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백 부인은 기요를 안방으로 데려가서 피임탕약을 먹였다.정신을 차린 기요는 몸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에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어머니, 그 더러운 자식이 감히… 왜 그렇게까지 하셨나요?”용의백 부인은 딸을 안고 통곡을 터뜨렸고 기요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기종이 들어와서 핀잔하듯 그녀에게 물었다.“기요,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한 거지?”기요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처음엔 무안 후작처럼 늙은 사내에겐 시집을 안 간다고 제가 그랬었지요. 그런데 어머니와 오라버니가 제게 그 사람의 뛰어난 점을 거듭 말씀해 주셨지요. 그걸 다 잊으신 건가요?”기종과 용의백은 수치심에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시종들 아무도 감히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한참 후에 기종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 혼사는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좋은 혼처를 찾아주겠다고 내 이미 말했지 않느냐.”“저는 이미 그분에게 마음을 주었습니다! 온 경성이 제가 그분께 시집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는 마당에 이제 와서 혼처를 바꾸면 제 체면은요?”똑똑한 머리와 빼어난 외모로 어릴 때부터 칭찬만 듣고 커온 기요였기에 손기욱에게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가 자신에게 무관심할수록 억울하고 정복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던 것이다.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안후작 부인이라는 신분이고 그의 마음은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처음부터 그녀는 손기욱이 정말 자신에게 관심없는 것이 아니라 괜한 자존심을 부리는 거거나,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저러는 것이니 언젠가는 이렇게 뛰어난 자신에게 눈길을 돌릴 거라고 확신했다.기종은 광기에 찬 여동생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받은 충격이 컸을 테니 이만 쉬거라.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얼른 혼례 준비를 서두르시어, 소문이 퍼지기 전에 혼사를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아니요! 그 역겨운 놈에게는 죽어도 시집 안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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