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의 모든 챕터: 챕터 1511 - 챕터 1520

1586 챕터

제1511화

최수빈은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온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이혼 이야기를 꺼낸 뒤로, 예기치 못한 일들을 제외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어떤 스킨쉽도 없었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우습게도 묘한 긴장감이 밀려왔다.“아니에요.”최수빈이 겨우 입을 열었다.주민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시큰하게 저려 왔다.그는 차가운 벽에 기대어 서서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침실의 엉망이 된 풍경도, 몸 여기저기에 남은 통증도 잠시 눌러 묻은 채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막 씻고 나왔어. 아직 머리도 안 말랐고.”“네.”최수빈의 손끝이 휴대폰 화면 위를 천천히 스쳤다. 화면에는 두 사람에게 몇 장 없는 함께 찍은 사진이 떠 있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고 주민혁은 여전히 서늘한 눈매를 하고 있었다. 마치 한 번도 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그건 오래전, 아직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의 모습이었다.최수빈은 화면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조용히 물었다.“그쪽 상황은 어때요? 심종연의 행방은 좀 알아냈어요?”화제가 일 이야기로 넘어갔다.주민혁은 벽에 기댄 채,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확인했어. 루안타 외곽 구항구에 숨어 있더라고. 예전에 놈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야. 지형도 복잡하고 경비도 삼엄해. 안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심종연 편이라 쉽게 접근하긴 힘들어. 오늘 밤에 내가 직접 들어가 봤는데 하마터면 놈들한테 들킬 뻔했어.”그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구항구에 잠입했을 때의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조금 전 심종연과 목숨을 걸고 맞붙었던 일도 모두 빼고 별일 아닌 세부 사항만 골라 최수빈에게 들려준 것이다.그녀가 걱정할까 봐서였다.하지만 최수빈은 그리 둔한 사람이 아니었는지라 살짝 피곤한 기색이 엿보이는 목소리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휴대폰을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가더니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직접 위험한 데 들어간 거예요? 민혁 씨,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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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2화

주민혁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최수빈에게 제대로 된 명분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또 평온한 가정 하나조차 제대로 안겨 주지 못했다는 것을...수화기 너머의 최수빈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휴대폰을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가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마음속에 조약돌 하나가 떨어진 것처럼 잔잔한 파문이 번졌다. 먹먹함, 감동, 기쁨이 한꺼번에 뒤섞여 그녀의 눈시울을 붉혔다.그동안 최수빈이라고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바라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다만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일들 때문에, 풀지 못한 오해들 때문에, 선뜻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이제 주민혁이 직접 그 말을 해 주자,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과 망설임이 한순간에 흩어지는 것 같았다.최수빈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자신이 거절당하는 건 아닐까하는 긴장감에 주민혁의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창밖의 바닷바람마저 멈춘 것처럼 느껴질 만큼, 긴 침묵이었다.그리고 마침내 최수빈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네.”단 한 글자, 하지만 그 한마디는 주민혁의 마음에 내려앉은 진정제 같았다.오랫동안 허공에 떠 있던 그의 마음이 그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주민혁의 입가에 안도한 웃음이 번지더니 눈가에도 눈물이 조금 고였다.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부드러웠다.“그래. 돌아가면 우리 다시 혼인신고 하자.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네. 다시는 헤어지지 마요.”최수빈은 그렇게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자 끝내 참아 왔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러나 입가에는 더없이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루안타의 아파트 안.전화를 끊은 뒤에도 주민혁은 벽에 기대 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손을 들어 가슴께의 부적을 가만히 어루만졌다.최수빈이 그를 위해 받아 온 평안 부적이였다.그 작은 부적은 지금도 그녀의 온기를 품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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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3화

