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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301 - Chapter 310

381 Chapters

제301화

기요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기욱만 바라보며 연경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수줍게 그를 바라보는 기요를 보고 있자니 연경은 둘의 혼사가 이미 정해진 건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손기욱은 늘 하던 대로 기요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공주께서는 예법을 잘 배우고 계신가?”기요의 입가에서 미소가 일순 굳었다.기종도 공주가 연경을 적대한 일로 병부에서 입장이 곤란한 상황이고 용의백부의 위세와 명성도 날이 다르게 내려가고 있었다.기요 본인에게 돌아온 영향도 작지 않았다. 전에는 혼담을 꺼내러 온 귀족가 사람들이 줄을 섰다면 지금은 5품, 6품 관원댁 사람들조차 용의백부와 발길을 끊고 있었다.재삼 고민 끝에 용의백부는 여전히 무안 후작가와의 혼사를 추진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하물며 기요 본인도 처음부터 손기욱을 미래의 부군으로 점 찍었으니 첩실 하나 정도 데리고 있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오늘 어쩌다 그를 만났으니 그녀는 제 발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공주의 잘못은 오로지 공주의 잘못이고 그녀 자신은 거리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공주님처럼 귀하신 분에 대해 제가 어찌 감히 평가하겠습니까.”손기욱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기요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기 낭자는 같이 나온 사람이 없소? 난 우리 경이의 장신구를 골라주어야 해서 이만 가봤으면 좋겠는데.”대놓고 비키라는 말에 기요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연경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속으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겁 많고 숫기가 없던 시종은 지금 우아한 미소를 머금고 귀족의 품위를 갖춘 모습이었고 더 이상은 시종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았다.기요는 놀란 눈을 하고 연경을 한참 바라보았다.시종이었을 때보다 한껏 물이 오른 연경의 외모는 같은 여인인 기요가 봐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생기가 없던 그녀의 눈은 지금은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고 하얗고 고운 두 손은 전혀 궂은 일을 한 티가 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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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그래서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모란꽃 참이 달린 화려한 비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는 비녀를 연경의 머리에 꽂아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화려한 꽃이 살랑살랑 흔들렸지만 그런 눈부신 광채도 그녀의 미모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이때, 우아한 걸음걸이로 그의 곁에 다가온 기요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참 달린 비녀는 일반적으로 정실들이 많이 합니다. 첩실이 이런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다니는 건 흔치 않고 오히려 미움을 사기….”“낭자는 할 일이 그렇게 없소?”기요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반면 손기욱은 그녀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싸늘히 말을 이었다.“남에 일에 왜 참견이지?”연경은 재빨리 장신구를 빼고는 가볍게 그의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나으리….”손기욱은 길게 심호흡하고는 불쾌한 눈길로 기요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원래 입바른 말만 하는 사람이고 듣기 싫으면 그냥 귀를 막으시는 게 좋을 거요.”연경은 기요의 눈치를 살피고는 애원에 찬 눈길로 손기욱을 바라보았다.손기욱은 그런 모습이 더 화가 났다.“내 기 낭자에게도 장신구를 사서 선물해 줄까?”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말이었는데 연경은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말했다.“정말 그래 주실 건가요?”기요는 그 모습이 너무 얄밉고 화가 났다. 그녀는 선심 쓰듯이 던져주는 선물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쉽게 오지 않는 기회를 그냥 날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손기욱이 여인에게 장신구를 선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정말 사서 선물한다면 연경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긴 해도 이게 그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그녀는 상대가 자신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기요는 자신이 먼저 다가가기로 작심했다.“나으리께서 사주시는데 소녀는 감사할 따름이지요.”