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Bab 1321 - Bab 1330

1410 Bab

제1321화

최수빈이 나직이 말했다.“말이야 그렇지만, 여사님은 그동안 줄곧 평탄하게 사셨는데... 이런 충격을 어떻게 버틸 수 있으시겠어요.”주민혁은 말이 없었다.그는 붕대로 감긴 제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상처는 아직도 은근한 통증을 보내오고 있었다.“언젠가는 아시게 될 일이었어.”그가 다시 한번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아신 게, 평생 모르고 사시는 것보단 낫지.”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실 문이 또 조심스럽게 열렸다.장성훈이 막 들어온 소식을 손에 쥔 채 안으로 들어선 것이었다.그는 방 안의 두 사람을 한번 훑어본 뒤,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주기훈 선생님이 또 끌려갔습니다. 이번에는 검찰 쪽이 직접 개입해서 쉽게 나오긴 어려울 거예요.”주민혁은 눈썹만 살짝 치켜올렸을 뿐,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주기훈은 그동안 주씨 가문의 힘을 등에 업고 겉으로든 뒤로든 온갖 이득을 챙겨 왔다. 게다가 심종연과도 깊이 얽혀 있었으니 일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였다.“여사님 쪽은요?”최수빈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걱정스레 물었다.“방금 사람 보내서 확인했습니다. 저택 2층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계신다더군요. 아래에는 검찰 차량이 서 있었는데 주기훈 선생님이 압송돼 차에 오를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보이셨습니다.”최수빈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진서령처럼 체면을 중시하던 여자가, 평생 독하게 버텨 왔던 여자가, 마지막에 와서 남편의 몰락이라는 그토록 참담한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니...그 심정이야말로 칼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 아플 터였다.주민혁은 손에 들고 있던 귤껍질을 쓰레기통에 툭 던져 넣었다.눈빛에 복잡한 기색이 스쳤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애초에 그와 주기훈 사이에는 부자다운 정 같은 게 거의 없었다. 남은 건 끝없는 이용과 계산뿐이었다.그래서인지 주기훈이 저런 꼴이 됐는데도 주민혁의 마음에는 조금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장성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심종연이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붙잡혔어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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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2화

“들여보내요.”주민혁이 다시 한번 말했다.“도대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온 건지, 직접 들어보죠.”장성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갔다.잠시 후, 문이 다시 열리며 임하은이 들어왔다.온몸이 비에 젖어 있었고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며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한때는 화려하고 도도하기 그지없던 임씨 가문의 아가씨,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초라하다 못해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임하은의 시선이 병실 안을 훑다가 마침내 주민혁에게 멈췄다.예전에는 음모와 집착으로 가득하던 눈이 지금은 절망과 애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지만 장성훈에게 막혀 더 다가가지 못했다.그러나 억지를 부리지는 않고 대신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주민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민혁 씨...”주민혁은 침대에 기대앉은 채 차갑게 그녀를 내려다봤다.마치 완전히 남을 보는 것처럼, 그 눈빛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나... 내가 잘못했어요. 알아... 다 알아요.”임하은의 눈물이 빗물과 뒤섞여 흘러내렸다. 목이 메인 탓에 말은 자꾸만 끊겼다.“심종연의 편에 서서 민혁 씨를 해치려 한 것도... 남극에 가둔 것도... 그, 그때 했던 일들... 전부 다...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민혁 씨... 제발... 제발 한 번만 봐줘요.”곧 임하은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쿵!무릎이 차가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창밖에서는 빗방울이 세차게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고 그 소리 위로 임하은의 울음소리가 처절하게 번졌다.“아빠는 이미 잡혀갔고 심씨 가문은 끝났어요. 우리 임씨 가문도... 완전히 무너졌다고요...”임하은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내... 내가 죽을죄를 지은 거 알아요. 그래도 제발... 우리의...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살려줘요.”주민혁은 그런 임하은을 내려다봤다. 비굴하게 매달리는 모습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이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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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3화

