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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녀의 생존수칙: Chapter 421 - Chapter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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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1화

“나으리, 지금 제게 사전 통보라도 하시는 겁니까?”연경의 표정이 살짝 냉담해졌다.그녀가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귀한 정실부인이 되는 것이고 경성 양반가 중에 첩실을 거느리지 않은 관료는 아무도 없었다.그러니 손기욱에게 자신만 바라봐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이치는 다 알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술기운 탓인지 연경은 평소의 냉철함을 잃었다.손기욱은 싸늘해진 그녀의 표정을 보고 당황하여 말했다.“그게 아니다. 난 그저 너와 상의하려는 것이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연경은 매몰차게 그 손길을 쳐내고 그의 품을 빠져나왔다.“술을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혼란스럽군요. 나으리, 내일 다시 상의하죠.”연경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보이려 담담히 말을 하며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러나 방을 나서니 너무 낯설어서 순간 어디로 가서 숨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처마 아래에서 밤바람을 맞았다.바로 뒤따라온 손기욱이 말했다.“네가 원치 않는다면 첩도 거절하겠다.”“폐하께서 마음먹고 나으리께 첩실을 보내신다면 어찌 거절하실 수 있겠나요? 반대하려는 게 아닙니다. 조금만 저 혼자 조용히 있을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안 돼.”손기욱은 단호히 거절했다.“할 말이 있다면 바로 말하거라. 속으로만 삭히지 말고. 이별을 앞두고 네게 숨기고 싶지 않아서 말을 꺼낸 것이다.”비록 그녀가 떠나 있는 사이에 다시 혼처를 제안하지 않으시더라도 혼례식 이후에는 분명 보내실 것이다.조정의 대신들 중에 첩을 하사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황제의 하사는 곧 성은이었다.“왜 다 끝나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연경은 몹시 불쾌했다. 땅문서와 농토를 받은 기쁨이 겨우 반 시진만에 싹 사라져 버렸다.손기욱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네가 기분 나빠하면 네게 해명할 시간이 있다. 만약 네가 떠나기 직전에 말을 한다면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 아니냐.”연경은 그 말을 듣고 불쾌감이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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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다음 날 눈을 뜬 연경은 밤새 잠을 못 잔 듯, 초췌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손기욱과 눈이 마주쳤다.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녀는 다시 가슴이 갑갑해져 시선을 돌렸다.그러다가 뭔가가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놀란 얼굴을 하고 그의 얼굴에 난 이빨자국을 가리켰다.“이거… 제가 그런 겁니까?”손기욱은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그래.”어젯밤 그녀는 유난히도 야단법석을 부렸다. 얼굴을 씻겨주고 침상에 눕히는 과정 동안 몇 번이나 그녀에게 물렸는지 셀 수도 없었다. 간신히 재워 놓고 그제야 잠들려던 찰나, 갑자기 몸을 일으킨 그녀가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그는 그녀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에 입맞춤이라도 해주려는 것인 줄 알았다.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순간 입을 벌리더니 그의 얼굴을 세게 깨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 자국은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연경은 수치심에 눈을 내리깔았다.이제야 정신이 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술 취하면 문제를 일으키니까요. 서방님께서 어젯밤에 말씀하신 것, 저는 괜찮습니다.”마음에 없는 말을 꺼내는 순간, 가슴이 따끔거렸다.그라는 사람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어느새 그를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정실은 그런 마음을 품어서는 아니되는 것이었다. 아직 정식으로 혼례도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실현되지도 않은 첩실을 두고 시샘을 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게다가 이 모든 건 그녀가 고집을 부려 굳이 명월을 구하려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니 사실 그녀에게는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불만이 있으면 말해도 좋다.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불만이 없지는 않아. 폐하께서 꼭 내게 첩실을 하사하실지는 아직 확실치 않고 단지 추측일 뿐이다. 나는 이 일로 인해 우리 사이에 오해가 생기길 원치 않는다.”연경은 가슴이 갑갑했다.오해할 것도 없었다. 