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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201 - Chapter 210

242 Chapters

제201화

연경은 가유 공주의 명을 거여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공손히 말했다.“송구하옵니다, 마마. 소첩은 풍한이 채 낳지 않아 공주마마께 병이라도 옮길까 우려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손을 씻고 지압을 해드리겠습니다.”가유 공주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연경은 조용히 장씨 어멈을 끌고 나갔다. 그녀는 손을 씻으며 조용히 어멈에게 말했다.“제가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어멈도 나으리의 성격 아시잖습니까. 나으리도 연회에 오셨는데 만약 제가 이곳에서 남들 시중이나 들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나오실지 모르겠습니다.”장씨 어멈이 말했다.“이랑은 핑계도 참 가지가지군. 공주마마는 존귀하신 분이네. 다른 가문의 정실 부인에게 시중을 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이지. 이따가 괜한 소리 말고 지압이나 열심히 하게.”연경은 일깨워줄 건 미리 일깨워줬으니 이따가 무슨 일이 생기든 이제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가유 공주는 사람들과 함께 경극을 보고 있었는데 신변에는 시종 한 명이 쟁반을 들고 공주가 까먹은 해바라기씨를 받고 있었다.연경은 조용히 다가가서 지압을 시작했다. 얼마 못가 가유 공주가 아프다며 몸서리를 쳤다.“너 날 죽일 셈이냐?”“지압한 자리가 아프다는 건 거기가 혈이 막혀 있다는 뜻이고 힘을 줘야지 막힌 혈을 뚫을 수 있습니다. 마마는 글공부도 많이 하신 분이니 이 정도는 아실 테지요.”연경이 일부러 힘을 더 주기는 했지만 지압은 원래 힘이 들어가는 일이었다.그녀는 여전히 공손한 말투를 쓰고 있었지만 잘 들으면 공주가 무식하다는 말로 들릴 수 있었다.가유 공주가 짜증스럽게 말했다.“내가 그걸 몰라서 그러겠어? 좀 살살 하면 될 것을. 내가 천한 너처럼 살가죽이 두꺼운 줄 알아?”장씨 어멈이 연경이 한 말을 노부인에게 전달했기에 그 말을 들은 노부인은 난감한 얼굴로 공주에게 말했다.“저 아이가 손재주가 서툴러서 괜히 마마의 기분만 상하게 해드렸네요. 심한 풍한을 앓고 다 나은지 얼마 안 된 아이라….”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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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나를 찾고 있었느냐?”손기욱이 물었다.“나으리, 이랑께 일이 좀 생겼습니다.”손기욱은 듣자마자 큰일임을 직감하고 서란을 재촉했다.“길을 안내하거라.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듣겠다.”그는 기종보다 한발 늦게 자리를 떴지만 기종보다 먼저 연경이 있는 곳에 당도했다.기종은 공주의 체면도 고려해야 하니 여귀빈들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가지는 않고 사람을 시켜 기요를 불러냈다. 여동생을 시켜 공주에게 소란을 만들지 말라고 권할 생각이었다. 기요를 기다리며 뒤에서 가유 공주의 행태를 지켜보던 그는 한숨만 나왔다.그러는 사이 손기욱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예법도 무시한 채, 당당하게 공주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의 어머니는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손기욱은 아무에게도 인사를 건네지 않고, 곧바로 연경이 들고 있던 쟁반을 바닥에 집어던지더니 그녀를 잡아서 일으켰다. 연경의 얼굴에는 아직도 공주가 먹다 버린 해바라기 껍질이 붙어 있었다.챙그랑 하는 소리에 공주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그는 험악한 표정의 손기욱을 보고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너… 무례하구나!”“기욱아, 공주마마께 예를 갖춰야지!”아들을 본 노부인도 가슴이 철렁했다.“신이 장군으로서 밤낮 안 가리고 경성의 평안을 수호하는 동안, 공주께선 신의 가족을 이런 식으로 대하십니까?”손기욱은 다짜고짜 따져물었다.가유 공주의 방화 사건은 이미 덮기로 했지만 황제는 그녀에게 3개월의 금족령을 내렸다. 그녀는 손기욱이 금위군을 이끌고 용의백가로 쳐들어온 것에 앙심을 품고 첩실인 연경에게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단지 단순한 화풀이였을 뿐이었다.“신하 된 자가 감히 공주인 내게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다니!”가유 공주의 호통이 끝나기도 전에 기종은 다급히 달려와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마마, 손 지휘사, 오해입니다. 그러니…”“부마는 어린 나이에 벌써 눈이 안 보이는 게요?”손기욱의 비아냥에 기종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오늘의 초대연을 허락한 이유는 손기욱과의 어색해진 관계를 회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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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여봐라, 당장 손기욱을 잡아서 옥에 가두거라!”