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301 - Chapter 1310

1410 Chapters

제1301화

밤, 육씨 가문 별채 서재 창가.스탠드 조명의 따뜻한 불빛이 넓은 공간을 밝고 어두운 영역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임한 그룹과 플라잉 테크의 재무제표, 계약서, 자금 흐름 내역이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빼곡하게 적힌 숫자와 글씨만 봐도 눈이 아찔할 정도였다.송미연은 뻐근한 눈을 손으로 꾹 누르며 손끝으로 태블릿 화면 위의 빨간 표시를 훑었다. 그건 그녀가 세 시간 넘게 매달린 끝에 겨우 찾아낸 재무상의 허점이었다.임한 그룹이 지난해 해외에 투자한 한 건은 장부상으로는 빈틈 하나 없이 정리돼 있었지만, 자금 흐름을 따라가 보니 그 안에 교묘하게 숨겨진 우회 통로가 있었고 그 끝은 결국 심종연의 개인 계좌로 이어져 있었다.“찾았어요.”밤을 꼬박 새운 탓에 송미연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지만 분명 들뜬 기색이 느껴졌다.그녀는 옆에 있는 육민성을 툭 건드리며 태블릿을 내밀었다.“이것 봐요. 역시 임씨 가문이랑 플라잉 테크 사이에 자금 거래가 있었어요. 규모도 적지 않아서 이 정도면 금융감독원에서도 그냥 넘기지 못할 거예요.”육민성은 플라잉 테크의 특허 사용권 관련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붉은 실핏줄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그는 태블릿을 받아 화면을 넘기며 자료를 빠르게 훑어봤다. 굳어 있던 미간이 점점 풀렸다.“좋은 단서네. 내일 바로 법무팀에 넘겨서 증거 흐름부터 확실하게 엮자.”그는 손목시계를 한번 내려다봤다. 시곗바늘은 이미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창밖은 밤기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 서재 안에는 종이 위를 스치는 펜 소리와 가끔 낮게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목소리만 희미하게 맴돌았다.“먼저 좀 쉬어.”육민성의 시선이 창백해진 송미연의 얼굴에 머물렀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이 자료들은 나 혼자 봐도 돼.”송미연은 손을 내저으며 책상 위에 놓인 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종이 위에 뭔가를 계속 체크해 가며 말했다.“그게 말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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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2화

그 말은 육민성의 약한 부분을 정확히 건드렸다.그는 정말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늘 공부와 집안일에만 마음을 쏟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 송미연이 이렇게 대놓고 꺼내 버리니, 아무리 침착한 육민성이라도 순간은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난 그 말에는 동의 못 해.”육민성은 고개를 돌리더니 한층 진지해진 표정으로 송미연을 바라보았다.“이 결혼은 서로가 원해서 한 거야.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린 선택이고. 그러니까 누가 억울하다거나 손해를 봤다거나, 그런 말은 옳지 않아.”송미연은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다. 더 놀리진 않고 커피를 한 모금 크게 마신 뒤, 건성으로 대답했다.“알았어요, 알았어. 도련님 말씀이 다 맞죠.”서재에는 다시 적막이 내려앉으며 종이 넘어가는 소리와 은은한 커피 향만 조용히 공간을 채웠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날이 밝았다.커튼 틈으로 스며든 첫 아침 햇살이 산처럼 쌓인 자료 위로 길게 내려앉았다.송미연은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밀려드는 졸음을 억지로 버텨 보며 마지막으로 화면 속 숫자를 한번 확인했지만 결국 쏟아지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책상 위에 엎드린 채 깊이 잠들고 말았다.너무 깊이 잠든 나머지, 옆에 있던 육민성이 언제 손을 멈췄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육민성은 잠든 송미연을 가만히 바라봤다. 길게 내려온 속눈썹이 눈가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까지 어려 있었다.그는 발소리조차 죽인 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의자에 걸쳐 두었던 자신의 외투를 들어 송미연의 어깨 위에 살며시 덮어 주기 위해서였다.아직 그의 체온이 남아 있는 외투가 그녀를 포근하게 감쌌다.곧이어 육민성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다만 이번에는 더 조용히 더 가볍게 움직였다.두그렇게 두 시간이 흘러 아침 햇살이 서재 안을 완전히 밝혀 놓고서야 육민성은 비로소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따끈한 아침밥을 사 왔다.은은하게 퍼지는 죽 냄새에 송미연은 잠에서 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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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3화

