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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371 - Chapter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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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1화

손기욱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경아, 아이가 갖고 싶으냐?”연경은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갑자기 목덜미에서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그녀는 그가 화제를 돌리려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확 상해서 힘껏 그의 어깨를 밀쳤다.“나으리, 시퍼런 대낮에 마차에서 이게 뭐 하는 겁니까!”“네가 아이를 원한다면 낳아야지. 오늘 밤 바로 만들자꾸나. 넌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손기욱은 치수가 작아 가슴이 꽉 끼는 그녀의 옷을 보고 다음에 저택을 나올 때는 제대로 된 외출복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안 그래도 거리를 지나오면서 지나가는 사내들의 시선이 자꾸 그녀에게 머무르는 것이 거슬렸던 그였다.그러나 연경은 그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낳고 싶지 않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저 따라서 부인에게 괴롭힘 당하면 어쩌려고요.”“후작부에 부인이 어디 있다고?”연경은 입술을 꾹 깨물고 시선을 내렸다. 전에는 안주인 자리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미래의 안주인이 조금만 너그러운 사람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손기욱이 나중에 자신에게 주었던 총애를 다른 여인에게도 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갑갑했다.“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 내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다오. 나중에 네가 만족할만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연경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제가 만족할만한 답이요?”손기욱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내 너를 내 처소로 들이기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해 또 상황이 바뀌었다. 정실의 자리는 내가 좌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좀 더 기다려 주거라.”란향이 후작부로 온 이후로 그는 연경에게 내 몸은 너만을 위한 거라고 말해준 적 있었다.그는 자신의 마음을 명확히 전달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때의 연경은 그저 그가 욕망에 사로잡혀 뻔뻔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기대에 부풀었던 그녀의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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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손기욱은 어색한 표정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잠깐 고민하던 태복이 말했다.“소인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회안당에서 어쩌면… 사내가 쓰는 향고를 팔 수도 있으니까요.”“사오되, 절대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돼. 특히나 연경에게는 더더욱!”손기욱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자신도 이제는 관리할 나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연경을 데리고 살면 나중에 더 세월이 흘러 부녀지간 같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을 것 같았다.태복은 한참이나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돌아갔다.손기욱은 한참 기다려도 연경이 오지 않으니 매향원으로 향했다.연경은 서재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손기욱은 조용히 시종들을 물린 후,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연경은 일부러 책을 치우지 않았기에 손기욱은 서책에 쓰인 문구를 바로 볼 수 있었다.서자가 5품 이상의 관직을 부여받고 집안에 적모가 없을 시, 생모를 적모로 봉한다는 내용이었다.“우리 경이, 나중에 우리 아이의 앞날까지 계획하는 것이냐?”손기욱은 그녀의 손에서 서책을 앗아가며 말을 이었다.“아직 회임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책부터 찾아보는 게야?”손기욱은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은 연경을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고 책상 위에 앉혔다.연경이 뭐라 하기도 전에 그는 재빨리 말했다.“넌 간식으로 배를 불렸을지 몰라도 난 아직 배고프단 말이다.”“지난번에 여기에 뭘 놓고 간 게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 떨궜는지 모르겠구나… 지난번에도 우린…”그는 연경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그대로 거칠게 입술을 부딪쳤다.