손기욱은 전혀 질투 따윈 느끼지 않고 순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경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경이 네가 제안한 것이니 네가 사드리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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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손기욱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너는 어찌 내가 다른 여인에게 장신구를 사주었으면 하는 눈치구나?”연경은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멈칫하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소첩은 나으리와 기 소저가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 소저는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분처럼 보였어요. 적어도 괴롭힘을 당하진 않겠죠.”그 말을 들은 손기욱은 그제야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그는 기분을 풀고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동안 내가 그렇게 마음을 표현해 주었는데도 어찌 이리도 모를 수가 있느냐?”연경은 잠시 침묵했다.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껴주는 걸 알기에 더 욕심이 생기고 야망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러나 손기욱은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처음 그녀를 품고도 한동안 고민하고 만반의 준비를 끝낸 후에야 그녀를 매화당으로 들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첩실이 되자마자 더 큰 욕심을 드러낸다면 사방으로 적을 만들 뿐이었다.연경은 자신의 이 야망을 철저히 숨기기로 했다. 자신을 속여야 다른 사람도 속일 수 있는 법이다.손기욱이 아무리 미색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더라도 그의 곁에는 노부인과 강씨 어멈이 있었다.이번에 어머니가 외실이 된 진실을 알게 된 이후로 그녀는 점점 끓어오르는 야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래서 차라리 손기욱에게는 자신이 마음을 억누르고 본분을 지키고자 한다는 결심을 보여줘야 불필요한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나으리께서는 제게 참 많은 것을 해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저도 진심으로 나으리께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분을 부인으로….”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기욱이 강하게 입술을 부딪쳐왔다.뜨거운 입맞춤은 한참이 지나도록 지속되었다. 그는 연경을 무릎에 앉히고 자연스럽게 손으로 그녀의 옷섶을 파고들었다.그러고는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며 탄식하듯 말했다.“양심도 없는 것.”손기욱은 화도 나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다.연경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오늘 만난 기요는 손기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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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자발적으로 찾아와 혼담을 건네는 사람들은 노부인의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그래서 기요가 백부인과 함께 찾아오니 아주 기분 좋게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얘기가 다 끝난 후에야 노부인은 장씨 어멈을 시켜 희운각에 통보하게 했다.장씨 어멈이 돌아간 후, 연상은 참았던 불만을 토로했다.“노부인은 점점 막무가내로 처사하시는군요. 어찌 한마디 의논도 없이 덜컥 부탁을 수락한단 말입니까?”강씨 어멈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아마 그 낭자는 노부인이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둔 아이일 게야. 듣기로는 재녀라고 하더군. 노부인은 사람을 보는 눈이 없으니 내가 먼저 봐두는 것도 좋겠지. 내일부터 희운각으로 오라고 하거라.”한편, 연경은 태복에게 경양백 부인에 관한 소식을 묻고 있었다.“이미 하옥하였지만 명색이 백부의 부인이라 폐하께 상소를 올려야 판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려치 마세요. 안주인이 양첩을 죽인 건 그렇다 쳐도 서자를 살해하려는 시도까지 있었으니 이는 중죄에 해당합니다. 소인이 보기에 참수형은 피하더라도 목숨만 겨우 붙여서 풀려날 가능성이 큽니다.”연경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이때, 서란이 살짝 굳은 얼굴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노부인께서 내가 만든 도화떡을 마음에 들어하셨니?”신선한 복숭아꽃을 따서 꿀을 넣고 만든 떡이라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서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장씨 어멈은 떡을 보고 매우 흡족한 눈치였는데 소인이 어쩌다 보니 귀한 분들의 대화를 엿들은 것 같아요. 용의백부의 기 소저가 내일부터 강씨 어멈에게 예법을 배우러 온답니다.”