며칠 동안 몸을 추스른 끝에 주민혁의 가슴에 있던 총상은 어느 정도 아물어 있었다. 아직 욱신거리는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이제는 땅을 딛고 걸을 수는 있었다.그래도 얼굴빛은 여전히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요 며칠 얌전히 치료만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는 틈틈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경비 인력이 언제 교대하는지 하나하나 파악했고 간호사들이 흘리듯 주고받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자잘한 정보들을 모아 맞춰 본 끝에 그는 결국 최수빈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알아냈다.바로 이 건물 3층, 마찬가지로 삼엄한 경비가 붙어 있는 병실이었다.교대 시간의 빈틈을 노린 주민혁은 감시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피해 움직였고 마침내 최수빈의 병실 앞까지 다다랐다.그는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안쪽에서 미세한 인기척이 들리더니 곧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문틈 사이로 최수빈의 얼굴이 보였다.얇은 환자복 차림의 그녀는 무척 수척해 보였고 눈 밑에는 짙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이 주민혁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가까스로 버텨 오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듯했다.최수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그에게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았다.마치 자기 자신을 주민혁의 품 안에 그대로 묻어 버리려는 사람처럼, 두 팔로 그의 허리를 힘껏 감아 안고 얼굴을 가슴팍에 파묻었다. 오래도록 억눌러 온 울음도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목구멍 밖으로 새어 나왔다.주민혁은 순간 몸을 굳혔지만,이내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그녀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곧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조용히 최수빈을 감쌌다.“난 괜찮아, 수빈아. 정말 괜찮아.”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사실이, 주민혁에게는 벅찰 만큼 큰 구원처럼 느껴졌다.자신은 결코 가볍지 않은 죄를 짊어진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용서하려 했고 다시 손을 내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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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4화

“율이는 아직 국내에 있어. 최대한 빨리 옮겨서 안전부터 확보해야 해. 임하은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야. 더는 그 여자한테 빈틈을 주면 안 돼.”그는 이 며칠을 허투루 보낸 게 아니었다.치료를 받는 척 간호사들과 말을 섞는 틈마다 그는 임하은과 심종연이 서로 손잡고 움직인 정황을 하나씩 모아 왔다. 자금 유용과 불법 거래에 얽힌 문서들도 적지 않았고 그 자료들은 모두 가장 들키기 어려운 곳에 숨겨 두었다.무사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그 증거들은 두 사람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칼날이 될 터였다.최수빈은 그의 눈빛을 바라보자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기에 더는 말리지 않았다.대신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쥔 종이를 더 세게 움켜쥘 뿐이었다.“좋아요. 민혁 씨의 말대로 할게요.”...극지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주민혁과 약속한 시간이 어느새 다가오자 최수빈은 손에 쥔 탈출 경로도를 다시 한번 꼭 움켜잡았다.종이 위의 붉은 표시에는 경비원들의 교대 시간과 도주 동선이 촘촘히 그려져 있었다. 그건 두 사람이 그동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수많은 밤을 버텨 낸 결과였다.최수빈은 몸을 돌려 침대 머리맡 수납칸의 숨겨 둔 틈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손바닥만 한 칩 샘플 하나가 들어 있었다.이는 바로 경비의 눈을 피해 실험실 폐기물 더미를 뒤져 겨우 찾아낸 것이었다.그 칩 안에는 심종연이 07 전투기 프로젝트 자료를 빼돌리고 해외 세력과 결탁한 핵심 증거가 들어 있었다. 이것만 밖으로 넘길 수 있다면 심종연과 임하은에게 치명적인 한 방을 먹일 수 있었다.최수빈은 조심스럽게 칩을 방한복 안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혹시라도 도망치는 중에 빠질까 봐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한 뒤에야 손을 거뒀다.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문을 열어 끝없이 펼쳐진 설야 속으로 몸을 숨겼다.약속한 접선 장소는 버려진 창고 뒤편이었다. 그곳은 감시 카메라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였다.벽 모퉁이를 돌아서자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주민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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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5화

