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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341 - Chapter 350

377 Chapters

제341화

줄곧 침묵을 지키던 가유 공주가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왕비는 용의백부까지 와서도 착한 사람 행세입니까?”공주는 예전부터 가식적인 유왕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굴 만나든 좋은 얘기만 하고 가끔은 비웃는 것 같은데 너무 교묘해서 못 알아들었다가 나중에 분노하는 일도 많았다.가유 공주는 혼인한 이후로 진심으로 기요를 대했다. 며칠 전 한 첩실이 대낮에 기종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기요가 싸늘한 얼굴로 훈계한 모습은 가유 공주의 차게 식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백부의 다른 사람들은 절대 그 첩실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유왕비는 고개를 돌렸다가 뒤늦게 구석에 앉아 있는 공주를 발견하고 말했다.“공주께선 예전에는 활기차고 자유분방하더니 많이 차분해지셨군요.”분명 맥락은 칭찬인데 자세히 들으면 대놓고 비웃는 것과 다름없었다.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몰래 연경을 바라보았다.가유 공주는 기종의 당부와 충고를 떠올렸지만 수치심에 얼굴이 빨갛게 된 기요를 보니 차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기요가 왜 연경을 몰아세웠는지 모르지만 가족이니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공주는 송지운을 노려보며 싸늘히 말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가장 먼저 나서서 이랑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았다고 비난한 사람이 너였던 것 같은데?”기회가 생기자 기요의 친우들도 모든 잘못을 송지운에게 돌렸다.“맞아요! 저 사람이 먼저 얘기를 꺼냈어요! 저도 그 말에 깜빡 속았지 뭐예요!”“그 어미에 그 딸이라더니, 먼저 시작한 사람이 저 여자인 줄 알았으면 절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송지운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어머니는 참수당하고 아버지는 금족령에 오라버니는 세자의 자리를 박탈당하면서 존귀한 경양백부의 차녀는 이제 연회에 참석하려 해도 누구의 덕을 봐야 입장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높은 곳에서 추락한 느낌은 송지운의 마음을 더 무너지게 했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유왕비가 있는 쪽을 살폈지만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유왕비는 온화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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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오해였다면 이만 넘어가지. 이 그림 참 생동감 있게 잘 그렸고 시구도 참으로 유창하군.”유왕비가 화제를 돌리자 사람들의 관심은 1등을 한 그림과 시에 쏠렸다. 송지운은 몰래 연경을 노려보고는 조용히 정자를 떠났다.한편, 연경을 걱정한 송육진은 몰래 사람들을 따돌리고 정자 근처로 왔다.나무가 우거져서 시야를 가리자 소년은 하는 수없이 가산 위로 올라가 연경을 찾았다.가산을 지나던 송지운은 홀로 위에 있는 송육진을 발견하고 사악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명월을 붙잡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서 저 자식을 밀어버려.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명월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작은 마님, 그러시면 안 돼요.”송지운은 이를 갈며 명월의 팔뚝을 꼬집었다.“계속 꾸물거리면 다른 곳으로 팔아넘길 줄 알아!”명월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으면서도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이때, 송지운의 유모가 나서서 그녀를 말렸다.“여긴 용의백부입니다. 아씨, 일 만들지 마시죠.”“어멈이 해줘요!”송지운은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경양백부가 연경 남매의 손에 들어가는 건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그러나 유모는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송지운은 그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는 스스로 가산을 향해 다가갔다.한편, 귀녀들은 청년들과 대문을 사이에 두고 수수께끼 놀이를 하고 있었다. 연경은 굳이 참여할 이유가 없었기에 핑계를 대고 정자를 나섰다. 그런데 유왕비 일행이 그녀에게 다가왔다.“형수.”연경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앞만 보고 걸었다.종종걸음으로 달려온 유왕비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시 불렀다.“형수.”연경은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말했다.“마마, 다신 그런 호칭으로 저를 부르지 마십시오. 큰일 납니다.”유왕비는 여전히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제 일은 너무 마음 쓰지 않았으면 하네. 나무 밑에서 파낸 물건은 외부인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물건이라 꼭 되찾아야겠다고 한 거네. 