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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431 - Chapter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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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태복도 당황스러웠다. 평소에 철두철미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편이지만 금일 방비원에서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매향원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그는 처음으로 후작의 당황한 표정을 보았다.태복은 하는 수없이 앞으로 나서서 물었다.“아민아, 나으리께서 떠나신 후, 이랑께선 뭘 하고 계셨는지 상세히 말해 보거라.”“이랑께선 충분히 본분을 지키고 계십니다. 대체 뭐가 궁금하신 거죠? 그분은 눈물 한 방울 안 흘리셨어요. 저녁식사가 준비되고 서란 언니가 나으리를 가서 모셔오겠다고 했을 때, 이랑께서는 새 이랑이 저택에 들어오자마자 무례하게 구는 건 안 된다고 오히려 서란 언니를 말리셨지요.”아현과 아민은 진작부터 연경을 친언니처럼 따르고 있었다.해서 둘은 연경을 위해 분노한 나머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손기욱을 흘겼다.“이랑께선 눈이 피로하신 게 아니라 몰래 숨어서 울고 계신 게 분명합니다! 그저 저희에게 보여주기 싫어서요!”“맞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어제 그렇게 거대한 깜짝 선물을 준비하신 게 오늘의 이 가슴 아픈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었군요!”손기욱은 무력하게 해명했다.“아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느냐?”시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만약 어제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늘 갑자기 이런 상황을 맞았더라면 상황은 더 안 좋았을 것이다.연경이 몰래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아, 급급히 안방으로 향했다.아현과 아민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태복이 그들의 앞을 막으며 호통쳤다.“너희 두 사람, 조용히 있거라!”평소에 말수가 적은 아민이 불쾌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저희는 연 이랑의 사람입니다. 앞으로 이랑께서 갈 곳을 잃으면 저희는 그분을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가 언니로 모실 겁니다. 저희 그 정도 능력은 있어요.”아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그 방법도 좋겠네!”태복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거라. 연 이랑이 왜 갈 곳을 잃는단 말이냐.”“자식이 없는 이랑의 삶은 그리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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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그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했다.“내 오늘 큰 잘못을 하였으니 네가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지.”잠시 후, 서란이 조심스레 앞으로 다가왔다.“나으리, 그쪽에서 식사는 하고 오셨습니까? 이랑께서 나으리를 위해 남겨두신 음식은 어떻게 할까요?”손기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연경이 날 위해 저녁상을 준비했었다고?”그는 서러움을 겪고도 자신을 걱정해 음식상까지 차린 그녀의 배려에 더욱 고개가 숙어졌다.서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거기서 식사를 하고 오셨습니까?”“아니다.”서란은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내일 가서 진위를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손기욱은 연경을 힐끗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조금 전 자세 그대로 미동도 않고 있었다.그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아현과 아민이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다가가서 봤더니 전부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연 이랑은 식사를 안 했는냐?”손기욱은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고 그들에게 물었다.평소에 말수가 적던 아민이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입맛이 있어야 식사를 하죠.”두 소녀는 손기욱이 진국 대장군일 시절에 전장터에서 구한 아이들이었다. 당연히 손기욱의 편에 서야 하지만 그들은 연경을 더 믿고 따랐기에 그녀를 상심하게 한 손기욱에게 말투가 곱지 않았다.“나도 입맛이 없으니 철수하거라.”기분이 급격히 안 좋아진 손기욱도 입맛이 싹 사라졌다.아민은 아현을 힐끗 보고는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조금이라도 드세요, 장군.”이는 자신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관심이었다.손기욱은 손사래를 치고는 연경의 방 안을 둘러보았다.방비원은 매화당 안에 있는 작은 처소로, 예전에도 가본 적 있었다. 