상처를 간단히 처치한 뒤, 두 사람은 밖으로 물러났다. 아파트 안에는 다시 주민혁 혼자만 남았다.소파에 기대 눈을 감고 쉬려 했지만 온몸의 통증 때문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삔 손목은 욱신거렸고 등 쪽의 멍은 간헐적으로 쑤셔 왔다. 입가에 든 멍도 조금만 움직이면 통증이 올라왔다.소독약과 거즈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상처는 제대로 관리해야 했고 붓기와 통증을 가라앉힐 약도 필요했다.하지만 이곳은 루안타이지 않은가.낯선 땅에서 믿을 만한 의사를 찾기도 어려웠고 함부로 약을 살 수도 없었다. 심종연 쪽 사람이 손을 써 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한참을 생각하던 주민혁은 휴대폰을 꺼내 번호 하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곧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주 대표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지안이었다.“강지안, 나 지금 루안타야. 조금 다쳤는데 약 좀 처방해서 보내 줘야 할 것 같아.”주민혁의 목소리에서 희미하게 피곤한 기색이 느껴졌다.그는 자신의 상태를 간단히 설명했다.“손목을 삐었고 몸에 멍이 몇 군데 있어. 연부 조직 타박상도 좀 있고. 붓기랑 통증 가라앉히는 약, 어혈 풀어 주는 연고가 필요해.”강지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짝 긴장했다.“어쩌다가 다친 거야? 심종연이랑 관련된 일이야? 주민혁,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루안타는 낯선 곳이잖아. 그런 데서 어떻게 혼자 움직이실 수가 있냐고.”주민혁은 난감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작은 사고였어. 별일 아니야. 약만 좀 처방해 줘. 최대한 빨리 보내 줬으면 해. 그리고 항우울제도 같이. 주소는 이따가 보내 줄게. 보안에 신경 써 줘. 일반 택배 말고 믿을 만한 국제 배송 업체로 보내. 안전하게 도착하는 게 중요하니까.”“알겠어. 걱정하지 마. 내일 아침 일찍 바로 약 준비해서 보내줄게.”강지안은 대답한 뒤에도 잊지 않고 당부했다.“너도 꼭 조심해. 거긴 의사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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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4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쥔 것처럼 숨을 쉬기 힘들 만큼 아팠다.주민혁이 다쳤다.그가 정말 다쳤던 것이다.‘어쩐지 영상 통화를 받으려 하지 않더라니, 어쩐지 씻고 있다고 말하더라니.’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그녀는 급히 휴대폰을 들고 주민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다쳤어요? 많이 다친 거예요?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 최수빈은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루안타의 아파트.주민혁은 막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던 참에 최수빈의 메시지를 받았다.내용을 본 순간, 그는 강지안이 자신이 다친 일을 최수빈에게 말했음을 알아차렸다.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웃고는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더 이상 숨길 수 없었기에 결국 그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괜찮아. 가벼운 상처라 별거 아니야. 지안이가 괜히 호들갑 떠는 거야.]그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었다.그녀를 안심시키고 싶었다.하지만 최수빈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강지안이 일부러 메시지를 보내 알려 줄 정도라면, 결코 가벼운 상처일 리 없었다.최수빈은 화면에 뜬 ‘괜찮아’라는 말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져서 곧바로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뭐가 괜찮아요? 손목 삐고 멍도 들고 연부 조직까지 다쳤다면서요. 그게 어떻게 괜찮은 거예요? 민혁 씨, 민혁 씨는 왜 늘 그렇게 혼자 버티려고 해요?][다쳤으면 다쳤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내가 탓할 것도 아닌데. 그렇게 숨기면 내가 더 걱정한다는 거 몰라요?]주민혁은 소파에 기대앉아 손끝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며 답장을 보냈다.[정말 별일 아니야. 그냥 가벼운 상처야. 며칠 쉬면 나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최수빈의 답장은 금세 도착했다.[루안타는 민혁 씨한테 낯선 곳이잖아요. 곁에 의사도 없고 다쳐도 제대로 돌봐 줄 사람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을 놓아요?][민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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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5화