최근 과거시험 결과가 나오면서 손유민은 손기욱이 예상했던 대로 합격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송학당과 금수원은 최근 들어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특히나 금수원 사람들은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을 확 줄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7일 후, 연경은 간만에 경양백부를 찾아갔다.저택 내부는 난장판이 따로없었다. 그녀가 발을 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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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연경은 꿈쩍도 않고 아민에게 눈짓을 주었다.제 발로 시비를 걸어온 사람이 있으니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었다.짝!아민은 말도 없이 다가가서 어멈의 귀뺨을 쳤다.어멈은 순식간에 얼굴이 부어오르고 귀에서 이명이 들리더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연경을 노려보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사람 죽네! 이러다 나 죽어!”연경은 다가가서 어멈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아민을 말렸다. “그냥 울게 내버려 둬. 마침 구석에서 빈둥거리던 사람들을 모아올 수 있으니.”이들의 게으른 정도를 보면 아마 그녀가 사람을 불러 훈계하려고 해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마침 구경하러 온 사람들 앞에서 본때를 보여주고 경외심을 심어주는 게 나았다.어멈은 자신이 소리를 지르니 연경의 시종들이 겁을 먹은 줄 알고 더 소리를 높여 아우성쳤다.잠시 후,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한 시종들과 어멈들이 주변에서 몰려들었다.그들은 화려한 비단옷에 비싼 장신구를 머리에 단 연경을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선 이제 더 이상 시종으로 일한 티가 나지 않았고 눈빛이며 행동이며 백부의 주인들보다도 더 위엄 있어 보였다.그러나 그들은 잠시 놀랐을 뿐, 연경에 대해 전혀 경외심을 갖지 않았고 대놓고 훑어보고 있었다.서령과 서란은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어멈은 이때다 싶어 통곡하며 하소연했다.“이제 신분상승 좀 했다고 일개 이랑이 돌아오자마자 일하는 사람에게 매부터 들다니! 자네들도 말 조심하게! 언제 매질을 당할지 모르니!”사람들은 불쾌한 시선으로 연경을 노려보더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어미도 없이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받은 것이 그렇지. 경양 백부에서 자기를 키워줬는데 득세하니 돌아와서 위세를 떠눈구나!”“그렇게 잘났으면 나으리나 다른 윗분들에게 찾아가서 위세를 떨 것이지! 자기가 곧 굶어 죽을 것 같았을 때 내가 물도 가져다줬구만!”“백부에 있을 때는 지운 아씨가 키우는 개사료나 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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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사람들은 연경의 시종들이 바짝 긴장한 것을 보고는 감히 입밖으로 수군거리진 못하고 목을 빼들고 구경하기 시작했다.연경이 의자에 앉으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어멈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일어나서 다가왔다.촉금 비단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어멈은 대충 털어내지도 못하고 쭈그려 앉아 하나씩 호박씨 껍질을 집었다. 그런데 갑자기 종아리에서 통증이 전해지더니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어멈이 눈을 부라리자, 연경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또 눈을 부라리면 그 눈알 뽑아버릴 수도 있네.”분명 웃고 있는데 어멈은 어딘가 모르게 오한이 느껴졌다.어멈은 감히 일어나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로 연경의 신발에 묻은 호박씨 껍질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주변 시종들은 이런 연경의 모습이 낯설었다. 한때 모두의 화풀이 대상이던 사람이 갑자기 상전이 되었으니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연경은 곧바로 만 이랑을 찾아가려 했지만 이들의 행태를 보니 딱히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가서 세자와 만 이랑을 불러오거라.”그러나 시종과 어멈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연경은 조금 전에 가장 목청이 높았던 두 사람을 골랐다.그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연경의 신발을 닦고 있는 어멈을 힐끗 보고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만 이랑의 처소로 향했다. 송육진이 전달을 듣고 도착했을 때, 연경의 앞에는 간식과 차가 대령한 후였고 옆에는 얼굴에 손자국이 난 시종들이 몇 명 있었다.송육진을 모시러 간 어멈의 볼에도 선명한 손자국이 있었다.간도 크게 송육진의 앞에서 연경의 흉을 보았다가 분노를 참지 못한 송육진에게 귀뺨을 맞은 거였다.만 이랑은 화려한 색상의 비단옷에 머리에는 비취옥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서 어멈의 부축을 받으며 거만하게 안으로 들어왔다.시종들은 집안의 상전이 도착하자 눈시울을 붉히며 고자질했다.“이랑, 저희는 정말 억울합니다!”