태 자신을 쫓아온 줄 알고, 도망치는 내내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는데…알고 보니 오히려 자신이 억울하게 휘말린 꼴이었다.반면 문정수는 칠조의 태도에 기가 찼다.이 년, 정말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군.놈들이 날 찾아온 거라면, 본인은 상관없다고 빠지겠다는 건가?하지만 눈앞에 적이 서 있는 상황에서 아군끼리 다툴 수는 없었다.그는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을 바라보며 물었다.“댁은 누구의 명을 받고 이곳에 온 거요?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요?”“장군님께서 함께 가시면 자연히 알게 되실 겁니다.”중년 여성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바로 그때, 칠조가 두 손을 들고 말했다.“저기… 저는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데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서…”한참 머리를 굴리던 그녀는 이내 중년 여성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전 이만 가봐도 될까요?”문정수는 기가 차다 못해 결국 한마디 했다.의리라고는 전혀 없는 년.“내가 이 사람들한테 끌려가면, 넌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어쩜 사람이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지?칠조는 이내 그를 노려보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놈들이 칠조를 그냥 보내줄 리가 없었다.결국 칠조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문정수를 바라보았다.“그럼… 아악!”사람이 재수 없으려면 정말 끝도 없다더니…!방심한 칠조는 저도 모르게 헐거운 돌 하나를 밟고 말았다.돌이 미끄러지며 칠조도 덩달아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기가 막힐 만큼 재수 없는 일이었다.누가 해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라니.이렇게 죽었다가 나중에 소문이라도 퍼지면, 너무 창피하지 않을까?칠조는 한편으로 너무 아쉬웠다. 이서영의 비밀을 아직 구공주에게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게다가 배도 몹시 고팠다. 방금 문정수가 준 과일 두 개도 아직 먹지 못했다.칠조는 자신이 참 처량하게 느껴졌다…그렇게 중얼거리던 순간, 절벽 위에서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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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나서야 윤세현이 방에서 나왔다.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지만, 평소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그 뒤를 따라 나온 이경은 어딘가 기운이 빠져 보였고, 시선도 내내 바닥에만 향해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 수도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다. 아니, 뽑아 올렸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런 걸 잡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이 일이 전적으로 이경의 탓도 아니긴 했다. 그때는 정신이 흐릿했으니 손에 잡힌 게 뭔지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그때 앞서 걷던 윤세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그렇게 아직도 딴 생각에 빠져있었던 탓에, 이경은 그대로 그의 등에 쿵 하고 부딪히고 말았다.생각보다 등이 너무 단단해서, 코끝이 찡하고 머리까지 핑 도는 바람에 그녀는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윤세현은 곧바로 몸을 돌려 그녀를 붙잡았다."힘없는 척하는 거야? 아까는 그렇게 힘이 넘치더니."간신히 몸을 가누던 이경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아까 힘이 넘쳤던 건, 정말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젖 먹던 힘까지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도무지 변명할 낯이 없었다."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일부러 약한 척을 한 건 아니었다.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본 윤세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한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졌다."마차는 없어. 괜찮겠어?"그가 진지하게 물었다."만약…""괜찮아. 이보다 더 험한 곳도 겪어봤어."이경은 이번 출정길이 얼마나 힘들지 이미 알고 있었다.담담하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윤세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더 험한 곳…?"한 나라의 공주로 태어나 평생 궁 안에서 귀하게만 살아온 사람이었다.그런 그녀가 대체 어디서 험한 환경을 겪어봤다는 걸까.그러나 윤세현은 이경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다만, 그녀가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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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한상궁, 할마마마는 지금 어디 계시지?"