루안타.갑작스러운 비가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눅눅하고 뜨거운 바닷바람이 가느다란 빗줄기를 몰고 와 아파트의 통유리를 두드렸다. 유리창 위로 뿌연 물안개가 번져 나갔다.주민혁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손끝으로 손목에 붙인 파스를 가볍게 눌렀다.어젯밤 강지안이 보낸 약은 전담 인력을 통해 무사히 도착했다. 연고를 바르고 나니 욱신거리던 통증은 조금 가라앉았다.하지만 몸 곳곳에 든 멍은 보기에 여전히 심각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신경이 당겨 둔한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었다.그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머릿속에서 심종연과 뒤엉켜 싸우던 장면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기 때문이었다.진하민과 임기택은 이미 바깥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평소 같았으면 지금쯤 구항구 쪽에서 새로 확인한 정보를 가져왔을 시간이었으나 오늘의 거실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두 사람의 숨소리마저 조심스럽고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주민혁은 이불을 걷어낸 뒤, 온몸의 통증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느슨하게 묶인 가운 사이로 아직 가라앉지 않은 목덜미의 긁힌 자국이 드러났다.그렇게 그가 침실 문 앞까지 걸어가 문을 밀어 연 순간, 거실 한가운데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임기택과 진하민이 보였다.두 사람 앞의 테이블 위는 텅 비어 있었다.평소라면 놓여 있어야 할 정보 자료는 없고 이미 차갑게 식은 찻잔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두 사람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얼굴에는 죄책감이 가득해서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무슨 일이에요?”주민혁의 시선이 두 사람의 잔뜩 굳은 등에 닿았다.가슴 밑바닥에서 불길한 기운이 순식간에 치밀어 올랐다.“구항구 쪽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임기택이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먼저 고개를 들었다.당혹스러워하는 눈빛에는 자책하는 기색이 뒤섞여 있었고 목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낮았다.“주 대표님, 심종연이... 심종연이 사라졌습니다.”“뭐라고요?”동공이 확 수축하며 주민혁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남자의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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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6화

