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시녀의 생존수칙: Bab 181 - Bab 190

242 Bab

제181화

마차가 천천히 출발했다.마차 안은 매우 호화로웠는데 복숭아빛 담요가 바닥에 깔려 있고 작은 탁자 위에서는 은은한 향이 타고 있었다.구석에는 단목나무 장롱이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난초 화분이 놓여 있었다. 마차가 흔들리면서 난초의 청량한 향까지 풍기니 더욱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연경은 공손히 예를 행한 후, 겉치레 인사말을 건넸다.“아씨 덕분에 이렇게 좋은 마차도 타보고 그믐날 아씨와 함께 나들이도 가게 되었으니 감흡할 따름입니다.”기요는 아부의 말을 늘 들으며 자라왔고 연경보다 입담 좋은 사람들도 많았기에 경멸의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시종에게 눈짓을 했다.그러자 붉은 복주머니 하나가 연경의 앞으로 떨어졌다.연경은 여느 시종들처럼 기쁨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참으로 감사합니다, 아씨!”기요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욱 경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꼭 이 시종을 보고 싶었기에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그렇게까지 긴장할 것 없어. 듣자니 근래 풍한이 들었다던데 이제 괜찮아졌니?”“이미 다 나았습니다. 아씨는 참으로 마음씨가 어진 분이시네요.”연경이 아첨하듯 말했다.“안색이 어떤지 보게 고개 좀 들렴. 여기 응향단이 있는데 기혈을 돋우는데 좋은 약이니 너도 한알 먹어 보거라.”하얗고 가녀린 손이 연경에게 단약 한 알을 건넸다.연경은 두 손으로 받으며 고개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소인이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나 봅니다. 아씨께서 소인에게 이런 귀한 선물까지 주실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당연하지. 응향단으로 말하자면 일년 사계절에 나는 스물네 종의 꽃을 말려서 만든 약이야. 꼭 아침이슬이 맺힌 새벽에 딴 꽃이어야 하고….”기요의 시종이 턱끝을 한껏 치켜들고 설명을 이어갔고 연경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다. 그 사이 기요는 연경을 자세히 뜯어보았다.그러다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옆에 있는 난꽃으로 시선을 돌렸다.‘예쁘긴 한데 저속하기 짝이 없군.’비록 그날 보았던 면사포 미인과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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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예전에 그녀는 투박하고 거친 무장에게 딱히 호감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 면사포 미인을 감싸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그녀는 곁눈질로 연경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꽃등을 보는 걸 좋아하나 보구나?”연경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예, 너무 예뻐요! 아씨 덕분에 일개 시종인 제가 이런 사치를 누려보네요! 꽃등이 정말 많네요! 마치 대낮처럼 밝아요!”기요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시선을 거두었다.‘저속하고 미천하기 짝이 없네.’그녀는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한마디 읊조렸다.“고목에 걸린 꽃이 눈부신 빛을 자아내니 밤이 오지 않는 세상이 따로없구나.”“역시 아씨는 경셩제일 재녀답네요. 이 짧은 시간 안에 이리도 아름다운 시조를 생각해내시다니, 대단하십니다!”기요는 그녀의 수다스러움에 질려 시종에게 말했다.“좀 피곤하구나. 저쪽에 가서 쉬고 있을 테니 넌 이 아이와 함께 구경을 다니거라. 혹여 마음에 드는 게 보이면 사서 주고.”마치 선심을 쓰듯이 오만방자한 말투였다.연경이 또 호들갑스럽게 아첨을 쏟아내자 기요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더 이상 이 시종을 자신의 마차와 동행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시종을 시켜 마차 하나를 더 빌려오게 했다.연경은 꽃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지금 상황으로 보면 기요가 차후에 손기욱의 정실 부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그녀는 송지운보다 고상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일개 통방 시녀를 갈구고 괴롭힐 사람은 아니었다.기요의 시종은 연경보다 더 꽃등을 좋아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연경보다 몇 걸음 앞서 걸었다.연경은 대체 이게 누굴 위한 나들이인지 헛웃음이 나왔다.그렇게 그 시종을 따라가려는데 옆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며 밀려나고 말았다.시종을 부르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덜컥 잡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마님께서 꼭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신다. 어서 나랑 가자!”