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Bab 311 - Bab 320

1018 Bab

제311화

결혼 이후로 최수빈은 생일에 늘 주씨 가문 안에서만 지나갔다.그녀의 친구들은 눈치껏 연락을 피했고 축하 인사 한마디조차 삼갔다.그래서 오늘처럼 진심 어린 축하를 받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작은 선물들을 품에 안고 있을수록 왠지 눈가가 자꾸 뜨거워졌다.“고마워요, 선배님. 그리고 미연이 너도.”최수빈은 잠깐 고개를 숙였다.이제는 더 이상 누구 때문에 흔들리거나 스스로를 버리지 않으리라고 다짐했고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지켜내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송미연은 오늘을 진짜 생일 파티로 만들고 싶었다.예약한 장소는 생각보다 넓고 화려했다.당구대도 있고 음악도 깔끔하게 흘러나왔다.“와, 나 이런 데 몇 년 만에 와보는 거야.”큐대를 고르던 송미연이 혀를 차며 웃었다.“진짜 일 시작하고 나서 내 인생에서 놀이란 게 사라졌어. 이놈의 업계는 사람을 대머리로 만들고 인생의 낙까지 빼앗는다니까.”만약 가족들이 아니라면 그녀 또한 이런 회사를 차리지도 않았을 것이다.송미연은 금세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다.“자, 인터뷰 좀 할게요. 데이터랑 코드랑 싸우는 천재 두 분, 그 지루한 세상에서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시는 건가요?”육민성이 큐대로 그녀의 말을 툭 쳐냈다.“이런 건 그만 좀 하지?”“진지한 사람은 이래서 재미없다니까.”송미연이 혀를 끌끌 차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수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 심리... 네가 제일 잘 알잖아.”“모르거든! 나는 문제 풀면 정신이 나갈 것 같은데 너는 문제 풀면 행복해하잖아. 그게 차이야.”“야, 됐어. 오늘 생일이니까 이런 얘기는 하지 말고 다 같이 당구나 치자.”결국 셋은 웃음소리 속에서 큐대를 들었다.곧 당구공이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고 오랜만에 느껴지는 자유로운 공기가 방 안을 채웠다.잠시 후, 송미연이 부른 다른 친구들과 천공 연구원 사람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그들은 각자 작은 선물을 들고 와서 최수빈한테 생일 축하한다며 말했다.“다들 정말 감사합니다.”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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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원금영의 말에 최수빈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저 부드럽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내년 이맘때쯤이면 이혼 협의서의 조항이 만료된다.그때면 주씨 가문과는 완전히 남남이 되니 주씨 가문에서 생일을 보낸다는 말은 최수빈에게 해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송미연은 통화를 마친 최수빈의 얼굴을 보고 얼른 다가왔다.“무슨 일 있어? 누가 전화했어?”“할머니. 생일 축하 전화였어.”“할머니가 전화했는데 왜 표정이 그렇게 굳어있어?”송미연은 그녀를 유심히 살폈다.“할머니는 그래도 너한테 잘해주셨잖아. 설마 너한테 뭐라고 하셨어?”“에이, 그럴 리 없지.”최수빈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냥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로 모든 게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주씨 가문 안에서 자신에게 변함없이 따뜻했던 사람은 이제 정말 할머니 한 사람뿐이었다.송미연은 그런 최수빈을 바라보며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오늘은 네 생일이야. 이런 날엔 슬픈 생각 금지. 알겠지?”“응.”그녀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며 큐대를 들었다.한참을 웃으며 당구를 치고 있던 와중, 문이 벌컥 열렸고 새로운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섰다.“오빠, 진짜 오랜만이라 감을 좀 잃었을 것 같은데?”박하린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섰다.그 이름이 들리는 순간 최수빈의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고 시선은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하지만 주민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깨끗하게 단정한 셔츠, 감정 없는 눈빛.진승우도 뒤따라 들어왔다가 최수빈과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육민성과 송미연도 그들을 봤기에 업계 사람끼리 형식적인 인사 정도는 피할 수 없었다.“육 대표님, 여기서도 만나네요?”박하린이 능숙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육민성은 큐대를 닦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오늘은 수빈이 생일이라 같이 놀고 있었습니다.”“어머, 생일 파티였어요? 분위기도 좋은데 같이 놀면 안 될까요?”그녀는 이미 그들의 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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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솔직히 말하면 생각지도 못했다.