노부인이 처음부터 기요를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건 송학당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강씨 어멈까지 기용하여 예법을 배우는 것을 보면 혼사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서란은 조심스레 연경의 눈치를 살폈다.연경은 흠칫하더니 애써 표정을 추스르며 기요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오라고 서란에게 명했다.태복은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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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기요가 내일이면 후작부로 오게 될 텐데 오늘 밤 연경은 자신의 불안감을 그에게 전해줘야 했다.그녀는 기요와 손기욱이 전생에 어떻게 얽혔는지 알 길이 없고 왜 혼인까지 갔는지도 알지 못했기에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어쩌다 네가 먼저 내 침소에 오게 되었느냐?”한차례 격정이 끝난 후, 손기욱은 연경을 품에 안으며 넌지시 물었다.연경은 대답을 하려다 그의 손목에서 딱딱한 것이 만져져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기욱의 손목에는 팥으로 꿴 팔찌가 있었다. 전에 그녀가 일부러 그의 침소에 흘리고 간 그 팔찌였다.반짝반짝거리는 것을 보아 평소에 적지 않게 어루만진 모양이었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손기욱이 슬쩍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그때 네가 흘리고 간 물건이지.”“혹시 이걸 계속 하고 다니셨습니까?”“그래.”“이건 값이 나가는 물건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신다면 제가 나중에 점포로 돈을 벌고 새로 사드리겠습니다.”손기욱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진심이 깃든 물건에 어찌 값을 매길 수 있겠느냐? 넌 애초에 무슨 마음으로 팥을 꿰었지?”연경은 잠시 말이 없다가 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그때는 나으리가 너무 그립고 곁에 있고 싶은데 잘되지 않아서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만든 것입니다.”손기욱은 답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는 시선을 내리고 그녀의 해맑은 눈동자와 빨갛게 물든 입술을 한참 바라보다가 물었다.“글씨 연습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나으리께선 공무가 다망하시어 저를 가르쳐 줄 여유가 없으시니 혼자 연습하고 있었습니다만… 너무 볼품이 없습니다.”손기욱은 피식 웃더니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매일 연습하는 것만으로 칭찬할만한 일이지. 경이 넌 훌륭한 학생이야.”“그럼 나으리께서 제 스승이 되어주시겠습니까?”손기욱의 눈빛이 혼탁해졌다. 침상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이상한 배덕감이 느껴졌다.그는 짜릿하게 치솟는 욕구를 참으며 일어나서 필묵을 가져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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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송구합니다, 나으리… 제가….”손기욱은 당황한 그녀를 보고 허리를 꽉 껴안아주었다.“그럼 벌을 받아야지.”연경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달게 받겠습니다.”“그럼 감히 낭군을 깨문 벌로 매일 내게 쪽지를 보내거라.”연경은 매일 보는 사이에 그런 게 왜 필요하냐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가 날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써서 태복을 시켜 금위군 초소로 보내거라.”손기욱은 새빨갛게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감상하듯 내려다보며 당당히 요구했다.연경은 금위군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서신을 보내려니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지만 피가 묻은 그의 입술을 보니 거절할 수 없었다.“알겠습니다, 나으리.”손기욱은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그녀가 요구를 받아들인 것만으로 기뻤다. 내일이면 연경이 보낸 쪽지를 받을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렜다. 그래서 내일 자신이 글씨 연습을 하던 연습장을 보내줄 테니 매일 연습에 게을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녀를 안고 침소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당직을 서러 나가던 손기욱은 아침 일찍 저택으로 온 기요와 마주쳤다.그녀는 그가 저택을 나가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인사했다.“나으리를 뵈옵니다.”가문을 위해 무안 후작가와 정략혼인을 결심한 이상, 기요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했다.손기욱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증명서는 받았는가?”기요는 그에게서 좋은 말을 들을 거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지만 처음 건넨 한마디가 이것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그녀가 가져간 비녀의 가격을 적은 증명서는 그 당일 날 무안 후작의 심복에 의해 용의백부로 전달되었다. 그의 심복은 기요가 값도 지불하지 않고 장신구를 가져갔다며 후작 나으리께서 대신 값을 지불했으니 빠른 시일 내에 갚으라고 전했다.기요는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다.