연경을 잡은 사람은 경양 후작 부인 신변의 어멈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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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후작 부인은 절대 풍 이랑 모녀가 잘 사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그러나 올해는 참으로 악재가 든 해였다.세자가 고리대금으로 돈을 불린다는 사실이 은밀히 퍼져나갔다. 비록 세자 부인에게 뒤집어씌우고 무마하긴 했지만 이 일로 부부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고 이 일이 더 커진다면 세자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근본부터 썩어 있는 경양 후작부는 이제 후작의 작위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황제께서는 녹봉만 축내는 관료들의 공훈과 작위를 박탈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지 오래였고 근 10년간 벌써 작위를 박탈당한 가문만 해도 여덟 집이 되었다. 경양 후작부는 절대 그 무리에 끼고 싶지 않았다.세자가 고리대금을 풀었다는 소문이 폐하의 귀까지 들어간다면 작위는 위태로울 것이다.그런데 둘째까지 사고를 칠 줄이야!누군가 후작가로 찾아와 빚 재촉을 하지 않았더라면 후작 부부는 차남이 밖에서 얼마나 많은 도박 빚을 졌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잘못을 추궁하니 차남은 뻔뻔하게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답했다. 후작 부인은 창고에 있는 물건을 팔아 도박빚을 갚으려고 창고로 갔다가 황실 하사품인 옥여의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 외에도 후작 부인이 고이 보관한 혼수품도 여러 개 사라져 있었다.추궁 끝에 차남은 마침내 창고에서 값나가는 것들을 몰래 전당포에 팔았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옥여의에 관해서는 황실 하사품인 것을 몰랐다고 답했다.경양 후작부는 그 일로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었다.경양 후작 부부는 어떻게든 이 일을 만회하려 노력했지만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러던 차에 며느리한테서 면사포 미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위연수라고 하는 그 여인은 아마 호인 혈통인 듯합니다. 용모가 실로 경국지색이라 하였는데 글쎄 용의백가의 기요 소저마저 그 여인의 앞에서는 평범해 보이더랍니다.”“무안 후작께서 그 여인을 위해 온갖 선물을 사주는 걸 본 사람이 있답니다.”“그게 뭐? 폐하께선 일찍이 대경인은 호인과 혼인 금지라고 공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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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연경은 마지못해 대답하는 척, 한참 우물쭈물거리다 말했다.“마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경양 후작 부인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했다.밤바람이 추웠지만 거리로 다시 나온 연경은 가슴이 설렜다.한참 그녀를 찾아다닌 용의백가의 시종은 몇 마디 불평을 늘어놓고는 그녀를 마차에 태웠다.다음 날, 경양 후작 부부가 무안 후작가에 방문했다.마침 오늘 휴식일인 손기욱도 송학당으로 와서 사돈 부부와 겉치레 인사를 나누었다.미묘한 분위기가 흐른 끝에 노부인은 굳은 표정으로 시종들을 물렸다.오늘 이전에 송지운이 울며 찾아와 친정의 세자와 차남이 모함을 당했는데 손기욱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다 사정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을 물으면 우물쭈물거리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노부인도 완전히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닌지라 아들 대신 덥석 대답할 수는 없었다.노부인은 오늘 사돈네가 찾아온 것도 그 일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최근 며칠간 여기저기 새해 인사를 다니면서 사돈에 대해 뒷말이 많이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어떻게든 해명해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더군요.”후작 부인은 한숨을 쉬며 운을 뗐다.그 얘기가 나오자 노부인도 화가 치밀어 손기욱을 노려보며 말했다.“올해는 무조건 혼처를 정해야 할 것이다!”“사돈이야 전도유망한 분이니 정실을 들이는 일도 신중해야지요. 제가 보기에 일단 먼저 곁에서 시중들 첩실을 들이는 게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쨌든 사람들의 입은 틀어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노부인과 노후작은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손기욱은 싸늘한 어투로 되물었다.“사돈댁은 할 일이 그렇게 없습니까?”경양 후작 부부는 손기욱의 독설에 데인 적 있기에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손기욱은 계속해서 말했다.“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이제는 내 처소에 여자를 들이는 문제조차 간섭하려 하시는군요?”