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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311 - Chapter 320

381 Chapters

제311화

다음 날 기요는 자단목 책상 두 개를 들고 무안 후작부로 갔다. 그리고 어제처럼 손기욱이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그를 기다렸다.그러나 오늘 그녀는 그와 만나지 못했다. 어제 일로 경계심을 품은 손기욱이 일찍 준비해서 초소로 나갔기 때문이었다.강씨 어멈은 자단목 책상을 보더니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이게 뭔가?”기요는 예를 행하고는 웃으며 답했다.“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했는데 유독 자단목의 청량한 향을 좋아했답니다. 후작부에 이런 게 부족하지 않은 건 알지만 처음 배움을 청하러 왔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민폐를 끼치기 싫어 준비해 왔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풍 이랑을 위해 준비했어요.”상당히 예의 바르고 기품이 넘치는 해답이었다.잠깐 고민에 잠겼던 강씨 어멈이 불현듯 물었다.“소저는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의원은 뭐라고 하였는가?”기요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여 대충 넘어가려는데 옆에 있던 연경이 말했다.“기 소저는 기혈 순환이 좋지 않고 몸이 허해서 응향단을 상시 복용한다고 해요. 듣기로 스물네 가지의 꽃으로 만들어진 아주 귀한 단약이라는데 향이 아주 좋더라고요.”연경은 그저 부러워서 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강씨 어멈은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기혈 순환이 안 좋고 몸이 허한 사람을 나으리의 짝으로 맺어줄 수는 없지!’기요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지금은 몸이 많이 좋아져서 그렇게 자주 먹지는 않는답니다.”“다 나았으면서 왜 이런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을 쓰는 것인가?”강씨 어멈은 변두리가 정교한 조각이 되어 있는 자단목 책상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기요는 달리 변명할 말이 없어 입만 뻐금거리다가 불만스럽게 연경을 힐끗 바라보았다.연경은 책상을 쓰다듬으며 연신 감탄했다.“책상이 참 정교하네요. 기 소저는 역시 세심하십니다.”강씨 어멈은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에서 시선을 뗐다. 아무리 일국의 공주라 하더라도 이처럼 사치를 부리지는 않았다. 황가는 백성들을 위해 검소함에 앞장서야 했다.물론 이런 것들은 천천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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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나이가 어려 철이 없으니 어디 가서 얘기하고 그러지 말거라.”말을 마친 그는 당당히 어깨를 펴고 일어나 막사로 향했다.연경과 둘이 나누는 쪽지를 말 많은 녀석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가는 길에 쪽지를 펼친 손기욱은 막사에 들어서기도 전에 다 읽고 말았다.어제보다 더 짧은 그리움의 시구였는데 거기에 그를 위한 여름옷을 손수 만들고 있다는 내용만 달랑 있었다.손기욱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쪽지를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그러다가 또 다시 쪽지를 펼치고 살펴보다가 모퉁이에 찍힌 붉은 자국을 발견했다.그것은 연경의 입술 자국이었다. 너무 모퉁이에 있어서 조금 전에는 손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손기욱은 그제야 서운한 마음이 사그라져서 태복을 불렀다.“이제 말해 보거라. 이랑은 오늘 또 무엇을 하였느냐? 이리 요망하게 쪽지를 보낸 것을 보면 또 무슨 사고를 쳤을 것 같은데?”태복은 연경이 자신에게 부탁한 일을 세세히 보고했다.“소인은 경양백부에 들렀다가 오는 길입니다. 오늘은 풍 이랑의 7일제인데 경양백이 아침 일찍 송 공자를 데리고 성을 나가 아직도 귀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랑은 송 공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치풍이 주시하고 있으니 아무 일 없을 것이다.”손기욱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연경의 속셈을 모르지 않았다.지금은 송육진과 어머니의 안위가 그녀에겐 최우선이었고 그 다음에야 그가 있었다.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완전히 마음의 문을 열고 그를 받아들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손기욱은 책상 앞으로 다가가 다시 그녀의 쪽지를 펼쳤다. 그렇게 한참 쳐다보다가 붓을 들고 밑에 답글을 적었다.한편, 경양백은 송육진을 마차에 태우고 마차가 추락했던 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내가 친히 상소를 올렸고 그 지독한 년의 처벌이 정해졌다. 곧 능지형에 처하게 될 테니 너도 약속대로 이제 네 어미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거라! 혼자서 얼마나 불안하겠느냐?”송육진은 싸늘한 표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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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경양백은 흠칫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이 불효막심한 자식이! 