오라버니가 드디어 마음에 둔 사람이 나타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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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연경은 가슴이 철렁하여 유왕비에게 말했다.“저희도 가보죠.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유왕비는 연경과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연경은 이미 소리가 난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가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연경은 금방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주변에는 용의백부의 시종들이 모여 있었는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송육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서란은 다가가려는 연경을 막으며 말했다.“당황하지 마세요, 이랑. 소인이 일단 가서 상황을 보고 올게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아민이 이미 바람처럼 그쪽으로 달려갔다.가산 아래쪽 커다란 바위 위에는 두 사람이 엎드려 있었는데 밑에 깔린 사람은 몸집이 비대한 어멈이고 위에는 송지운이 쓰러져 있었다. 주변은 이미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아민은 재빨리 돌아와서 연경에게 상황을 전했다.그리고 이때, 가산 위에서 송육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뭘 멍하니 서 있는 것이오? 당장 의원을 불러오지 않고!”연경은 동생이 무사한 것을 보고 비로소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명월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송육진의 뒤에 서서 넋 나간 얼굴로 송지운과 그녀의 유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송지운이 불러서야 그녀는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왔다.연경에게 다가온 송육진은 간략해서 상황을 설명했다.“저도 저 여자가 갑자기 왜 미쳐서 제게 살의를 품고 달려들지 몰랐어요. 명월 누님이 소리를 질러서 살았어요. 저 여자와 어멈이 같이 달려들던 순간에 누님이 저를 잡아주셨어요. 안 보이는 곳에서 저를 지켜주시던 치풍 형님이 어멈에게 조약돌을 던졌는데 어멈이 중심을 잡지 못하며 둘이 같이 추락한 거예요.”유모는 꼼짝도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가망이 없어 보였다.연경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오늘 송육진에게 재앙이 닥칠 걸 알고 치풍에게 보호를 부탁한 거였다. 치풍은 송육진의 호위로 위장해서 연회장에 진입했다.경양백부는 완전히 난장판이고 송육진은 곧 세자가 될 사람이니 아무도 그가 호위를 대동하였다 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연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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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연경은 가슴에 희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이번 생에 송지운은 끝끝내 자신이 저지른 업보를 청산한 것이다!“내… 내 다리! 아파….”송지운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눈을 떴다.연경은 소리를 듣고 다가가서는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고작 손수건 하나 줍는다고 그 높은 곳으로 올라갔어?”송지운은 누가 생각한 거짓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원래의 목적을 말할 수도 없으니 묵인하기로 했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연경에게 물었다.“내 다리는….”“양다리가 다 부러졌어.”“뭐라고요?”송지운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몸을 일으키며 침상을 내리려 했다.그러나 발이 지면에 닿기도 전에 종아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전해져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마침 처방을 쓰고 있던 의원이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달려왔다.“작은 마님, 그렇게 걸으시면 안 됩니다. 돌아가실 땐 바퀴 달린 의자를 구해서 타고 돌아가시고 한동안 푹 요양하면 다시 일어서실 수 있을 겁니다.”“단지… 다시 설 수 있다고?”송지운이 울먹이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인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인가?”“잘 치료하고 재활하면 가능할지도요.”의원은 차마 절름발이가 될 거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송지운은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어지러웠다.“송육진이 떨어졌어야 했는데! 그 놈이 다리가 부러졌어야 했는데!”의원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연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의원에게 물었다.“설마 추락하며 머리도 다친 겐가?”의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 보니 그런 증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나가서 의술서적을 더 찾아보고 오겠습니다.”