주민혁이 자신의 애인과 함께 이곳에 올 줄은.최수빈은 생수병 뚜껑을 닫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아마 내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도 못 할 거야. 기억하더라도 모르는 척하거나 그냥 넘어가겠지.”그 말에 송미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무심하게 대답했다.“진짜 쓰레기네. 아주 철저한 남자야.”최수빈은 피식 웃으며 당구 큐를 들었다.“한 판칠까?”당구는 원래 그냥 오락이었다.몇 판을 치고 나서 회관 직원에게 저녁을 방으로 가져다 달라 부탁했다.최수빈은 주예린을 불러 함께 밥을 먹었다.주예린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잘 어울렸고 내내 육민성 곁에 붙어 다니며 ‘삼촌’이라고 불렀다.“그렇게 자꾸 삼촌한테만 붙어 있지 마.”최수빈은 어이없다는 듯 주예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중에 삼촌이 너를 귀찮아해서 보기 싫다고 하면 어쩌려고?”육민성은 웃음을 터뜨리며 주예린의 통통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최수빈, 네 딸이 나 좋아한다고 지금 질투하는 거야?”그러자 옆에 있던 송미연이 폭소를 터뜨렸다.“애가 육 대표님 좋아하는 거잖아. 그냥 둬. 어차피 육 대표님도 아이 좋아하니까.”주예린은 손에 우유 팩을 들고 최수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엄마, 그래도 저는 엄마가 제일 좋아요. 다른 사람은 절대 저를 못 데려가요.”최수빈은 미소 지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에린이 정말 영리하네.”잠시 후 주예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저 화장실 다녀올래요.”“같이 가자.”아이가 걱정된 최수빈 또한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따라 일어났다.“엄마는 여기서 편하게 있어요. 저 혼자 갈 수 있으니까.”아이의 말에 송미연은 최수빈을 안심시키듯 미소 지었다.“여긴 고급 식당이잖아. CCTV도 있고 안전해. 아이 자립심 키워주기 딱 좋은 환경이지.”사실 맞는 말이었다.요즘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안전했기에 최수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부모로서 가르쳐야 할 의무를 떠올렸다.‘언젠가는 놓아줘야 한다.’그래서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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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최수빈은 사실 딸이 주민혁과 너무 가까워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주예린이 친딸인 건 맞지만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처만 남겼다.그렇다면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낫고 괜한 희망 같은 건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치 못한 말에 주민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깊은 눈빛으로 최수빈을 바라보던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어 보였다.그 미소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에 최수빈은 미간을 찌푸렸다.그 웃음은 마치 이제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말하는 듯했다.최수빈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주민혁을 스쳐 지나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그날은 주예린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술은 거의 마시지 않아 저녁 8시쯤 마무리했다.육민성이 주예린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에 태웠고 아이는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고마워요, 삼촌.”육민성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멍해진 그는 무심코 최수빈을 바라봤고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긴장돼요? 애는 그냥 순수하게 선배가 좋아서 그런 거예요.”송미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육 대표님, 모태 솔로예요? 연애도 안 해봤는데 아이가 뽀뽀하니까 넋이 나갔네요?”육민성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주예린은 그저 순수한 아이였으니 아이들은 원래 뽀뽀를 해주거나 안아주는 것, 혹은 업히기를 좋아하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곧, 주예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육민성을 올려다봤다.“삼촌은 저 안 좋아해요?”그제야 육민성이 정신을 차리고는 주예린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미소 지었다.“좋아하지.”그는 몸을 숙여 차 안에 있는 주예린을 바라보았다.“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커서는 함부로 뽀뽀하면 안 돼. 