감히 아비한테 죽으라는 얘기냐!”분노한 그는 송육진의 멱살을 잡고 흔들다가 섬뜩한 빛이 그의 눈빛을 스치고 지나갔다.그는 갑자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생전 교은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존재가 너였지. 네 말이 맞아. 황천길에 혼자 오르려면 얼마나 두렵고 고독하겠어. 그러니 네가 따라가거라!”송육진은 경양백의 뻔뻔함에 기가 찼다.소년은 미친 경양백이 정말 자신을 절벽에서 밀어버릴까 두려워 필사적으로 저항했다.경양백은 소년의 눈에 비친 두려움을 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너도 두려운 모양이구나? 이제 집안에는 그 지독한 년도 사라졌으니 내가 너희들의 하늘이고 집안의 기둥인데 감히 내게 그런 불경한 말을 내뱉다니! 다음에 또 이러면 너도 네 어미 따라 보내버릴 것이다!”풍 이랑을 떠올리자 그는 가슴이 베인 듯 아팠다.‘내 너를 진심으로 연모했거늘, 참 기구한 팔자야! 백부의 귀한 이랑으로 그리도 총애를 줬거늘! 기회가 생기면 네게 정실의 자리도 주었을 텐데!’그는 자신의 사랑에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그동안 돈이 좀 생기면 모두 풍씨의 옷과 장신구를 사주는데 썼고 경성에서 좋다는 것은 모두 사다가 풍 이랑에게 대령했다.이 얼마나 지고지순한 사랑인가!송육진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경양백을 바라볼 뿐이었다.소년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든 건지, 경양백은 소년의 멱살을 잡아 절벽으로 밀며 으름장을 놓았다.“어디 그런 눈으로 아비를 보는 것이냐! 그리도 어미의 죽음이 안타까우면 차라리 오늘 네 어미 곁으로 보내주마!”그러는 사이, 뒤에서 마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경양백은 흠칫하더니 이내 소년을 잡아당겨 풀어주고는 헛기침을 했다.마차에서 한 노부인이 내렸다.그분은 예부상서의 어머니이자 고명 칭호를 받은 분이었다. 볼일이 있어 고향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치풍의 부탁을 받고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치풍은 손기욱의 신물을 보여주며 간곡히 부탁하였으니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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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손기욱의 호위들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건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하물며 경양백의 행위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노부인과 상서 부인은 송육진을 무안 후작부로 데려갔다.얘기를 들은 연경은 노부인의 허락을 받고 앞뜰로 와서 송육진을 만났다.소년은 미쳐 날뛰던 경양백의 모습을 떠올리니 두려움이 몰려와 연경을 보자마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그러나 소년은 꿋꿋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제가 또 충동을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치고 말았네요. 누님께서 조용히 지내라고 그리 가르치셨는데….”자조치종을 들은 연경은 가슴이 철렁했다.“그자를 쓰러뜨리기 전에는 절대 자극해선 안 된다. 경양백은 줄곧 부인이 뒤에서 받쳐줘서 품위를 유지하던 사람이니 부인이 사라진 이상, 언젠가는 무너질 거야. 앞으로는 절대 그런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말거라. 네 안전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해.”“누님 말씀이 맞아요. 오늘 그 고명부인께서 절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그 미친 인간은 진짜로 저를 절벽에서 밀어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러고는 온갖 궤변을 늘어놓고 자신은 빠져나가겠죠.”연경도 두려움이 앞섰다. 앞으로 6일, 만약 진짜로 절벽에서 추락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어머니는 이미 잔인한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었지만 아직 송육진이 남았다.잠깐의 고민 끝에 연경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넌 일단 여기서 쉬고 있어. 현장을 본 증인도 있으니 저녁에 나으리께서 귀가하시면 어떻게 할지 상의해 볼게.”‘적어도 6일은 무사히 지나가야 할 텐데.’그녀는 송육진을 저택에 머물게 하고 싶었지만 저택 안에는 송지운도 함께 살고 있고 전생에 송육진을 시해한 범인이 송지운이기 때문에 후작부는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송육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저 때문에 마음 쓰실 것 없어요. 오늘 밤만 여기 묵고 직접 나으리께 감사인사를 드린 후에 내일은 나갈 거예요.”“어딜 가려고?”연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송육진이 웃으며 말했다.“누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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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송학당.강씨 어멈은 시종들을 물리고 노부인에게 독대를 청했다.