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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191 -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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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화

사실 연경은 송지운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을 때부터 누가 오고 있음을 눈치챘었다. 그게 아니라면 평소 그렇게 무시하던 자신에게 극존칭을 쓸 리가 없었다. 그리고 송학당 근처이니 손기욱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일부러 더 매몰차게 대한 거였다. 비록 손기욱이 그녀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지만 이제 그녀는 총애를 한몸에 받는 그의 첩이 되었으니, 그가 나중에 송지운 부부와 자신의 사이에서 어떻게 할지 한번 떠보고 싶기도 했다.손기욱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몸이 불편하면 처소에서 쉬면 되고 그래도 힘들면 유민이에게 보살펴 달라고 할 해야 마땅하지. 내가 첩을 들였지 네 시종을 들였다 생각하느냐?”담담하지만 가시가 박힌 말에 송지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이는 배속의 아이는 오로지 손유민의 자식이며 후작가를 위한 게 아니라고 강조하는 의미였다.‘그래서 천첩 하나 내가 못 부릴 정도란 말이야?’그녀는 억울한 얼굴로 계속 고자질했다.“제가 어찌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다만 이랑께선 아버님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자신은 이제 저희들의 웃어른이라고 극존칭을 쓰라 하였습니다. 벌써부터 이렇게 텃세를 부리니, 나중 가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큽니다.”손기욱은 고개를 돌려 연경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네가 그런 말도 하였어?”연경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젯밤 게걸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탐하던 그의 모습이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당하기만 하며 살 수 없었다.그래서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을 토로했다.“며느님께서 먼저 제게 시중을 드는 일에 있어서 아무도 저를 못 따라온다 하였고 저는 태생이 시종으로 살아야 할 재목이라 하였습니다.”그녀는 송지운이 했던 말을 그대로 그에게 말했다.“소첩은 며느님이 제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지만 그래도 예의는 예의인 것 같아서 귀띔했을 뿐입니다. 소첩은 괜찮으나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니까요. 이제 소첩은 시종이 아닌 나으리의 첩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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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연경은 담담한 어투로 말했지만 듣고 있는 송지운 일행은 머리털이 곤두섰다.채련과 지연은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송구합니다, 나으리! 제발 한번만 봐주십시오! 송구합니다, 이랑!”손기욱은 웃으며 그런 말을 하는 연경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쓰렸다.그동안 송학당에서 그나마 잘 보양해서 예전에 입었던 부상은 큰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상을 입었던 두 손은 조금만 공기가 차도 부어오르고 허리에도 시퍼런 자국이 하나 있었는데 태반이 아니라 송지운의 시종들이 꼬집어서 생긴 거라는 의미였다.정작 손기욱 자신은 잔뜩 흥분했을 때도 그녀의 몸에 난 자국 하나하나가 미안하고 안쓰러운데 한낱 시종들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괴롭혔을 줄이야!“나으리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소첩은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연경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손기욱을 쳐다보며 의중을 물었다.‘여우 같은 것! 어제는 날 보면 도망가기 바쁘더니!’손기욱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느긋하게 말했다.“네가 하나 선택하거라.”“한때는 함께 일했던 자매 같은 사람들인데 차마 심한 벌은 못 주겠네요. 서로 귀뺨을 치게 하는 건 어떤가요? 그게 가장 무난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을 제대로 못하면 차후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지요.”순진한 척하는 연경의 말에 송지운은 이가 갈렸다.손기욱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자, 채련과 지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아무도 감히 명을 거부할 수 없으니 무릎을 꿇은 채로 서로의 귀뺨을 칠 수밖에 없었다.지연이 먼저 손을 들었다.채련도 곧이어 손을 치켜들었다.별로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소리가 울리자 손기욱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들 오늘 밥을 안 먹고 나온 게야?”