...취조실 안은 싸늘했다.창백한 조명이 심종연의 얼굴 위로 곧게 떨어졌고 그 덕에 그의 눈 밑에 깔린 음습한 기운은 조금도 숨길 수 없었다.죄수복 차림의 그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 턱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예전처럼 모든 걸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리던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처참할 만큼 초라한 몰골뿐이었다.맞은편 조사관이 두툼한 증거 자료철을 그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심종연 씨, 이 증거들만으로도 당신이 해외 세력과 결탁해 국가 군수 기밀을 빼돌리고 주민혁 씨와 최수빈 씨 등을 고의로 해치려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더 할 말 있나요?”심종연은 눈을 내리깔고 서류들을 훑어봤다.지문 감정 결과, 거래 내역, 통신 기록...하나하나가 전부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그런데도 그는 돌연 낮게 웃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작았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 그 안에는 광기와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증거?”그가 홱 고개를 치켜들고 조사관을 노려봤다.“전부 조작된 거야. 주민혁이 날 함정에 빠뜨린 거라고. 그 자식이 날 질투해서 그래. 자기보다 내가 주씨 가문의 모든 걸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아니까.”조사관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요. 심종연 씨, 그쪽과 주민혁 씨 사이의 출생 문제와 얽힌 사정도 이미 전부 조사 끝났습니다. 심종연 씨가 그토록 집요하게 주민혁 씨는 노린 이유는 결국 하나 아닙니까. 당신의 눈에는 주민혁 씨가 당신 것을 빼앗아 간 사람으로 보였던 거죠.”“빼앗아 가?”심종연은 가장 아픈 곳을 찔린 듯 돌연 책상을 쾅 내리쳤다.“원래 다 내 거였어!”핏발 선 눈으로 그가 악을 쓰듯 내뱉었다.“나도 주씨 가문의 피가 흐르는데, 왜 주민혁만 좋은 옷 입고 좋은 것을 누리며 살아야 하지? 왜 그 자식만 주상 그룹을 쥐고 07전투기 프로젝트 책임자 자리까지 차지해야 하는데? 그럼 나는? 나는 심씨 가문의 성이나 달고 철저히 이방인 취급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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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4화

임명규 역시 자유로운 외출이 금지된 상태였다. 때문에 이제는 이 좁은 집 안에 갇혀 법의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억울해... 난 인정 못 해...”임명규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바닥에 내던지자 곧 둔탁한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그의 눈가는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눈빛에는 들끓는 분노와 절망이 뒤엉켜 있었다.두 손은 어찌나 주먹을 꽉 쥐고 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날 정도였다.성공까지 정말 한 걸음 남짓 남았었는데, 그가 어떻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런데 마지막 문턱에서 임명규는 너무도 처참하게 모든 걸 잃고 말았다....한편, 시내 한복판의 초등학교.막 수업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재잘재잘 지저귀는 작은 새떼처럼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와 운동장으로 달려갔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혼자만 교실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그림자가 있었다.고개를 푹 숙인 채 옷자락 끝만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 바로 주시후였다.심종연이 붙잡혔다는 소식이 퍼진 뒤부터 학교에서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예전에는 함께 어울려 놀던 아이들도 이제는 주시후를 보면 슬금슬금 피했다.등 뒤에서는 소곤소곤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고 그 말들은 바늘처럼 주시후의 가슴에 하나씩 꽂혔다.“쟤 아빠가 범죄자래. 나라 팔아먹은 사람이라던데?”“쟤한테 가까이 가지 마. 쟤도 나쁜 애일지 몰라.”“선생님도 그러셨잖아. 저런 집 애들은 다 비슷하다고.”그 말들을 주시후는 한마디도 빠짐없이 전부 들었다.아이는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울음만큼은 끝까지 참아 보려 이를 악물었다.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크게 소리치며 반박하고 싶었다.‘우리 아빠는 심종연이 아니야.’하지만 입술만 달싹였을 뿐, 끝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왜냐하면 이제 주민혁도 주시후의 아빠는 아니었으니 말이다.결국, 주시후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인 채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그러던 그때, 장난기 가득한 남자아이 몇 명이 주시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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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5화

