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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351 - Chapter 360

377 Chapters

제351화

“그년 완전히 미친년이네?”손기욱은 화가 나서 헛웃음만 나왔다.연경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유왕비의 말은 그녀를 동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손기욱의 진심을 엿볼 수 있게 했다.적어도 손기욱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한때 란향에게 온마음으로 잘해줬는데 돌아온 건 배신이었기에 미천한 시종 출신인 연경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지켜만 보다가 어느 시점에서 경계를 내려놓고 그녀를 받아주기로 작심한 것 같았다.어찌 보면 연경이 매화당으로 오는 길이 순탄치 못했던 것은 모두 유왕비 덕분이었다.손기욱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역겹구나. 누가 그런 애랑 혼례를 올렸다는 거지?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것도 분수가 있어야지!”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연경은 그것 때문에 질투를 느끼는 것 같으니 조금 기분이 좋기도 했다.그는 허리를 숙여 연경과 시선을 맞추며 부드럽게 물었다.“날 믿느냐? 아니면 유왕비를 믿겠느냐?”연경은 그가 옆에 벗어 놓은 젖은 옷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당연히 나으리를 믿어야죠. 나으리가 하신 말씀이라면 뭐든 믿겠습니다.”그저 기분 좋으라고 한 얘기라도 그를 믿을 것이다.연경은 소년의 진심이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그녀였다면 온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그들의 과거가 지금도 마음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일개 첩실일 뿐이니 대놓고 질투를 드러낼 수 없었다.연경은 나중에 정실이 된 이후에 마음 놓고 질투심을 드러내기로 했다.손기욱은 부루퉁하게 나온 그녀의 입술을 손으로 살짝 꼬집었다. 연경이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들자, 그는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잡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혼례는 거짓말이다. 강씨 어멈은 늘 내게 여인을 경솔히 대하지 말라고 가르쳤지. 란향과 주고받은 서신과 신물은 이미 그런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 그녀와 혼인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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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오랜 시간 친지들의 비웃음과 괴롭힘에 시달렸던 란향은 성격이 아주 예민한 아이였어. 해서 난 그 애를 대할 때 늘 조심스러웠지. 태명처럼 가족들만 부를 수 있는 친근한 애칭은 내가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 애가 내가 자신을 쉽게 본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너는 내가 그 애의 태명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 안 믿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애에게 들었어도 절대 그런 식으로 그 애를 불러본 적은 없었을 거야. 그 애가 유왕과 혼례를 올린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내 일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었어. 그날 밤 우린 좁은 협곡에서 적군의 포위를 당했는데, 나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싸우던 전우들이 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어. 그날 밤 이후, 난 그 애에 대한 기억을 잊기로 결심했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정말 기억이 흐릿해져서 많은 것들을 기억하기 못하게 되었어.”“연경아, 이간질에 속지 말거라. 난 너와 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연경도 어느새 그에게 정이 깊어졌으니 그의 과거에 대해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었다.그러나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지 알기에, 지금 와서 사소한 이름마저 신경 쓰이게 되는 것이다.사실 손기욱이 너와 그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가끔 너의 이름을 부르며 지나간 과거를 떠올린다고 해도 연경은 그를 믿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해명을 하고 있었다. 그 마음은 오롯이 연경에게 전해져서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분개한 듯 말했다.“그런 사람 때문에 나으리와 사이가 멀어지기 싫습니다! 그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니까요!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앞으로 나으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필히 있을 겁니다!”사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래? 누가 날 그렇게 사랑할까?”