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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361 - Chapter 370

377 Chapters

제361화

손기욱이 매화당으로 돌아오니 노후작 부부와 강씨 어멈이 와 있었다.그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노후작이 분노한 목소리로 호통쳤다.“결국 그 애가 하자는 대로 따르기로 한 거냐? 또 그 애에게 한번 더 상처를 입어야 정신 차리겠어?”손기욱은 노후작을 지나쳐 노부인을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연경이 저택을 나가기 전 어머니께 한 부탁을 왜 다 거절하셨습니까?”그는 저택에 돌아온 아현과 아민, 그리고 서란에게서 오전에 있었던 일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연경은 처음 송학당으로 찾아갔을 때, 노부인이 나서서 송지운을 막아달라고 간청했다.그러나 노부인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일개 시종 따위 어떻게 되든 그건 노부인의 관심밖이었고 하물며 인신 계약서도 송지운에게 있으니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연경은 하는 수없이 저택을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노부인은 연경을 곤란하게 하지 말라는 손기욱의 부탁이 있었기에 그 요구는 허락해 주었다.“왜 그 아이가 저택을 나가는데 호위 한명 붙여주지 않았습니까?”“일개 첩실이 외출하는데 호위까지 붙여줘야 하니? 뭐 그리 귀한 몸이라고? 첩실을 그리 떠받들어서는 아니된다.”노후작은 곱지 않게 노부인을 흘기며 말했다.“부인, 그만하시게!”손기욱은 지친 얼굴로 말했다.“제가 집으로 들인 사람이니 어머니도 그 아이에 대한 제 마음을 아셨을 겁니다. 어머니께서 그 아이를 못마땅해하시는 건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것과 같아요. 그애가 다치면 제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걸 미리 예상했어야 했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파요.”손기욱은 처음으로 가족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강씨 어멈은 반쯤 넋이 나간 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꾸중 한마디 할 수 없었다.그러나 노부인은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주절주절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듣다못한 강씨 어멈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그만하십시오! 나으리는 현명한 분이니 이제 그만 아들을 믿어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뭘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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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상자 속 연경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다급히 상자벽을 두드렸으나, 주변의 소리가 너무 혼잡하고 빗소리까지 섞여서 한참을 두드려도 그가 다가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그녀는 무의미한 발악을 멈추고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유왕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게 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그는 한 번도 그녀에게 왜 유왕과의 혼인을 택했는지조차 묻지 않았다.손기욱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시 한구절이 생각나는구나. 성문 앞 풍경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연경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성문 앞 풍경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도화꽃만 여전히 봄바람을 맞아 만개하였네. 역시 오라버니는 과거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시간이 참 오래 흘렀지요. 앞으로는….”손기욱은 짜증스럽게 유왕비의 말을 끊었다.“네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전 구절뿐이다. 확대해석하지 말거라.”유왕비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성문 앞 풍경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그녀가 미처 그 속에 숨은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연경은 웃음을 터뜨렸다.손기욱은 시를 빗대어 유왕비에게 넌 이제 사람도 아니라고 욕하고 있는 거였다.뒤늦게 말뜻을 알아차린 유왕비가 냉소를 지으며 쏘아붙였다.“역시 대경 유일의 문무 장원답군요. 그런 말주변으로 이야기꾼을 했으면 대박이 났을 텐데 말이죠! 그렇게 그 아이를 총애한다면 과거의 일은 어디까지 얘기했나요? 설마 사실만을 말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저도 못 믿으니까요!”연경은 한참 귀를 기울였지만 손기욱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내게 거짓말한 게 있는 걸까?’“그때….”“참 말이 많아. 원래 이리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돌아가기 싫으면 후작가로 돌아가 계속 머물거라. 그때 가서 내 하나하나 너한테 따져줄 테니.”말문이 막힌 유왕비는 그를 힘껏 노려보고는 가림막을 내려버렸다.