송지운은 연경에게 손을 뻗으며 욕설을 퍼부었다.“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이 죽었어야 해! 너희들 아니었으면 어머니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도 날 총애하셨을 텐데!”“정말 뻔뻔한 일가족이네.”연경은 더 이상 그녀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풍연경,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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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연경은 흔들리지 않고 시종을 시켜 송지운을 다시 침상에 눕힌 후,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착하지. 소란은 이제 그만.”웃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말투에 송지운은 움찔하며 애원하듯 연경을 바라보았다.뒤늦게 찾아온 강씨 어멈은 자초지종을 들은 후에 굳은 표정으로 연경에게 물었다.“자넨 어찌 생각하는가?”“지운이 정서가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유모를 만나겠다고 난리예요. 하지만 이곳은 용의백부이고 후작가 사람이 이곳에서 숨이 끊어지게 둬서는 안 됩니다. 일단 그 유모가 숨이 붙어 있는 지금 일단 여길 떠나는 게 좋겠어요. 의원에게 여쭤봤는데 잠시 동안은 그리 쉽게 숨이 끊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해요. 아마 후작부에 도착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거예요.”강씨 어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마음이 약해져서 송씨의 부탁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아주 현명한 판단이네.”용의백은 그들이 언제 가나 기다리고 있었기에 겉치레 인사만 하고 유모를 위해 마차 하나를 내어주었다. 강씨 어멈은 상태를 살펴야 한다며 송지운의 유모와 같은 마차를 타겠다고 고집했다.송지운은 연경의 마차에 올라서도 그녀에게 제발 한 번만 유모를 보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듣다 못한 연경은 인상을 쓰며 호통쳤다.“닥치거라!”송지운은 넋 나간 얼굴로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애원했다.“이랑, 제발 이렇게 빌게요. 유모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게 해주세요.”“너 유왕비랑 무슨 얘기를 나눴지? 그분이 왜 널 연회로 데려와?”송지운은 황급히 시선을 회피했다.“일각 정도 지나면 후작부에 도착할 거다. 잘 고민해 보거라.”“그게 무슨 뜻이지? 말을 안 하면 유모의 마지막 모습도 안 보여준다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충격을 받은 송지운은 울분을 터뜨리며 따졌다.“지난날 경양백부에서 넌 한겨울에 어린 나에게 밀린 빨랫감을 씻으라고 명했지. 내 두 손이 얼어서 껍질이 벗겨졌을 때, 너는 왜 내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지?”그보다 더한 것도 경험한 연경이었다. 송지운 모녀는 틈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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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태복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아현이 재빨라서 이랑이 앞으로 다가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랑께서 그 잔혹한 현장을 보았는지 소인은 알 수 없어요.”손기욱은 굳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연경에게로 갔다.그의 소녀는 여전히 평소처럼 조용히 앉아 글씨를 연습하고 있었다. 손기욱은 그녀의 부지런함에 못내 감탄하고 있었다. 그렇게 성실하게 노력한 덕분에 그녀의 글씨는 날로 좋아지고 있었다.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해당화는 왜 아직도 안 심었던데? 매일 힘들게 글씨 연습을 할 필요는 없어.”연경은 무덤덤한 얼굴로 대꾸했다.“예.”“오늘 많이 놀랐느냐?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내 확인해 봐야겠다.”손기욱은 그녀의 손에서 붓을 빼앗아 내려두고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연경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손기욱은 정색한 얼굴로 그녀의 귓불에 입을 맞추었다.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소녀는 매화당에 오기 전보다 살집이 조금은 붙은 듯했다.손기욱은 저도 모르게 몸이 달았다. 유왕비가 온 뒤로 그녀는 점점 그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말로만 거절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거절의 의사를 내비칠 때도 있었다.가끔은 비꼬듯이 오라버니라 부르기도 하고 또 어제는 매화나무 아래에 묻어둔 꽃병 안에 뭐가 들었는지 캐기도 했다.손기욱은 불규칙적으로 뛰는 그녀의 심장소리가 느껴지자 배고픔도 사라졌다.시종들은 조용히 바깥으로 물러갔다.그러나 연경은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는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체통을 지키세요, 나으리.”“어째 말투가 점점 노인네처럼 변해가지?”손기욱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는 연경을 안아 책상 위에 앉힌 후,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연경은 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손기욱의 손길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받쳐주었다.