손기욱이 함부로 근거 없는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가 진지하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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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무안 후작부.연경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온 손기욱은 분위기가 수상함을 감지했다.대문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태복이 재빨리 다가와 아뢰었다.“폐하께서 포상을 내리셨습니다. 조 내관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말을 마친 태복은 연경의 눈치를 살폈다.연경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담담히 말했다.“궁에서 나으리께 미인을 보내오셨습니까?”태복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이랑, 어찌 아셨습니까?”연경은 가슴이 철렁하여 살며시 손기욱의 눈치를 살폈다.그는 굳은 표정으로 태복에게 물었다.“조 내관은 뭐라 하였느냐?”태복은 여전히 연경의 눈치만 살폈다.손기욱이 말했다.“숨길 필요 없으니 어서 말하거라.” “조 내관께서는 폐하께서 나라를 위해 수많은 공적을 세운 나으리께서 이 나이에 자식 하나 없는 것이 매우 우려된다고 하시며 특별히 나으리를 위해 미인을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연경은 가슴이 꽉 막혀왔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손기욱은 희비를 알 수 없게 담담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는 그녀를 보며 가슴이 갑갑해졌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연경은 담담히 그 손길을 피하고는 웃으며 말했다.“나으리, 어서 가서 성은이 감읍하다고 하셔야지요.”손기욱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먼저 매향원으로 돌아가 있거라.”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매향원의 네 시녀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매화당에 돌아오니 강씨 어멈이 직접 나서서 정원을 가꾸고 나무에 등불과 꽃 장식을 하고 계셨다. 그녀는 돌아온 연경을 의미심장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그녀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니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강씨 어멈은 주변 시종을 물리고 연경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성은은 거역할 수 없는 것이네. 자넨 내게서 오랜 기간 예법을 배웠으니 도량을 키우는 법도 익혔을 테지. 기요 낭자처럼 속 좁은 여인이 되어서는 아니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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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곧바로 연회상이 차려지고 집안 곳곳에 경사를 의미하는 붉은 꽃과 등불이 걸렸다.큰댁과 둘째네 사람들은 손기욱이 첩을 하사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분분히 몰려와 축하 인사를 전했다.혹여 손기욱이 명을 거스를까, 조용히 진행하려던 조 내관은 기뻐하는 집안 사람들을 보고 그제야 안심하고 미소를 지었다.연경은 천천히 걸어 연회청으로 왔다.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궁에서 보내온 붉은 혼례복을 입고 있는 손기욱을 바라보았다.준수한 얼굴에 화려한 혼례복이 눈이 시리도록 어울렸다.같은 색상의 혼례복을 입은 첩실이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가녀린 몸매에 큰 키를 가진 그녀가 키가 큰 손기욱의 옆에 서 있으니 잘 어울린다는 느낌마저 주었다.연경은 시선을 거두고 길게 심호흡했다.“네게도 오늘 같은 날이 결국 오는구나.”비꼬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사륜의자에 앉은 송지운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연경은 싸늘한 눈길로 그녀의 다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제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도 있고 잔칫상을 먹으러 오다니, 많이 나은 모양이구나.”송지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다리는 어찌된 영문인지 분명히 약도 제대로 먹고 있는데 매번 재활을 위해 걸음을 옮기려 할 때마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굳이 고생을 찾아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최근에는 탕약만 먹고 재활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어차피 좋은 날은 다 갔는데 뭘 그렇게 의기양양해하는 거지?”“네가 다 나아서 내게 효도하는 일만 남았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지. 이제 시작이야.”말을 마친 연경은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어갔다.송지운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점점 말재주만 늘어가는구나!”사륜차를 밀고 있던 채련이 조용히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작은 마님, 말을 삼가세요. 오늘은 보는 사람도 많은데 혹여 노부인의 귀에라도 들어가면….”“넌 요새 왜 이렇게 겁만 많아! 됐어! 넌 저리 가고 다른 사람으로 바꿔!”