손기욱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쪼잔하게 구는 게 아니라, 내 돈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서 말이지.”기요는 살짝 찢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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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강씨 어멈은 가계를 관리하는 수칙을 써서 연경에게 읽어보게 한 후, 기요의 기본 자세를 관찰했다.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으니 강씨 어멈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기요와 같은 세가의 귀녀들은 성년례 전에 이미 집안 살림을 하는 법을 배우고 늦게 배우는 사람도 혼인식 전에는 무조건 다 배우고 시집을 간다. 행동 하나하나 기품이 넘치는 모습을 보니 기요는 이미 양반가 안주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강씨 어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했다.“내 비록 연경을 일찍부터 가르쳤지만 지금 보니 기 소저는 바로 같이 수업을 들어도 될 듯하군.”기요는 담담한 눈길로 연경을 힐끗 보고는 자랑스레 고개를 치켜들었다.“어멈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강씨 어멈은 목제 책상을 하나 더 가져오게 했다. 재질이 아주 평범한 유목 책상이고 글을 읽고 쓰는 것에는 딱 알맞은 크기였다.그러나 기요는 그것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용의백부에서는 주로 좋은 향이 나는 자단목이나 배나무 목재로 된 책상을 사용했는데 어멈이 내어준 책상은 딱 봐도 저렴하고 품위가 없어 보였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연경의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같은 재질의 유목 책상이었다.그러나 연경은 전혀 불만이 없이 책상 위에 엎드려 뭔가를 쓰고 있었다.기요는 이것도 강씨 어멈의 시험 중 하나라 생각하고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그녀는 돌아가서 내일 자단목 책상을 두 개 가져오게 해서 하나는 연경에게 주고 하나는 자신이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강씨 어멈은 가계를 쓰는 법과 장부를 보는 법을 가르치고 가끔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경은 매번 세 문제중 한 문제를 틀리게 대답했고 기요는 매번 침착하게 정답을 말했다.연경이 오답을 말할 때마다 기요는 습관적으로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그녀를 힐끔거렸다.연경이 세 번째로 틀렸을 때 강씨 어멈은 엄숙한 어투로 그녀를 훈계했다.“이랑은 좀 더 열심히 배워야겠군. 내가 가르친 것들은 다 필사했는가?”연경은 처음 배울 때부터 기억력이 좋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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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강씨 어멈은 손사래를 치고는 그제야 시종이 따른 칠향진보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리 긴장할 것 없으니 앉게. 화기소벽이라는 옛말의 유래를 아는가?”연경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저는 읽은 책이 별로 없어서 모릅니다.”강씨 어멈은 담담한 눈빛으로 기요를 바라보았다.기요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입을 열었다.“계 왕조는 자신의 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우방국인 전유국을 치기로 하였죠. 공 현인은 우환은 옆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담벽 안에 있다고 간언을 드렸고 이 역사 사건에서 비롯된 말이라 서책에서 보았습니다.”강씨 어멈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기 소저는 역시 듣던 대로 박학다식하군.”하지만 칭찬은 한마디가 끝이었고 어멈은 느긋하니 금은화차를 마셨다.기요는 어멈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어멈은 그녀가 올린 칠향진보차에는 다시 손도 대지 않았다.기요는 후작부의 여인이 아니었기에 매일 후작부에서 점심을 먹을 수 없었기에 강씨 어멈은 오전 수업만 하기로 하였다. 공정성을 위해 연경도 오전 수업만 듣기로 했다.기요는 점심을 먹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연경이 어멈과 함께 점심을 먹고 매화당으로 돌아오는데 서란과 서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이랑께선 평소에 질문을 받아도 거의 틀리지 않는데 오늘은 세 번이나 틀리셨습니다. 아까 기 소저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니 얼마나 괘씸하던지요.”연경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기요의 앞에서 문제를 틀린 건 의도적인 것이었다. 굳이 재녀의 호칭까지 받은 기요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기 소저는 박학다식한 분이라 그런 분이 옆에 있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되더구나.”서란과 서령은 깊은 뜻은 알지 못하고 그저 기요의 오만함을 불평할 뿐이었다.두 사람은 힘든 시기에도 자신들을 살뜰히 챙겨준 연경을 진짜 주인으로 생각하고 따르고 있었다. 