다른 사람도 너한테 함부로 뽀뽀하면 안 되고. 특히 남자애들. 그런 일 있으면 꼭 아저씨랑 엄마한테 말해야 해. 알겠지?”아이에게 남녀의 경계를 가르쳐야 했다.특히 여자아이라면 더더욱.주예린은 눈을 또르르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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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주예린은 뒷좌석에 앉아 다리를 살짝 흔들고 있었다.“엄마, 아빠랑 이혼했잖아요. 그럼 저한테도 새아빠가 생겨요?”아이의 눈동자는 반짝였다.어디선가 설렘과 기대가 섞인 빛이 스쳤다.최수빈은 룸미러를 통해 딸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끝에 힘이 들어가며 핸들을 꼭 쥐었다.“예린이는 새아빠가 생겼으면 좋겠어?”주예린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엄마는 삼촌 좋아해요?”아이는 천진하게 웃으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저는 좋아요.”최수빈은 너무도 솔직한 아이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엄마랑 삼촌은 그냥 친구야. 좋은 친구.”주예린은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알겠다는 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그 시각, 창밖으로는 불빛이 줄지어 흐르고 차는 도심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집 앞에 도착했을 때 최수빈은 문 앞에 놓인 무언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그곳엔 케이크 하나와 카드 한 장이 있었다.[생일 축하해. 앞날이 창창하길 바라. 네가 걷는 모든 길은 다 꽃길이기를.]발신인은 없었기에 누가 보낸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최수빈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돌려봤지만 아무도 자신이 보낸 게 아니라고 했다.그녀는 살짝 입술을 깨문 채 고민하다가 케이크를 집 안으로 들고 들어왔다.주예린이 거실 테이블 앞에서 케이크 상자를 열자 안에는 정성스럽게 장식된 예쁜 딸기 케이크가 담겨 있었다.선물을 받은 최수빈보다 더 신이 난 아이는 욕실 쪽으로 소리쳤다.“엄마,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예요.”최수빈은 머리를 말리며 나오다가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그건 정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종류였다.하지만 이미 저녁에 케이크를 먹었고 이건 크기도 제법 커서 둘이 다 먹을 수 없었다.내일까지 두면 아마 상할 테니 최수빈은 케이크를 잘라 이웃들에게 나눠주었다.본인은 이미 배가 불러 거의 먹지 않았고 주예린에게만 작은 조각을 주었다.다음 날 아침, 최수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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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원금영은 주예린을 안고 본가 안으로 들어갔다.안에서는 도우미들이 쑥을 씻으며 떡을 빚을 준비하고 있었다.어제 미리 손질을 마쳐두었기에 지금은 마무리만 남은 상태였다.아직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예린아, 너도 한번 싸보고 싶다며?”주예린은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저도 해볼래요!”원금영은 그런 증손녀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고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내렸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옆에 서 있는 최수빈을 바라봤다.“애가 클수록 민혁이 어릴 때랑 똑같아지네. 꼭 아빠 닮았어.”원금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그렇지만 시후는 누구를 닮았는지 모르겠네.”그 말에 주예린은 고개를 들어 최수빈을 바라봤지만 그녀 역시 잠시 얼어붙은 듯했다.“왜 그래?”원금영이 묘한 기색을 눈치채며 물었다.“아니에요.”최수빈은 손을 들어 주예린의 볼을 살짝 집었다.그리고 눈을 떼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닮았어요.”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자세히 보거나 곁에 오래 있을수록 느껴진다.눈매와 인상, 너무도 닮았다.다만 완전히 다른 점이 있다면 주예린은 따뜻하고 순한 아이였고 주민혁은 차갑고 냉정한 남자였다.곧, 원금영은 웃으며 말했다.“자, 증조 할미가 가르쳐줄게.”“좋아요!”주예린은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오늘은 제가 직접 싼 쑥떡 두 개 먹을 거예요!”최수빈은 그런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작은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떡을 빚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따뜻했고 그저 그 한 장면으로도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할머니, 저희 쑥떡 안에 동전 하나 넣어요!”주예린이 아이답게 아이디어를 냈다.“누가 그거 먹으면 행운이 온대요! 설날에 만두에 동전 넣는 것처럼 말이에요.”원금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최수빈은 마당 그늘진 곳의 흔들의자에 앉았다.