가유 공주는 비록 공주 관저를 하사받지는 못하였지만 휘하에 백 명에 달하는 호위를 두고 있었다.그녀의 지시가 떨어지자 수십 명의 호위가 우르르 몰려왔다.여인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기종이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다.“마마,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손기욱에게 무력을 휘두르는 건 멍청이나 할 짓이었다.과거 공주의 눈에 들어서 부마가 될 때, 그는 누구보다 기뻤다. 나날이 쇠락하는 용의백부가 부흥하려면 공주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그렇게 어여쁘던 공주는 3년 전 아들을 출산한 이후로 점점 기고만장하고 각박하게 변해갔다.가유 공주는 기종의 안색을 보고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지금 와서 물릴 수는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끝까지 손기욱의 잘못을 추궁했다.“네 죄를 알겠느냐?”그가 여기서 고개만 숙인다면 오늘 일은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다.그러나 손기욱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저는 잘못한 적이 없습니다.”연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손기욱은 안심하라는 뜻으로 그녀의 손을 다독였다.제 발로 찾아온 기회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완전히 이성을 잃은 가유 공주는 저택 호위들을 시켜 그를 포위하게 했다.여인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분분히 핑계를 대고 돌아갔다. 용의백 부부가 재삼 만류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손기욱은 당당한 눈길로 기종을 바라보며 말했다.“부마, 구경은 그 정도 하면 되었지 않소? 공주께서 나와 무력으로 겨루고 싶으시다 하니, 상관없는 사람들은 모두 물리시오.”말을 마친 그는 연경과 노부인을 바라보았다. 기종은 호위들에게 길을 비키게 하고 두 사람이 나갈 수 있게 길을 터주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호위들은 가유 공주만 바라보았고 공주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기종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무안 후작부의 노부인은 고명의 칭호를 받으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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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여차여차 해서 안까지 들어왔는데 이런 상황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큰댁 노부인은 주먹다짐을 보고 놀라서 가슴을 부여잡았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금위군 지휘사에게 이 무슨 무례란 말이오?”주먹에 맞은 호위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에 주씨는 머리털이 곤두섰다.“왜 금위군을 불러오지 않는 거지? 여럿이서 한 명만 해코지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금위군을 불러오면 저들을 다 쓸어버릴 텐데!”노부인은 눈을 반짝이며 곧바로 장씨 어멈에게 눈치를 주었다.큰집과 둘째네 여인들은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요! 당장 금위군을 불러오세요!”연경은 다급히 바깥으로 향하는 장씨 어멈을 불러세웠다.“안 됩니다! 서란아, 당장 어멈을 막아!”노부인은 그런 그녀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양심도 없는 것! 이게 다 너 때문에 생긴 일인데 맞는 걸 보고만 있겠단 말이냐!”연경은 다급히 말했다.“노부인, 나으리께서 반역으로 몰리는 걸 보고 싶으신 겁니까? 당장 사람을 보내 용의백과 노후작을 찾으세요! 남자 손님들 쪽에 신분이 높으신 분들은 모두 불러오세요!”장씨 어멈은 노부인의 눈치를 살폈고 노부인은 고민 끝에 연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연경은 그제야 노부인에게 설명했다.“나으리께서 겨루기라고 말씀하신 것은 공주와 자신에게 그럴 싸한 명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상황에 금위군을 불러와서 공주의 호위들과 맞서 싸운다면 반역으로 몰릴 수도 있어요!”노부인은 그제야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그래, 네 말이 맞아. 금위군을 불러올 수는 없지.”“금위군은 황실과 백성을 수호하기 위한 군대입니다. 나으리의 사적인 일로 금위군을 이용해서는 안 돼요.”그 말을 들은 노부인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너무 조급한 나머지 오히려 아들을 해칠 뻔했던 것이다.용의백과 노후작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손기욱은 손쉽게 마지막 남은 호위병을 쓰러뜨리고 있었다.공주가 소리쳤다.“무능한 녀석들! 다른 놈들은 다 어디 있느냐!”“공주마마!”겁에 질린 용의백이 큰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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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그렇게 무안 후작가와 그의 친인척들은 아무도 꿇지 않았다.