연경은 그의 뜨거운 가슴에 얼굴을 대고 말했다.“제가요! 제가 온 마음을 다해 나으리를 사랑할 것입니다.”여기서 더하면 그가 또 몸이 달을 것 같았기에 연경은 재빨리 식사를 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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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다음날, 수업을 하러 희운각으로 건너간 연경은 아니나 다를까, 유왕비와 마주쳤다.“내가 부탁한 일은 어찌 되었는가?”연경은 짐짓 한숨을 쉬며 답했다.“나으리께서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주량이 훨씬 좋더라고요. 그 많은 술을 마시고도 전혀 취한 티가 나지 않아서 감히 말도 못 꺼냈습니다. 오늘 저녁에 한번 더 시도해 보려고요.”유왕비는 실망한 듯 그녀를 노려보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죄책감에 주저할 필요 없네. 지금이야 미색에 취해 자네를 총애하겠지만 나중 가서 싫증을 느끼면 앞으로 수많은 미인들을 첩으로 들일 거네. 사내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연경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진심으로 유왕비에게 예를 행했다.“가르침 감사합니다, 마마.”“내 말이 다 자넬 위한 거란 건 얼마 못가 알게 될 거네. 사내의 사탕발림 말은 믿을 게 못 돼. 자네가 죄책감에 주저한다면 차후 필히 상처를 받게 될 거네.”유왕비는 마치 연경의 복잡한 심경을 꿰뚫어 본다는 듯이 간곡히 말했다.유왕비가 떠난 후, 강씨 어멈과 기요의 시선이 연경에게로 쏠렸다.강씨 어멈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날 따라오게.”연경은 조용히 어멈을 따라 옆방으로 건너갔다.“유왕비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가?”연경은 어젯밤 있었던 일을 제외하고 유왕비가 했던 말을 간략해서 말했다.얘기를 다 들은 강씨 어멈은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이간질이네! 나으리가 잘사는 게 싫었던 거지!”말을 마친 노인은 연경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한숨 쉬듯이 말했다.“아마 자네도 나으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거라고 믿네. 나으리는 정 많은 사람이지. 자네에게도 진심을 다했고….”“어멈, 뭘 걱정하시는 겁니까?”연경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일개 첩실인 자신이 귀하신 무안 후작에게 상처를 주면 얼마나 준다고 이러는 것일까?“나으리는 내가 어릴 때부터 품에 끼고 키운, 내 자식 같은 사람이네. 난 자네가 나으리와 화목하게 지내고 진심을 다해주었으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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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힘겹게 고개를 든 명월은 절망한 눈으로 송지운을 바라보았다.“작은 마님!”송지운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날 섬기지 않는 아랫것을 내가 왜 곁에 두어야 하지?”절망한 명월은 힘겹게 기어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곁에 있던 어멈이 그녀를 힘껏 걷어찼다.마담이 부름을 듣고 금수원으로 향하던 시각, 연경은 강씨 어멈에게서 가계를 배우고 있었다. 서령은 문밖에서 조바심을 태웠지만 감히 수업 시간에 함부로 들어가서 방해할 수는 없었다.어젯밤 처소로 돌아온 연경은 서령에게 금수원 동향을 잘 주시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명월에게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제때에 보고하라고 했다. 그러나 강씨 어멈의 훈계가 두려웠던 서령은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아현은 심상치 않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자초지종을 물었다.“뭐라고요? 작은 마님께서 명월님을 암시장에게 팔아넘긴다고요?”아현은 워낙 목청이 높아서 안에 있던 연경도 그 말을 들었다.연경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강씨 어멈에게 양해를 구했다.“어멈, 잠깐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어멈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녀는 치맛자락을 잡고 밖으로 달렸다.“아현아, 아민아! 너희는 걸음이 빠르니 가서 무조건 마담을 막아. 절대 그 사람이 명월을 데려가게 둬서는 안 돼!”그러나 결국 그들은 늦어버렸고 금수원에 도착했을 때, 마담과 명월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송지운은 연경을 보자마자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랑, 혹시 유모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오셨습니까?”“네가 명월을 암시장에 팔아치웠어? 어디 암시장이야!”“명월처럼 주인을 배신한 자는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요. 그 어멈에게는 기루에 팔아 넘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내 분이….”연경은 시뻘건 눈으로 송지운을 노려보며 귀뺨을 날렸다.짝!송지운은 얼얼한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분노한 고함을 질렀다.“감히 나를 쳐?”짝!연경은 또다시 귀뺨을 날리고는 물었다.“다시 묻겠다. 어디 암시장이냐?”