어제 밤늦게까지 논문을 정리하느라 잠을 못 자서 그런지 감기 기운이 올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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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최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예린을 자기 뒤로 감쌌다.“얼마예요? 제가 돈 보내드릴게요.”“뭐라고?”주나연의 눈빛엔 노골적인 경멸이 드러나 있었다.“네가 쓰는 돈, 다 주씨 가문 돈 아니야? 나한테 송금하면 뭐 해? 결국 또 민혁이한테 받아낼 거잖아?”최수빈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럼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주나연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사실 돈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녀가 부족한 건 돈이 아니었다.이 옷은 한정판, 다시 구할 수 없는 거였으니 분노를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됐어.”그녀는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진짜 재수 없는 모녀네.”주나연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진서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크지도 작지도 않게 딱 최수빈이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음량이었다.“어떤 사람들은 우리 같은 급이 아니지. 아무리 가지에 올라간다 한들... 메추리는 결코 봉황이 될 수 없거든.”주예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엄마, 혹시 저분들... 저 때문에 화난 거예요?”최수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그때, 부엌 쪽에서 원금영이 걸어 나왔다.“가서 좀 쉬어.”그녀는 최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째 예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네? 우리 집인데 왜 이렇게 굳어 있어?”최수빈은 대답 대신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원금영은 주예린의 손을 잡고 거실로 향했고 최수빈도 흐릿한 정신으로 그 뒤를 따랐다.“어디 아프니?”원금영은 그녀의 얼굴빛이 점점 창백해지는 걸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아요.”“감기?”원금영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내가 준비해 둔 약은 다 먹었니? 의사도 말했잖아. 수빈이 네 몸이 약해서 일도 좀 줄이고 밤새우지 말라고.”“네, 먹었어요.”“지금 당장 올라가서 쉬어. 내가 약 가져올게.”“엄마.”두 사람의 대화에 주예린이 걱정스레 다가와 최수빈의 손을 살짝 잡았다.그래서 최수빈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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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최수빈은 너무 가벼워 주민혁의 품에 안겨 있을 때 그에게는 거의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그 순간, 심장이 덜컥 뛰었고 온몸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주민혁 씨, 뭐 하시는 거예요? 내려놔요.”최수빈은 힘껏 저항하며 말했다.“가만히 있어.”주민혁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연기라 해도 이 정도면 꽤 큰 ‘희생’이었다.그는 묵묵히 그녀를 안은 채 계단을 올라 침실로 들어갔다.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최수빈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이러실 필요 없어요. 저 혼자 올라올 수 있었어요.”아무리 아파도 그녀는 버틸 수 있었다.무엇보다 이곳에 그녀는 정말 오고 싶지 않았다.이 방은 그들의 첫날밤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주민혁은 고개를 숙여 감정이 읽히지 않는 눈빛으로 최수빈을 바라봤다.“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야?”그 말엔 묘한 비웃음마저 섞여 있었다.예전의 최수빈이라면 손끝에 작은 상처만 나도 주민혁을 찾아가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그는 그걸 싫어하면서도 늘 약을 발라주곤 했다.“이따가 감기약 줄게. 먹고 좀 자.”“밥은 내가 도우미더러 가져오라고 할게.”“괜찮아요.”최수빈은 차갑게 잘라 말했다.“조금 후에 내려가서 먹을게요. 그렇게까지 번거롭게 하지 마세요.”주민혁의 시선이 잠시 최수빈 얼굴 위에 머물렀다.눈빛이 깊어졌지만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길게 흘렀다.한참 후에야 주민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몸이 안 좋으면 안 와도 돼. 굳이 올 필요는 없었잖아.”최수빈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참 우습네.’주민혁은 언제나 이렇게 모순적이었다.예전엔 그렇게 돌아오라고 하더니 이제 와선 오지 말라고 했으니까.결국 뭘 해도 최수빈의 잘못이었다.“주민혁 씨, 괴로운 건 당신만이 아니에요.”