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윤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조용히 내려놓았다. 찻잔과 받침이 부딪치며 맑은소리가 울렸다.“민성아, 육씨 가문의 인맥을 못 쓰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네 작은아버지들이나 큰아버지들이 줄곧 집안 주도권을 노리고 있잖니.”육진수는 시가의 재를 가볍게 털어 내며 매서운 눈빛으로 육민성을 바라봤다.“육씨 가문의 힘을 쓰게 해 줄 수는 있다.”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되돌릴 수 없는 거래를 못 박는 것처럼 무거웠다.“대신 송미연과 결혼해라. 혼인 신고까지 하고. 그러면 육씨 가문의 실권은 네게 넘기마.”육민성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너무나 갑작스러워서, 그 말이 가진 무게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송미연과의 약혼은 애초에 집안끼리 이해관계가 맞아 이뤄진 정략혼에 가까웠다.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육진수는 혼인 신고 한 장을 대가로, 육씨 가문을 이끌 자격과 최수빈을 구할 기회를 동시에 내걸고 있었다.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가슴 한복판을 누군가가 거칠게 틀어쥔 것처럼 답답했다.한쪽에는 친구의 목숨이, 다른 한쪽에는 아무 온기도 없는 결혼이 놓여 있었다.너무나 잔인한 두 선택지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바로 그때, 거실문이 조용히 열렸다.송미연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와인빛 롱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긴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 올린 채, 얼굴엔 흐트러짐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거실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를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녀는 망설임 없이 육민성의 곁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감쌌다.“아버님, 어머님, 할아버지.”목소리는 맑고 또렷했다. 송미연은 모두를 한 번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육진수를 바라봤다.“저, 오빠랑 결혼할게요. 식은 당장 못 올려도 괜찮아요. 혼인 신고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요.”육민성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송미연을 돌아보았다.하지만 송미연은 그런 시선을 전혀 못 본 척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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