주시후는 옷자락을 꼭 움켜쥐고는 담임의 책상 앞에 서 있었다.왜소한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고개는 푹 숙인 채 차마 난처함이 가득한 선생님의 얼굴을 올려다보지도 못했다.이곳은 고급사립학교로 심종연이 가장 잘나가던 시절, 주시후를 위해 직접 보내 놓은 곳이었다.학교 구석구석에는 돈으로 쌓아 올린 화려함이 배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소용없었다.심종연은 죄수 신세가 되었고 심씨 가문은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 말이다.그 덕분에 한때 ‘심씨 가문의 도련님’으로 불리던 주시후도 이제는 모두가 꺼리고 피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시후야, 선생님이 모질어서 이러는 건 아니야.”담임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그 말은 무딘 칼처럼 주시후의 가슴을 천천히 도려냈다.“너도 알다시피 우리 학교는 고급사립학교고 학비도 많이 들어. 게다가...”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더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보호자하고도 연락이 닿지 않잖니. 학교에도 학교 규정이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널 계속 둘 수가 없어.”그 말이 떨어지자 주시후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아이는 기어코 눈물을 참아 보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작은 손으로는 주먹을 어찌나 꽉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였다.사실 말하고 싶었다.‘우리 아빠가 와서 학비 낼 거예요.’‘우리 아빠는 나쁜 사람 아니에요.’그런데 막상 입을 열자, 목구멍에서 나온 건 흐느낌 섞인 바람 같은 소리뿐이었다.주시후에게는 아빠가 없었다. 누구도 주시후의 아빠가 아니었다.심종연이 잡혀갔다는 것, 이제 다시는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을 거라는 것, 그 사실만큼은 아이도 알고 있었다.담임은 그런 주시후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서랍을 열어 자그마한 책가방 하나를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네 물건은 다 챙겨 뒀어. 이제 집으로 가렴. 앞으로는... 몸조심하고.”주시후는 책가방을 받아 들었다.하지만 마치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가방은 너무 가벼워 허무할 정도였다.결국,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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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6화

주시후는 입을 몇 번이나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문에 붙은 봉인 딱지와 어지럽게 망가진 마당을 바라보는 순간, 세상이 빙글 도는 듯 어지러웠다.거대한 무력감이 한꺼번에 덮쳐왔다.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를 찾아야 할지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문득 뭔가가 생각이 난 듯 주시후는 장순옥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그러고는 모기 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아주머니... 저, 저... 2만 원만 빌려줄 수 있어요? 택시 타고 싶어서요...”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그저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마음까지 쑤셔왔으니 말이다.그 애처로운 얼굴에 장순옥은 가슴이 미어졌다.결국 한숨을 내쉰 그녀는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내 주시후의 손에 쥐여주었다.“이거 받아라, 얘야. 뭐라도 좀 사 먹고... 몸 잘 챙겨.”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버렸다.주시후는 손에 있는 10만 원을 꽉 움켜쥐었다. 지폐에는 아직도 장순옥 손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텅 빈 집 앞에 홀로 서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참았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얼마 후, 주시후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아 세우더니 한 주소를 말했다.바로 주씨 가문 저택이 있는 곳이었다.심종연은 주시후에게 주민혁은 아이의 삼촌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그가 아빠인 심종연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주시후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기댈 수 있는 건 주민혁뿐이었다.택시는 빠르게 달려 곧 주씨 가문 저택 앞에 도착했다.심씨 가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이곳은 여전히 위엄 있고 화려했으며 정문에는 단정한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빈틈없이 서 있었다.주시후는 차에서 내려 손에 남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꼭 쥔 채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갔다.“주민혁 삼촌을... 찾으러 왔어요.”문 앞의 하인은 주시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곧 심씨 가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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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7화