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저도 모든 게 버겁고 힘들어요.”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다음부터는 어떤 핑계라도 좋으니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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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최수빈은 몸을 일으켜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그때, 문이 살짝 열리며 주예린이 물과 약을 들고 들어왔다.“엄마, 증조할머니가 주신 약이에요. 이거 먹고 좀 쉬래요. 잠깐 자고 나면 밑에 내려가지 않아도 된대요. 식사는 도우미들이 위로 가져다준대요.”아이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눈빛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약을 받아 들고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엄마, 혹시 약 먹고도 안 나으면 병원 가요. 엄마는 항상 감기 걸리면 오래가잖아요.”주예린은 작은 손으로 엄마의 팔을 꼭 잡았고 최수빈은 아이의 손을 덮으며 부드럽게 물었다.“조금 있다가 엄마가 내려가지 않아도 예린이 혼자 밑에서 다른 사람들하고 밥 먹을 수 있겠어? 무섭지 않아?”주예린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이젠 저도 다 컸으니까 안 무서워요. 게다가 증조할머니도 계시잖아요.”아이는 천진하고 믿음직했지만 최수빈은 그 말이 오히려 더 아팠다.최수빈은 잘 안다.이 집 안에서 자신이 없으면 주예린을 좋아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걸.그나마 원금영만이 따뜻했다.특히 주시후가 있는 자리는 주예린에게 결코 편한 공간이 아니었다.“예린아, 우리 그냥 가자.”최수빈이 조용히 말했다.“오늘은 여기서 밥 먹지 말고.”주예린은 잠시 망설였다.“그렇지만 엄마한테 제가 직접 싼 쑥떡 먹여주고 싶었는데...”아이는 엄마의 창백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괜찮아요. 나중에 집에 가서 다시 싸면 돼요. 엄마, 병원 갈까요?”최수빈은 마스크처럼 옷깃을 끌어 올려 코와 입을 가렸다.감기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몸이 무겁고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무엇보다 아직 어린 주예린에게 옮을까 봐 두려웠다.곧, 그녀는 거실로 내려가 원금영에게 상황을 설명했다.“몸이 조금 안 좋아서 예린이 데리고 병원 좀 다녀올게요.”그러자 원금영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버렸다.“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졌어? 숨도 가쁜 것 같은데? 괜찮니?”그녀는 곧장 도우미에게 지시를 내렸다.“내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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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주예린은 엄마가 아픈 게 마음에 걸려 혼자 두지 못하고 함께 위층으로 올라왔다.그들의 침실은 넓었다.책상과 소파가 따로 있고 창가엔 커튼이 반쯤 젖혀져 있었다.주민혁이 아픈 최수빈에게 짧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어디가 불편한지 말해.”그 말만 남기고 그는 곧장 소파 쪽으로 걸어가 앉았다.마치 해야 할 일을 그저 수행하는 사람처럼.주예린은 엄마 곁에 앉아 걱정스레 엄마 얼굴을 바라봤다.그리고 시선은 가끔 소파에 앉은 남자 쪽으로 향했다가 금세 다시 돌아왔다.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업무 메시지를 확인하는 듯한 표정이었다.주민혁의 무심함은 방 안의 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얼마 후, 주예린은 조용히 시선을 거뒀다.“엄마, 진짜 아프면 꼭 저한테 말해요.”최수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손을 살짝 쥐었다.“응, 알겠어.”그녀는 손끝으로 이마를 짚었다.열기와 피로가 뒤섞여 온몸이 힘이 빠졌고 머리는 멍해 몸이 무거웠다.요즘 부쩍 몸이 약해진 걸 느꼈다.조금만 피곤해도 금세 감기에 걸리고 면역력이 바닥나는 기분이었다.‘이젠 정말 생활 습관부터 바꿔야겠네.’최수빈은 팔로 눈을 가리며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약상자를 들고 올라왔다.체온계를 귀에 대자 수치가 떴다.38.9도, 거의 39도에 임박하는 체온이었다.“열이 꽤 높네요.”주민혁이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이 정도로 심했습니까?”“해열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혹시 진통제나 해열제 드셨나요?”주민혁이 짧게 대답했다.“조금 전에 먹었는데 별로 효과가 없네요.”의사는 주사를 놓고 경과를 지켜봤다.그때 원금영이 급히 올라왔다.“어쩌다가 이렇게 심해진 거야? 아침까진 괜찮았잖아.”최수빈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아침부터 목이 좀 아팠어요. 그냥 가벼운 감기인 줄 알았는데...”원금영은 잠시 말이 없더니 주민혁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같이 자는 사람이면 아내가 아플 때 몰랐다는 게 말이 되니?”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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