그가 기억하건대 그곳의 가구와 장식들은 매향원과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오늘 가본 방비원의 방 안 배치는 매향원과 매우 흡사했다.그래서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낯익은 벽난로와 화병을 소연의 물건으로 바꿔놓으니 신기한 느낌이 들어 좀 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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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다음날 아침, 손기욱은 눈밑이 거뭇거뭇해서 매향원을 찾았다.그는 세수를 하고 있는 연경을 문 앞에서 조용히 바라보았다. 평소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어딘가 처량해 보였다.연경이 앉아서 머리를 올리려는데, 손기욱은 조용히 다가와 서령을 물리고 빗을 집어들었다.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 담겼다. 그는 한참을 머뭇거렸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연경은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고 부드럽게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나으리께서 이런 일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서령을 다시 불러들이십시오.”“경아, 어젯밤 나는 그 소이랑과 아무런 일도….”그는 어젯밤 밤새 연습했던 말들을 상세히 들려주기 시작했다.추호의 변명도 없고 단지 무미건조하게 과정만 진술한 후, 마지막에는 자책하듯 사과했다.연경은 멍하니 듣고 있다가 거울에 비친 그의 눈빛에서 기대를 읽었다.그것은 그녀에게 어떤 호응을 바라는 기대감이었다.사실 그녀는 어젯밤 손기욱이 한 말들을 모두 듣고 있었다. 그가 매향원에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 역시 잠들지 못했다.끼니를 거른 것은 정말 입맛이 없어서였고 옷을 지은 것은 그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그가 방비원에서 새로 들인 이랑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오랜 시간 그의 곁을 지킨 사람으로서 그를 위해 옷을 지어주고 있었으니, 약간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분명히 자책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연경이 예상했던 것처럼 손기욱은 몹시 자책하고 있었다.그래서 그의 해명을 듣고 시름 놓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다만 아직은 속에 응어리가 풀리지 않아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쉬이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러나 술기운을 빌려 감정을 내비쳤던 그 용기는 한번이면 충분했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히는 우둔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손기욱은 오랫동안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응시했다.한참이 지나, 그녀는 어여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나으리,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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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경아, 나는 다 알아. 난 네가 강해지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고, 힘 닿는 만큼 지원할 것이다. 단 하나, 내게 실망하지만 말고 한 번만 기회를 주거라.”“그 예물들은 단순히 너를 기쁘게 하려고 준비한 것이 아니다. 강씨 어멈에게 배운 네 재주를 펼치고 싶을 테니, 거기에 적힌 점포와 땅을 마음껏 사용해도 좋아. 밑지거나 팔아도 괜찮다. 내 나중에 다시 벌어올 테니. 너 스스로 자립하길 원하는 그 의지를 나는 굳이 막지 않겠다.”“난 내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너에게 가장 큰 자유를 주고 싶구나.”손기욱은 쉽게 약조를 하는 사람은 아니나, 불안한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모두 털어놓았다.지극히 본분을 지키는 연경의 모습에 다른 사내라면 매우 흡족했을 것이다.그러나 손기욱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함께하는 것이었으니, 그녀가 선을 지킬수록 오히려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뿐이었다.이런 일은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오직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나으리께서 첩실을 들이게 된 것은 본디 제가 나으리의 발목을 잡게 되어 생긴 일이니 나으리를 원망하지 않습니다.”연경은 고개를 들고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그런 말하지 말거라. 너를 지키는 것은 본디 내 책임이거늘. 네가 납치를 당한 건 네 탓이 아니다.”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난 이만 초소로 가봐야겠구나.”연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식사는 하셨습니까? 앞으로 소 이랑 처소에서 드실 거라면 음식은 적게 준비하겠습니다.”연경은 앞으로 세 사람이 어떻게 평화롭게 지낼지 생각하고 건넨 말이지만, 그 말은 손기욱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경아, 내 어제 그 여자에게 이미 알아듣게 얘기 하였어. 