최수빈은 주민혁을 붙들고 눈밭을 한 걸음씩 힘겹게 헤쳐나갔다.주민혁이 뭐라고 말하든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이라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엄청난 힘이 들었다. 주민혁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거친 움직임이 이어질수록 가슴의 상처도 찢어질 듯 욱신거렸다.그는 이를 악문 채 최수빈의 손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걱정하지 마요.”최수빈은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끼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이상할 만큼 단호했다.“그렇게 빨리 눈치채진 못할 거예요. 여긴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곳이잖아요. 근처에 스노모빌도 딱 한대뿐이고. 그 말인즉슨, 우리가 사라진 걸 알아도 결국 저쪽도 우리처럼 이 5킬로를 걸어서 따라와야 한다는 거예요.”주민혁이 그녀를 바라봤다.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최수빈의 뺨은 새빨갛게 얼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더 앞으로 나아갔다.잠시 뒤, 최수빈은 뒤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조금 숨을 돌렸다.그녀는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다가 멀지 않은 곳에 움푹 꺼진 눈구덩이 하나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커다란 얼음덩이들이 여러 개 쌓여 있었고 바람만 잘 막으면 몸을 숨기기에 딱 좋은 자리였다.“여기로 해요.”최수빈은 주민혁을 그쪽으로 부축해 데려간 뒤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리고 옆에 쌓인 눈을 끌어다가 얼음 틈새에 막아 넣으며 매서운 바람을 최대한 막아 주었다.“여기 숨어 있어요. 절대 소리 내면 안 돼요. 20분 안에 데리러 올 테니까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 나오지 마요.”주민혁은 그녀를 올려다봤다.“너도 조심해.”“걱정 마요.”최수빈은 짧게 웃으며 말했다.“나 차 문 엄청 빨리 따거든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망설일 틈도 없이 몸을 돌려 보급소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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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6화

“저기다! 빨리 쫓아!”눈보라를 뚫고 날아온 강한 서치라이트가 차 뒤 유리를 정통으로 비췄다. 그와 동시에 몇 발의 총성이 터졌고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뒷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눈가루와 유리 파편이 한꺼번에 차 안으로 들이쳤다.주민혁은 반사적으로 최수빈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낮게 말했다.“꽉 잡아요!”최수빈은 이를 악문 채 핸들을 힘껏 움켜쥐었다.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젖은 눈길은 꽤나 미끄러웠다. 바퀴가 쌓인 눈을 밟을 때마다 계속 헛돌았고 차체는 크게 흔들렸다. 심지어 몇 번이나 길가에 솟아오른 얼음 능선에 부딪힐 뻔했다.그런데도 핸들을 잡은 그녀의 손만큼은 소름 끼칠 정도로 침착했다. 차가 미끄러질 때마다 순식간에 균형을 되찾으며 다시 제자리에 바로잡은 것이다.“손잡이 꽉 잡아요!”최수빈의 목소리가 매서운 바람 소리에 휩쓸려 퍼졌다.뒤쫓아오는 놈들은 조금도 거리를 내주지 않았다.총알이 쉴 새 없이 차체를 때리며 퍽퍽 둔탁한 소리를 냈고 차에는 순식간에 총탄 자국이 수두룩하게 박혔다.“왼쪽으로 꺾어. 삼백 미터 앞에 빙하 틈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면 놈들의 시야를 한동안 끊을 수 있어.”주민혁이 갑자기 입을 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을 응시했다. 거센 눈보라에 시야가 흐릿한데도 방향만큼은 정확히 짚어냈다.겉으로는 병실에 갇혀 있던 것처럼 보어도,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일대 지형을 머릿속에 모조리 그려 넣고 있었다.어디에 빙하 틈이 있는지, 어디에 몸을 숨길만 한 설동이 있는지, 어디에 지형을 이용할 수 있는지 전부 외워 둔 상태였다. 거의 살아 있는 지도나 다름없었다.최수빈은 망설이지 않고 핸들을 세게 꺾었다.빙하 틈 안쪽은 좁고 비좁았다. 양옆으로는 가파른 얼음 벽이 솟아 있었고 추격자들이 비추던 불빛도 그 벽에 가로막혀 잠시 목표를 놓쳤다.“빙하 틈 따라서 쭉 가. 끝까지 가면 갈림길이 나올 거야. 오른쪽 샛길로 들어서면 보급소 뒤편으로 빠질 수 있어.”주민혁의 목소리는 섬뜩할 만큼 차분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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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7화