주민혁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티테이블 위의 텅 빈 상판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주먹을 하도 꽉 쥔 탓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고 손톱이 손바닥 안쪽을 파고들었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속에서 치밀어 오른 초조함은 삽시간에 번진 들불처럼 온몸을 태워 갔다. 가슴 깊은 곳까지 타들어 가는 듯했다.주민혁은 루안타까지 심종연을 쫓아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어렵게 심종연의 은신처까지 알아냈다. 이제 막 실마리를 잡으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심종연이 또다시 사라졌다.역시 소문 그대로였다.교활한 토끼가 굴을 세 개나 판다더니 심종연은 그보다 더했다. 치밀하고 집요하고 끝까지 빠져나갈 구멍을 남겨 두는 인간이었다.은산시에서도 그는 겹겹이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두고 몇 번이나 도망쳤다.그리고 루안타, 자신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이곳에서도 그는 이미 퇴로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그래서 주민혁의 눈앞에서, 아무 기척도 없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것이다.주민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속에서 들끓는 분노와 초조함을 억눌렀다.하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은 점점 더 심해졌고 그 여파로 몸 곳곳의 상처까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그러자 눈가에 번져 있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차가운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지금은 책임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임기택과 진하민을 몰아붙인다고 해서 사라진 심종연의 행방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괜히 시간만 늦출 뿐이었다.주민혁이 손을 내저었다.“이미 일은 벌어졌어요. 지금 두 사람에게 책임을 따져 봐야 달라지는 건 없죠. 즉시 인력을 배치해 루안타 전역을 수색해요. 심종연이 숨을 만한 곳은 전부 뒤져야 합니다. 개인 섬, 지하 카지노, 그리고 예전에 루안타에서 움직이던 옛 부하들까지. 하나하나 전부 확인해요.”주민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땅을 파서라도 놈의 흔적을 찾아내세요.”“알겠습니다, 주 대표님.”두 사람은 마치 면죄부를 받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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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7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민혁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마음속에 일렁이던 감정들을 억지로 눌러 삼킨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흐트러진 가운을 대충 정리하고 침실 문을 열었다.“올려 보내요.”홍승헌이 루안타에 오는 건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최수빈이 홍승헌 쪽 절차가 거의 마무리됐고 2, 3일 안으로 루안타에 도착할 거라 말했으니 말이다.날짜를 계산해 보면 오늘쯤 도착하는 게 맞았다.다만 이렇게 공교로울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하필 심종연이 사라진 바로 그때, 도착하다니...’잠시 후, 홍승헌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그의 몸에는 긴 이동 끝에 쌓인 피로와 바깥에서 스며든 빗기운이 남아 있었다.평범한 사복 차림이었지만 몸에 밴 곧고 단호한 분위기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주민혁을 본 홍승헌은 곧장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그의 목덜미에 남은 할퀸 자국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주 대표님, 다치신 겁니까? 많이 심한가요?”“별거 아닙니다. 가벼운 상처예요.”주민혁은 손을 내저으며 홍승헌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마침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먼저 도착하셨군요.”“최수빈 씨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쪽 상황이 급하다는 걸 알고 절차를 최대한 앞당겼고 밤새 이동해서 왔습니다.”홍승헌은 자리에 앉았다.그러더니 임기택이 건넨 따뜻한 차를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몸을 조금 녹인 뒤에야 입을 열었다.“심종연의 흔적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구항구에 있다면서요? 저도 이미 현지 경찰 쪽에 연락을 넣어 뒀습니다. 오늘 같이 움직이면서 체포 계획을 세우려고요.”이에 주민혁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늦었습니다.”“...”“심종연이 사라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확인했어요. 구항구는 텅 비어 있었고 흔적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루안타 쪽도 전부 뒤졌지만, 머리카락 한 올 못 찾았습니다.”“뭐라고요?”홍승헌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손에 들고 있던 찻잔이 크게 흔들렸다. 찻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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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8화

게다가 심종연은 루안타에서 오랫동안 세력을 키워 온 인물로 그 세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현지 경찰 내부 사람들까지 매수해 두었을지도 몰랐다.그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수색 협조를 기대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됐습니다. 힘 빼지 마세요. 현지 경찰은 믿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알아서 움직여야 합니다.”“하지만 루안타가 얼마나 넓은데요. 우리 쪽 인력은 한정돼 있고요. 이 안에서 심종연을 찾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홍승헌은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리는 것으로 보아 그 역시 몹시 분노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러나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무력감만 남을 뿐이었다.그는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루안타까지 와, 주민혁과 힘을 합쳐 심종연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려 했다.그런데 막상 와 보니 심종연은 사라졌고 현지 경찰은 노골적으로 등을 돌렸다. 실마리 하나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럼 이대로 끝내자는 겁니까?”홍승헌의 목소리에서 참담함이 느껴졌다.“심종연이 버젓이 빠져나가는 걸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요? 그 손에 얼마나 많은 피가 묻었는데요. 저지른 죄가 몇 개인데, 이렇게 놓아줄 수는 없습니다.”“저도 이대로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심종연은 어둠 속에 숨어 있고 우리는 밖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놈은 루안타를 손바닥 보듯 알고 있죠. 반면 우리는 이곳 사정에 밝지 않습니다. 현지 경찰조차 협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루안타에 머물러 봐야 심종연을 찾기는커녕, 놈이 파 놓은 덫에 걸릴 가능성만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요.”홍승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민혁의 말이 맞았으니 말이다.계속 루안타에 남아 있어 봐야 의미가 없었고 시간과 체력만 허비할 뿐이었다. 심하면 오히려 자신들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하지만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분하고 억울해서 이대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거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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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9화