연습지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자 연경은 다급히 그의 가슴을 밀쳤다.“나으리,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았습니다.”“곧 저물겠지.”“아직 식사도….”“내게는 네가 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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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연경은 지금 이 상태로는 왕비를 만나러 갈 수 없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나으리의 시중을 들어야 해서 바쁘니 오늘은 겨를이 없다고 전하렴.”손기욱이 불만스럽게 물었다.“내일은 만날 시간이 있고?”예전에 그는 천애고아인 란향을 안쓰럽게 생각해서 매번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었고 그녀도 그에게서 뭔가를 받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몇 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혹여 심통이 난 란향이 연경과 자신의 사이를 이간질할까 걱정됐다.연경은 먼저 그의 욕실로 향하다가 미동도 없는 그를 보고는 다시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나으리….”손기욱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조금 전 서재에서 기력을 다 소진했는지 연경의 목소리는 축 가라앉아 있었다.“유왕비께서는 오늘 갑자기 태도를 바꾸시더니 저에게 서로 도움을 주자고 하시더라고요. 오늘은 피해 갈 수 있었지만 내일 필히 저를 찾아올 거예요. 내일은 나으리도 저택에 안 계시니 불안합니다. 오늘 저녁에 초대에 응하면 그래도 제 편을 들어주실 나으리도 계신데 말이죠.”애교가 깃든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손기욱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는 손을 뻗어 잘록한 그녀의 허리를 만지며 말했다.“너는 연약하디 연약해서 내가 곁에서 지켜주어야 하는 건 사실이지.”“그럼 나으리께선 제가 오늘 왕비를 만나고 오는 게 낫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내일 만나는 게 나을까요?”연경은 결정권을 그에게 넘겨버렸다.만약 손기욱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이 벌써 3일째이니 유왕비는 내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이다. 손기욱은 낮에 금위군 초소로 가야 하니 일개 첩실인 그녀가 홀로 유왕비를 상대하기엔 버거웠다.손기욱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코끝을 꼬집었다.“그러니 꼭 만나야 한다는 말이냐?”연경은 고개를 들고 당당히 말했다.“나으리, 제가 왕비를 만나 뵙고 싶은 게 아니라 왕비께서 무조건 저를 보려고 하실 겁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내기를 해도 좋습니다!”손기욱은 허허 웃으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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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유왕비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가슴이 칼에 찔린 듯 아프기 시작했다.“오라버니는 귀가한지 얼마 안 된 거로 아는데 어찌….”“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마.”태복이 싸늘한 어투로 말했다.정신을 차린 유왕비는 최씨 어멈이 있는 곳을 힐끗 보고는 해명하듯 말했다.“오라버니도 참, 이랑을 잠시만 빌려 간다는데 어찌 이리 야속할 수가. 가서 일 보게. 난 여기서 좀 더 기다리겠네.”태복은 우산을 받지도, 돌아갈 기미도 없는 유왕비를 한참 바라보다가 우산을 내려놓고 돌아갔다.굳이 여기서 같이 비를 맞을 이유는 없었다.또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안방에서 손기욱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저녁상을 차리거라.”“나으리, 왕비께선 지금도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랑을 못 만나면 안 돌아갈 것 같은데요.”문이 열리고 손기욱이 똥 씹은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왕비는 대체 왜 자꾸 내게서 애첩을 빼앗으려 드는 거지?”태복의 입가에서 경련이 일었다.연경은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손기욱은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란향을 향한 정은 이미 변방에 묻고 왔고 이번 생에는 다시 마주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가!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제 승리입니다, 나으리. 이긴 보상으로 나중에 제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을게요.”손기욱은 고개를 숙이고 하얗고 보드라운 손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하나는 너무 적지. 더 요구해도 괜찮다.”연경은 눈을 깜빡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세 개로 할까요?”“그래.”말이 끝나기 바쁘게 연경은 그의 새끼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흔들며 신이 나서 말했다.“약속하신 겁니다? 번복하기 없어요! 