“심 대표님, 이게 심 대표님이 말한 계획이에요?”임하은은 손을 번쩍 들어 그를 가리키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빈틈 하나 없이 막아 뒀다면서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면서요? 그런데 지금은 뭐예요? 도망쳤잖아요! 증거들까지 챙겨서 달아났다고요!”심종연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임하은을 바라보았다.“지금 무슨 자격으로 날 탓하는 거예요? 주민혁 씨랑 꼭 약혼하겠다고 고집부린 사람이 누구였는데요. 어떻게든 자기 곁에 묶어 두겠다고 버티면서, 그 사람한테 숨 돌릴 틈을 준 것도 임하은 씨잖아요. 안 그랬으면 주민혁 씨가 도망칠 기회를 잡기나 했겠어요?”“내가 고집을 부렸다고요?”임하은은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다 우리 계획 때문이었잖아요. 민혁 씨가 쥐고 있는 기밀은, 그 사람을 내 곁에 붙들어 둬야만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심 대표님이죠. 심 대표님의 계획이 허술했으니까, 경비 교대 시간조차 제대로 계산 못 했으니까 저 둘한테 틈을 내준 거잖아요.”“적당히 해요!”심종연은 정곡을 찔린 듯 얼굴이 확 굳더니 임하은에게 성큼 다가가 그녀를 노려보았다.“임하은 씨, 내가 그쪽 속셈을 모를 줄 알아요? 임하은 씨는 나를 이용하고 심씨 가문의 힘까지 이용해서 임씨 가문이 잃은 걸 되찾으려 했어요. 그러면서 주민혁 씨까지 끝까지 손아귀에 넣으려 했고요. 욕심도 참 대단하네요. 그리고 잊지 마요. 임하은 씨가 그렇게 기를 쓰고 결혼하려는 그 남자, 그 사람의 스승이 그쪽 아버지의 손에 죽었다는 거. 그런데도 주민혁 씨가 정말 임하은 씨를 아내로 맞아들일 거라 생각해요?”임하은의 몸이 크게 떨렸다. 얼굴에서는 순간 핏기가 싹 가셨다. 심종연의 냉기 서린 눈빛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녀는 깨달았다.지난 시간의 공조는 협력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 거래에 불과했던 것이다.심종연은 싸늘하게 말을 이어갔다.“모든 걸 쥐고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죠? 하지만 임하은 씨는 결국 내 손에 들린 체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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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8화

“여보세요.”심종연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애써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전화기 너머에서는 부대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다급하게 쏟아졌다. 너무 당황한 탓에 할 말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였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저희 쪽 물량이 전부 가로채였습니다. 화동 지역 유통망도 육씨 가문 쪽에서 싹 빼앗아 갔어요! 그리고, 그리고 국세청과 국가기밀 관련 부서 사람들까지 갑자기 들이닥쳐서 불법 경영이랑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회사는 이미 봉쇄됐어요!”“뭐라고요?”심종연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손에 쥔 휴대폰이 그대로 떨어질 뻔했다.휴대폰을 더욱 세게 움켜쥐니 손가락 마디가 새하얗게 질렸다.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른 분노가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져 나갔다.“육씨 가문? 육민성 짓이에요?”“네, 맞습니다. 이번에 육민성과 결혼한 송미연이 손을 잡고 움직였습니다. 너무 빠르게 치고 들어와서 저희가 대응할 틈도 없었어요!”부대표는 거의 울먹이다시피 말을 이어갔다.“지금 회사 안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윗선 사람들은 다 빠져나갔고 저희 몇 명만 남아 있어요.”심종연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 갔다.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휴대폰을 벽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휴대폰은 그대로 산산조각 나 바닥에 흩어졌다.옆에 서 있던 임하은의 얼굴도 종잇장처럼 질려 있었다.이 타이밍에 육민성이 이런 식으로 숨통을 끊어 놓을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임한 그룹은 임씨 가문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만약 임한 그룹까지 무너지면 그동안 자신이 쌓아 올린 것들은 전부 허사가 되고 말 것이었다.“이제... 어떻게 하죠?”평소의 독기 어린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임하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회사가 봉쇄되면 남극에 있는 우리는 기반을 잃은 거나 다름없어요. 버틸 힘이 없어진다고요.”억지로라도 진정하기 위해 심종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지금은 화를 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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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9화