송지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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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손기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이더니 여인이 또다시 팔꿈치를 부딪쳐오기 전에 싸늘한 얼굴로 연경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연 이랑이 너보다 먼저 들어왔으니 이랑에게 차 한잔 올리거라.”상의가 아닌 명령의 어투에 연회청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모두가 새로 온 이랑과 연경, 그리고 조 내관의 눈치를 살폈다.눈치 빠른 조 내관은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폐하께서 보낸 사람을 무안 후작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고 그들 사이가 어떻게 될지는 그의 관심 밖의 일이었다.손기욱은 조 내관이 있는 앞에서까지 새로 온 이랑에게 쌀쌀맞게 대하니, 황제의 위엄마저 무시하는 듯한 오만방자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조 내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허허 웃기만 했다.연경은 거절하지 않고 손기욱의 옆에 서서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붉은 혼례복만 아니었어도 오늘 혼례를 올리는 사람이 그녀와 손기욱인 줄 착각했을 정도였다.“연경 언니, 저는 소씨 가문 소연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무안 후작부와 함께 전장에 나가셨던 분이지요. 저는 섬세하지 못한 사람이라 앞으로 혹시 무심결에 말실수를 한다면 속에 담아두지 말고 부디 제게 일깨워 주시길 바랍니다.”소연은 일단 먼저 자신과 손기욱의 사이를 강조해서 말하고 섬세하지 못하다는 핑계로 앞으로 무심코 무례를 범하더라도 솔직한 성격 때문이지, 나쁜 뜻은 절대 없을 거란 뜻을 명백히 했다.‘만만한 여인이 아니구나.’연경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자약한 미소를 지었다.“그리 예의 차릴 것 없네.”그녀는 조 내관이 있는 앞에서 굳이 새로 들어온 첩실을 냉대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오히려 듣고 있던 손기욱이 짜증스럽게 재촉했다.“그럼 이제 차를 올리거라.”소연은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예.”다만 소연의 측근 시녀는 연경이 정말로 앉아서 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불편한 마음에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나으리,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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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강씨 어멈은 몰래 연경과 소연을 번갈아보았다.오래 가르쳐서 정이 든 탓인지, 그래도 연경이 더 곱게 보였다.조 내관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잔치술 한 잔만 얻어 마시고 궁으로 돌아갔다.소연은 새로 온 첩실임에도 긴장하지 않고 연회가 시작되자 여인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탕한 성격에 말도 예쁘게 해서 그런지, 큰댁과 둘째네 식구들은 빠르게 그녀와 친해졌다.사람들은 새로 들어온 귀첩이 거만함 없이 활발해서 평소 자신들과 거의 교류가 없던 연경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식사가 끝난 후, 평소 오만방자하던 송지운마저도 소연과 여러 해를 알고 지낸 자매처럼 친해졌다.소연의 처소는 노부인이 직접 정한 곳으로 본채의 북동쪽 모퉁이, 매향원의 반대쪽에 있었다.손기욱이 연경과 함께 매화당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소연의 시녀가 찾아왔다.“나으리, 소 이랑께서 혹시 창고에 무기 진열대가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소 이랑께서 가져온 장창과 채찍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급히 준비한 처소였기에 방에 필요한 것이 빠졌을 수밖에 없었다.소연은 비록 첩실이지만 일반 여인들이 혼례를 치를 때 갖출 정도의 혼수품은 가지고 온 상황이었다.손기욱은 태복을 시켜 창고에 가서 하나 가져다주라고 명했다.연경은 불만스럽게 돌아가는 그 시녀를 바라보며 손기욱의 손에서 살며시 손을 뺐다.“가서 소 이랑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세요. 오늘 막 저택에 들어왔으니 너무 소홀히 대할 수는 없지요.”술기운이 사라진 지금, 그녀는 다시 평소의 이성을 되찾았다.그녀는 정실부인의 자리를 원하면서 그의 마음에 오직 자신만을 두기를 바랄 수 없었다. 그건 탐욕이고 집착이었다.손기욱은 전혀 짜증 난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한 그녀를 보고 가슴이 갑갑해졌다.“경아….”“나으리께서는 제게 뭔가를 약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제게 충분히 잘해주고 계시니, 저도 나으리를 도와 집안을 잘 내조하고 불란을 만들지 않겠습니다.”연경은 전혀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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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이랑, 저희도 가서 도울까요?”아현과 아민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연경에게 물었다.연경은 의아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되물었다.“가서 도와주고 싶어?”