지연은 가슴이 철렁하여 손에 힘을 주어 때렸다.짝!채련은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얼굴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화가 치민 그녀도 감정을 실어 지연의 얼굴에 뻘건 손자국을 남겼다.손기욱은 재미없다는 듯이 시선을 거두고 태복을 불렀다.“사람을 시켜 스무 대를 다 칠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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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무슨 일이야?”장씨 어멈은 얼굴이 퉁퉁 부은 지연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무안 후작가는 가풍을 중시하는 집안이라 시종들에게 후하게 대했기에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지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연경이 손기욱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자신들을 호되게 혼냈다며 어제 있었던 일을 부풀려서 고자질했다.“나으리께서는 일개 천첩의 꼬임에 들어 회임한 작은 마님이 보는 앞에서 저희들에게 벌을 주었습니다. 작은 마님은 너무 억울하고 두려워서 그런지 돌아오자마자 배가 아프다 하셨습니다.”장씨 어멈은 불쾌한 눈으로 지연을 노려보며 호통쳤다.“아무리 품계가 낮아도 이제는 나으리의 첩실이 된 분이다. 어디 시종 따위가 천첩을 입에 담느냐? 이리도 아래위가 없으니 나으리께서 너희들을 벌하신 것이지!”지연은 울음을 멈추고 공손히 말했다.“어멈 말씀이 맞아요.”“얘기는 내가 노부인께 전달해 드리겠다.”잠시 후, 소식을 들은 노부인은 급급히 금수원으로 달려갔다. 노인은 창백한 얼굴의 송지운을 보자 근심 어린 어투로 말했다.“이제 회임한지 얼마나 됐다고 몇 번이나 탈이 난 게냐? 마음을 넓게 먹어야 하느니라. 화를 내다 무슨 일 생기면 손해보는 사람은 너뿐인 걸 정년 몰라서 이러느냐?”노후작 부부는 송지운 뱃속의 아이를 유달리 중시했다. 손기욱이 무사히 귀경한 이후로 나쁜 마음을 품은 자들이 의도적으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만약 송지운이 유산이라도 한다면 무안 후작가를 적대하던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이랑은 매화당에 입성한 이후로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어요. 아버님도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이랑 말만 듣고 제 말은 들어주지도 않으십니다.”송지운은 잔뜩 억울하다는 듯이 눈물을 쏟았다.그녀는 자신과 연경은 근본부터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진심으로 억울했다.일개 천첩 따위가 웃어른을 자칭하는데 어찌 가만히 당하고 있을까!연경을 괴롭히는 게 몸에 배긴 송지운은 그녀가 신분 상승했다고 자신의 앞에서 위세를 떠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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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귀한 증손주를 밴 몸이었다.노부인은 다급히 의원을 부르고는 연경에게 호통쳤다.“당장 꺼지지 못할까!”연경은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갔다.고개를 숙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지금까지 화가 없어서 참았던 게 아니었다. 전생에 송지운은 결국 유산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점점 성격이 포악해졌고 조리가 끝나자마자 경양 후작가로 가서 화풀이로 송육진의 두 다리를 부러뜨렸다.송육진은 글공부에 재능이 있어 과거시험에 합격할 재목이었다. 그러나 다리를 다친 이후로 경양 후작 부인이 제때에 치료를 해주지 않아 결국 불구가 되었다.풍 이랑은 친히 송육진을 돌봤는데 불구가 된 송육진은 완전히 자포자기하고 피폐한 삶을 보냈다. 풍 이랑은 매일 눈물을 달고 살았고 나중에 손유민이 연경을 이리저리 기생처럼 굴린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화병이 들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몸져누웠다.연경은 어머니와 동생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삶이 얼마나 고된 삶이었을지는 상상이 갔다.과거를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증오심이 치밀었다.날짜를 계산해 보면 송지운이 유산하기까지 20일 정도 남았다. 그녀는 유산 후 이십 20일 정도 몸조리를 하고는 경양 후작부로 돌아가 송육지의 다리를 부러뜨렸다.이제 40일 정도가 남았다.연경은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전생에 일어났던 일들은 꼭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운명에서 벗어난 이후로 그녀가 당했어야 할 고난들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을 뿐이었다.이제는 어머니와 동생의 운명을 바꿀 때였다.생각을 하는 사이 밖에서 소리가 났다.문을 열자 지연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노부인께선 이랑에게 불당으로 가서 무릎 꿇고 반성하고 있으라 하셨습니다. 허락 없이는 절대 나가지 말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어요!”때가 되면 송지운이 노부인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 적어도 이삼 일은 연경을 불당에 가둬둘 생각이었다.