분노로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는 평소의 온화한 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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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치풍은 아직 송육진의 곁에 있었기에 연경과 함께 나간 사람은 태복이었다.손기욱과 치풍의 지시가 없이는 저택의 호위를 함부로 부릴 수 없었기에 태복은 하는 수없이 몇몇 남자 시종들을 거느리고 출발했다.일행이 성동 암시장에 곧 도착할 무렵, 말을 탄 사내들이 맞은편에 나타났다.연경은 불길한 마음에 창가에 앉은 아현에게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으라 지시했다.성동 암시장은 편벽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맨앞에는 태복이 타는 마차가 있고 연경과 아현, 서란을 태운 마차는 중앙에, 아민과 다른 남자 시종들은 맨 뒤의 마차에 타고 있었다.연경의 마차가 갈림길을 지나던 순간, 말을 탄 자들이 갑자기 일행에게 접근하더니 신속하게 연경이 탄 마차를 납치했다.곧이어 그들은 유유히 갈림길 반대편으로 사라졌다.연경과 서란은 갑자기 마차가 흔들리자 몸을 가누기조차 힘겨웠고 아현은 다급히 차창 가림막을 열었다.뭔가 이상함을 느낀 아현이 뒤돌아서 연경을 보호하려던 순간, 한 사내가 주먹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쳤다. 아무리 무공을 수련한 몸이지만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한 아현 혼자 여러 명의 사내들을 상대하기엔 무리였다.아현은 곧바로 마차에서 끌려나와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을 때, 마차는 이미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아현은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이미 멀어진 마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연경은 차창을 통해 달리고 있는 아현을 확인하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서란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어릴 때부터 후작부에서 시녀로 일한 그녀가 감내하기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연경은 침착하게 창가 가림막을 열고 말했다.“혹시 마차를 착각하신 거 아니오? 난 암시장에 급한 일이 있어 가는 길인데….”“얌전히 계세요! 나으리께서 저희에게 이랑을 모셔오라고 하여 가는 길입니다!”그 말을 들은 서란이 울음을 터뜨렸다.“이랑, 나으리가 보낸 사람들이었군요! 이제 안심해도 되는 거겠죠?”연경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만약 손기욱이 보낸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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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이 순간 그는 송지운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손기욱은 홀로 말을 타고 저택으로 돌아가 검을 쥔 채로 금수원으로 향했다.송지운의 유모는 결국 그렇게 눈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유모의 가족들은 통곡하며 허둥지둥 유모의 시신을 집으로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손기욱은 곡소리가 들리는 금수원 안방으로 쳐들어가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송씨는 어디 있는가?”다리가 부러진 송지운은 침상에 누운 채로 힘겹게 인사를 건넸다.“아버님, 저는….”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눈앞에 섬광이 번쩍이더니 서슬퍼런 검날이 목에 닿았다.송지운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연경이를 어디로 데려갔느냐?”송지운은 당혹스러운 눈길로 손기욱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 저는 아무것도… 악!”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에서 전해진 통증에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검날이 닿은 곳에서 뻘건 피가 스며나와 옷섶을 적시기 시작했다.겁에 질린 송지운은 울음을 터뜨리며 다급히 변명했다.“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넌 네 신변의 시종을 암시장에 팔고 일부러 연경이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저택을 나가게 만들었어. 그리고 중도 길목에서 마차를 납치했지!”손기욱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송지운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자신을 향할 때, 송지운은 이대로 얼어붙을 것만 같은 한기를 느꼈다.그의 거친 숨소리는 마치 최명부처럼 그녀를 옥죄었다.“송씨, 연경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목숨은 살려주마.”목덜미에서 알싸한 통증이 느껴지자 송지운은 결국 참지 못하고 모든 걸 자백했다.“유… 유왕비께서 지시하신 일입니다. 저에게 이랑이 저택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라고 하셨어요. 왕비께서 뭘 하려고 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송지운은 말하다 말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강씨 어멈을 보고는 애원하듯 소리쳤다.“어멈, 저 좀 살려주세요!”