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극 로맨스 / 시녀의 생존수칙 / Chapter 411 - Chapter 420

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411 - Chapter 420

565 Chapters

제411화

용의백 부인과 기요는 체통 없이 뛰어들어온 시종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곧바로 시끄러운 징소리와 외침소리가 들려왔다.“용의백부의 아가씨 기요 낭자가 무안 후작의 이랑에게 독을 먹였다네!”용의백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딸을 바라보았다.“네가 한 짓이니?”용의백 부인은 방금 전 딸의 확신 어린 태도를 떠올리고 크게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기요가 왜 그렇게 무안 후작부에 방문하라고 재촉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기요는 소리를 듣고는 현기증이 일어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렸다.용의백 부부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저택 밖에는 징소리에 이끌려 온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무리 지어 백부의 대문 앞에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용의백은 수치심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급하게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애원에 찬 눈길로 손기욱을 바라보며 인사를 올렸다.“손 지휘사께서 이리 오실 줄도 모르고 마중이 늦어서 송구합니다.”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연하를 보자 그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그는 여전히 징을 치고 있는 악사들을 힐끔 보며 간청하는 어조로 말했다.“후작 나으리,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손기욱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오해라?”조치풍은 이를 듣고 곧바로 소매에서 연하와 악사들의 진술서를 꺼냈다. 증인과 물증이 모두 갖춰졌으니 관아로 보내겠다는 치풍의 말에 겁에 질린 연하가 결국 진술서에 서명을 하고 만 것이다.조치풍은 큰소리로 말했다.“귀부의 아가씨 기요 낭자가 시녀를 시켜 무안 후작의 첩실에게 독을 투여하게 했다는 진술서입니다!”“우리 나리께서 연 이랑을 얼마나 총애하는지 경성에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듣기로 기요 낭자는 줄곧 저희 나으리와 혼인을 하고 싶어 하셨다는데 어찌 혼사도 정하기 전에 나으리의 첩실부터 제거하려 한다는 말입니까!”“다들 기요 낭자는 빼어난 용모와 재능을 갖추었다 하는데도 아직 혼인을 못한 것을 보면 속이 좁고 질투가 많은 게 이유가 아닐까
Read more

제412화

잠깐의 대화였지만 용의백은 거의 혼비백산한 상태였다.그는 기회를 봐 하인에게 눈짓을 하며 낮은 소리로 분부했다.“당장 가서 세자를 불러오거라!”손기욱과 연경은 공손히 대청으로 모셔졌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연경의 손을 잡고 그녀와 함께 상석에 앉았다.용의백부의 그 누구도 그들의 이런 행동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아무도 연경에게 불경한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모두가 겁에 질려 있는 가운데, 손기욱은 몸을 기울여 연경에게 은밀히 속삭였다.“권력의 위엄을 직접 느껴본 감상이 어떠하냐?”연경은 그처럼 담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기요 낭자는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그녀는 원래 기요가 모든 죄를 연하에게 뒤집어씌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귀족들은 일이 생기면 시녀를 희생하여 일을 무마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일상이었다.그러나 손기욱 덕분에 오늘 기요의 가면은 완전히 벗겨져 사람들 앞에 본모습이 드러났다.연경은 자신이 집을 떠난 시간 동안 변수가 생길 것을 걱정했다. 다만 기요의 명성이 추락한다면 당분간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손기욱은 결코 이 일을 조용히 넘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연경은 그의 이런 행보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첩실인 그녀가 나서서 일을 처리했다면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기요가 용의백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손수건을 꽉 잡고 두려우면서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손기욱은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줘야지.”연경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용의백의 분노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당장 나리께 무릎 꿇고 사죄드리지 못할까! 이 무슨 집안 망신이란 말이냐!”손기욱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기요 낭자는 지휘사인 내 명예를 더럽히려 했던 모양이군?”용의백은 순간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가 몰려왔다.그는 아직도 멀뚱하니 서 있는
Read more