거실로 들어서자 화려하게 조각된 대들보와 기둥, 반들반들 윤이 나는 홍목 가구들이 여전한 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주시후는 어딘가 온몸이 불편했다. 예전에는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는데도 말이다.율이와 함께 마당에서 나비를 쫓고 거실에서 블록을 쌓으며 놀던 시절, 그때의 주시후는 누구보다 귀하게 자란 심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와 달리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 된 기분이었다.손과 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조차 몰라 몸이 굳어버린 듯했다.그래서 주시후는 거실 한가운데 어정쩡하게 서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익숙한 풍경을 감히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주시후가 이토록 긴장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율이는 아이의 손을 잡아 소파에 앉히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주었다.“시후야, 겁먹지 마. 아빠랑 엄마는 회사에 가셨는데, 돌아오시면 분명 잘 해결해 주실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율이는 쿵쿵 소리를 내며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그런 다음 서재로 들어가 책상 위 전화기를 집어 들더니 재빨리 최수빈의 번호를 눌렀다.수화기 너머로 최수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율이는 급하게 외쳤다.“엄마! 시후가 우리 집에 왔는데 지금 너무 불쌍해요... 학교에서도 쫓겨났고 심씨 가문 저택에도 봉인 딱지가 붙어서 못 들어간대요...”이야기를 들은 최수빈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알겠어. 엄마랑 아빠,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율이는 한숨 돌리듯 숨을 내쉬고 다시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왔다.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빠랑 엄마 곧 오신대!”그 밝은 얼굴을 바라보자 주시후는 가슴 깊은 곳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그러나 동시에 눈시울은 점점 붉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문이 열리고 주민혁과 최수빈이 들어왔다.두 사람은 소파 위의 주시후에게 시선이 닿는 순간,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최수빈은 서둘러 다가와 주시후의 앞에 쪼그려 앉더니 조심스럽게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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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8화

방에 앉아있던 진서령은 주기훈과 심종연의 일이 떠오르자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 짜증이 가라앉질 않았다.그때, 아래층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탓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린 채 내려갔고 거실에 있는 주시후를 보자마자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쟤가 왜 여기 있어?”목소리에서는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나타내고 있엇다.최수빈이 일어나 설명하려 했지만 진서령은 이미 성큼성큼 다가와 주시후를 내려보는 중이었다.“여긴 네가 올 데 아니야. 넌 우리 주씨 가문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애잖아.”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주민혁을 향해 말했다.“민혁아, 당장 쟤 다시 보육원에 보내. 거기에 안 있어 본 것도 아니잖아.”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시후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겁에 질린 눈으로 진서령을 바라봤다. 작은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한때는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주던 할머니가, 지금은 자신을 가장 밀어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최수빈이 급히 아이를 감싸며 부드럽게 말했다.“어머님, 시후 아직 어려요. 애는 잘못 없잖아요...”“잘못이 없어?”진서령이 피식 비웃었다.“아빠는 매국노고 엄마는...”말을 끝내기도 전에 현관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주나연이 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거실 상황을 훑어보던 그녀의 시선은 곧 최수빈의 뒤에 숨은 주시후에게 꽂혔고 순간, 표정이 확 굳었다.“쟤가 왜 다시 온 거야?”‘심씨 가문이 무너졌는데도 감히 주씨 가문의 문턱을 넘어와?”거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주시후는 공포와 혼란이 가득 찬 눈빛을 한 채 최수빈의 뒤에 바짝 붙어 그녀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팽팽하게 당겨진 공기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최수빈은 주시후를 감싸듯 뒤로 세웠다. 주시후 역시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옷자락을 꽉 움켜쥔 채 울음도 삼키고 어깨만 작게 떨고 있었다.하지만 주나연은 맞은편에서 대놓고 비웃었다.“넌 또 뭐야? 성도 다른 주제에, 감히 심씨 가문의 애를 감싸? 주씨 가문에 들여놓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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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9화