강씨 어멈은 살벌한 손기욱의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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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강씨 어멈은 미처 뒷수습도 못한 채, 손기욱을 쫓아 유왕비의 처소로 왔다.그러나 유왕비와 최씨 어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유왕비가 데려온 시녀들만 짐정리를 하고 있었다.사람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쥔 손기욱을 보고 놀라서 황급히 구석으로 도망쳤다.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부인과 뒤늦게 그를 따라잡은 강씨 어멈이 양쪽에서 그의 팔을 붙잡고 입에 침이 마르게 그를 말렸다.손기욱은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다.그는 아직 완전히 이성을 잃은 건 아니었다. 만약 유왕비가 연경을 납치한 게 사실이라면 그녀의 목적은 그가 유왕의 사람이 되는 것일 테니, 잠시 동안은 연경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대체 어디에 감췄을까?미리 소식을 전해들은 최씨 어멈은 그가 도착하기 전에 모든 방 문을 걸어 잠그고 창가에 숨어 바깥 상황을 관찰했다.갑옷으로 무장한 손기욱이 피가 뚝뚝 흐르는 장검을 들고 진한 살기를 풍기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어멈은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연경은 홀로 지하실에 갇히게 되었다.앞도 안 보일 정도로 사방은 캄캄하고 손발이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그녀와 서란은 끌려오는 와중에 몸에서 몰래 물건을 버려 흔적을 남겼다. 동전이나 은화 같은 건 누가 가져갈 것 같아서 연경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동전에 묻혔다. 그 모습을 본 서란도 똑같이 따라했지만 중도에 두 사람 모두 손발이 묶이고 말았다.연경은 두려움이 몰려왔다.처음에는 광기에 사로잡힌 송지운이 납치범을 보냈다고 했지만 만약에 송지운이라면 그녀를 이곳에 그냥 가둬둘 게 아니라 온갖 수단을 동원해 혹형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니 범인은 송지운이 아닌 유왕비일 가능성이 컸다.추측이 확신이 되자 연경은 잠시동안은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연경은 눈이 부셔 재빨리 눈을 감았다.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유왕비는 여전히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혀 흐트러진 연경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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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마마, 무안 후작께서 오후에 검을 들고 와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최씨 어멈과 대화를 좀 나누시더니 갑자기 정원에서 무공 수련을 하고 가셨습니다.”어린 시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고했다.유왕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녀에게 물었다.“다친 사람은 없느냐?”시녀가 고개를 흔들자 그녀는 그제야 환한 웃음을 지었다.“피를 본 사람이 없으면 되었다.”“피요? 나으리께서 오실 때부터 검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강씨 어멈이 입단속을 한 덕분에 금수원에서 벌어진 일들은 저택 안에 퍼지지 않았으나, 유왕비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금수원이 떠올랐다.손기욱의 손에 누가 다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왕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송지운이 이 일을 비밀에 부쳐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어멈, 문을 열게. 따뜻한 차를 우리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게.”유왕비는 정원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오는 최씨 어멈을 보고 살짝 경멸에 찬 표정을 지었다.손기욱은 오전에 유왕비가 아직 궁에 있다는 소식을 확인하고는 한바탕 정원에서 분풀이를 한 뒤에 금위군을 이끌고 연경을 찾아나섰다.그는 오후내내 금위군들을 이끌고 경성 안팎을 싹 뒤졌으나, 연경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손기욱은 살면서 오늘처럼 초조하고 절망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곧 통금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하는 수없이 어둠 속에 저택으로 귀가했다.매화당은 평소와 달리 불이 꺼져 있었고 늘 문앞에 그를 마중하러 나왔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손기욱은 대충 끼니를 때웠다.무슨 맛인지 입맛이 써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배불리 먹어야 힘이 날 것 같아서 억지로 먹었다.그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은 강씨 어멈은 곧바로 매화당을 찾아왔다가 밖으로 나가려는 손기욱과 마주쳤다. 노인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엄숙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손기욱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그 여자를 만나러 갈 겁니다.”