용의백 가문의 사람들만 무릎을 꿇고 있었고 고통을 호소하던 호위들마저 기어 일어나서 무릎을 꿇었다.공주는 그들을 바라보며 아무도 자신의 편에 서주지 않는 것에 분노했다. 그녀는 다가가서 용의백 부부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지만 두 사람은 고집스럽게 뜻을 굽히지 않았다.손기욱에게 뭐라고 하려던 찰나, 앳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어머니, 어머니!”가유 공주의 외동아들이 아장아장 달려오더니 공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안아주세요, 어머니!”세 살이 된 어린 세자는 진작에 뛰어다닐 나이이지만 가유 공주는 안쓰러운 얼굴로 아들을 품에 안았다.“조심하렴, 그러다 넘어질라!”“어머니, 저 사람들은 왜 피를 흘리고 있나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왜 무릎을 꿇고 있는 거죠?”가유 공주는 난감한 얼굴로 손기욱에게 말했다.“손 지휘사, 아직도 안 가고 뭐 하는가? 설마 내가 자네에게 저녁 식사라도 대접하길 바라는가?”“공주마마, 어찌….”공주의 텃세에 분노한 노부인이 나서려 했지만 노후작은 헛기침을 하며 부인을 말렸다.이 상황에서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건 옳지 않았다. 손기욱 성격 상 무조건 이 일을 폐하께 고할 것이고 폐하께서 알아서 판단하실 것이다.“아버님, 어머님, 이만 일어나세요.”가유 공주는 힘겹게 공주의 텃세를 내려놓고 가족들에게 말했다.그녀가 더 이상 무안 후작을 곤란하게 하지 않으니, 용의백 부부도 조용히 일어났다.부부는 기종에게 눈짓한 후, 억지미소를 지으며 손기욱 일행을 배웅했다.금일 공주가 사람을 괴롭히는 행위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손기욱이 한 말은 일리가 있으니 무조건 폐하의 귀에 전해질 것이다. 그들은 그저 손기욱이 황제 앞에서 일을 더 부풀려서 말하지 않고 좋은 말 한마디라도 해줘서 이 일이 조용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손 지휘사는 너그러운 분이니….”손기욱은 매몰차게 용의백의 말을 끊었다.“난 원래 속 좁은 사람입니다.”용의백 부인은 어색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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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용의백은 다급히 부인의 입을 틀어막으며 바깥을 살폈다.한편, 노후작은 손기욱을 끌고 마차에 탔다. 모두가 그의 상처를 걱정하여 말을 못 타게 한 것이다.무안 후작가 대문 앞에 도착하자 연경은 다급히 노부인의 마차에서 내려 손기욱이 탄 마차 앞으로 갔다.용의백부를 나올 때 노부인은 그에게 얼마나 맞았냐고 물었지만 그는 많이 맞진 않았다고만 답했다.그러나 얼굴을 제외하고도 다른 곳에도 부상이 있을지 모르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손기욱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을 보니 그동안 쌓였던 화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그녀가 전에 누굴 마음에 품었든 지금의 그녀는 그의 것이고 만약 그녀가 자신을 배신한다면 경성을 뒤져서라도 그 진이라는 작자를 찾아내서 불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연경은 성급하게 마차에서 내리려는 손기욱을 불러세웠다.“잠시만요, 나으리!”곧이어 시종이 작은 의자를 가져오자 연경은 손을 내밀며 그를 부축했다.손기욱은 못 말린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내가 그리 연약하게 보였어?”“그래도 조심하셔야지요, 나으리.”연경은 고개를 들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손기욱은 천천히 의자를 딛고 마차에서 내렸다.앞으로 다가온 노부인이 그의 손을 잡고 한탄했다.“아직 새로운 의원을 청하지도 못했는데 이를 어쩌지? 태복, 어서 백초당으로 가서 의원을 모셔오거라!”노후작과 연경도 손기욱의 옆에서 부상을 살폈다.손기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들에게 말했다.“집에 들어가서 옷만 갈아입고 곧 입궁할 것입니다.”“상처를 치료도 하지 않고 입궁이라니?”노부인은 눈시울을 붉히며 발을 동동 굴렀다.손기욱도 그 모습을 보고 평소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별일 아니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 폐하께 제가 얼마나 다쳤는지 보여드려야지요. 매를 헛되이 맞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노후작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저들이 적반하장으로 나올 수도 있으니.”노부인도 그 말을 듣고 손기욱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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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경양백 부부는 대청에서 차를 마시며 또 한참을 기다렸다.“무안 후작도 참으로 너무하십니다! 어찌 손님을 이렇게 기다리게 한단 말입니까!”결국 참다못한 경양백 부인이 화를 냈다.“그래서 이 늙은 것이 친히 저녁식사까지 가져오지 않았는가?”