노부인도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연경이는 지운이가 데려온 시종이네. 어찌 며느리의 시종을 첩으로 들이라 하는가?”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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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첩을 들이는 일이지만 손기욱은 굳이 태복을 불러 최고 규격으로 준비하게 했다.정월대보름이 금방 지난 터라 무안 후작가 곳곳에는 꽃등이 매달려 있었기에 따로 장식을 할 필요도 없었다.노부인은 장씨 어멈이 아들의 지시에 따라 예식을 준비하는 걸 보고 입맛이 떨어졌다.반면 기분이 홀가분한 경양 후작 부부는 부지런히 수저를 움직이며 술을 권했다. 손기욱이 술에 취한 기회를 틈타 자신들의 위기를 부탁할 생각에 그들은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비록 악대도 없고 조촐한 예식이었지만 송학당에서 매화단까지 붉은색 주단이 깔렸다.연경은 따로 챙길 혼수가 없으니 태복이 분부에 따라 혼수함을 여섯 개나 들여왔지만 딱히 함 안에 채울 게 없었다. 옷 몇 벌과 조금 모아둔 은화와 동전, 그리고 손기욱이 전에 줬단 금 열 냥이 그녀의 전재산이었다.노부인은 그 얘기를 듣고 냉소를 지었다.“천첩을 들이며 대체 걔가 가진 게 뭐가 그리 많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장씨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나으리의 안방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으니 옆에서 챙겨줄 사람이 생긴 것만으로 좋은 일이지요. 노부인 말씀이 맞습니다. 일개 천첩 따위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안심하세요.”노부인도 그 말을 위안삼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연말에 치솟은 불길이 왜 그녀를 태워 죽이지 않았는지 못내 한탄했다.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면 그날 직접 손을 쓰는 거였는데 괜히 하늘이 가져다준 기회를 놓친 것 같아서 아쉬웠다.전도유망한 그녀의 아들은 공주를 처로 맞이해도 전혀 손색이 없고 첩을 들인다고 해도 관원 가문의 딸이어야 했다. 한낱 시종을 첩실로 들이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화가 났다.노부인이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이, 태복이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하러 왔다.“노부인, 또 두통이 도지신 겁니까?”노부인은 손기욱의 심복에게 자신이 이 예식을 별로 내키지 않아한다는 것을 들키기 싫었기에 담담히 말했다.“괜찮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태복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난처한 얼굴로 한참을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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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손기욱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마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뒤늦게 도착한 서주행이 그에게 농을 걸었다.“누가 보면 혼인식이라도 올리는 줄 알겠어. 난 연경에게 자유를 돌려주겠다 약조했으니 차후에 기회가 되면 노부인께 가서 그 아이의 인신 계약서를 돌려받을 생각이야.”그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혹시 과거의 자신이 한발 양보했더라면 진이와 자신도 행복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손기욱은 묵묵히 가마가 출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무안 후작가의 시종들은 천첩을 들이며 이렇게 공을 들이는 광경은 처음이었지만 나으리가 그만큼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없는 그 미인을 연모하여 그녀를 닮은 연경마저 아껴준다고만 생각했다.시종들이 분분히 다가와 축하인사를 전했고 손기욱은 태복을 시켜 가는 내내 포상을 뿌리게 했다.가마가 매화당에 입장하던 때에 까치 몇 마리가 매화당 상공을 날며 즐겁게 지저귀었다.손기욱의 속을 알 길 없는 서주행은 감개무량해서 말했다.“까치마저 자네를 축하해 주러 오는군. 우리 연경이 잘 부탁해.”손기욱의 고요하던 눈동자가 잠깐 일렁였다. 그러나 이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그건 모를 소리야. 앞으로 내게 민폐만 안 끼치면 다행으로 여겨야지.”서주행은 곱지 않게 그를 흘겨보았다.연경은 손기욱의 처소와 가장 가까운 처소로 들어갔다. 경양 후작이 다가와 술을 마시러 가자고 서주행을 이끌었다.사람이 많지 않고 송지운은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금수원에서 나오질 않았으니 굳이 상을 따로 둘 필요 없이 모두 한상에 모여서 식사를 했다.경양 후작 부부는 손기욱에게 술을 권하며 축하를 전했고 손유민도 그들의 당부를 듣고 부지런히 술잔을 따랐다.손기욱은 양아들을 흘겨보며 비꼬듯 물었다.“아비가 첩을 들이는데 넌 어째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손유민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르신들 앞에서 티를 낼 수가 없으니 어색한 얼굴로 둘러댔다.“지운이가 최근 들어 배가 자꾸 아프다고 하여 걱정이 됩니다.”