제413화

“혼사를 논할 나이가 된 딸을 어리고 철이 없다고 말하는군. 엄격히 가르치겠다는 말은 우리가 돌아간 후에 문 걸어 잠그고 안에서나 할 소리네. 경성 교외에 풍수가 좋은 곳이 있다고 들었네. 어리고 철없는 용의백의 귀한 따님을 그곳으로 보내는 게 좋겠군.”손기욱은 마치 죽은 자를 보는 눈으로 싸늘하게 기요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기요는 그제야 손기욱이 한 번도 자신에게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줄곧 그녀 혼자 일방적인 착각이었던 것이다!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잔인하게 몰아세울 수는 없었다.이때, 병부에서 금방 귀가한 기종이 급급히 안으로 달려 들어오며 소리쳤다.“나으리,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제 동생이 잘못을 하였다지만 죽을 정도의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나으리께서는 늘 공정하고 청렴한 분이시온데 어찌 사적인 일로 제 동생을 죽음으로 내모십니까! 이는 나으리의 명성에도 좋은 일이 아니니, 삼고초려해 주십시오!”기종은 부마의 신분을 내려놓고 공경하고 간절하게 그에게 간청했다.용의백부 안팎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아찔한 소리와 함께 손기욱은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들었다.음침한 눈길은 곧장 기요를 가리켰고 무정한 칼날은 기요의 코끝 앞에서 멈추었다.기요는 경악하며 초라하게 뒷걸음질 쳤다. 마당 안 아무 위에 내려앉았던 새들마저도 싸늘한 기운에 놀란 듯, 날갯짓하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명성?”손기욱의 냉철한 목소리가 대청 안에 울려퍼졌다.“나는 한때 전장에 나가 왜족 13부락을 토벌하였다. 이것이 나의 명성이고 어사대에 빗발치는 탄핵상소 역시 나의 명성이다!”그가 혼돈이 빗발치는 변방에 나가 있는 사이, 연경은 경양백부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 바빴기에 그가 변방에서 세운 공적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그러나 용의백과 기종은 그가 세운 공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변강에 나간 손기욱은 문신들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적들의 진지에 쳐들어가 부락을 토벌했다. 이유는 간사하고 잔인한 왜놈들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
Read more

제414화

기요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저에게서, 결백을 앗아가려 하시는 겁니까? 어찌!”“기요야!”기종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끊으며 호통쳤다.그는 손기욱의 냉담한 얼굴을 힐끔 보았다. 이것이 기요의 목숨을 구할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은 그는 어쩔 수 없이 용의백에게 고개를 끄덕였다.용의백 부인은 급기야 딸을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었다.기요의 자존심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멍하니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품에 몸을 기댔다.용의백 부자는 즉시 결단을 내려 시종들에게 기요를 편벽한 객방으로 끌고 가도록 했다.기종은 애처롭게 한숨을 내쉬었다.동생이 전에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들은 줄 알았는데 어리석게 이런 짓을 저지를 줄이야!손기욱은 그 광경을 보고 나서야 느긋하게 찻잔을 들었다.“대체 누굴 찾아야 하지….”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용의백이 중얼거렸다. 경성에서 가장 뛰어난 사내에게 딸을 보내고자 정성 들여 가르치고 보살폈는데 이제 와서 자신의 손으로 공들여 키운 딸을 하찮은 자에게 내줘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러나 급박한 상황에서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사내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게다가 어떤 귀한 집안의 사내가 혼인도 전에 상대를 취하려 한단 말인가!손기욱은 치풍에게 손짓하며 말했다.“내 애첩을 욕보이려 했던 그 자식은 지금 어디에 있지?”“안 그래도 도망칠까 봐 제가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기종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지만, 어쩔 수 없이 손기욱에게 예를 행하고는 송지석을 빌려갔다.하지만 이 결정에 순순히 따를 기요가 아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이미 그녀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마당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그녀의 울부짖음을 외면한 채, 억지로 탕약을 그녀의 입에 털어 넣은 후, 송지석과 함께 같은 방에 가두었다.들어가기 전, 송지석은 치풍으로부터 싸늘한 명을 들었다. 살고 싶으면 원래 하려 했던 일을 용의백의 딸에게 똑같이
Read more