이틀 동안 남경이 보인 관용과 다정함에 이서영은 한껏 기세가 올라 있었다.이제는 한상궁 앞에서조차 버릇없이 굴 정도였다."나 할마마마를 뵈러 가야겠어.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를 괴롭힌다고 말씀드릴 거야!"그러자 한상궁은 장암을 흘깃 바라보았고, 곧 장암이 입을 열었다."전하께서 마차를 타길 원하십니다. 말을 타고 나서는 것은 원치 않으십니다."한상궁은 이서영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원래도 응석받이였던 사람이 요 이틀 사이 더욱 건방져진 것이다.하지만 한상궁은 그래도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다."전하, 폐하께서는 오늘 몸이 편찮으셔서 직접 나오지 못하실 것입니다.""그럼…""전하께서는 장차 폐하가 되실 분입니다. 저희 남진의 역대 전하들은 모두 한 번씩 말을 타보신 분들이셨습니다."한상궁은 이내 말을 끌고 와 이서영 앞에 세웠다."전하, 지금부터 말을 타기 두려워하시면 장차 어떻게 말을 타고 천하를 누비시겠습니까?"그 말에 이서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누가 말을 타고 천하를 누비겠다고 했어?정 안 되면 다른 사람이 대신 이 천하를 장악해도 되는 거고, 난 그저 궁 안에 숨어 먹고 놀기만 하면 되는 거지.내가 얼마나 존귀한 신분인데, 나더러 직접 나가 싸우라고?사실 이번 출정도 이서영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참석일 뿐이었다.실제로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은 신분 낮은 병사들이었고, 이서영은 그런 사람들의 목숨 따위는 자신의 것과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한상궁, 난 마차를 탈 거야. 마차가 없으면 출정하지 않을 거야!"그 말에 장암은 깜짝 놀란 얼굴로 한상궁을 바라보았다. 그마저도 이서영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는데, 한상궁은 이틀 동안 거의 매일같이 이서영과 함께했다.그녀는 속으로 화가 치밀었지만, 상대는 어쨌든 존귀한 전하였기에 그저 참으며 좋은 말로 달랠 뿐이었다."전하, 이번 원정은 전하께서 공을 세우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게다가 세자 나리의 도움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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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이서영은 엄연히 전하였다. 그리고 곧 남진에서 장차 여황제가 될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그것도 장차 천하를 다스릴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맞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너를 죽여버릴 거야!”이서영은 정말 미쳐버린 사람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그러나 남양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여유로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 눈앞의 무능한 전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전하, 안 됩니다!”다행히 한상궁과 장암이 재빨리 나섰다. 남양이 다시 손을 쓰기 전에 두 사람은 이서영을 붙잡아 뒤로 물러서게 했다.곧이어 한상궁이 급히 말했다.“전하, 장공주 마마는 전하의 고모님이시자 황실의 어른이십니다.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내가 전하인데, 저 여자가 감히 나를 때렸잖아! 나를 때렸다고!”이서영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소리쳤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체면이고 뭐고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저 여자를 죽이고 말겠어! 당장 죽일 거라고!”“여러분, 들으셨습니까? 전하께서 저를 천인이라 욕하시더니, 이제는 아예 죽이겠답니다. 제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반드시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남양의 우렁찬 목소리가 순식간에 광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저는 그저 무례한 후배를 가르치려 했을 뿐입니다. 그게 죽을죄라도 된단 말입니까?”모두들 고개를 떨군 채 숨소리조차 죽였다.단단히 화가 난 이서영은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사람을 때려 놓고도 오히려 저렇게 당당하다니!설마 내가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지? 나는 남진의 미래 여황제라고!“내가 죽여…”“전하, 그만하십시오!”한상궁이 호통 치며 이서영을 확 끌어당긴 탓에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져 땅에 구를 뻔했다.간신히 중심을 잡은 그녀가 한상궁을 노려보았다.“당신까지…”“전하, 폐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 것은 전하께서 대군을 이끌고 성을 나가실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한상궁의 얼굴은 잿빛으로 굳어 있었다. 이서영이 남성의 딸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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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그렇게 남백훈은 억지로 원정대에 끌려가게 되었지만, 사실 그도 애초부터 진성을 떠날 생각이었다.오히려 이서영이 이렇게 나와준 덕분에 그럴듯한 핑계가 생겨서 다행이었다.