“술은 몸에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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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깊은 밤, 연경은 자신은 정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크게 바랄 것이 없었다. 매화당이라는 비바람을 막아줄 집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그녀는 기뻤다.방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몰래 면사포를 벗고 주변 환경을 둘러보았다.곳곳에 매화 장식이 놓여 있고 공기 중에는 청량한 향이 났다. 이곳은 매화당에서 유일하게 온돌이 있는 매향원이었다.정원에는 매화가 잔뜩 심어져 있고 서쪽에는 3층 높이의 누각이 있었는데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매화 밭이 한눈에 들어왔다.연경으로서는 굉장히 좋은 곳이었다.연경은 입꼬리를 올리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손기욱이 지금은 그녀를 의심하고 있지만 이미 한발 한발 계획을 짜서 금수원을 떠나는 목적을 실현했으니 그것만으로 성공이었다.밖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다급히 침상으로 가서 앉고 면사포를 다시 썼다.안으로 들어온 손기욱은 면사포가 약간 비뚤어진 것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녀가 보이는 것처럼 얌전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얼마나 많은 거짓말로 자신을 속였는지도 알 것 같았다.연경은 한참 기다려서야 다가온 사내의 장화를 볼 수 있었다.손기욱은 무덤덤한 어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난 이로써 너와 한 약조를 지켰다.”“예, 나으리께서는 허투루 약조를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내뱉으신 말씀은 꼭 지키시는 분이란 걸 압니다. 대체품인 소인은 앞으로 최선을 다해 나으리를 보필할 것입니다.”말을 마친 연경은 면사포를 벗으려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이 다가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손기욱은 한손으로 면사포를 벗기며 말했다.“너는 예법도 모르느냐? 신혼 면사포를 어찌 스스로 벗으려 해?”곧바로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무수히 많이 마주한 얼굴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어여쁘게 보였다.화장을 한 연경은 청초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리는 우아하게 틀어 올리고 평소에는 잘 볼 수가 없던 매혹적인 자태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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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밤새 피곤했던 연경은 눈을 감자마자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그녀는 장씨 어멈의 목소리에 겨우 다시 눈을 떴다.대략 한 시진 정도 지난 것 같았다. 연경은 아연실색하며 다급히 손기욱을 깨웠다.“나으리, 어서 일어나십시오. 소첩이 그만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조회에 늦으신 것 아닙니까?”눈을 뜬 손기욱은 담담히 답했다.“오늘은 쉬는 날이다.”“허나 어제 이미 쉬셨지 않습니까?”“닷새에 한번 쉬는데 다음 쉬는 날을 미리 땡겨서 썼을 뿐이야.”연경은 잘 모르긴 해도 금위군 지휘사나 되는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손기욱은 황망히 일어나 준비하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목덜미와 하얀 손목까지 어젯밤의 격렬했던 흔적이 몸 곳곳에 남아 있었다.연경은 그의 뜨거운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기침하시는 것을 시중들겠습니다. 장씨 어멈이 오셨으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요.”“뭐가 그리 급해?”손기욱은 느긋하게 목욕물을 가져오라 명했다.밖에서 소근소근 들려오던 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연경은 묘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자, 놀라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아침 일찍부터 목욕물을 부른다는 게 뭘 의미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손기욱은 안색이 안 좋은 채로 황급히 옷을 껴입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냉소를 터뜨렸다.“대체 나를 뭐로 생각하는 게야?”목욕물을 주문하자 장씨 어멈도 더는 재촉하지 못하고 그들도 느긋하게 옷을 입고 준비할 수 있었다.손기욱은 연경이 자신의 접촉을 거부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연경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그가 보는 앞에서 바늘 하나를 꺼내더니 말했다.“나으리, 피 한 방울 손수건에 떨어뜨리고 싶은데 그래도 되나요?”비록 노부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지만 나중에 책잡히지 않으려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절차를 건너뛸 수는 없었다.