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은의 몸이 휘청거렸다.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눈빛마저 서서히 꺼져 갔다.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자존심과 집착은 그 순간 심종연의 말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심종연은 넋이 빠진 듯 서 있는 그녀를 바라봤지만, 눈빛에 동정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그저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싸늘한 냉기만 서려 있었다.심종연은 그대로 몸을 돌려 복도 끝으로 걸어갔고 임하은만 그 자리에 홀로 남았다.그제야 그녀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건 결국 우스운 착각에 불과했다는 걸.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남자는, 단 한 번도 임하은을 마음에 둔 적이 없었다.감당하기 힘든 상실감과 절망이 밀려와 한순간에 온몸을 집어삼켰다.그녀는 천천히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어깨가 심하게 떨리더니 끝내 참아 왔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동안 임하은은 수도 없이 스스로를 속여 왔었다. 주민혁과의 약혼이 온갖 속셈으로 얼룩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최수빈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뻔히 보면서도, 그래도 그 남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분명 자기 자리가 있을 거라고 고집했다.어쩌면 어느 늦은 밤 건넸던 다정한 말 한마디였을지도 몰랐고, 어쩌면 위험한 순간 내밀어 준 손길 한 번이었을지도 몰랐다. 임하은은 그런 사소한 흔적들 속에서 억지로 애정을 찾아냈고 그 조각들을 끌어모아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환상을 만들어 왔다.하지만 조금 전 병실에서 마주한 주민혁의 냉담한 태도와, 심종연의 가차 없는 말들은 망치처럼 그녀의 오랜 집착을 산산조각냈다.주민혁이 보여 줬던 다정함이라는 건 결국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녀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집안도, 재능도, 주민혁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주민혁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최수빈만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임하은은 그저 주민혁의 인생이라는 체스판 위에 올려진 하나의 말일 뿐이었다. 필요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말이다.스스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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