귀하게 자란 기요는 다른 귀한 분들처럼 시종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무시하니, 그저 연경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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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음식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던 서란과 서령은 그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진작부터 나으리가 이랑을 총애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마침 연경은 그들을 등지고 있었기에 보지 못했다.손기욱은 재빨리 손을 휘휘 저으며 어서 물러가라는 뜻을 표했다. 그래서 연경은 시종들이 도망치는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불만을 표했다.“나으리 어찌 이러실 수 있나요!”손기욱이 눈썹을 꿈틀대며 물었다.“아파?”“그게 아니라 침소도 아닌데 어찌 대놓고….”“그럼 깊은 밤 사람이 없는 침소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얘기더냐?”말문이 막힌 연경은 변론을 포기했다. 매번 그와 이런 친밀한 접촉을 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뛰었다.강씨 어멈의 귀에 들어간다면 또 훈계를 들을 게 뻔했다.손기욱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연경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조금 전 입을 맞춰 드렸습니다.”“네가 쓴 쪽지를 보고 싶구나. 말 돌리지 말고 어서 내놓거라.”연경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품에서 쪽지를 꺼냈다.“태복에게 보내는 걸 깜빡했습니다. 하물며 나으리께선 매일 집으로 돌아오시는데 굳이 시종들을 귀찮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그녀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나으리, 제가 매일 써드릴 테니 초소에 안 보내면 안 되나요? 부끄러워서 차마 못 쓰겠습니다.”손기욱은 부끄럽다는 말에 오히려 기대감에 부풀었다.그래서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마지못해 답했다.“네가 쓴 걸 일단 보고, 잘 썼으면 그때 부탁을 들어주지.”종이를 펼치자 대충 휘갈겨 쓴 문구가 들어왔다.그는 불만스럽게 인상을 찌푸리며 일부러 목청 높여 쪽지를 읽었다.“나으리, 오늘 오전 수업을 들으며 나으리가 언제 돌아올지 생각했습니다. 오후에는 나으리를 기다리며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이리 적습니다.”손기욱은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내 우리 경이가 매일 내 생각에 상사병에 시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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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기요는 고개를 끄덕였다.기종이 말했다.“무안 후작의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나요? 일개 첩실에게 굳이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이유가 있을까요? 이는 집안 안주인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 아닙니까.”허를 찌르는 그의 말에 용의백 부인과 기요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안주인이 되는 법이요?”기요는 비명을 지르듯 반박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무안 후작이 마음에 품은 여인은 그날 보았던 면사포 미인이에요. 그 이랑은 대체품에 불과하다고요. 무안 후작이 아무리 닮은 사람에게 애정이 간다고 해도 일국의 금위군 지휘사가 어찌 시종 출신을 집안의 안주인으로 삼는단 말이에요?”용의백 부인도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는 없어. 스스로 앞길을 망치는 일을 왜 하겠어? 후작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기종도 그 말을 들으니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제가 괜한 생각을 했나 보네요. 어쩌면 시종 출신이라 너무 경박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게 거슬려서 가르치는지도 모르죠.”“그건 맞는 것 같아요. 오늘 어멈이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도 세 번이나 틀리더라고요. 멍청한 거죠.”기요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기종도 그 말에 동의를 표했다.“그럼 그 말이 맞겠네. 데리고 다니자니 창피해서 공들여 가르치는 거지. 만약 정말 안주인으로 들일 생각이었다면 기요의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았을 테고.”용의백 부부는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시름이 놓였다.강씨 어멈이 후작가에 있다는 건 그들에게도 기회였다. 그들은 어떻게든 기요와 손기욱의 혼사를 성사시키고 싶었다.기요가 다시 입을 열었다.“강씨 어멈이 화기소벽이란 얘기를 꺼내더군요.”기종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틀림없네. 그건 네게 이랑과 화목하게 지내야 집안이 잘 굴러간다고 충고하는 거야. 강씨 어멈은 그 이랑이 말을 못 알아들을 걸 알고 네게만 얘기한 거지. 미래의 안주인으로서 품격과 너그러운 마음을 갖추라는 의미야. 안심하고 수업을 듣거라. 후작가도 아예 너한테 마음이 없는 것 같지는 않구나.”“잘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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