노부인은 떠난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강씨 어멈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시종들을 보며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무안 후작부는 손씨네 가문이지 강씨가 아니네.”강씨 어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언제까지 제게 화나 있으실 생각입니까?”노부인은 한때 시어머니의 심복이었던 강씨 어멈이 정색하고 나오니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살아 돌아온 것 같은 기시감에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그저 충고 한마디 했을 뿐이네.”“그 아이가 경성에 돌아온다고 들었습니다. 각부의 귀부인들은 그 아이가 와서 무안 후작부에서 지낼지 궁금해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그 얘기가 나오자 노부인은 짜증이 치밀었다.“하, 허튼소리! 나도 허락하지 않을 테지만 기욱이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네!”“이 소식은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왜 제게는 한마디 언질도 주지 않으셨나요?”강씨 어멈도 화가 치밀었다.노부인은 곱지 않게 어멈을 흘기며 말했다.“며칠 전에 서신이 한통 왔었는데 홧김에 태워버렸네. 그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 다 자네에게 보고해야 하는 건가?”강씨 어멈은 한참 말이 없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과거 저희 둘 다 잘못한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취지는 모두 후작가와 나으리를 위한 결정이었지요. 대체 언제까지 이리 꽁해 계실 겁니까? 나으리께서 제게 서신을 몇 번이나 보내 간곡히 부탁하지 않으셨다면 저도 이곳에 다시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노부인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내가 그것을 수양딸로 들이고 싶어서 들인 줄 알아? 나도 그년에게 속았고 귀비의 압박이 있었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강씨 어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가 절대 들이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허나 노부인께선 전혀 듣지 않으셨지요.”노부인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애초에 내 자네에게 말했었지. 그것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 말라고. 자네도 내 말을 무시했지 않나? 자네는 자신이 평생 배운 모든 것을 그 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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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노부인이 씩씩거리며 답했다.“한때 궁중에서 여관으로 지냈다고 유세를 떠는 것 좀 봐! 괘씸해서 말 안 했어! 내가 끝까지 안 된다고 하면 귀비가 날 어떻게 하겠어?”장씨 어멈은 재삼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노부인께서 과거 그분의 혼례식 때 혼수를 못 내놓는다고 하셨다가 오귀비가 폐하와 황후마마께 찾아가 울며 하소연한 것 잊으셨습니까? 그래서 나중에는 결국 더 많은 재물을 혼수로 내놓게 되었지요.”“닥쳐! 지금은 그때와 달라!”노부인이 주먹을 불끈 쥐며 고함쳤다.매화당.오늘 일찍 귀가한 손기욱은 안방에 사람이 없자 바로 매향원으로 향했다.연경은 책상 앞에 엎드려 글씨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석양이 그녀의 하얀 얼굴을 비추며 부드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손기욱은 시종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지시한 후, 살금살금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그녀의 글을 잠깐 지켜보았다.매일 얼마나 연습한 건지, 상당히 좋아진 모습이었다.연경은 근면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매일 집안 살림도 깔끔히 하고 그가 집에 없어도 절대 심심하거나 사고를 칠 틈이 없어 보였다.오히려 너무 얌전해서 손기욱이 심통이 날 정도였다.정력을 할애하는 일은 너무 많아 그녀가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앗아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이때, 연경이 뭔가 난관에 봉착한 듯,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손기욱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놀란 연경이 흠칫하며 종이 위에 먹물이 떨어졌다.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물었다.“나으리, 오셨으면서 왜 소리도 안 내십니까?”손기욱은 그녀의 손을 잡고 어려운 글자를 완성한 뒤에 말했다.“네가 여름옷을 만들고 있는지 보러 왔지.”“낮에 좀 만들었는데 저녁에는 광선이 어두워서 눈이 침침해요.”이는 전에 송지운에게 핍박을 당하며 밤을 새워 일을 할 때 생긴 고질병이었다. 손기욱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우리 경이는 너무 연약해서 항상 내가 보살펴 줘야 한다니까.”