소연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도 손기욱을 방해하기 싫다고 하였는데 이 상황에 그들이 가서 참견하는 건 오히려 안 좋을 수가 있었다.아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소 이랑이라는 사람, 사람은 괜찮은 것 같아요. 털털하고 대범하죠. 저희도 어릴 때부터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고 여인들이 알아야 할 집안일도 할 줄 몰라서 부모님은 늘 저희가 시집을 못 갈까 걱정하셨거든요. 소 이랑 말이 맞아요. 사내가 하는 일을 여인이라고 못할 건 없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그래? 그 한마디 때문에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니?”연경은 눈살을 찌푸렸다.아현은 잘못을 한 아이처럼 당황한 얼굴로 아민을 보며 말했다.“좋은 사람이 아닌가요? 사람에게 친근하고 남들에게 민폐도 끼치려 하지 않잖아요.”연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순수하고 어린 아현과 아민은 소연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서란에게 물었다.“너희도 그렇게 생각하니?”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여인이 칼과 창을 다루는 걸 그리 단정하다 볼 수는 없지요. 자고로 나라를 지키는 일은 대부분 사내들이 해왔는데 굳이 왜 그런 걸로 비교를 해야 하는 거죠? 그래도 소 이랑은 별다른 속셈을 품은 것 같지는 않네요.”연경은 잠시 멍해졌다. 이 두 사람도 그 속에 숨은 뜻을 알아채지 못했단 말인가?이는 딴 속셈이 없는 게 절대 아니었다. 결과로만 보면 소연은 손기욱을 불러내는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비록 앞서 태복이 그녀가 손기욱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다 했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태복이 여기까지 달려오게 만들었다.어떤 일들은 과정만 보면 안 되고 최종 결과를 봐야 한다. 과정은 현혹될 수 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그녀는 무안 후작부를 떠나기 전에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집을 떠나 있는 사이에 소연에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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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이렇듯 순수한 경외심을 담은 눈빛은 군영을 제외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눈빛이었다.손기욱은 갑자기 감개무량해지며 전장에 나갔던 추억들이 떠올랐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얘기해 주마.”소연은 기대에 찬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소씨 가문의 자식들은 어릴 때부터 무공을 수련했죠. 저는 명문 귀녀들과 어울리는 게 싫었습니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건 제가 모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도 못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제게 여성스럽지 못하고 거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으리는 그 사람들과는 다르네요.”“네 인생은 네가 사는 것이지 굳이 남의 눈치를 보며 살 필요는 없다.”소연은 그가 자신과의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무기에서 기관술, 병법서에서 역사까지 술술 이야기했다. 손기욱은 그녀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듣고는 그녀의 말에서 부족한 점을 꼬집어 가르쳐 주었다.방향원으로 들어선 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여인의 방에 어울리는 온화하고 우아한 느낌은 전혀 없고 사내들 취향처럼 꾸며져 있었다.연경이 도자기를 놓아두었던 곳에 소연은 늠름한 장군상을 놓아두었고 연경이 화로를 놓아두었을 법한 곳에 그녀는 푸른 보탑 모형을 놓아두었다.“진열대의 받침은 현철로 만들었나요? 아주 무겁지만 안정적이네요.”손기욱은 힘겹게 진열대를 받치고 있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앞으로 이런 일은 태복을 부르면 된다. 그가 알아서 방법을 찾아 해결할 것이다.”“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남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태복님이 저보다 힘이 셀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말을 마친 소연은 거침없이 소매를 걷어붙여 하얀 팔뚝을 드러냈다.손기욱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어딘가 모르게 이상했다.“나으리? 저 좀 도와주세요.”소연의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끊었다. 고개를 들어 봤더니 소연은 혼자서 진열대의 한쪽을 힘겹게 잡고 있었다. 도와주지 않으면 진열대가 그대로 무너져 그녀를 다치게 할 것 같았다.손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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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그러지 말거라. 소 이랑은 오늘 금방 저택에 들어왔는데 그분께서 방향원에 묵고 오시는 것이 당연하지. 절대 예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거라.”연경은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소연은 다른 귀족가 여인들과는 사뭇 달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소연과 손기욱은 모두 어릴 때부터 무예를 익힌 사람들이니 서로 대화거리도 많을 것이다.