그곳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갇혀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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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지연은 당황하며 곧장 송지운에게로 달려갔다.곧이어 태복이 태의를 모시고 왔다.연경이 들어가서 장씨 어멈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노부인도 크게 반가워하며 얼른 태의를 안으로 모시라 했다.“할머니, 태의도 사내인데 어찌 모르는 사내를….”송지운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양하려 했다.“몸이 아파서 궁중 태의를 부른 것인데 뭘 그런 걸 따지느냐? 그렇게 따지면 저택의 의원도 사내인데 평소에도 자주 진료를 오지 않았더냐?”노부인은 뭔가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온화하게 송지운을 설득했다.송지운은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오늘 온 태의는 서주행의 셋째 삼촌인 서 태의였다. 반백이 넘은 연세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덕망 높은 의원이었다.간단한 상황을 파악한 후, 그는 근엄한 얼굴로 송지운을 힐끗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노부인,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송지운은 가슴이 철렁하여 얼른 지연을 불러 귓속말로 당부했다.노부인은 서 태의를 대청에 모시고 차를 권했다.서 태의가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대체 어떤 의원이 며느님에게 탕약을 처방한 겁니까? 차후에는 절대 저택으로 들이지 마십시오.”“서 태의, 그게 무슨 말인가요?”“며느님 상태는 지극히 정상인데 무슨 약이 필요하답니까? 이러다 진짜 큰일납니다!”노부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제부터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어요. 조금 전에는 화병이 나서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는데 벌써 다 나은 건가요?”서 태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병증은 어떻게든 몸에 흔적을 남깁니다. 다 나았다고 하더라도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요. 하물며 제가 오기 전에 나은 거라고 해도 진맥을 통해 알아낼 수 있습니다. 며느님은 울화로 기혈이 막히고 속열이 좀 있긴 합니다. 오래 지속된다면 뱃속의 아이에게도 좋지 않겠지요.”노부인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근래 들어 자꾸 태기가 불안정하고 배가 아프다고 해서 걱정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 태의가 오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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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잠시 후, 연경은 친히 서 태의를 배웅한 후 곧바로 시종들이 묵는 방으로 갔다.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명월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어두운 방 안에 명월은 두터운 이불을 쓰고 떨고 있었는데 안색은 창백하게 질린 것이 기절하기 직전이었다.“물… 물….”연경은 재빨리 탁자를 살펴보았지만 주전자는 비어 있었다. 밖으로 나간 그녀는 사람을 시켜 물을 가져오게 하고 마침내 물잔을 명월의 입가로 가져갔다.그러고는 알약 하나를 명월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응향단이라는 거예요. 태의에게 물어봤는데 먹어도 된다 했어요. 사람을 시켜 약을 사러 보냈으니 내일 기회를 봐서 가져다드릴게요.”명월은 의식이 흐릿한 상태임에도 연경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연경이 떠먹여주는 물을 받아마셨다.“병이 다 나으면 언니도 생각을 바꿔야 해요. 괴롭힘을 참기만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연경은 명월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전생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연경은 송지운을 감시할 첩자가 필요했다. 송지운의 일거수일투족에 어머니와 동생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명월은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연경은 수건에 물을 적셔 그녀의 이마에 놓아주고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그럼 저와 약속한 거예요, 언니.”그녀가 조용히 명월의 방을 나섰을 때, 대청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노부인은 지연과 채련이 보는 앞에서 장 의원을 심하게 꾸짖고 당장 짐 싸서 후작부를 떠나도록 명했다. 지연과 채련은 주인을 잘 보살피지 못한 죄로 사당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반성하도록 했다. 그리고 시종 두 명을 금수원으로 보내 시중을 들게 명했다.비록 송지운을 대놓고 꾸짖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지만 그녀의 심복에게 엄벌을 내리고 무안을 주었다.송지운은 아무런 불만도 제기할 수 없었다.