다만 짜증 나는 점이 있다면, 이서영이 자꾸만 자신의 곁에 꼭 붙어 있으라고 집착하는 것이었다.그렇게 대오는 이틀 동안 행군을 이어갔고, 남백훈은 이경과 윤세현이 대열의 맨 앞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얼굴을 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사흘째 되는 날, 대열은 심양성을 떠나 산림 속으로 들어갔다.북란관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산림은 길이 험하고 좁은 곳이 많아, 아무리 봐도 마차가 다니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산골짜기를 따라 행군한 지 반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서영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말 등에 엎드린 채 토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장암은 즉시 행군을 멈추게 하고, 그 자리에서 쉬어가기로 했다.“오라버니를 만나고 싶어.”이서영은 병사가 깔아준 양탄자에 앉은 채 힘없이 말했다.“오라버니한테 전해줘. 나… 몸이 안 좋다고. 너무 보고 싶다고.”장암은 난감했지만, 어린 공주가 정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어쩔 수 없이 직접 대열 앞쪽으로 달려갔다.한편 윤세현은 여전히 이경과 함께 말을 타고 있었다.이틀 동안 행군을 이어간 이경도 이제는 견디기 힘든 듯, 온몸이 축 늘어진 채 윤세현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대열이 멈추자 윤세현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주었다.“어때?”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눈빛에는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아직도 가슴이 답답해? 내가 좀 주물러 줄까?”“아니…”그 한마디에 이경은 하마터면 그를 그대로 걷어차 버릴 뻔했다.분명 그에게 나쁜 뜻이 전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그래도 가슴을 주물러 주겠다니?사방에서 병사들이 보고 있는 건 모르는 건가?“아무것도… 아니야.”이경은 그저 입술을 깨물었다. 목소리는 몹시 쉬어 있었다.“그냥 좀… 피곤할 뿐이야.”하지만 윤세현은 이경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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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세자 나리!”장암은 윤세현을 힐끗 보기만 하고 바로 이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애정 표현이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만 봐도 이미 서로에게 깊이 빠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한단 말인가.“장암, 대체 무슨 일이야?”윤세현은 남진 사람들에게 그리 인내심을 보이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장암은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인물이었고 태도 역시 친근한 편이라 그나마 눈에 거슬리진 않았다.한참을 망설이던 장암은 결국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나리, 전하께서 몸이 편찮으시다며… 나리께서 직접 좀 돌봐 주시길 바라십니다.”그 말에 윤세현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싫어.”몸이 아프다면서 의원도 아닌 사람을 왜 찾는단 말인가.장암은 순간 멍해졌다.거절당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단칼에 잘릴 줄은 몰랐다.“나리…”“남백훈이 곁에 있지 않아? 남백훈을 보내.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윤세현은 더 이상 이서영에게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장암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돌아가 명을 전하기로 했다.그런데 이때, 이경이 의아한 듯 물었다.“남백훈도… 여기 있다고?”“왜? 또 다른 남자 생각 하는 거야?”매일 내 곁에 있으면서도 그런 잡생각 할 여유가 있나 보지?이경은 기가 찼다.그저 남백훈이 대오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을 뿐이었다. 사흘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그런데 다른 남자 생각이라니? 지금은 병 때문에 밥 먹을 힘도 없는데, 무슨 힘으로 다른 남자를 생각한단 말인가.다른 건 몰라도 질투심 하나만큼은 일류였다.“다른 남자 생각 안 했어.”이경은 입술을 깨물고는 그의 의심에 반박했다.“하루 종일 당신만 생각했어!”“…”윤세현은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심장은 또 한 번 세게 욱신거렸다.아픈데, 달았다.이런 기분은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윤세현의 거절에 이서영은 한참을 울먹이다 결국 그대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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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난 전하야. 내가 무엇을 부수든 내 마음이지,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간섭하는 거야?"이서영은 남백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신분이 고귀한 전하가 물건 몇 개 부수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그 말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장암은 조용히 진영 밖으로 나갔고, 남백훈 역시 이곳에 더 머물 생각이 없는 듯 몸을 돌리려 했다.