제415화

연경은 고개를 들고 그가 바라던 호칭을 불러주었다.“서방님.”손기욱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이제 둘만 있을 때는 이렇게 부르는 거로 하자꾸나.”연경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 서방님.”손기욱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그는 용의백부를 나선 순간부터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겁 많은 그녀가 자신이 두려워 또 마음을 닫아버리진 않을까 더럭 겁이 났다.깊은 입맞춤이 끝난 후, 그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담담히 말했다.“앞으로 정실이 되면 오늘 내가 했던 것처럼 처리하면 된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야.”기요는 오늘 그의 사람을 건드렸다.그는 처음부터 그녀와 혼인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주제 파악을 못하고 다른 사내를 시켜 연경을 더럽히려 했으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그 자신도 아까워서 애지중지하는 사람을 짓밟으려 하다니!오늘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나중에 다른 여인들도 기요를 따라 하진 않을까 두려웠다.얼마나 자신이 만만했으면 아끼는 사람에게까지 그런 더러운 수작을 부렸을까 하고 생각하니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이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그의 연경은 더 이상 아무나 짓밟아도 반항조차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기요는 오늘 그나마 운이 좋았던 편이었다.만약 연경이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보였더라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었다.연경은 고개를 들고 그에게 말했다.“한 번도 저에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없었고 나으리처럼 제게 힘과 용기를 실어주신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금 전에는 혹여 제가 말리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나으리께서 저를 매정한 사람으로 보시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손기욱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는 연경이 통증에 가냘픈 신음을 뱉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아쉬운 듯 뒤로 물러서며 불만스럽게 말했다.“너를 매화당에 들이기 전에 너의 성품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아보았다. 부부는 일심동
Read more

제416화

용의백 부인은 기요를 안방으로 데려가서 피임탕약을 먹였다.정신을 차린 기요는 몸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에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렸다.“어머니, 그 더러운 자식이 감히… 왜 그렇게까지 하셨나요?”용의백 부인은 딸을 안고 통곡을 터뜨렸고 기요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기종이 들어와서 핀잔하듯 그녀에게 물었다.“기요,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한 거지?”기요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처음엔 무안 후작처럼 늙은 사내에겐 시집을 안 간다고 제가 그랬었지요. 그런데 어머니와 오라버니가 제게 그 사람의 뛰어난 점을 거듭 말씀해 주셨지요. 그걸 다 잊으신 건가요?”기종과 용의백은 수치심에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시종들 아무도 감히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한참 후에 기종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 혼사는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좋은 혼처를 찾아주겠다고 내 이미 말했지 않느냐.”“저는 이미 그분에게 마음을 주었습니다! 온 경성이 제가 그분께 시집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는 마당에 이제 와서 혼처를 바꾸면 제 체면은요?”똑똑한 머리와 빼어난 외모로 어릴 때부터 칭찬만 듣고 커온 기요였기에 손기욱에게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가 자신에게 무관심할수록 억울하고 정복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던 것이다.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안후작 부인이라는 신분이고 그의 마음은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처음부터 그녀는 손기욱이 정말 자신에게 관심없는 것이 아니라 괜한 자존심을 부리는 거거나, 사람 보는 눈이 없어 저러는 것이니 언젠가는 이렇게 뛰어난 자신에게 눈길을 돌릴 거라고 확신했다.기종은 광기에 찬 여동생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받은 충격이 컸을 테니 이만 쉬거라.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얼른 혼례 준비를 서두르시어, 소문이 퍼지기 전에 혼사를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아니요! 그 역겨운 놈에게는 죽어도 시집 안 갑
Read more