그동안 쌓아 올린 온화하고 효성 지극한 며느리의 위장이 완전히 벗겨진 셈이었다.노부인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연경을 힐끗 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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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사실 연경은 안 자고 있었다.그녀는 침상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요즘은 짐승처럼 구는 손기욱이 조금은 두렵게 느껴졌다.그와의 접촉이 싫은 건 아니지만 무절제한 생활을 이어가다가는 언젠가 그가 질려할 것 같았다.게다가 이틀이나 쉬었는데도 삭신이 쑤시는 건 여전했다.노부인은 그녀에게 서란과 서령 두 시종을 보내주었지만 그리 친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태복이 문을 두드리자 서란은 연경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와 연경을 깨웠다.“이랑, 일어나세요. 나으리께서 돌아오셨다고 가서 시중을 들랍니다.”불 끄기 전에도 연경에게 손기욱이 돌아오기 전에는 잠들지 않는 게 좋겠다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하던 서란이었다.“태복에게 내가 오늘 몸이 좀 안 좋다고 전해주렴.”연경은 하룻밤 더 쉬고 싶은 마음에 담담히 말했다.손기욱의 나이도 있으니 무절제한 생활은 그의 건강에도 좋지 않았다.서란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대로 태복에게 고했다.손기욱도 믿지 않았기에 간식을 내려놓고 매향원으로 향했다.“낮에는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더니 내가 오니까 몸이 안 좋아?”태복은 그의 뒤를 쫓아가며 말했다.“금수원에 풍한이 든 시종이 한 명 있는데 이랑께서 그 아이를 잠깐 보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소인에게 약을 사서 그 아이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하더군요. 소인이 보기엔 이랑도 풍한이 옮은 것 같습니다.”얼마 안 지나 손기욱은 매향원에 도착했다.멀리서 그의 모습을 본 서란과 서령은 등불에 불을 붙이고 그를 맞이했다.손기욱은 흐뭇한 시선으로 둘을 힐끗 보고는 성큼성큼 침소로 들어갔다.연경은 그의 발걸음소리가 들리자 괜히 거짓말을 했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으니 계속 아픈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어디가 안 좋다고?”침상 옆으로 성큼 다가온 손기욱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연경은 잠기에 취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송구합니다, 나으리. 소첩, 오늘따라 몸이 무겁네요….”손기욱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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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저녁에 제대로 만족하지 못해서인지, 손기욱은 아침 일찍 연경이 잠에서 깨기도 전에 또 한번 강압적으로 그녀를 취했다.연경은 의식이 몽롱한 상태로 그에게 시달리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원칙만 따르는 서란과 서령은 송학당에 문안드리러 갈 시간이 되자 안으로 들어와 연경을 깨웠다.연경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현기증을 호소했다.“머리가 많이 어지럽구나.”“이랑, 총애만 믿고 예법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이랑으로 승급하신지 얼마 되시지도 않았는데 어찌….”잔소리를 늘어놓던 서란은 뒤늦게 빨갛게 상기된 연경의 얼굴을 보고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이런, 열이 나네요!”그제야 서란은 어제 몸이 안 좋다고 했던 연경의 말을 믿게 되었다.손기욱이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태복은 그에게 고했다.“연 이랑이 아프십니다.”손기욱은 불쾌한 어투로 되물었다.“또 아프다고?”“진짜 아프신 모양입니다. 장 의원을 내보내고 저택에는 의원이 없어서 소인이 노부인께 청을 드려 서 의원을 모셔왔었습니다.”서주행은 떠나기 전 태복에게 절제 좀 하라는 말을 손기욱에게 꼭 전하라고 했지만 태복은 그 말을 입에 담을 용기가 없었다.손기욱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어젯밤 노곤하고 힘들다고 애원하던 그녀의 말을 유혹으로 착각한 그의 잘못이었다. 풍한이 든 시종을 만나고 왔던 것을 생각하면 하룻밤 쉬면 괜찮았을 것을 그에게 시달려서 과로를 하다보니 증세가 가중된 것 같았다.손기욱은 그대로 매향원에 달려갔다.서란과 서령이 탕약을 끓여서 가지고 나왔다.손기욱은 자연스럽게 탕약을 받으며 물었다.“식사는 했느냐?”“온몸이 추웠다 더웠다 해서 입맛이 없으시다며 죽 몇 숟가락 뜬 게 다입니다.”손기욱은 약그릇을 다시 서란에게 건네며 말했다.“가서 죽을 좀 데워오너라. 식사는 하고 약을 먹어야지.”연경은 기절하듯 잠들어 있었다. 본디 이 정도로 나약한 몸은 아니나, 일을 멈추고 긴장이 풀리다 보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듯했다.손기욱은 조용히 다가가 그녀의 이마를 만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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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손기욱은 처음 보는 그녀의 약한 모습에 가슴이 쓰렸다.