안으로 들어온 노부인이 그녀의 불평을 듣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경양백 부부는 어색하게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백부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변명하듯 말했다.“노부인, 오해세요. 저희도 정말 급한 일이라….”“우리가 자네들을 저택으로 오라고 청하였는가? 온다는 언질 한번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우리 무안 후작가가 그리 한가해서 자네들이 언제 찾아오든 성대히 대접해야 하는가?”안 그래도 오늘 기분이 매우 안 좋은 노부인이었기에 나가는 말이 곱지 않았다.경양백은 억지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공주의 연회에 참석하러 가셨다고 들었는데 후작 나으리는 어쩌다 다치셨습니까?”그 얘기가 나오자 노부인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이 늙은이는 몸이 불편해서 같이 저녁식사까지는 못해주겠네.”말을 마친 노부인은 싸늘한 얼굴로 뒤돌아섰다.경양백 부부는 눈앞에 차려진 밥상을 보며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굳이 한끼 식사가 필요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아니었는데 괜히 무시당한 느낌이 들었다.잠시 후, 연경이 안으로 들어왔다.경양백은 서둘러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보아하니 용의백부에서 저녁을 안 먹고 온 것 같구나. 어서 앉아서 같이 들자.”연경은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경양백부로 돌아가기 전, 어린 자신을 품에 안고 귀여워해 주던 경양백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매일 간식이 끊이지 않아서 그때는 꽤 통통했던 걸로 기억났다.그러나 경양백 부인이 찾아온 날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그녀를 그렇게 소중히 아껴주던 아버지는 그녀의 신분을 시인하지 않았고 경양백 부인이 협박에 의해 시종 계약서를 쓸 때도 모른 척했다. 경양백부로 돌아온 이후 처음에는 몰래 그녀를 보러 왔으나 시간이 길어지며 점점 발길이 뜸해지더니 어느 순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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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경양백 부인은 곱지 않게 그녀를 흘기며 반박했다.“아무리 그래도 백부의 적장자인데 어찌 천한 백성과 비교를 하겠느냐!”그녀는 어쩐지 연경이 아들을 욕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걸 모르는 경양백은 그저 연경이 아들을 걱정하는 줄 알고 하소연했다.“당연히 적응이 안 되겠지. 애들 부부가 매일 집안에서 부부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그런데 나으리는 왜 찾아오신 건가요?”연경의 질문에 백부인이 치를 떨며 말했다.“대체 도움을 주겠다고 해놓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유를 묻고 싶구나. 일을 망쳤으니 적어도 선준이에게 괜찮은 자리라도 내주어야지 않겠니? 그 애가 관직에 몸담으면 며느리도 더 이상 집안에서 소란을 부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연경은 싸늘한 어투로 답했다.“제가 듣기로 나으리께서는 부인을 도와 황실 하사품인 옥여의를 찾아주셨고 폐하께 청을 드려 이 정도에서 끝난 걸로 압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작위를 박탈당하고 서민으로 강등당할 수도 있었어요.”경양백의 안색이 음침하게 굳었고 백부인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그들이 무안 후작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일까? 그러나 폐하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는 그의 입지를 생각하면 이 정도 도움은 너무 약소해 보였다.실은 그들도 작위들 돌려달라고 떼를 쓸 생각은 없고 그저 손기욱의 미안함을 자극하여 송선준에게 괜찮은 관직을 추천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그러나 연경의 말을 들어 보니 이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공주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 무안 후작이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 리가 없었다.백부인은 갑자기 입맛이 떨어져 연경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지금으로서는 후작이 너를 총애하시니 앞으로 옆에서 귓바람을 좀 넣어서 선준이가 좋은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힘 좀 쓰거라!”명령조로 말하는 백부인의 어투에 연경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도련님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제가 어찌 알겠어요. 옆사람이 전달하면 괜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이 일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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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한편 황궁.