“왕비에게 끌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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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한편, 최씨 어멈은 쉴 새 없이 유왕비에게 하소연했다.“제가 미리 알고 숨지 않았더라면 아마 무안 후작께서는 그 검으로 제 목을 쳤을 것입니다. 무안 후작은 성격 급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니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아까 그 모습을 보니 협상은 그른 것 같습니다.”“어멈, 목이 타지 않은가? 앉아서 차나 좀 마시게.”유왕비는 들을수록 짜증이 치밀었지만 쓴 소리를 하기 싫으니 친히 찻잔에 차를 따라 어멈에게 건넸다.최씨 어멈은 오후내내 손기욱의 흉포함에 대해 하소연하고 있었다. 유왕비는 당시 그가 어떤 모습인지 모르니 고작 그거로 겁에 질린 최씨 어멈이 한심하기만 했다.“마마, 무안 후작께서 오셨습니다.”어린 시녀가 벌벌 떨며 들어와 고했다.그 말을 들은 최씨 어멈은 움찔하더니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유왕비는 굳은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난 옷을 갈아입고 나올 테니 차를 새로 우려서 내오고 후작께는 잠시 기다리라고 전하거라.”안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머리에 하고 있던 장신구를 다 빼고 일부러 한참을 밍기적거리다가 밖으로 나갔다.진청색의 두루마기를 입은 손기욱이 싸늘한 기운을 풍기며 대청에 앉아 있었다.유왕비는 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인사를 건넸다.“오라버니, 어쩐 일이신가요? 저는 이만 쉬려던 참이었는데요.”손기욱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하는 유왕비의 뻔뻔함에 눈썹을 꿈틀거렸다.“재밌어?”유왕비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연경의 머리에서 빼온 옥비녀를 그에게 건넸다.“이것 좀 보세요, 오라버니. 오늘 거리에 나갔다가 운이 좋게도 이런 걸 주웠지 뭐에요.”옥비녀를 본 손기욱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을 받아 한참을 빤히 바라보았다. 예전에 그가 연경에게 사주었던 해당화 비녀였다.유왕비는 담담한 얼굴로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더니 말했다.“오라버니, 제가 뭘 원하는지는 알고 계실 거예요. 오라버니와 저, 두 사람을 위한 일이죠.”손기욱은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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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손기욱은 왜 이렇게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유왕비를 믿었을까 하고 후회가 되었다.그녀가 원하는 대로 따라준다면 오히려 바로 달려가서 연경을 시해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연경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강씨 어멈의 말이 맞았다. 그녀에게 끌려다닐 게 아니라 약점을 이용해야 했다.손기욱은 눈을 매섭게 뜨더니 갑자기 일어나 유왕비의 손에서 밀서를 빼앗았다.유왕비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라 눈 뜨고 서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오라버니, 이게 뭐 하시는 거죠?”“연경을 풀어주면 그때 주겠다. 지금은 통금 시간이니 네가 그 아이를 후작부에 숨겨두지 않은 이상, 오늘 밤은 절대 풀어줄 수 없을 테지.”말을 마친 손기욱은 곧장 밖으로 향했다.“오라버니!”유왕비는 다 성공한 마당에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다급히 그를 쫓아갔다.“지금 이 상황에도 저와 자존심 싸움을 하시렵니까? 왜 우린 손을 잡고 같이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는 거죠?”손기욱은 경멸에 찬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넌 높은 곳에 닿을 수 없어. 넌 유왕의 마음에서 나보다도 못한 존재이니까. 내가 만약 유왕의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굳이 널 통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유왕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넌 오늘 연경을 납치하고 나를 협박하였다. 나중에 또 이런 일을 벌이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나? 란향, 그 아이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릴 시엔 너와 네 딸 모두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될 거다!”“왜 무고한 제 딸아이까지 끌어들이는 거죠? 어떻게 어린 아이를 갖고 저를 협박할 수 있나요? 언제부터 이렇게 비열한 사람이 되었습니까?”란향은 더 이상 고상한 가면을 유지할 수 없었다.손기욱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비열함으로 치면 난 네 발꿈치도 못 따라가지. 어디 마음대로 해보거라. 네가 빠를지, 아니면 내 호위가 밤새 달려 유왕부에 도착하는 게 빠를지. 유왕이 과연 네 딸의 목숨으로 도박을 하려 할까?”그는 이렇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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