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반 그릇 정도 먹고 나니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손기욱은 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여인을 대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아픈 여인을 어찌 보살펴야 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손기욱은 한바탕 허둥대며 바삐 돌아친 후에야 저녁상을 들게 하고 대충 허기를 때웠다.서란과 서령은 연경이 몸져누워 시중도 들 수 없는 상황에 그가 왜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나으리, 돌아가서 목욕하시렵니까?”태복이 물었다.손기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란과 서령도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손기욱은 무표정한 얼굴로 있을 때면 강압적인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어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렸다.그가 자리를 뜨자 서란은 데운 탕약을 가져다가 연경에게 먹여주려 했다.그러나 깊이 잠든 연경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지식한 서란은 한참을 불러도 그녀가 답이 없자 계속해서 그녀를 재촉했다.“이랑, 약을 드셔야 병이 낫죠. 이것만 마시고 다시 주무세요.”“나중에….”연경이 겨우 입을 열자마자 서란은 곧바로 약을 한숟가락 떠서 그녀의 입에 집어넣었다.강력한 쓴맛에 연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피했다.서란은 불안한 표정으로 서령을 돌아보며 말했다.“울기만 하고 약을 안 드시려 하니 나으리께선 우리가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고 꾸중하실까 걱정이야.”서령도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아까처럼 억지로 털어넣을까?”서란은 의식불명인 연경을 잠깐 바라보다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시종으로 살아온 그들은 엄살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리 쓴 약이라도 코를 막고 한꺼번에 마시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연경도 시종 출신이니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뭐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둘은 연경을 부축해 일으킨 후, 그녀의 턱을 잡고 억지로 입을 벌리고는 재빨리 탕약을 쏟아부었다.연경은 사레가 들려 거세게 기침하며 먹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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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손기욱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이대로 자려고? 오늘 밤만은 특별히 허락해 주지.”그런데 양심도 없는 여인은 얼굴을 그의 가슴에 비비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어머니… 진이는 다리가 다 나았나요?”손기욱은 순간 찬물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진이가 누구지?”그러나 그녀는 그대로 잠들어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평소와 다른 그의 목소리에 태복이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나으리, 연 이랑에게서 풍한이 옮은 것 아닙니까? 소인에게 풍한약이 있으니 바로 가져오겠습니다.”손기욱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괜찮다! 이 일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어. 요 며칠은 금위군 숙소에서 지낼 테니 이랑이 다 나으면 내게로 사람을 보내거라.”태복은 그가 연경에게서 병이 옮았다는 얘기가 노부인에게 전해질까 이런다고 생각했다.한편, 정오가 다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연경은 자신이 손기욱의 거처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그렇게 4일이 지나니 마침내 몸이 개운해졌다. 그 동안 손기욱은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닷새째 되던 날, 송학당 시종이 노부인과 함께 외출해야 하니 단장을 하라고 전했다.연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가유 공주의 연회에 참석한다고? 연회는 이미 지나지 않았어?”“이틀 미뤄졌을 뿐입니다. 노부인 기다리시게 하지 말고 서둘러 준비하십시오.”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연경은 가장 평범해 보이는 의복에 꽃 한송이로 머리장식을 대신하고 조용히 노부인을 따라 용의백 관저로 향했다.금일은 가유 공주가 부마인 기종을 위해 준비한 축하연이었다. 기종은 한림원에서 2년간 경력을 쌓은 후, 어사가 되었고 지금은 병부에서 종오품 병부외랑을 맡게 되었다.연경은 축하연이라는 얘기를 듣고 경양 후작가에서 사람이 올지 속으로 고민했다.한참 생각에 집중해 있는데 어딘가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이쪽을 바라보는 손기욱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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