제417화

기요의 소행을 들은 강씨 어멈은 그날 바로 연상을 용의백부로 보내 자신의 뜻을 전했다. 기요의 재주가 너무 뛰어나 자신은 가르칠 것이 없으니 앞으로는 희운각에 방문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송지석은 손에 들어온 횡재가 날아갈까 조바심이 났는지 다음 날 바로 용의백부에 와서 혼인을 청했다.용의백가는 이 일을 소문내기 싫었기에 조용히 혼사를 승낙했다.송지석의 집안은 고위관료 축에도 끼지 못하는 빈곤한 집안이었다. 비록 용의백부도 몰락하는 중이었지만 송씨 가문과 비교하면 여전히 하늘과 땅 차이였다.그래서 송씨 가문은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다. 용의백부는 조용히 혼사를 치르려 했지만 그들은 동네방네 이 소식을 알렸다.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경성의 모든 사람들은 기요가 관직도 명망도 없는 송지석과 혼약을 정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사람들은 의논이 분분하여 그 까닭을 추측하기 시작했다.경양백가와 용의백가는 사정을 아는 시종들에게 입을 단단히 닫으라고 명했다.무안 후작부에서는 아무도 이 일에 대해 의논하지 않았고 송지석 역시 까닭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뻔뻔스럽게 밖에서 친우들에게 기요가 자신을 한번 보고 반하여 죽어도 자신에게 시집을 오겠다 떼를 썼다고 말하고 다녔다.사람들은 비록 그를 경멸했지만 다른 이유를 생각해내지 못했다.용의백부에서 혼사를 준비하는 동안, 경양백은 간신히 점포 두 집을 골라 직접 연경을 찾아가서 땅문서를 넘겨주었다.다만,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일, 즉 본가로 돌아오라는 얘기는 감히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그 외에 무안 후작가는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다.다만 손기욱의 마음은 결코 평온치 않았다.잠시 이별해야 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그의 마음속 파도는 더욱 거세게 요동쳤다.그에 비해 연경은 겉으로 보기에 여전히 평화로워 보였다.그녀는 매일 배움에 열중하는 것 외에도 틈틈이 그를 위해 옷을 만들었다. 여름이 오기도 전에 여름 옷만 벌써 다섯 벌을 만들었다. 여름을 나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도 거듭 태복에
Read more

제418화

그와 밤새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눌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다리에 힘이 풀렸다.손기욱은 빨갛게 물든 그녀의 볼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곧 이별이 다가올 테니 이 서방을 네 마음대로 쥐여짜도 좋다. 그리하여야 네가 마음 놓고 혼례를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니.”연경은 말주변으로 그를 이길 수 없으니 앞으로 열심히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나중에 그와 다시 만났을 때, 그의 말주변에 밀려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뭐든 잘하고 싶은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곤혹스러움을 그에게도 느끼게 할지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손기욱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연경은 흠칫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나으리는 맨날 이런 것만 생각합니까?”“너는 싫으냐?”“싫습니다!”“그렇다는 건 네가 이 서방에게 매력을 못 느낀다는 뜻일 테니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구나.”연경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나는 연정에 금방 눈을 뜬 어린아이가 아니다. 사랑은 입으로만 말해서 될 것이 아니고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법이지. 그러지 않고서 어찌 네가 이 서방의 마음을 알겠느냐?”연경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조용히 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알싸한 통증이 전해지자 손기욱의 호흡이 거칠어졌다.“그만.”연경은 왜 허벅지 한번 꼬집었다고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이를 갈며 그에게 말했다.“그럼 더 이상 그런 낯부끄러운 말은 하지 마십시오.”“날 기쁘게 하면 네 말을 따라주지.”연경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작은 소리로 그를 불렀다.“서방님.”손기욱은 속으로 흡족하면서도 피식 코웃음을 쳤다.“이 서방이 네게 이런 장난을 안 치면 너는 또 불안해하겠지.”연경은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 역시 그의 총애를 믿고 며칠만 쉬자고 조른 것이지 그가 조금이라도 바람기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입씨름을 하며 어느새
Read more