만 이랑은 연경을 힐끗 보고는 비꼬듯 말했다.“어느 집 귀부인이 오신 줄 알았더니 무안 후작부의 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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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교은아, 교은….”그는 넋 나간 얼굴로 연경을 빤히 쳐다보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풍 이랑의 이름을 불렀다. 만 이랑이 표정이 급변해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지만,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연경은 그런 경양백의 시선에 역겨움이 치밀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다가오는 그를 보다가 뜨거운 찻잔을 들어 그의 얼굴에 뿌렸다.경양백은 뜨거운 찻물이 얼굴에 닿자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만 이랑이 다급히 다가와 그의 상처를 살피고 앞뜰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연경은 느긋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경양백께서 잠시 망상에 빠지신 것 같은데 나도 무서운 마음에 이런 식으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고얀 것! 어디서 감히!”만 이랑은 뻘겋게 화상을 입은 경양백의 얼굴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에 호통쳤다.송육진은 아직 자신의 힘을 기르지 못한 상황이고 만 이랑은 한번 세자가 바뀌었다면 두 번 바뀔 수도 있고 자신의 아들도 세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백부에서의 자신의 입지가 그리 탄탄하지 못하니 모든 건 경양백에게 의지해야 했다.연경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아현과 아민이 뭘 하기도 전에 경양백은 힘껏 만 이랑을 밀쳤다.미처 대비할 틈도 없었던 만 이랑은 그대로 쓰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왜 그리 시끄러워? 경이… 아니 연 이랑은 무안 후작의 총첩이시다. 대체 아랫것들을 어찌 가르쳤길래 귀한 손님을 이렇게까지 푸대접하는 것이냐!”경양백은 어질러진 마당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는 저택을 관리해 본 적이 없고 예전에는 모두 백부인이 알아서 관리했다.그리하여 백부인이 변을 당한 이후에 만 이랑이 애교를 좀 부리자 집안 살림을 그녀에게 맡기기로 했다.금족에 처해진 후, 그는 풍 이랑의 유물을 안고 추억에 잠겨 술로 시간을 보내느라 집안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만 이랑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머금으며 반박했다.“소첩은 나으리를 모시고 있지 않았습니까?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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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얼굴이 퉁퉁 부은 어멈이 나서서 고했다.“소… 소인이 그랬습니다.”경양백은 홧김에 어멈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호통쳤다.“뻔뻔한 것, 백부에서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더니 일은 안 하고 집안 꼴을 이따위로 만들어? 당장 치우지 못할까!”어멈은 벌벌 떨며 손으로 쓰레기들을 쓸어모았다.경양백은 주변을 둘러보며 욕설을 퍼부었다.“너희는 왜 가만히 있지? 게을러 빠진 것들! 같이들 치워야지!”하인들 훈계를 끝낸 그는 다시 연경을 막아섰다.“연경아….”“제 이름을 나으리가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거였나요?”연경이 냉랭한 말투로 그의 말을 끊었다.경양백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막내와 약속하신 대로 남아서 연회 준비를 좀 도와주십시오. 우리 다 한가족인데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제게 말씀하시고요.”말을 마친 경양백은 또 하염없이 연경의 얼굴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연경은 노골적인 그의 시선이 너무 혐오스럽게 느껴져 재빨리 등을 돌렸다.“송 세자는 제가 잠시 업무를 볼 방을 하나 준비해 주시고 경양백께서는 저택의 모든 부관들을 앞뜰로 불러주십시오. 그들에게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경양백은 평생 백부인의 말을 들으며 살아왔기에 누군가 지시를 내려주니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연경은 앞뜰의 가장 큰 별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부관들에게 할 일을 지시했다.“다들 알아들었으리라 믿겠네. 이의 있는 사람 있는가?”부관들은 이 상황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지만 경양백이 자리에 있으니 아무도 감히 불만을 얘기하지 못했다.연경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다들 이의 없으면 7일 안에 내가 말한대로 준비하게. 만약 차질이 생긴다면 자네들도 같이 벌을 받게 될 거네!”부관들은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저택의 지출은 현재 만 이랑께서 관리하고 계십니다. 구매는 만 이랑의 허락을 받아야 해요!”“시종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이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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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가 이렇게 자신의 편이 되어주니 연경은 가슴이 따뜻해졌다.