잠시 후, 두 내관이 맨 뒤쪽 마차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손기욱의 앞에 대령했다.유왕비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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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손기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을 잡고 물었다.“뭐 하는 거지? 설마 자책하는 것이냐?”“제가 나으리를 해쳤습니다.”손기욱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이는 내 선택이니 네 잘못이 아니다. 바깥의 비바람은 본디 사내가 책임지고 막아내야 하는 법, 이번에는 내가 그 여자의 잔인하고 교활함을 과소평가했다.”“저 때문입니다. 유왕비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저는 저택을 나가는 걸 택했어요.”연경은 자신이 손기욱의 발목을 잡고 명월도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후회막급이었다.손기욱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댔다.“느껴지느냐?”연경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서글픈 얼굴로 다시 물었다.“내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를 느꼈느냐? 고생한 건 너인데 왜 내 앞에서 자책하는 것이냐?”“제가 저택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납치도 당하지 않았을 테고 나으리께서 약점을 손수 왕비의 손에 넘기지 않았을 테지요.”“납치를 당한 게 어디 네 탓이더냐? 네가 저택을 나가지 않았어도 그 여자는 무슨 수를 써서든 널 잡아갔을 거다. 탓은 잔인하고 교활한 그 여자 탓을 해야 하고 순간 방심하여 널 지켜주지 못한 내 탓을 해야지. 난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내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길을 연약한 여인의 탓을 한다면 그게 무슨 사내란 말이냐?”연경은 요동치는 감정 때문에 가슴이 벅차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사내는 여인을 구슬릴 땐 널 위한단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나중에 일이 잘 안 풀리면 모든 잘못을 여인에게 돌리는 줄 알았다.그녀는 처음으로 세상에 그들과는 다른 사내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연경은 비록 조정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손기욱이 한번도 파벌 싸움에 끼지 않고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이렇듯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이기에 황제의 신뢰를 받고 귀경하자마자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그런데 그랬던 그가 자신 때문에 유왕의 파벌에 끼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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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그는 곧장 가서 안방 문을 비스듬히 열고 태복을 불렀다.태복이 흐느끼듯 답했다.“소인은 어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해서 나으리의 권세를 좀 빌렸습니다. 나으리의 이름을 걸고 작은 마님을 찾아가 훈계 좀 했지요. 그러나 그땐 명월이 이미 팔려간 상황이라 하는 수없이 은화를 챙겨서 겨우 그 아이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그는 시종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고생을 알지만 그는 늘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어제 연경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손기욱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힘들게 저택의 부관 자리까지 올라온 그는 한낱 시종을 위해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위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연경이 위험을 감수하고 찾으러 나간다고 했을 때, 오히려 안일하게 생각한 것도 있었다.그리고 그는 이에 대해 지금은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손기욱은 얘기를 다 듣고 긴 한숨을 내쉬고는 흡족하게 말했다.“잘했어.”태복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물러갔다.한편, 비를 무릅쓰고 성을 떠난 유왕비의 대오는 저녁 무렵이 되어 객잔에 들었다.왕비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시녀가 다가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마마, 큰일 났습니다. 최씨 어멈이 보이지 않아요!”유왕비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시큰둥한 어투로 답했다.“어쩌면 어디 몰래 숨어서 쉬고 있을 수도 있지. 그리 신경 쓸 것 없다. 연세가 드셨으니 조금 여유도 누려야지.”‘아마 앞으로는 무안 후작부 우물 안에서 푹 쉬고 계실 테지.’송지운은 어리석은 여인이지만 생각보다 더 잔인하고 행동력이 있었다.최씨 어멈은 오귀비의 첩자로서 유왕부에서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오측비를 두둔했고 외출했을 때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잔소리를 해댔다.