앞으로 그 아이는 이 후작부에서 유명무실한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린 앞으로 예전처럼 지내기만 하면 된다.”“예, 나으리.”연경은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흔쾌한 대답이었지만 손기욱은 전혀 만족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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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손기욱은 어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세히 설명했다.“그 고대 병서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던 희귀본이었네. 폐하께 빌려달라 부탁드린 적이 있었는데….”서주행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지금이 언제라고 병서 타령인가? 그게 그렇게 좋았는가?”소연은 그 병서가 가문의 보물이라고만 했는데 손기욱은 펴보자마자 거기에 빠져들고 말았다.서주행의 질문에 손기욱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이미 일찌감치 첩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면 오늘과 같은 결과도 예상했어야지. 어제는 무기와 병서 때문에 오래 머물렀지만, 다음에는 또 무엇 때문에 머물지 누가 알겠는가? 폐하께 그 병서를 부탁드린 적이 있다면 그 첩실이 가지고 있는 희귀본도 아마 폐하께서 그녀에게 준 것이겠지.”손기욱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그렇겠지.”서주행은 계속해서 물었다.“해서 연경이는 어떻게 화를 내였는가? 자네에게 말도 걸어주지 않았는가?”“차라리 그랬다면 이리 불안하지도 않았을 거네. 그 아이는 화를 내지 않았어. 다만 어제 저녁을 먹지 않고 아주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 오늘 아침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씨를 잘 돌보겠다고 하더군. 내가 폐하 안전에서 곤란해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서주행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뭐가 화난 것인가? 아무 일 없는 것 아닌가? 자넨 대체 뭐가 두려운 건가?”손기욱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정말 몰라서 묻는 겐가? 지금 나를 약올리는 게야?”“마음을 편히 가지게.”손기욱의 시뻘겋게 충혈되었던 두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그렇다는 건 경이가 날 용서해 줄 희망이 있다는 얘기인가?”서주행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내라면 본분을 지키고 사려 깊은 여인을 좋아하지. 앞으로 첩을 몇 더 들인다고 해도 아마 그 아이는 허락….”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기욱은 매섭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에게나 관심을 줄만큼 내 애정은 값싼 것이 아니네. 또 그런 소리하면 주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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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다행히 노후작과 노부인께서 그녀를 매우 예쁘게 여겨주셔서 소연은 마음이 놓였다.황제의 깊은 뜻을 모르는 노부인은 그저 흐뭇하게 웃으며 소연이 올린 차를 마시고는 최상급 옥팔찌를 그녀에게 선물했다.“너희들은 모두 기욱이의 사람들이니 앞으로 화목하게 지내며 옆에서 잘 보필해야 할 것이다.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법이니, 서로 시기하고 다투지 말거라. 내게는 매일 문안드리러 올 필요 없으니, 한 달에 한번 정도만 오면 된다.”소연은 비록 무인이지만 귀족 아씨로서의 예절과 기품도 뒤처지지 않았다.노부인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귀한 신분의 처자가 아들의 첩실이 되다니 꽤나 흐뭇하기도 했다.하지만 곁눈질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경을 보니, 노부인은 다시 마음이 불편해졌다.“어제 나으리가 첩실을 들이셨는데 네가 술수를 부려 나으리를 네 방으로 불러들인 것이냐?”연경은 고개를 저었다.“노부인, 누가 그런 험담을 했습니까? 헛소리를 지껄이는 하인은 필히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노부인은 호통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아침 일찍 장씨 어멈을 시켜 알아본 결과, 손기욱은 어젯밤 방비원에 머물지 않았다고 하였고, 그래서 당연히 매향원에 갔다고 생각했다.노부인은 엄한 얼굴로 연경을 노려보았다. 연경의 뒤에 서 있던 서란이 고개를 들었다. 서란과 서령 모두 송학당 출신이니 노부인은 당연히 그들을 믿었다.노부인은 입밖으로 나올 뻔한 꾸지람을 다시 삼키고는 불쾌한 눈빛으로 연경을 흘겨보았다.소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다가와 노부인의 팔을 주물렀다.“노부인, 노여움 푸세요. 웃으면 젊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앞으로 자손들이 더 늘어날 테니 천륜의 낙을 누리셔야지요.”그녀는 일부러 자손 이야기를 꺼내 노부인의 마음을 잡으려 하였다. 그러나 흐뭇하게 웃고 있던 노부인의 얼굴은 그 말을 듣고 차갑게 굳었다.노인은 불쾌한 어투로 소연을 밀치며 말했다.“무슨 손 힘이 이리 센 것이냐? 