그녀는 활짝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그런데 나으리께서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원래는 저녁 때가 되어 백부로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이 오후도 안 된 시간에 왔으니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다.손기욱은 경양백과 만 이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누가 너를 괴롭힐까 봐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지.”만 이랑은 부러운 눈길로 연경을 바라보았다.같은 첩실이지만 그녀는 한 번도 경양백에게 이런 편애를 받아본 적 없었다.“사돈,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그러다 애 버릇만 나빠집니다.”경양백은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이 연경의 아버지라고 공표하고 싶었다.“애라니? 자네 대체 무슨 꿍꿍이로 내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경양백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는 그제야 자신의 둘째딸이 경양백의 양자와 혼인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만약 연경을 딸로 공표한다면 그는 손기욱의 사돈이자 장인이 되는 것이니 생각만 해도 어깨가 올라갔다. 이기적인 그는 이게 손기욱의 처지를 얼마나 곤란하게 만들지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할 일은 다 끝냈느냐? 안 끝났으면 내 좀 더 기다려 주지. 이따가 돌아가서 같이 저녁 먹자.”손기욱은 연경의 옆자리로 가서 자연스럽게 앉았다.연경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는 절대 한가한 사람이 아니지만 늘 공무보다 그녀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해 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근엄한 표정으로 부관들에게 말했다.“더 이의가 있다면 빨리 얘기하게.”사람들은 무안 후작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그가 산처럼 연경의 옆자리에 자리를 떡 잡고 있으니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식자재 구매 관련해서 문제가 있는가?”부관은 만 이랑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는 고개를 저었다.“문제없습니다.”“집안 정리와 청소도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되겠지?”청소를 담당한 부관도 만 이랑을 힐끗 보더니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잘할 수 있습니다.”손기욱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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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걱정 마세요, 나으리. 저도 무시나 당하려고 거기 간 건 아니에요. 오전에 말 안 듣는 어멈의 귀뺨도 쳤답니다.”손기욱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고작 그 한명이 다야? 내 보니까 경양백부의 시종들은 하나 같이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이던데. 기를 확 죽여놨어야지.”“바쁘신데 시간 내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나으리.”연경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긴 입맞춤이 끝나자 그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내가 한번 다녀오면 네가 백부에서 일을 좀더 편히 할 수 있을 텐데 왜 마다하겠어? 너와 나 사이에 고맙다는 인사까지야.”연경은 살짝 기분이 상한 듯한 그의 눈빛을 보고 고개를 들어 다시 입을 맞추었다.역시나 단순한 사내는 입맞춤 한번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연경은 그와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경양백부로 갔다. 송육진은 앞뜰에서 책을 읽으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시끄러운 시종들 틈에서도 온 정신을 집중해 책을 읽고 있었다.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소년은 재빨리 서책을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오셨습니까.”사람들은 세자가 된 그를 아직도 어린애로 여겼기에 그가 연경과 가깝게 지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연경을 위해 준비한 방으로 들어간 소년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매형이 저를 너무 무능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분명 연회 준비를 도와달라고 누님을 불렀는데 사전에 시종들 예절 교육도 시키지 못했다고요.”“넌 아직 어리니 천천히 배워도 돼. 나도 이 참에 사람을 다루는 법을 익힐 생각이야. 후작가의 노부인은 내게 이런 기회를 주시지 않을 테니까.”송육진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누님이 일전에 창고로 가서 물건 좀 찾아달라고 하셨는데 기회가 오지 않네요. 옥패와 창고 열쇠는 만 이랑 손에 있고 그 사람은 저를 무척이나 경계하고 있어요.”“이제 세자가 되었으니 위엄을 보여줘야 해. 