홍승헌은 주민혁의 눈빛을 보며 그가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그 결정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옳은 선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무겁게 말했다.“좋습니다. 귀국하죠. 다만 저는 즉시 인터폴 쪽에 연락해서 적색수배를 요청하겠습니다. 각국 경찰이 수색에 협조하도록 만들 겁니다. 심종연이 세상 끝까지 도망친다 해도 끝까지 추적해야죠.”“네.”주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해외 쪽 인맥을 전부 움직이겠습니다. 심종연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포착되면 곧장 우리에게 연락이 오도록 해 두죠.”귀국이 결정되자 모두가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임기택과 진하민은 귀국 항공편을 알아보고 짐을 정리했다.홍승헌은 국내 경찰에 연락해 루안타의 상황을 보고하는 한편, 인터폴 쪽에도 연락해 수배 절차를 진행했다.주민혁은 침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최수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금세 연결됐다.“무슨 일이에요? 혹시 무슨 일 생긴 거예요? 홍 팀장님은 도착했어요?”주민혁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은 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최수빈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었다.그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초조함과 피로가 절반쯤은 녹아내리는 것 같아 그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한없이 부드러워졌다.“아무 일 없어. 걱정하지 마. 홍 팀장님도 도착했고, 우리 모두 괜찮아.”“그런데 왜 이 시간에 전화했어요? 혹시 상처가 아픈 거예요? 약은 제때 발랐어요?”최수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지안 씨가 그 약은 시간 맞춰 발라야 빨리 낫는다고 했어요. 혼자 참으려고 하지 말고요.”“알아. 약도 제때 발랐고 상처도 많이 좋아졌어. 이제 안 아파.”주민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거짓말을 했다.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말해 줄 게 있어서 전화했어. 우리 오늘 귀국하려고 해. 오후 비행기니까, 아마 내일 아침쯤이면 은산시에 도착할 거야.”“귀국이요?”최수빈의 목소리에서 놀란 기색이 엿보였다.“왜 갑자기 돌아와요? 심종연 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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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0화

“심종연은 달아나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낼 거예요.”진하민과 임기택은 다시 단호한 결심이 서린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차가 루안타의 거리를 지나가자 창밖의 풍경이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동남아 특유의 정취가 짙게 배어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수많은 어둠과 음모를 감춘 도시, 결국 이 도시는 심종연을 붙잡아 두지 못했고 그들의 바람도 이루어 주지 못했다.하지만 주민혁의 마음속에는 포기라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이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심종연은 교활한 여우처럼 깊은 숲속으로 몸을 숨겼으나 아무리 숨어도 언젠가는 꼬리를 드러내게 되어 있었다. 언젠가는 사냥꾼의 손에 붙잡힐 날이 올 것이다.그리고 주민혁은 가장 인내심 강한 사냥꾼이 될 생각이었다.제자리에서 때를 기다리고, 가장 완벽한 순간에 심종연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것이었다.공항 안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주민혁과 홍승헌 일행은 보안 검색을 지나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는 활주로에서 천천히 움직이다가 이내 구름을 향해 솟구치더니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은산시를 향해 날아갔다.비행기는 구름 사이를 가르며 집으로 향했다.창가에 기대 눈을 감은 주민혁의 머릿속에는 최수빈의 다정한 미소가 떠올랐다. 율이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그러자 그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앞으로 얼마나 많은 비바람이 기다리고 있든, 심종연이 세상 끝 어디에 숨어 있든, 주민혁은 반드시 최수빈과 율이의 곁으로 무사히 돌아갈 것이었다.바로 오래 미뤄 두었던 그 재혼 약속을 이행하러 말이다.그리고 그 교활한 토끼도 결국 사냥꾼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숨을 굴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중 하나는 반드시 그의 무덤이 될 터였다.한편 은산시의 집에서는 최수빈이 율이와 함께 주민혁의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또 그의 이불을 햇볕에 널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도 준비했다.창문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집 안을 따뜻하고 환하게 물들였다.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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