앞으로 제 소원 세 개,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그래, 그래.”손기욱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연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연경이 말했다.“그럼 첫 번째 부탁을 들어주세요. 왕비마마를 만나고 오게 해주세요. 일국의 왕비께서 빗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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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연경은 안으로 들어오자자마 왕비에게 사죄했다.“송구합니다, 마마. 소첩은 조금 전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마마께서 빗속에 기다리게 하였네요.”유왕비는 사랑을 받은 후에 복숭아빛처럼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보고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괜찮으니 식사부터 하지. 난 옷 좀 갈아입고 나오겠네.”잠시 후, 음식상이 차려지자 유왕비도 옷을 갈아입고 태연히 밖으로 나왔다.그녀는 모든 시종을 물린 후, 다정하게 연경의 손을 잡았다.“형수,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예의 차리지 말고 먹으면서 얘기해요.”연경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마마, 소첩에게 그런 호칭과 말투는 쓰지 말아주십시오. 나으리께서 아시면 소첩이 망상에 빠졌다고 혼내실 겁니다.”유왕비는 바짝 긴장한 연경을 바라보며 슬슬 운을 뗐다.“사내의 마음은 원래 갈대 같아 자주 변하는 법이지. 오라버니가 지금은 자네의 미색에 빠져 세상 소중히 대해주지만 언젠가 싫증을 느끼면 집안 배경도 없는 자네가 얼마나 힘들지 뻔히 보여.”연경은 눈시울을 붉히며 공손히 말했다.“제 고초를 알아주시는 분은 마마뿐이네요.”“내 오늘 경양백부에 좀 다녀왔네.”유왕비는 생선 한점을 집어 연경의 접시에 놓아주며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자네가 어릴 적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들었네. 허나 사실 자네는 경양백의 딸이지. 자네가 귀족의 신분을 회복할 수 있게 내가 돕겠네. 그러면 오라버니의 정실이 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지.”연경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전에 작은 마님께 얼핏 듣기는 했는데 저는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딸을 시종으로 부리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요?”“자네가 외실의 자식이기 때문이지.”유왕비는 수치심에 고개를 숙이는 연경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구슬리듯 말했다.“사내는 본디 매정한 족속이지. 오라버니는 예전에 나와 혼인하려고 목숨까지 걸었던 사람이네. 허나 지금은 결국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갔지 않나? 손에 쥔 권력만이 영원한 것이네.”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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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유왕비는 아련한 눈빛으로 동심결을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나는 그저 자네에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었어. 그렇게 나만 바라보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결국 변하지 않았나? 아직까지 자네에게 정실의 자리를 약속하지 않았지? 나중에 정실을 들이고 그 정실이 또 미모의 첩실까지 헌납하면 그때 자네는 이미 그분의 마음에서 밀려나게 될 거네.”연경은 떨리는 눈빛으로 유왕비를 바라보며 물었다.“저 같이 미천한 출신을 가진 사람이 어찌 감히 정실의 자리를 바라겠나요?”“너무 비관하지 말게. 사내는 믿을 수 없지만 나 자신을 믿어야지. 지금 그분은 자네만 총애하시니 이 기회에 위로 올라가는 거야.”“난 무안 후작부가 내 뒷배가 되어주길 바라네. 나중에 유왕께서 득세하면 내가 자네의 가장 큰 뒷배가 되어주지. 그때가 되면 오라버니께서 누구와 혼인하고 첩을 몇이나 들이든 아무도 자네의 입지를 흔들지 못할 거네.”유왕비는 다정한 눈길로 연경을 바라보며 가장 달콤한 말로 꼬드겼다.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자상한 어머니의 눈빛 같기도 했고 널 위해서는 뭐든 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그러나 쉽게 넘어갈 연경이 아니었다.어릴 때 송지운 모녀에게 수도 없이 많은 기만을 당한 그녀였다.유왕비는 분명 수렵대회 때까지만 해도 손기욱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온 나라가 다 알게 무안 후작부로 찾아왔다는 것은 유왕부에서의 삶이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아마 무조건 목적을 달성할 거란 결심을 갖고 여기 왔을 것이다.손기욱은 받은 상처와 충격이 커서 유왕비를 대놓고 무시하고 있지만 연경은 유왕비의 속셈이 너무 궁금했다.예전에는 손기욱의 도움만 받았지만 지금은 그녀도 힘이 닿는 한에서 그를 돕고 싶었다.연경은 해맑은 눈으로 유왕비를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마. 앞으로 모든 건 마마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그래. 그럼 돌아가서….”유왕비는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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