그러니 란향은 계속 그런 사람을 자신의 신변에 머물게 할 수 없었다. 이번 여정을 떠날 때부터 최씨 어멈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시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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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객잔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왕부의 호위들은 일제히 검을 빼들고 큰소리로 호통쳤다.“미천한 것들이 예가 어디라고 감히!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객잔의 손님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며 구석에 몸을 숨겼다.살짝 얼어서 앞으로 못 다가오는 촌민들 사이에서 용기 있는 자가 분개하며 소리쳤다.“저들이 우릴 천한 것들이라고 욕했습니다. 분명 당신들이 우리 닭을 깔아 죽여 놓고서 협박하게 하다니!”“그러니까요! 협박은 왜 한답니까? 사과하고 돈을 배상하세요!”“사과하세요! 배상하세요!”사람들은 농기구를 번쩍 치켜들며 우렁찬 목소리로 시위했다.호위들이 손에 쥔 검을 높게 치켜올렸다.유왕비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말했다.“너, 당장 가서 절대 사람을 다치게 해선 안 된다고 하거라! 대체 멍하니 서서 뭣들 하는 거지? 당장 문을 걸어 잠그고 탁자를 옮겨 입구를 막거라!”그녀는 하루빨리 유왕부로 돌아가고 싶었다. 만약 이곳에서 촌민들과 마찰을 빚어 사람이 다친다면 앞으로 그녀와 유왕의 명성에 큰 누가 될 것이다.겁에 질린 시녀와 어멈들은 분분히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한 시녀는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밖으로 나가 호위에게 왕비의 뜻을 전했다.촌민들은 한참 소란을 부리다가 투숙객들이 모두 객잔을 떠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객잔 점주는 하는 수없이 올라와서 왕비의 방문을 두드렸다.“아씨, 저희도 먹고 살아야지요. 손님들은 다 겁에 질려 돌아갔으니 아씨도 다른 머물 곳을 알아보십시오.”점주는 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축객령을 내렸다.“우리가 모시는 분이 누군 줄 알고 감히 그런….”수치심에 얼굴을 들 수 없었던 유왕비는 다급히 시녀를 말렸다.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와 촌민들에게 사과하고 두 배로 보상한 뒤, 점주에게도 손해배상과 사과를 한 후, 빗속에서 다시 길을 나섰다.한끼 따뜻한 식사도 하지 못하고 차 한잔 마실 겨를도 없었다.그녀는 살면서 이렇게까지 비참했던 적이 정말 오랜만이라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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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손기욱은 두텁게 약을 바른 연경의 손발목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나으리, 이건 너무 두껍지 않을까요?”연경이 못 말린다는 듯이 물었다.“두껍게 감아야 부주의로 어디 부딪쳤을 때도 아프지 않지. 서 의원과 송육진이 왔어. 가서 만나볼 거야?”연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려가려는데 손기욱은 그대로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그러고는 연경의 놀란 시선 속에 바닥의 신발을 잡고 조심스레 그녀의 발에 신겨주었다.연경은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반면 손기욱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그녀를 안고 밖으로 향했다.연경은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나으리, 저 걸을 수 있습니다.”“안 돼. 발목이 아플 거다.”“그렇게 아프지 않습니다. 걸을 수 있어요.”손기욱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안쓰러워서 그런다. 내 생각도 좀 해줘야지!”연경은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어쩐 일인지 납치당했다가 돌아온 이후 그가 했던 말을 듣고 더 이상 예전처럼 일렁이는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게 되었다.손기욱은 서주행과 송육진이 보는 앞에서 당연한듯이 연경을 안아 의자에 앉혔다.연경의 상태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둘은 두껍게 칭칭 감은 붕대를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상처 좀 봐야겠구나.”“저도 볼래요.”연경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그냥 껍질이 좀 까진 것뿐인데 정말 괜찮아요.”“그런데 왜 이렇게 칭칭 감쌌어? 피가 흐르는 게 아니라면 통풍이 되게 그냥 두는 게 좋지 이렇게 꽁꽁 싸매면 오히려 감염의 위험이 있다고.”서주행은 불쾌한 눈으로 손기욱을 바라보며 말했다.“자네 예전에 경미한 외상을 입었을 때 내가 언제 이런 식으로 붕대를 둘둘 말아주었나?”말을 마친 그는 당장 붕대를 풀려고 손을 뻗었다. 할 말이 없어진 손기욱은 그의 손을 밀치고 조심스레 묶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연경의 멍든 손목이 바깥에 드러나자 송육진은 주먹을 꼭 쥐고 눈시울을 붉혔다.어제 그는 세자로 책봉되고 경양백부의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누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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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손기욱은 얘기 중인 남매를 힐끗 보고는 서주행을 끌고 조용한 구석으로 갔다.