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최수빈은 늘 말없이 주민혁의 곁을 지키고, 돌보고, 받아 주었다.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고,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그래서 그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더는 최수빈을 실망시킬 수도, 계속 이렇게 긴장한 채 억누르며 버틸 수도 없었다.어쩌면 강지안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는 정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대로 쉬어야 했다. 아무 걱정 없이, 오직 함께하는 시간만으로 채워지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한참 뒤, 주민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아주 희미하게 부드러워져 있었다.“좋아.”그렇게 두 사람이 소풍 계획을 정하고 분위기가 조금씩 따뜻해지려던 그때, 진료소 문이 다시 열렸다.문가에서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는 옅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지안아, 나 시후 데리고 왔는데, 볼 일 다 끝냈니?”최수빈과 주민혁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문 앞에는 진서령이 서 있었다. 수수한 캐주얼 차림에 온화한 분위기를 지닌 그녀는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작은 아이가 손을 잡고 서 있었다.다름 아닌 시후였다.오랜만에 본 시후는 그사이 키가 제법 자라 있었고 조금 야위어 있었다.깨끗한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 머리도 단정하게 빗겨져 있었고 맑고 깨끗한 얼굴에 투명한 눈빛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차분하고 훨씬 의젓해져 어린아이답지 않게 얌전하고 속 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집안에 계속해서 풍파가 이어진 뒤로, 시후는 줄곧 할머니인 진서령과 지냈다. 아빠와 엄마를 볼 기회도 많지 않았다.그동안 시후는 할머니 곁에서 조용히 지내며 울지도, 떼를 쓰지도,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모든 서운함과 그리움, 불안을 전부 마음속에 꼭꼭 숨긴 채 조금씩 더 의젓해졌다. 그래서 더욱 안쓰러웠다.“엄마.”주민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어쩐 일이세요?”진서령은 시후의 손을 잡고 진료소 안으로 들어왔다.“너희도 있다길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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