주나연은 그 자리에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얼굴은 잿빛으로 굳어 있었고 최수빈 뒤에 숨은 주시후를 노려보는 눈에는 노골적인 증오가 번들거렸다.그런데 그때, 최수빈의 뒤에 웅크리고 있던 주시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하얗게 질린 입술을 꽉 물고 눈가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두려움과 애원하는 기색이 가득 담긴 얼굴로 진서령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저... 정말 잘못했어요...”콧소리가 잔뜩 섞인, 작지만 또렷한 한마디였다.그 ‘할머니’라는 부름이, 마치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진서령의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아이를 바라봤다.앙상하게 말라버린 몸, 눈물로 가득 찬 커다란 눈,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표정...어릴 적, 그녀의 품에 파고들어 투정을 부리던 모습과 서서히 겹쳐졌다.그동안 입 밖으로는 한 번도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분명 아껴왔던 아이였다.최수빈이 손수 키운 아이인데 어떻게 완전히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끝내 진서령은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며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살짝 풀었다.그러고는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잘못한 줄 알았으면 됐어.”여전히 건조한 말투였지만 아까와는 분명 다른 온도가 섞여 있었다.최수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조용히 주시후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옆에서는 주민혁이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그런데 그 와중에도 주나연만은 이 광경을 보며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최수빈과 주시후를 번갈아 훑어보더니 진서령을 향해 비아냥거렸다.“그렇게 감싸고 돌면 애 망치는 거 몰라요? 두고 보세요. 키워봤자 결국 배은망덕한 놈 될 거니까. 사람은 안 바뀌어요. 저 애 피에 뭐가 흐르는지 잊었어요? 바로 박하린의 피라고요.”그 말은 칼처럼 날카롭게 주시후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아이의 몸이 움찔 크게 떨렸다. 고개는 더 깊이 숙여졌고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최수빈의 표정도 단숨에 굳어졌다.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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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0화

“주씨 가문의 재산이랑 자리가 왜 전부 주민혁 거여야 하는데?”주나연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깨달은 듯 눈빛이 순식간에 번뜩였다.‘그래. 왜 그걸 이제야 생각했지?’주씨 가문의 거대한 기반은 대대로 피땀을 흘려 쌓아온 것이었다. 그 안에는 분명, 자신의 몫도 있었다.‘왜 지금까지 모든 이득은 민혁이 혼자 차지하고 있었던 거지?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 사람 다루는 데 능한 최수빈을 아내로 맞았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걸 쥐고 흔드는 게 말이 되나?’주나연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어 천천히 주먹을 말아쥐었다.눈빛에는 노골적인 욕망이 번뜩였다.“맞아... 당신 말이 맞아.”그녀가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주씨 가문 재산에는 애초에 내 몫도 있어. 핏줄도 아닌 여자에, 심씨 가문 그 애까지... 다들 한몫 챙기는데, 왜 나만 빠져야 해?”그녀는 오랫동안 참고 살았다.시댁에서는 눈치를 보며 버텼고 친정에서는 무시당하면서도 꾹 참고 있었다.언젠가 주씨 가문에서 자신의 몫을 챙기겠다는 생각 하나로 말이다.그리고 지금 그 기회가 눈앞에 와 있는데 놓칠 이유가 없었다.도지석은 그런 주나연을 바라보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더니 목소리를 낮춰 천천히 말했다.“주씨 가문이, 주민혁 혼자 거일 필요는 없지.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차근차근 준비하면...”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당신 몫, 충분히 되찾을 수 있어.”주나연은 남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리고 그 안에서 번뜩이는 음모를 읽어낸 순간,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속의 불길은 점점 더 커졌다.“그래. 제대로 한번 해보자.”그녀는 이를 악물며 또박또박 말했다.“내 거... 전부 다 되찾을 거야.”...주씨 가문 저택, 욕실.최수빈은 욕조 옆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물 온도를 확인했다.적당히 따뜻해지자 진정 효과가 있는 입욕제를 조금 더 풀어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는 주시후를 바라봤다.아이의 모습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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