뼈가 다 부러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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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뭘 그리 당황해? 이만 나가봐.”서란은 평소처럼 전갈을 온 시녀에게 계화떡을 건네주었고 시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돌아갔다.연경은 다른 귀부인들처럼 부유한 것이 아니니 평소에 필요한 포상 외에는 시종들에게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었다.은혜가 지나치면 결국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소연이 오늘 많은 돈을 들여 인심을 샀지만 사람은 본디 탐욕스러운 법. 앞으로 그녀가 오늘처럼 과하게 베풀려 하지 않는다면 결국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그러나 간식은 달랐다. 시종들은 스스로 돈을 주고 간식을 사먹으려 하지 않는다. 포상을 받았으니 앞으로 매향원의 일을 도와줄 때도 흔쾌히 도와줄 것이다.어차피 연경은 매향원 시종들을 위해 자주 간식을 만드니, 조금 더 만들어 인심을 베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소연과 그녀의 시녀들은 황급히 떠나는 시종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보현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씨….”“왜 아직도 호칭을 바꾸지 않는 것이냐?”“이랑께서 이리 방문하셨는데 사전에 사람을 시켜 미리 소식을 전하게 하다니. 뒷방 여인들은 참으로 속이 좁고 괜한 일을 많이 만드네요.”소연이 말했다.“누구나 다 우리처럼 대범하고 너그러운 줄 아니? 그 여인들은 원래 서로 속고 속이는 걸 좋아하지. 다들 하나 같이 속이 좁아터져서는.”“그러네요. 다들 이랑처럼 너그러운 분은 아니죠.”그렇게 소연은 보현과 이야기를 나누며 매향원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이건 차향 같은데? 무슨 차지?”마중을 나온 서령이 말했다.“소 이랑, 오셨습니까? 이랑께서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저희 연 이랑께서 친히 매화차를 준비해 두셨으니 들어가셔서 맛보시지요.”서령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연경이 작은 화로 옆에서 차를 끓이고 있었다.연분홍색 연꽃 무늬가 있는 치마를 입고 하얗고 생기가 도는 뺨과 길게 그림자가 드리운 속눈썹, 오똑한 코와 빨간 입술, 둥근 이마에서 살짝 스며 나온 땀방울마저 맑게 빛나고 있었다.소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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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연경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소연은 계속 그녀의 출신을 들먹이며 자신과 그녀의 신분차이를 강조하고 있었다.명백한 도발이지만 거기에 속아넘어가줄 생각은 없었다. 소연처럼 은근히 비열한 수를 쓰는 사람은 결국 큰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부드럽고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경성은 소 이랑의 고향인 승주보다는 예의범절을 중요시하지. 시종을 딸처럼 여기며 교양을 가르치는 게 차라리 딸을 시종처럼 방임하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보현이 큰소리로 외쳤다.“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서란도 지지 않고 맞섰다.“이랑들께서 말씀하시는데 네가 뭐라고 끼어들어? 무례하구나!”“노부인께서 우리가 화목하게 지내길 바라셔서 제가 먼저 다가와 친목을 도모하려는 것인데, 이랑의 시종은 제 사람에게 예의 타령을 하시는군요.”소연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연 이랑은 사실을 그리도 듣기 싫으신 겁니까?”연경은 온화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받아쳤다.“소 이랑은 어째서 남에게는 사실을 받아들이길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러지 못한 것인가?”소연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지금 연 이랑이 제게 시종 같다고 욕하지 않았습니까!”“소 이랑은 어린 나이에 귀가 어두워졌는가? 내 언제 그런 말을 했는가?”연경은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띠고 순진무구한 큰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소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한발 물러섰다.“아녀자들이란 늘 이렇게 하찮은 일로 따지기만 하니…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이제 되었습니까?”연경은 의미심장하게 소연의 가슴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말은 소 이랑은 여인이 아니란 말인가? 폐하께서 남색을 나으리께 하사하였단 말이오?”소연은 더는 참지 못하고 탁자를 세게 두드리며 소리쳤다.“그게 무슨 뜻입니까?”그녀는 다른 여인들에 비해 강인한 외모를 가졌고 가슴도 그녀의 성격처럼 굴곡이 부족하여 승주에 있을 때부터 많은 귀족 아씨들의 비웃음을 샀다. 연경이 대놓고 자신의 여성성을 지적하고 나서니 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녀가 탁자를 치는 통에 연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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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평범한 집 규수가 밖에서 철야를 보낸다면 정조를 지켜냈든 그렇지 못했든 명성은 바닥에 추락하기 마련이다.