연경은 재빨리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손기욱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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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손기욱은 심각한 표정의 강씨 어멈을 보고는 노인을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어멈,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강씨 어멈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그 아이가 돌아온다는 얘기, 들으셨나요?”손기욱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조심스레 물었다.“누구 말씀이십니까?”“유왕비, 나으리의 여동생 말입니다.”손기욱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그 사람이 언제부터 제 여동생이었습니까?”이번에는 강씨 어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노부인께서 유왕비를 수양딸로 삼았을 때, 손기욱은 변경에 있었다. 경성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유왕비에 대해 아무도 얘기하는 이가 없었으니, 아직까지 몰랐던 것이다.“노부인께서 일전에 그 아이를 수양딸로 삼고 혼수품까지 무안 후작부에서 준비해 주었습니다. 며칠 전에 노부인께서 서신을 한통 받았는데 유왕비가 경성으로 돌아올 예정이고 아마 무안 후작부에 머물 생각인 듯합니다.”손기욱은 오랫동안 침묵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그는 음침하게 굳은 얼굴로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그럼에도 그는 울분을 터뜨리지는 않았다.강씨 어멈은 착잡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한참 지난 후, 손기욱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수양딸로 삼았으니 어머니께서 혼수를 준비해 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황가에 시집을 갔는데 들고 간 혼수가 아예 없었다면 그게 더 모양 빠졌을 겁니다. 황실 체면이 깎이면 후작가도 편안치 못할 테니까요.”강씨 어멈은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나으리는 이제 그 아이를 원망하지 않으십니까?”손기욱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원망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강씨 어멈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조심스레 물었다.“만약 그 아이가 고집스럽게 무안 후작부에 머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갈 곳이 없는 사람이지요.”손기욱은 깊게 고민하다가 말했다.“어멈, 그 사람이 언제 도착하는지 알고 계시나요?”“대략 보름 후에 도착할 듯하군요.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연경은 유왕비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손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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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저녁상이 차려지자 손기욱은 매향원에서 연경과 함께 저녁을 들었다.식사가 끝난 후, 연경은 무덤덤한 그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송육진의 얘기를 꺼냈다.“육진이의 안위를 걱정해 주시고 지켜주신 것, 너무 감사합니다, 나으리. 이번에 나으리께서 미리 대비를 해두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는 큰 변을 당했을 것입니다.”“무사하면 됐어.”“나으리, 그래서 소첩은 육진이에게 양 제주를 찾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괜찮을까요? 경양백은 이미 육진이에게 살의를 품었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 아마 그자는 또 육진이를 공격하려 들 겁니다. 다만 경양백부와 후작가는 사돈지간이니 나서기 어려운 입장인 걸 압니다. 제 판단에 문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육진이에게 전하겠습니다.”손기욱은 조심스러운 그녀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우리 경이는 정말 똑똑하구나. 그 정도면 아주 잘했다. 양 제주가 나서준다면 가장 잘된 일이지. 난 뒤에서 물밑작업을 하여 그 아이가 하루빨리 세자의 자리에 오르도록 도와주마.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 수도 있으니.”연경은 두 눈을 반짝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나으리는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그녀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자칫 후작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 불안했지만 손기욱은 꾸중 한마디 하지 않았다.그녀는 방문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손기욱은 기대감이 부풀어 대뜸 아현과 아민을 모두 물리고 문까지 닫아버렸다.연경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품에 안기며 입을 맞추었다.손기욱은 약간의 자극에도 몸이 달아 격렬하게 입맞춤에 호응했다. 뜨거운 입맞춤이 끝나자 연경은 촉촉한 눈망울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순진하면서도 색기가 흘러넘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그의 입술에는 지난번 그녀가 깨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기요가 보고 스스로 물러나길 바라서 한 거였는데 이 정도로는 택도 없는 듯했다.