한참 후, 서주행은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역시 여자가 곁에 있으니 사람이 다 되었군 그래. 눈치라는 것도 생기고.”손기욱은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세우며 대꾸했다.“부러운가? 그럼 자네도 혼인을 하게.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네. 힘들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날 위해 불을 밝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상을 한가득 차리고….”끝도 없는 그의 자랑질에 서주행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만 좀 하지?”“이렇게 사랑스러운 연경이를 내 어찌 자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서주행은 입을 삐죽이며 그를 비웃었다.“의기양양하는 꼴 하고는. 난 하나뿐인 내 여동생이 출신 때문에 평생 뒷방에 갇혀 지내는 게 안타까워 죽겠네. 차후 자네가 정실을 맞이하면 또 온갖 괴롭힘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그게 무슨 헛소리인가?”손기욱이 불쾌한 어투로 물었다.“강씨 어멈이 공들여서 기요 낭자를 가르치는 게 자넬 위해 정실을 육성하는 것이 아닌가?”서주행이 불만스럽게 대꾸했다.“정실은 생각해 둔 사람이 있네. 기요 낭자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단 말이야.”서주행이 물었다.“그게 누군가?”손기욱은 잠깐 침묵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아직은 때가 아니야. 차차 알게 될 거네.”서주행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놀라운 가설이 스치고 지나갔다.“연경은 똑똑하니 내가 차후에 조정의 혼잡함까지 가르칠 것이네. 그때가 되면 더 멀리 바라보는 판단력을 갖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은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게 좋아.”“차후면 언제를 두고 하는 말인가?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는 기요 낭자 같은 세가의 아가씨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네. 일개 시종의 목숨마저 저리 귀하게 여기는데 그건 저 아이가 시종의 서러움을 알기 때문이네. 자신이 모른 척한다면 그 시종은 일생을 망칠 거란 걸 알기 때문이지.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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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송육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온 정신이 연경에게 쏠려 있었다.“누님, 서쪽의 계화떡 점포가 그렇게 잘 팔린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부상이 다 나으면….”“내가 친히 데려갈 것이다.”손기욱은 싸늘하게 소년의 말을 자르고는 연경이 직접 만들어줬다는 향낭으로 시선을 돌렸다.송육진은 본능적으로 향낭을 감싸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세자로 책봉되었다 들었는데 아직 축하 인사도 못했구나.”송육진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다 나으리 덕분입니다.”손기욱은 여전히 인상을 쓰며 소년을 바라보았다.소년은 재빨리 호칭을 바꾸었다.“다 손 지휘사님 덕분입니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내는 더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잠깐 고민하던 송육진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다… 매형… 덕분입니다?”손기욱은 그제야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앞으로 곤란한 일이 생기거든 언제든 이 매형을 찾아오거라.”서주행은 그 모습을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입을 삐죽였다.어느새 연경의 얼굴도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송육진은 이 기회에 고민하고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경양 백부에서 연회를 열고자 하는데 송씨 일족을 모두 초대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부를 관리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누님의 도움을 좀 받고 싶습니다.”연경은 기대에 찬 눈길로 손기욱을 바라보며 말했다.“나으리, 육진이의 신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제가 가서 도와도 될까요?”서주행이 말했다.“무안 후작부의 집안일은 연경이 낄 수가 없지만, 경양 백부의 일이라 하면 아마 자네의 며느리가 나서는 게 더….”“그 앤 다리가 부러졌어.”서주행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그렇다면 연경이 돌아가서 잠깐 도움을 주는 것도 일리가 있지. 이 오라비는 찬성이야.”손기욱은 기대에 찬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을 보자 불쾌한 듯이 송육진에게 눈을 부릅떴다.“네 누이가 다친 건 안 보이느냐? 몸도 성치 않은 사람한테 네 집안일을 맡기겠다고?”