그런데 그때 이서영이 다시 다급히 소리쳤다."너, 당장 돌아와!""전하,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신분상으로는 남백훈이 이서영보다 낮긴 했지만,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은 그의 태도가 오히려 이서영을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남양도 어쩌지 못한 마당에, 고작 황자 하나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넌 여기 남아서 나를 모셔!"이서영은 윤세현을 얻지 못했으니, 최소한 남백훈이라도 붙잡아 화를 풀 생각이었다.윤세현이 이경 곁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속이 뒤집혔다.해가 질 무렵 직접 윤세현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그는 만나주기는커녕 청지에게 자신을 쫓아내게 했다.이서영이 아는 오라버니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게다가 이 진영 안에서는 달리 어찌할 방법도 없었다.대체 언제쯤이면 윤세현이 제 말을 들어주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까…남백훈은 차갑게 이서영을 흘깃 보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그러자 화가 난 이서영이 물건 하나를 집어 그의 등 뒤로 냅다 던졌다.남백훈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그 물건은 그대로 날아가서 이서영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아악!"엄청난 아픔에 이서영은 하마터면 바닥에 나뒹굴 뻔했다.남백훈은 문을 활짝 젖힌 채, 머리 한 번 돌리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 순간 단단히 화가 난 이서영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가 정말 그 여자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그 한마디에 남백훈의 발걸음이 멈췄고, 문고리를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그제야 이서영은 깨달았다. 오직 이경만이 남백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윤세현도 그렇고, 남백훈도 그렇고,이 남자들은 하나같이 눈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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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다른 남자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에 남백훈은 순간 멍해졌다.이경은 아마 뒤에 나타난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곧 뒤를 돌아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남백훈을 생각한 것도 아닌데, 뜻밖에도 그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이 사실을 윤세현에게 들키면 또 한소리 들을 게 뻔했다.“웃고 있네?”남백훈이 이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자, 이경은 다소 당황했다.웃고 있다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데, 내가 웃을 기분이겠냐고.“그나저나 당신은 왜 대군을 따라온 거야? 남경이 당신을 곁에 둔 거야?”“누가 명을 내렸든 결과는 같았을 거야.”이경은 고개를 돌려 그를 흘깃 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화풀이를 당했나 보네?”하지만 남백훈은 이경이 이서영을 언급할 때, 더는 비꼬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당신… 그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은데?”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이서영을 싫어하고 무시했지만,오직 이경만은 이서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그 여자가 남성의 딸인지 아닌지가, 당신한테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중요해.”남백훈을 속일 생각이 없었던 이경은 솔직히 인정했다.“이유는 묻지 마. 물어봐도 대답 안 할 거야.”남백훈은 말없이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한때는 거만하고 자신감 넘치던 사람이었는데,단 한 번의 친자 확인 결과만으로 이경의 눈빛에는 생기가 거의 사라져 있었다.무기력한 그녀를 바라보는 남백훈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아니면… 검측 기계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몰라.”그는 강가로 다가서며 이경처럼 강물 위에 비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이경이 보고 있던 것은 달의 그림자였고, 남백훈이 바라보는 것은 그녀의 그림자였다.“내 검측 기계는 절대 틀릴 일 없어.”이것이야말로 이경다운 자신감이었다.다만 그 자신감은 그녀를 깊은 절망에 빠뜨리고 있었다.“그럼 혹시… 용기가 제대로 세척되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의 피가 남아 있었을 수도 있잖아.”“난 매번 내가 특제한 약수로 용기를 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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