황제는 대전으로 온 두 사람을 보고 머리가 지끈거렸다.“가유 공주께서는 신의 능력을 의심하셔서 신이 금위군 지휘사의 자격이 있는지 검증해 보신다고 호위들과 결투를 요구하셨습니다. 신하로서 공주께 이런 의심을 받으니 신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어 직책을 내려놓고자 합니다.”손기욱은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듯이 지휘사 금패를 황제에게 내밀었다.“허튼소리! 일개 아녀자인 공주가 무슨 자격으로 정무에 간섭한단 말이냐! 짐이 능력 없는 자를 경성을 수호하는 중요한 자리에 올릴 정도로 우매한 군주는 아니다!”기종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무릎을 꿇으며 사죄했다.“폐하,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신이 무능하여 공주를 설득하지 못하였습니다. 내일 바로 무안 후작가로 찾아가 사죄드리겠으니, 손 지휘사도 그만 화를 풀어주십시오!”기종은 이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손기욱이 한 말은 모두 사실이고 굳이 변명할 이유가 없었다.“용의백가의 모든 이가 공주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만하라고 사정하였으니 최선을 다한 셈이지요.”손기욱이 덤덤한 얼굴로 그 얘기를 꺼냈다. 기종이 가타부타 그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은 자신이 아닌 그의 입을 통해 얘기해달라는 의미이니 굳이 그 얘기를 건너뛸 이유가 없었다.그 얘기를 들은 황제가 눈을 부릅뜨며 호통쳤다.“흥! 일가족이 무안후에게 사과할 게 아니라 공주가 저지른 일이니 그 아이가 책임을 져야지!”아무리 존귀한 공주라도 효를 무시해서는 아니되는 법, 가유 공주는 시부모님까지 무릎을 꿇고 사정하게 하였으니 황가의 체면을 내다버린 행위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폐하. 존귀하신 공주마마의 명을 신하 된 자가 어찌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공주께서 돌연 제게 불경의 죄를 뒤집어씌우면 신은 감당 못합니다.”손기욱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황제는 그의 입가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금위군 안에 기생충이 있다고 불만이 아니었더냐? 네가 대청소를 할 수 있도록 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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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노부인은 장씨 어멈을 시켜 내관에게 금화를 인사 선물로 주고 노후작과 함께 친히 그를 배웅했다.반면 손유민 부부는 괜히 연경을 노려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연경은 상자에 든 화려한 장신구와 연지들을 바라보았다. 첩실에게 주는 하사품 치고는 과분한 것들이었다.“나으리께서 이렇게까지 저를 위해 힘써 주시니 감흡할 따름입니다.”경성에서 황후의 하사품을 받은 천첩은 아마 연경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첩실도 그녀가 유일했다.귀하신 분들이 굳이 일개 첩실을 위해 황제 앞에서 포상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다.연경은 평소보다도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감사의 말을 속삭였다. 손기욱은 가녀린 그녀의 어깨를 보며 이렇게 약하니 잘 지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어서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하시지요.”연경은 그의 입가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손기욱은 하사품들을 모두 매향원으로 옮기게 하고 연경의 부축을 받으며 처소로 돌아갔다.그들이 돌아가기 바쁘게 후작가 대문 안으로 상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노부인은 이 일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노후작이 그녀의 동의도 없이 큰댁 사람들을 저택으로 이사 오게 했기 때문이었다. 얘기를 들은 둘째네도 자신들도 같이 와서 산다며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유는 가택이 낡아서 수리를 해야 하니 갈 곳이 없다는 거였다.반달 전에 노후작이 술김에 허락한 일인데 노부인에게는 입도 벙끗하지 않다가 큰댁과 둘째네가 짐을 들고 이사를 온 직전에야 알았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노후작은 괜히 찔리는 게 있어서 어색한 표정으로 부인에게 말했다.“나도 깜빡했네, 부인. 가택 수리가 끝나면 바로 나간다고 했으니, 피를 나눈 형제끼리 어찌 모른 척하겠소.”노부인은 이가 갈렸다.“가까운 친척일수록 멀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두 집안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말 몰라서 이러십니까? 예전에 잠시 같이 사는 동안에도 소란이 끊이지 않았어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도 어서 분가하라고 당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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