이는 연경이 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최근 그녀는 병법서를 읽으며 그에게 가끔 가르침을 청하기도 하지만 결국 잘하는 영역이 아니니,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소연은 분명 그녀보다 이 방면에 능숙할 것이고 손기욱의 흥미만 끌어낸다면 연경이 후작부를 떠난 후에 그와 사이가 가까워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연경은 손기욱의 진심을 믿지만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한다는 이치도 알았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랑, 또 나으리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식사도 않고 기다리시렵니까? 일단 뭐라도 좀 드시죠?”서란은 차마 연경이 냉대 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괜찮다. 전에 내가 나으리를 위해 만들려던 옷을 가져오거라. 이제 조금만 더하면 완성이야.”“밤에 바느질을 하는 건 눈에 좋지 않습니다. 쉽게 눈이 피로하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서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말리다가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연경을 보고 바로 그녀의 속뜻을 알아차렸다.‘일단 하는 척하다가 이따가 나으리께서 오시면 보여드리려고 하시는 거겠지?’하지만 손기욱이 오늘 밤에 돌아올지 안 올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방향원, 소연의 시녀가 저녁상을 차렸다.소연은 자연스럽게 손기욱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나으리께서 제게 큰 도움을 주셨으니,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 제 고향 음식을 좀 만들었는데 한번 맛이라도 보시지요.”“그럴 필요 없으니 너희는 잠시 물러가 있거라.”손기욱은 날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서둘러 시종을 물렸다.소연은 꽤나 많은 종류의 병기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중에는 그가 보지 못한 신기한 것들도 있었다. 구하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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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손기욱은 싸늘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에는 안 보이던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잠시 후, 소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나으리께서 원하신다면 저를 형제처럼 대해주세요. 나으리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니, 한 집에서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나으리께 무예와 병법을 배우는 일이니, 연 이랑께서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난 바쁜 사람이라 그럴 시간이 없다.”소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나으리는 훌륭한 스승이십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장 큰 소원이 사내들처럼 전장에 나가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으리께서 바쁘시다면 당연히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시간 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손기욱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너는 큰 뜻을 품은 사람이니 내게 신경 쓰지 말고 네가 나를 모실 일도 없다. 쉬는 날일지라도 나는 할 일이 따로 있다.”그의 직설적인 말에 소연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실은….”그러나 그의 매정한 얼굴을 보고 결국 뒷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그는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허락하지만, 앞으로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경고였다.오늘 밤 본 연경의 미모는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연은 미모로는 자신이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다른 길을 찾기로 한 것이다.말을 마친 손기욱은 곧바로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버렸다.안으로 들어온 소연의 시종이 물었다.“아씨, 합방도 하지 않고 이대로 가신 겁니까?”소연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내 무능하여 그분을 머물게 하지 못했구나. 하지만 당황할 필요 없다. 무안 후작이 나를 내치지 않고 받아준 것만으로 잘된 일이니, 나머지는 차차 해결해 갈 것이다.”“내일이면 후작가 사람들이 아씨를 얼마나 비웃겠어요! 나으리도 참, 첩실을 여럿 두지 않는 사내가 어디 있다고! 어찌 폐하의 성의를 이토록 무시한단 말입니까!”소연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분의 마음을 얻는 일이 그리 쉽겠느냐?”“나으리는 오후내내 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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