사람들은 굳이 진실을 따지려 하지 않고 그 여인을 물어뜯을 것이다.손기욱은 당연히 그런 의심을 하지 않고 외부에는 연경이 납치된 사실을 철저히 봉쇄했고 무안 후작부에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도 엄중히 경고했기에 아무도 이 일에 대해 꺼내지 않았다.보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소연이 분노한 목소리로 호통쳤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느냐!”소연이 이 얘기를 꺼낸 것은 결백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무안 후작도 덮고 넘어간 일을 굳이 꺼낼 이유가 없었다.보현은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소연은 연경을 바라보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제 시종이 무례를 범하였으니 부디 마음 쓰지 말아주십시오.”연경은 냉랭하게 웃으며 받아쳤다.“어찌 마음을 쓰지 말라는 것인가? 매화당은 입을 함부로 놀리는 자를 용납하지 않네. 이랑은 대체 누구에게서 그런 허튼 소문을 들은 것인가? 내 나으리께 아뢰어 그 자의 혀를 베어버리도록 하겠네.”“혀… 혀를 벤다고요?”보현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소 이랑, 자네의 시종이 이리도 예의가 없이 굴면 나중에 큰 화를 부를 것이네. 희운각 강씨 어멈이나 송학당 장씨 어멈은 시녀 교육에 능한 분들이니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 보는 게 어떤가?”연경은 웃음을 거두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결코 얕볼 수 없는 위엄을 풍기며 말했다.소연은 키가 연경보다 훨씬 컸음에도 오히려 자신이 한 수 아래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연 이랑, 일개 시종에게 너무 각박하게 굴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돌아가서 엄히 다스리겠습니다.”보현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을 떨었다.먼 발치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희운각 지영은 조용히 발길을 돌려 자리를 떴다.연경은 뭔가를 눈치챈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곧이어 소연이 분노한 목소리로 호통쳤다.“보현! 멍하니 서서 뭘 하는 게야? 당장 연 이랑께 사죄하지 않고!”날카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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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강씨 어멈은 이 모든 것을 눈에 담고 마음에 새겼다.손기욱이 마음에 둔 사람이라면 어멈도 전력을 다해 지지할 생각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마 손기욱은 이번 생에 혼례를 치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한편, 연경은 편안하게 매향원으로 돌아와 차를 마신 후, 서재로 글씨 연습을 하러 갔다.서란은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이랑, 차라리 눈물이라도 흘리지 그러십니까? 이랑께서 조금만 우셔도 나으리께서 돌아오시면 필히 소 이랑을 엄하게 다스릴 텐데요.”“자꾸 울기만 하면 싫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가 울 이유가 없지 않느냐?”연경의 네 시종 중 둘은 손기욱의 사람이니, 곧 소연 주종의 언행을 그에게 보고할 것이다. 나머지 둘은 송학당 출신이고 서령은 이미 모습을 감췄으니 노부인에게 보고하러 갔을 터.연경으로서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후작부를 떠나기 전, 소연의 성격과 수법을 파악해두는 것이 그녀에게는 유익한 일이었다.서란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인은 원래 소 이랑이 괜찮은 분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무례할 줄 몰랐군요. 제가 바로 가서 알아보고 오늘 매화숲에 있었던 시녀와 어멈들에게 경고하도록 할게요.”“되었다. 일이 커지면 나보다 소 이랑이 더 조급할 테니.”어차피 그녀는 곧 이곳을 떠날 예정이고 연경이라는 신분의 평판이 어떻게 될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아현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소 이랑이 보현을 데리고 송학당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찌 사람이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죠?”연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사죄드리러 간 모양이구나. 책임감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었군.”다도조차 잘 모르는 것을 보아 소연은 가문에서 다른 규수들처럼 가르침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말이 직설적이고 무례하지만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고 하자니, 그녀는 보현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현이 그녀의 지시를 받고 그런 말을 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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