송육진은 어색한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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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어제 사용한 막사라서 안은 여전히 축축한 습기가 남아 있었다.그녀의 착각인지는 모르나, 여정이 이렇게 순탄치 않은 게 그냥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뭘 잘못 생각한 건가?’그녀는 무안 후작부에서 연경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평정심을 잃었다. 자신을 향한 손기욱의 연민을 이용하여 예전처럼 그의 동정심을 움직였어야 했는데 이제 그와는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으니 후회막급이었다. 비록 유왕의 사람이 되겠다는 약조는 받아냈지만 그가 내키지 않은 상황에서 협박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미지수였다.유왕비는 후회의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숙였다. 손기욱에 대한 감정은 진작에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만난 순간부터 가슴 속에 고이 간직했던 애틋한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버리고 말았다.‘다 당신 때문이야. 분명 문무를 겸비한 능력자였으면서… 늘 선비차림으로 내 눈을 속였어.’노부인에 대한 효심도 지극해서 평소 노부인이 아무리 호통치고 훈계해도 그는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만약 과거의 그가 지금처럼 결단력 있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절대 그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그녀는 그가 변방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무안 후작부에 남아 생과부로 살기 싫어서 노부인을 설득하여 후작부의 수양딸이 되었던 것이다. 예법 상으로 손기욱은 양동생과 혼인을 할 수 없었고 그녀는 얼마 안 가, 유왕과 성대한 혼인식을 치렀다.“어멈!”유왕비는 습관처럼 최씨 어멈을 불렀다.한 시녀가 다가와서 고했다.“마마, 최씨 어멈은 며칠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정신을 차린 유왕비는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저녁 시간인데 왜 아직도 음식이 준비되지 않은 거지?”“오늘 밤도 노숙을 할 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해서요. 이 근처에는 마을이나 점포도 없어서 호위들이 멀리 구매하러 갔습니다. 마마, 일단은 과자로 허기부터 달래세요.”시녀들은 불안한 얼굴로 간식을 가져왔다. 출발하기 전에 경성에서 산 것들이었다.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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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부인은 손기욱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보고 있자 괜히 기분이 나빠서 한마디 했다.“이분은 처자의 아버님인가? 아버님은 인상이 좀 험하게 생기셨네.”손기욱은 눈을 부릅뜨고 부인을 노려보았다.싸늘한 기운이 주위에 감돌자 부인은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연경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탁자 밑으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다독여 주었다.“이분은 제 서방님이세요.”손기욱은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렸다.그러나 기분이 아직 덜 풀린 부인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서방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은데… 인상도 안 좋아 보이고 처자가 고생 좀 하겠어.”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손기욱이 입을 열었다.“아주머니, 그만하시죠?”“지금 누구한테 아주머니라는 거예요!”“당신이요.”“저 올해 고작 스물다섯이라고요!”“그런데 노화가 너무 빨리 찾아왔군요. 난 또 한 사십 정도 되는 줄 알았죠.”손기욱은 평소에는 누가 자신에게 나이가 많다고 해도 개의치 않지만 연경이 있는 앞에서 나이를 꼬집으니 참을 수 없었다.두 아이는 인상이 험악한 사내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니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고 손님들의 시선이 모조리 이쪽으로 쏠렸다.연경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어 손기욱의 손을 잡고 흔들고는 여전히 턱을 한껏 치켜들고 있는 그를 보고는 대신 부인에게 사과했다.“저희 서방님이 성격이 좀 까칠하셔서 그래요. 화 푸세요. 너희도 울지 마. 이따가 내가 탕후루 하나씩 사줄게, 응?”그러나 한번 시작된 아이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연경이 일어나서 탕후루를 사러 나가려던 찰나, 손기욱은 그녀를 잡아 자리에 앉히고는 스스로 나가서 탕후루 네 개를 사왔다. 그러고는 그 중 두 개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부인 대신 아이들이 먹은 계화떡을 계산까지 해주었다.그러나 단 하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부인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다가와 사과하려 했지만 손기욱은 오만상을 쓰며 연경을 잡고 밖으로 나가버린 후였다.두 사람은 골목을 지나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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