손기욱은 그녀의 우려를 알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바늘을 들고 바들바들 떠는 그녀를 보자 냉큼 그것을 빼앗아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흰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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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무안 후작가는 어제 노후작을 제외하고 아무도 단잠을 자지 못했다.그렇게 손기욱과 노후작만 제외하고 다들 눈밑이 거뭇거뭇한 채로 송학당에 모였다.송지운은 아직 입덧 중이라 초췌하고 손유민은 서재에서 술로 쓰라린 마음을 달래며 밤을 지새우느라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연경은 공손히 웃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린 후, 조용히 물러나 손기욱의 뒤에 섰다.손기욱은 그 모습을 보고 불만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장씨 어멈이 다가와 노부인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하자, 노부인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노부인은 정색한 얼굴로 훈계를 시작했다.“너도 어찌 보면 송학당 출신인데 예법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미색으로 주인을 홀려서는 아니되고 절제를 배워야 하느니라….”노부인은 손기욱이 있는 앞에서 연경을 꾸중하기 싫으니 대충 할 말만 하고 머리가 아프다며 사람들을 물렸다.손기욱은 노후작이 할 말이 있다며 불러갔다.연경은 송지운 부부의 뒤에서 멀리 떨어져 걸으며 송학당을 나왔다.곧 엇갈린 길이 나오자, 송지운은 마침내 걸음을 멈추고 싸늘한 눈길로 연경을 노려보며 말했다.“근래 입맛이 돌아오지 않는구나. 넌 계속 금수원으로 와서 음식을 하거라. 오늘은 삼계탕이랑 훈제오리가….”송지운은 늘 예전에 하던 것처럼 기고만장하게 연경에게 지시했다. “사람 시중을 드는 것에 있어서 너만한 애가 없더구나. 넌 타고나기를 시종을 하라고 타고난 거지.”고개를 든 연경은 평소와 다른 싸늘한 눈길로 송지운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내 이제는 자네의 웃어른이거늘. 경양 후작가에서 웃어른 공경하라는 예법도 가르치지 않았는가? 이랑이라 불러야지.”담담한 어투였지만 송지운은 자신에 대한 도발로 받아들였다. 일단 기부터 죽이고 마음대로 휘두르려 했더니 천첩이 되자마자 태도가 급변할 줄이야!송지운은 고개를 돌려 손유민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한창 연경의 얼굴에 시선이 팔려 한껏 아쉬운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연경의 목덜미에는 손기욱이 남긴 자국이 남아 있어 목도리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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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연경은 송지운을 등에 업고 으시대는 지연을 무시한 채, 싸늘한 눈길로 그녀의 아랫배를 바라보았다.눈빛을 의식한 지연은 괜히 찔려서 목소리를 높였다.“작은 마님께서 가장 아끼는 귀걸이가 호수에 빠졌어. 명월이 밤새 그걸 찾겠다고 물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드디어 찾았다고 하네.”연경은 숨이 턱 막혔다.“이 추운 날에 밤새 물에 들어가 있게 했단 말인가?”송지운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지연아, 네가 말해보거라. 내가 물에 들어가라고 시켰니?”지연은 의기양양한 어투로 답했다.“작은 마님처럼 자비로우신 분이 어찌 그런 일을 시켰겠어요? 명월이 귀걸이를 잃어버리고 괜히 찔려서 물에 들어간 거죠. 통방시녀 따위가 차후에 이랑이 된다고 한들 미천한 출신이 어디 가나요?”사실은 연경이 드디어 명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명월이 기뻐하자 화가 난 송지운이 야밤에 명월을 시켜 창고에 가서 귀걸이를 찾게 한 거였다. 지연은 명월과 함께 갔는데 상자를 들고 송지운의 침소로 가려던 때에 일부러 명월을 밀친 거였다. 그 일로 명월은 간신히 물에 빠지는 것은 피했지만 상자가 물에 떨어졌고 귀걸이도 사라졌다.지연이 그녀에게 들어가서 찾으라고 시킨 거였다.명월은 송지운의 뜻임을 알기에 추위에 떨며 물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연경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그 과정이 어땠을지 알았다. 전생에 그녀가 겪었던 일이 이번 생에 명월에게로 돌아갈 줄이야!단지 그녀를 위해 기뻐해 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연경은 싸늘한 눈길로 지연을 노려보며 호통쳤다.“네가 한 짓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 나쁜 짓을 많이 하면 언젠가는 그 벌을 받게 될 것이다.”얼음장처럼 냉랭하고 위엄 넘치는 그 모습은 손기욱과 매우 흡사했다. 지연은 저도 모르게 겁에 질려 입을 다물었다.송지운이 이를 갈며 말했다.“참으로 건방지구나. 한낱 이랑 주제에 내 앞에서 이리도 시건방을 떨다니!”곁눈질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영을 발견한 송지운은 갑자기 눈물을 쥐여짜더니 말투가 확 변했다.“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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