전에 송선준이 어떻게 했는지 잘 생각해 보고 좋은 건 가져다 배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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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연경은 가는 길에 목공들이 빈 정원을 수리하는 것을 보고 송육진에게 물었다.“저긴 누가 살 처소니?”송육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오준 형님이 옮길 처소라고 하네요. 수리가 끝나면 옮긴대요.”연경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옮기기 전에 네가 옮기면 되겠구나.”만 이랑이 제 아들을 위한 처소를 수리하고 있는 거라면 절대 건성건성 하지 않았을 것이다.송육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만 이랑이 허락할까요?”그는 확신에 찬 누님의 표정을 보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만 이랑은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된 이후 만 이랑 자신은 원래 백부인이 살던 옆으로 거처를 옮겼다.그녀는 원래 안주인의 처소로 옮기고 싶었지만 경양백 부인이 워낙 비참하게 죽기도 했기에 혹시 귀신이라도 들까봐 두려워 옆으로 옮긴 거였다.연경은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싼 꽃과 나무, 그리고 호수와 누각까지, 굉장히 화려했다.백부의 이랑들은 일전에 백부인 밑에서 괴롭힘만 당하며 살아왔다. 풍 이랑이 가장 심했는데 그래도 경양백의 비호가 있어 그나마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어렵게 득세한 만 이랑은 전에 못 누렸던 것들을 모두 노릴 태세였다.만 이랑은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다가 한참 후에야 나와서 연경을 맞았다. 그래도 손기욱이 다녀간 이후라 태도는 전보다 많이 공손했다.“마침 쉬고 있었는데 연 이랑이 여기까진 또 무슨 일입니까?”“만 이랑, 이번 연회가 누굴 위한 연회인지 잊으셨나요?”만 이랑은 송육진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당연히 새로 책봉된 세자를 위한 것이지요.”“밖에서 사람들이 경양백부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는지 모르나요? 경양백께서 이번에는 새 세자를 박대한다는 오명까지 써야 정신을 차리겠어요?”만 이랑의 안색이 급변했다.“그런 식으로 저를 몰아가지 마세요. 저는 분명 세자께 여쭤보았습니다. 세자가 거처를 안 옮긴다고 한 거예요.”“세자가 거절해서 서재도 마련해 주지 않은 건가요? 지금 세자가 입고 있는 행색을 보세요. 이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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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경양백은 놀린 눈으로 만 이랑을 바라보았다.만 이랑은 이 상황에서 거기가 자신의 아들을 위한 처소라는 건 말할 수 없으니 억지 미소를 지었다.“다 준비되고 세자와 나으리를 놀래켜 주려고 했는데 연 이랑이 먼저 말해버렸네요.”경양백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이래야지. 집안의 안주인은 매사에 대국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법이야.”“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늘 옮기면 되겠군요.”만 이랑은 분했지만 차마 거절의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를 악물고 송육진을 위해 이사 준비까지 해줄 수밖에 없었다.침향원은 곧 수리가 마무리되어가고 있고 그녀는 집안 살림에서 적지 않은 귀중품을 안에 들여놓았는데 송육진 좋은 노릇만 하게 된 것이다.연경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저택을 나섰다. 점심에 약속한 것처럼 손기욱이 데리러 왔을 줄 았았는데 대문 앞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마차에 올라 한참을 기다렸다. 뒤늦게 그녀를 찾아온 태복이 말했다.“이랑, 먼저 돌아가세요. 나으리께선 폐하의 부름을 받고 궁으로 가셨습니다.”연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랬군. 난 또 나으리가 날 데리러 오시는데 엇갈릴까 봐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네.”저택으로 돌아온 연경이 저녁 준비를 마쳤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후였다.밤중까지 기다렸지만 손기욱은 돌아오지 않았다.연경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희운각으로 갔다.그 시각, 황제의 서재.손기욱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서책을 읽고 있었다.둥둥! 북소리가 울리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통금을 알리는 북소리였다.그는 아마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기 글렀다고 생각하며 연경이 조바심을 태우고 있진 않을지 걱정했다.그렇게 또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황제가 서재로 들어왔고 손기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행했다.황제는 느긋하게 자리에 앉더니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식은땀을 흘렸겠지만 손기욱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지시를 기다렸다.한참이 지난 후에야 황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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