한편 그 시각, 장성훈은 주민혁 일행과 합류했다.시선이 주민혁의 가슴 쪽에 닿는 순간, 장성훈은 눈빛이 확 달라졌다.간신히 지혈해 둔 붕대가 이미 새빨간 피로 흠뻑 젖어 있었는데 피는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벌어진 상처 자국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상처가 다시 터졌어요.”장성훈은 곧바로 트렁크를 열어젖혔다. 그 안에는 구급상자와 두꺼운 방탄조끼 두 벌이 가지런히 실려 있었다.“빨리, 사람부터 내려!”최수빈은 주민혁을 거의 끌어안다시피 붙잡고 있었다.고통으로 인해 주민혁은 온몸을 작게 떨고 있었고,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눈 녹은 물과 뒤섞여 뺨을 적셨다.입술은 너무 세게 깨문 탓에 핏기가 사라져 있었지만, 그는 끝내 신음 소리 한 번 제대로 흘리지 않았다.최수빈의 손끝도 심하게 떨렸다. 손에 쥔 거즈에 아직 따뜻한 피가 배어 있었는데 끈적하게 스며드는 그 감촉에 심장이 자꾸만 철렁 내려앉았다.주민혁의 몸은 무겁게 축 늘어져 있었다. 최수빈은 온 힘을 다해 버텼고 급히 달려온 장성훈까지 힘을 보태서야 겨우 주민혁을 눈밭의 비교적 평평한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장성훈은 곧장 쪼그려 앉아 구급상자를 열었다. 소독솜, 지혈겸자, 봉합실이 그의 손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례대로 꺼내졌다.“어깨 잡고 있어요.”장성훈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손에 든 지혈겸자로는 이미 알코올 솜을 집어 벌어진 상처 가장자리를 그대로 누르고 있었다.주민혁의 몸이 순간 크게 떨렸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버티려 했지만 미간은 깊게 찌푸려졌고 얼굴빛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최수빈은 급히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눌렀다.손끝에 닿은 피부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 더욱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장성훈의 손놀림을 바라봤다. 망설임 없는 손길 아래, 벌어진 상처가 소독약에 젖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차올랐지만 최수빈은 이를 악물고 끝까지 참아 냈다.“심종연 쪽에서 근처 빙원 보급소를 전부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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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0화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주민혁을 옆에 세워 둔 개조 설상차 뒷좌석에 태웠다.그 차는 아까 타고 달아났던 차보다 훨씬 눈에 띄지 않았다. 차체 전체가 빙원과 같은 색의 위장 도료로 덮여 있어, 한눈에 봐도 특수 처리가 된 차량이었다.장성훈은 운전석에 올라타자마자 중앙 제어판을 빠르게 두드렸다. 그러자 화면 위로 복잡한 코드가 쉴 새 없이 떠올랐고 붉게 깜빡이던 경고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록불로 바뀌었다.“역추적 차단 시스템을 가동했어요. 당분간은 놈들의 위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그는 고개를 돌려 뒷좌석의 두 사람을 확인했다.“꽉 잡아요. 여기서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 합니다.”차 안에서는 히터 바람이 천천히 퍼져 나와 얼어붙었던 공기가 조금씩 누그러졌다.최수빈은 주민혁의 머리를 제 무릎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주민혁의 의식은 이미 희미해져 있었고 입술 사이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최수빈은 몸을 숙여 그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댔다. 그리고 그제야 주민혁이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칩... 잃어버리면 안 돼...”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허공을 더듬다가 이내 최수빈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힘이었다.최수빈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창백해진 주민혁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알아요. 칩은 나한테 있어요. 절대 안 잃어버려요.”그 칩은 최수빈의 방한복 안쪽 주머니, 심장 바로 위쪽에 숨겨져 있었다. 심종연의 실험실에서 몰래 빼내 온 물건으로 안에는 그가 해외 세력과 결탁한 정황, 국가 프로젝트 자금을 빼돌린 내역이 전부 담겨 있었다.심종연을 무너뜨릴 결정적인 증거였다.백미러로 그 모습을 슬쩍 확인한 장성훈은 핸들을 쥔 손에 조금 힘을 더했다.그러고는 정적이 흐르던 답답한 분위기를 깨며 입을 열었다.“주 대표님은 6년 전부터 심종연의 비리를 캐고 있었어요.”장성훈은 앞만 바라본 채 말을 이어갔다.“그때는 수빈 씨를 안 믿은 게 아니었어요. 수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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