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고작 교지 한 장으로 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더냐?”머리 위로 깊고 묵직하게 깔린 남자 목소리가 서늘하게 내리꽂혔다. 이경은 순식간에 목덜미가 시큰해지더니 숨이 턱 막혀와 의식이 아득해졌다.긴 속눈썹이 떨리며 겨우 눈을 뜬 순간, 그녀의 시야에 세상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준수한 얼굴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 남자는 지금,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네가 감히 우리 공가 세자빈 자리를 넘본 것이냐?”남자는 매서운 눈빛과 입가에 한 줄기 냉소를 머금은 채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싸늘한 시신이라면 몰라도 살아 있는 그대는 결코 내 곁에 둘 생각이 없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을 조이는 힘이 한층 더 세졌다. 이경은 온몸이 점차 저려오다 못해, 마침내 의식이 흐릿해질 무렵에야 남자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을 거두었다.긴 도포 자락을 단정히 추스른 그는 기품 있고 날렵한 체격에 식은땀 한 줄 흐르고 있을 뿐 얼굴에는 미동도 없었다.얼음장 같은 표정, 천하의 모든 빛을 가릴 것 같은 그 얼굴에는 오직 차가운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그가 조용히 몸을 돌려 손바닥으로 방문을 내리치자 문밖에는 하인들이 모두 얼굴을 바닥에 박고 엎드려 있었다.“세... 세자 저하, 구공주께서... 구공주께서...!”윤세현은 무심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죽었다. 땅에 묻어라.”한 치의 미련도 없는 듯, 그는 조용히 등을 돌려 걸어 나갔고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고독이 길게 드리웠다.‘정말로, 땅에 묻으라는 것인가?’하인들은 모두 숨을 삼키며 얼굴이 잿빛이 되어 무릎을 꿇고만 있었다.‘구공주는 폐하의 막내딸이자 대왕대비마마의 온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귀한 손녀인데.’그제서야, 이경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윤세현이 떠난 자리에 남은 냉혹한 기운과 귀에 남은 모진 말들을 뒤로한 채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하려 애썼다.진정한 구공주는 자신의 지아비 손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대왕대비의 교지로 인해 억지로 혼례를 치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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