손기욱은 그녀의 뜨거운 시선에 군침을 꿀꺽 삼키며 장난스레 물었다.“또 서방을 괴롭히려는 게냐?”“누가 감히 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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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손기욱은 아침 일찍 입궁했지만 황제를 알현하지 못하고 한 시진이나 기다리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왔다.그날 저녁, 저택으로 돌아오던 그는 황궁의 내관들이 노부인을 들것에 실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손기욱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떻게 된 겁니까, 어머니?”맨 앞에 있던 내관이 그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며 답했다.“지휘사님, 오해 마십시오. 귀비마마께서 꽃구경을 함께 하시자고 노부인을 초대하셨습니다. 최근 귀비마마는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는데 오늘도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셔서 급하게 마마를 모시고 침궁으로 돌아가다 보니 부주의로 노부인께 신경을 못 써드렸는데….”손기욱은 눈매를 매섭게 치켜뜨며 되물었다.“해서?”단지 신경 못 쓰고 저들만 가버린다고 노부인이 이리 되었을 리 없었다.“허허, 그게… 청소하는 궁녀가 어리석어서 전각의 문을 잠가버리는 바람에… 귀비마마께선 이미 그 궁녀에게 곤장 스무 대를 내리셨습니다.”손기욱은 냉랭한 웃음을 짓고는 후작부 시종들을 불러 가마 의자를 내오게 하고 친히 어머니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내관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저택으로 들어갔다.내관은 손기욱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이런 일 두 번 하다가는 내가 제명에 못 죽겠어.”손기욱은 친히 노부인을 송학당까지 모시고 이틀 전에 새로 고용한 상주 의원을 불렀다.새로 온 의원은 의술 실력에도 문제가 없고 집안 배경도 깨끗한 사람이었다.“노부인께서는 기가 많이 약해졌고 속 열이 심한 상태입니다. 푹 쉬시고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드신다면 회복되실 겁니다.”손기욱은 친히 어머니에게 보신탕을 떠먹여 드렸다. 노부인의 안색이 조금 돌아오자 그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오 귀비께서 또 어머니께 무리한 요구를 하셨습니까?”노부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너도 알고 있었느냐? 유왕비가 며칠 전 서신을 보내 우리 후작부에 잠시 머물고 싶다고 한 것을 내 이미 답장으로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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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눈물을 닦은 노부인은 손기욱의 손을 잡았다.“이것 하나만 약속해다오. 절대 그년과 다시 엮이지 않을 거라고. 이제는 유왕비가 된 사람이다. 만약 너와 둘 사이에 추문이라도 나면 그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노부인은 아들을 잃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손기욱이 집으로 돌아온 후, 모자간에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둘은 한 시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그가 매화당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날이 어두워진 직후였다.손기욱은 등불이 밝혀져 있는 매향원을 바라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매향원으로 가기도 전에 연경이 등불을 들고 마중 나왔다.“나으리, 저녁은 드셨나요?”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제가 오늘 꿀 사슴고기 요리를 준비했는데요….”“그래, 상을 차리라고 하렴. 다 먹고 얘기하자.”연경은 왠지 모르게 긴장감에 휩싸였다.그가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송학당으로 건너갔고 노부인이 거의 들려서 저택에 돌아왔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두 사람 모두 입맛이 없었기에 몇술 뜨다가 바로 수저를 내려놓았다.“기 소저가 오늘 제게 초대장을 주더군요. 며칠 후에 용의백부에서 봄맞이 연회가 열린다고요. 강씨 어멈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어멈은 제가 나가서 세상 돌아가는 것 좀 보고 배우는 게 좋을 거라 하셨습니다. 오늘 송학당으로 찾아갔는데 노부인께서 안 보이셔서 그냥 돌아왔어요. 내일 다시 찾아 뵙고 허락을 받겠습니다.”대략 날짜를 계산해 보면 연회 날이 바로 전생에 송육진이 변을 당한 날이었다.“어머니께선 뭐라 하지 않을 테니 어멈의 말을 따르면 된다.”연경이 양 제주부의 상황을 물으려는데 침음하던 손기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네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며칠 후에 유왕비가 후작부에 와서 며칠 지낼 것이다.”연경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유왕비요?”전생에는 일찍 죽다 보니 유왕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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