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욱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향란은 눈물을 머금고 방을 나갔다.그녀는 나오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태복에게 말을 걸었다.“태복님,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태복이 물었다.“나으리께 또 한소리 들었느냐?”향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일전에 매화당에 갔을 때는 확실히 딴마음이 있었지만 그건 노부인의 분부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감히 나으리께 딴마음을 품었겠어요. 그러니 제가 이젠 그런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으리께 꼭 좀 전해주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동전 주머니를 꺼내 태복에게 건넸다.태복은 손사래를 치며 극구 거절했다.시종으로 일을 하면서 윗분들이 하사하는 재물은 받아도 시종들끼리는 굳이 이런 걸 받을 이유가 없었다.그는 자신이 모시는 분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손기욱이 남녀문제에서 얼마나 고집이 센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8년 전에 변방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향란은 그때 후작가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태복은 부드러운 어투로 그녀를 달래주었다.“기회가 되면 내 나으리께 꼭 말씀드리도록 하마. 앞으로 네가 본분만 잘 지킨다면 나으리도 굳이 널 곤란하게 하시진 않을 거야.”향란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손기욱은 한참이나 설명해서야 노부인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어머니를 자리에 모신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어머니, 연경의 인신 계약서를 이제 저에게 넘겨주시죠.”노부인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왜? 그 아이는 시종 출신이다. 인신 계약서를 내가 쥐고 있어야 앞으로 총애를 등에 업고 허튼 짓을 하지 않을 게야. 이게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다!”“시종이 왜요? 공주도 불란을 조성하는 마당에, 만약 제가 가유 공주 같은 사람을 부인으로 들이면 만족하시겠어요?”손기욱은 출신만 따지는 노부인이 너무 싫었다.누군들 시종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는가?지금의 황제도 수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평민 출신이었다. 무안 후작부 역시 평민 출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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