제419화

연경은 예물이라는 얘기에 눈을 반짝이면서도 애써 침착한 척, 작은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예물은 친정에서 신부에게 주는 선물 아닙니까?”“그건 따로 준비해 두었고 이는 이 서방이 너에게 주는 것이다. 어서 들어가 보지 않겠느냐?”연경은 더 이상 그에게 경박하다고 뭐라 할 수 없었다.손기욱이 부관에게 눈짓하자 시종이 다가와 말을 끌고 갔다. 화려한 경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높이 둘러진 담벼락과 금색 기둥으로 된 웅장한 대문이 완전히 열린 채로 연경을 환영하고 있었다.평소에 집을 나서거나 연회에 참석할 때는 신분에 맞게 측문을 이용했기에 연경에게 있어 정문이 이렇게 열려져 있는 광경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문지방을 넘으니 정교하게 장식된 내부가 보였고 길함과 행복을 뜻하는 도안이 조각된 벽화가 보였다.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해당화입니까?”“비록 면적이 큰 별장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경치가 특색이지. 전에 네게 매화당에 해당화를 심겠다고 했을 때, 네가 계속 대답을 미루길래 모두 여기로 옮겨 심게 하였다.”“나으리도 노후작처럼 정인에게 꽃을 심어 주시는 걸 좋아하시네요.”연경은 그를 살짝 흘기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손기욱은 유왕비가 떠올라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내가 귀찮아서 예전에 그녀에게 해줬던 방식으로 너를 대하는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연경은 요염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손기욱은 성큼 다가가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경아, 이 서방은 단 한 번도 너를 대충 대한 적이 없다. 내가 한 모든 건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야.”그녀 입가에 지어진 희미한 웃음을 보고서야 손기욱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나으리, 왜 그렇게 조급해 하세요?”손기욱은 어이없어 웃음을 터뜨렸다.“지금 날 뭐라고 불렀느냐?”연경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시종들이 따라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말을 바꾸었다.“서방님.”“이틀 동안 내 허락 없이는 모두 멀리서 대기할 것이다. 가까이 다가와 우릴 방해
Read more

제420화

조용히 땅문서를 훑어보던 연경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닙니다. 그저 서방님이 이 정도로 부유할 줄은 몰라서 조금 놀란 것뿐이에요.”자연스럽게 부르는 호칭에 손기욱은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서방 배고프구나. 식사하러 가자.”손기욱은 꽃처럼 어여쁜 연경을 안고 어서 빨리 침상을 뒹굴고 싶었다.전에 겨울 수렵대회 때 그녀가 화살에 맞았던 날 화살촉을 제거하려고 그녀에게 술을 먹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손기욱은 그녀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오늘 저녁에 향이 좋은 과일주를 준비했다. 당연히 취기 오른 그녀가 평소보다 더 과감해지게 하기 위함이었다.적당한 음주는 기분을 좋아지게 하기에 그도 조금 마셨다.두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어제 유왕에게서 서신이 왔는데 보지도 않고 바로 폐하에게 넘겼다. 전에 유왕비의 협박에 못 이겨 밀서를 내어주지 않았더냐. 진작에 폐하께 진실을 말씀드렸다. 앞으로 정실의 신분으로 후작부에 오게 되면 조정의 시국을 상세하게 들려주마.”이미 반쯤 취한 연경은 발가우리한 볼을 하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어찌 그러셨습니까? 폐하의 의심을 살까 봐 두렵지도 않으셨습니까? 폐하께서는 서방님이 겉으로만 충성을 맹세하고 사실상 뒤로는 유왕을 선택한 것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손기욱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다. 폐하께서 내게 굳이 혼처를 정해주시려 하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지. 그분은 믿을만한 가문의 여인을 내 곁으로 보내실 생각이다. 네가 떠나면 난 빠른 시일 안에 위씨 노부인에게 혼담을 청할 것이고 그러면 폐하도 자연히 포기하실 것이다.”연경은 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나으리께서 정실을 들인다고 폐하의 의심이 완전히 사라질까요?”그녀는 지금 와서야 자신의 가장 큰 위협이 기요가 아니라 황제라는 사실을 직감했다.그렇다면 그녀가 떠나 있는 사이, 손기욱이 정실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손기욱은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
Read more
PREV
1
...
4041424344
...
5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